먼저 밝혀두면 나는 전형적인 ‘문과쟁이’이고, 집에서 형광등도 제대로 고치지 못하고, 앰프의 전선을 스피커에 끼우는 정도의 일 외에는 거의 손재주하고는 담을 쌓아도 심하게 쌓고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이다. 이런 내가 때때로 불편하다. 대학교 때에는 경제학과를 다녔기 때문에 거의 독학으로 수학을 조금 공부한 것 외에는 공식적으로 수학을 배운 적이 없다.
나는 경제사, 철학, 사회학 그리고 유학 당시 조직론과 인류학으로 상당한 학점을 채워서 겨우겨우 경제학 박사가 되었다. 수학을 조금 공부한 것을 제외하면 전형적인 문과생인 것이다. 더군다나 실험 같은 건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에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그렇지만 황우석 사태와는 별개의 이유로 몇 년 전부터 내가 이공계로 가지 못한 것을 평생의 한으로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중이다.
사태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건 그저 ‘상식’ 나는 3년 전쯤부터 비교적 확실하게 황우석 교수팀의 연구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렇다고 대단히 고급 정보를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난자와 난자 채취과정에 대해서 좀 알게 되었다는 것이 판단을 내리는 데 중요한 근거로 작용하였다. 그리고 예전부터 기술중심주의(techno-centrism)에 대해서, 그것만이 세상을 움직이는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생태주의적 시각을 약간 가지고 있기는 했다.
난자 문제를 이해하는 건 사실 13세 이후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사실이고, 생태주의의 시각을 갖는 것은 학력과는 전혀 무관한 개인적 철학일 뿐이다. 어느 익명의 제보자에 대한 얘기가 「PD 수첩」으로부터 흘러나오기 시작할 때쯤부터 나의 의혹이 커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당시 명확한 진위판단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사실상 황우석 교수와 그 측근 몇 사람 외에는 없었을 것이다. 어쨌든 의무교육을 제대로 마친 정도의 지식 수준이라면 제보자의 이야기만으로도 연구에 뭔가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의혹을 가질 수 있다. 물론 나도 그 수준이었다.
확실히 ‘감’을 잡게 된 건 그 유명한 ‘뽀샵질’ 사건(황교수 팀이 세포사진을 포토샵 프로그램으로 실제 개수보다 늘려서 발표했다는 의혹이 사진분석 결과와 함께 기사화된 적이 있다) 때문이다. 아도브사의 포토샵 프로그램은 문과생들도 충분히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는 대중적 프로그램이다.
디지털카메라를 조금이라도 다룰 줄 아는 사람이면 포토샵이 무엇인지, 어떤 용도로 사용하는지 정도는 전부 안다고 봐도 무방하다. 물론 나도 ‘뽀샵질’을 해봤다. ‘뽀샵질’ 사건에서 논문 속 사진을 본 순간, 나는 사진들의 ‘뽀샵질’이 아주 서툴다는 점을 깨달았다. 만약 나한테 사진을 조작하라고 했으면, 그렇게 쉽게 들켜버릴 정도로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는 가끔 지도의 윤곽이 필요해서 항공사진 가지고 ‘뽀샵질’을 통해서 지형윤곽만 남기는 이미지 파일을 만들기도 한다. 포토샵에는 ‘레이어’라는 기능이 있는데, 명도와 같은 몇 가지 정보로 사진의 레이어를 만들어서 그 중의 한 레이어를 왜곡시키면 웬만해선 그것이 조작된 세포사진인지 아닌지 찾아낼 수가 없다. 사실 황우석 교수는 이 시점에서 이미 ‘게임오버’인 상태였다. 논문의 세포수가 ‘뽀샵질’로 늘어났다는 것이 밝혀졌다면 이미 한쪽 무게추가 확 기울어진 상황인 것이다.
그 시점에서 『사이언스』지만 바라보고 있어서는 곤란하다. 어차피 『사이언스』나 『네이처』 같은 보수적 기관들은 정말 마지막 시점이 되었을 때에만 입장을 잠깐 표명하고, 그것도 답답한 정보만 준다. 한국은행이 증권예측을 해주지 않는 것과 같다.
반면 『뉴욕 타임스』에 2004년 논문에 대한 의혹이 언급되기 시작한 것은 상당히 결정적인 정보였다. 충분히 문과 출신도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게다가 우리말로 번역되어서 이 정보가 알려졌다. 2004년 부록 그림의 DNA 판독사진을 보면 기계는 앞으로만 진행하는데, 뒤로 진행한 흔적이 있으며, 이건 손으로 그려 넣은 것이 아니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2004년 논문이 검증되어야 한다는 말이 『뉴욕타임스』에서 나온 것이다.
어느 정치인의 참모가 유능할까 자, 다시 문과생들의 세계로 돌아오자.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이 적인지 아군인지, 아니면 진보인지 수구꼴통인지 이런 골치 아픈 생각은 여기서 전혀 할 필요가 없다. 이 시점부터는 과연 어느 정치인 진영이 그나마 고등학교 졸업 이상의 ‘정상적인 문과생’ 수준이 되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기회다.
정치인들은 워낙 바쁘시다 보니, 이런 개념들에 대한 정리는 아마 참모진들의 몫일 것이다. 대부분의 정치인들의 보좌관이나 측근들 말해 참모진들은 문과생 출신이 압도적이다. 엔지니어나 제대로 된 이공대생이 이런 ‘험악한’ 일을 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보통은 정치학과나 사회학과 혹은 순수 문학도들이 취직이 잘 안 되어서, 혹은 학교·고향 선배를 돕기 위해 이런 일을 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아주 드물지만 젊었을 때의 순수한 열정을 가지고 이 험난한 생활을 시작한 사람들도 있긴 하다.
각설하고 DNA의 핑거프린팅(지문)에 대한 결정적인 문제제기가 흘러나온 직후, 정치인들의 대응이 어땠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인간의 DNA가 지문처럼 제각각 다르다는 사실은 영화 『살인의 추억』을 보거나 TV 인기외화 시리즈인 『CSI 과학수사대』를 보았으면 충분히 알 수 있는 내용이다. 테라토마 같은 건 이름이 생소해서 모른다 해도 ‘핑거프린팅’ 다시 말해 ‘지문’이 왜 중요한지는 문과생들도 이해할 수 있다.
경기 초반부터 후반전 내내 ‘삽질(비속어지만 너무나 적확한 표현이므로 독자들에게 양해를 구한다)’을 연속한 사람은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였고, 박 대표와 ‘난형난제’를 이루는 분으로는 비교적 초기부터 ‘오버’했던 손학규 경기지사였다. 정동영 장관은 어떨까. 황 교수의 ‘친구’라서 감싸줬다기보다 앞의 두 분과 마찬가지로 본인과 참모진 모두 DNA 핑거프린팅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아차상’은 이명박 서울시장이다. 전언에 의하면 나름대로 ‘감’을 잡은 이명박 측에서 황우석과 지나치게 가깝게 보이는 것을 좀 경계하던 편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역시 이명박!”이라며 감탄을 하고 있었는데, 마지막 순간에 병문안 가면서 스타일을 구겼다.
며칠만 더 참았으면 “역시 이명박!”이 가능할 수 있던 순간이었는데…. 그러나 안타깝게도 “비판에 신경 쓰지 말고 연구에 전념하시라”는 말 한 마디로 이명박 진영의 지적 능력이 한 순간에 ‘뽀록’나 버렸다.
그렇지만 대박을 터뜨린 사람은 역시 유시민 의원이었다.
“PD수첩 프로듀서가 검증하겠다는 것은 제가 나서서 검증하겠다는 것과 마찬가지 아닙니까? 기자나 저나, 생명공학에 대해서 모르기는 마찬가지인데. 그래도 저는 보건복지위원을 2년이나 했기 때문에 좀 압니다. 그 분야를 (PD수첩이) 무모하게 덤빈 것이죠.”(전남대학교 초청강연회)
피디들이 ‘보건복지위원’인 자기보다 더 무식한데 뭘 안다고 주제넘게 나서냐는 말씀이다. 이 사건에 전혀 존재감이 없던 유시민으로서는 민심을 얻기 위한 ‘회심의 일격’이었을 터. 그러나 아뿔싸, 그게 자살골일 줄이야.
김미화 백지연 오세훈 그리고 KBS 국민적으로 정신적 공황에 몰아넣은 이 황우석 사건의 순기능이 있다면 평소에 “난 착해요”하고 말하던 사람들이 일거에 본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는 일이다. 조금은 딱한 생각이 드는 경우가 개그맨 김미화씨다. 녹색연합의 환경대사 역할을 수행하면서 많은 캠페인의 얼굴로 나서기도 하였고, 사회문제에 대해서 굉장히 건강한 시각을 보여줬던 이분이 난자기증 운동의 전면으로 나서면서 얼굴을 드러낸 것은 뜻밖의 사건이었다.
개인적으로 난자기증에 대해서 특별하게 반대하지는 않는다. 좀 미비하지만 그래도 관련법규가 제정되어 있는 현 상황에서 본인의 선택에 대해 특별히 찬성이나 반대의 생각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그렇지만 얼굴이 알려졌다는 이유로 선동을 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약간의 반감을 가지고 있다.
자신은 쓰지도 않는 화장품이 무슨 기능이 있다고 하거나 자신은 먹거나 사용하지도 않는 약을 광고하는 광고모델을 보면서 갖게 되는 반감 혹은 다단계회사에 가까운 특정 상품을 자랑스럽게 광고하는 모델들을 볼 때 생기는 반감과 비슷한 감정이다.
하여간 우리의 김미화 여사가 마지막 순간에 얼굴을 드러냈다는 점은 정말 안타까웠고 뜻밖이었다. 더불어 아나운서 백지연, 변호사 오세훈 같은 사회적으로 괜찮은 이미지를 가진 사람들도 마지막 순간에 얼굴을 드러내고 말았다.
황우석 교수를 지나치게 옹호한 YTN에 대한 문제제기는 많았는데 사실 KBS도 예외는 아니었다. KBS 피디들이 MBC의 피디들에게 ‘아마추어리즘’이라고 지적한 것도 지나친 처사였고, 특히 KBS 의학전문기자라는 홍사훈 기자의 발언은 압권이었다.
PD수첩의 진실규명 노력에 대해 “『사이언스』는 보고 싶다고 해서 아무나 볼 수도 없는 훌륭한 잡지인데 감히 PD수첩이 검증을 하겠다고 나서냐?”라는 식으로 윽박지르고 나온 거다. 그 얘기를 듣고 솔직히 웃겨서 죽는 줄 알았다. 대학교의 컴퓨터 어디든지 들어가도 다 공개되어 있는 『사이언스』의 PDF 파일이 아무나 보는 게 아니라니? 이게 한국 ‘과학전문기자’의 현주소다.
우리, 더 똑똑해집시다! 황우석 사태는 이 땅의 이공대생들에게 심각한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역시 과학은 내 일이 아니다”라던 많은 문과 출신들에게도 예외는 아니다. ‘98% 대 2%’의 극적인 여론쏠림 현상은 인터넷에서만 벌어진 일이 아니다. 경주의 방폐장 90% 찬성에서 이미 드러난 현실이다.
경제주의, 전체주의적 포퓰리즘 그리고 과도한 민족주의의 경향이 사회곳곳에서 증명되고 있는 것이다. 정치인들의 정보처리능력이 과학과 기술 앞에서 어떻게 정지하는지 그리고 그 국민들의 의사결정능력이 어떻게 마비상태에 빠지는지 우리는 똑똑히 목격했다.
숫자나 그래프가 나오면 이내 눈을 돌리고 마는 현재의 풍토에서 제2, 제3의 광기는 언제든지 등장할 수 있다. 꼭 똑똑해져야 해? 물론이다. 독재와 파시즘 그리고 인종주의는 국민들이 똑똑하지 않다는 전제하에서 움직이는 광기의 현상이기 때문이다.
최소한 DNA에 관련된 내용이 들어가 있는 고등학교 생물 공부만 제대로 했더라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한 정보가 제공된 황우석 사건에 대해서도 판단할 수 없다면, 핵무기, 수소엔진, 스마트 담수화설비 기타 등등 앞으로 등장할 수없는 실용기술들에 대해서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정부가 어련히 잘 생각했겠느냐’라는 말도 이번에는 안 통했고,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 사이에 본질적인 차이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이번에는 깡그리 무너져내렸다. 인터넷은 민주주의를 줄 것이라고 했던 말도 난센스가 됐다. 어쩌겠는가? 더 똑똑해지는 수밖에...
“만약 고등학교 때 생물과목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해”라고 질문한다면?
만약에 당신이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않았다면? 내가 만약 그 상황이라면 나는 작가 장정일을 쳐다볼 것 같다. 아름다움에 대한 감수성으로 짧은 인생을 살다간 기형도가 ‘천재’라고 칭했던 장정일의 선택을 본다면, 최소한 아주 이상한 판단은 피할 수 있을 것 같다.
* 본 기사는 진보적 월간지 <말>(
www.mal.co.kr) 1월호에 게재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