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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봐 우리가 다시 만난다고 했잖아!
용서받을 수 없는 정치인의 오판
 
변희재   기사입력  2002/11/17 [18:27]
2002년 정치 드라마의 주인공 김민석

{IMAGE2_RIGHT}1. 김민석은 지금 노무현을 압박하여 정몽준을 띄워주는 정치적 불륜행각을 저지르고 있다. 정치적 매춘에는 공소시효가 없는가? 이들의 배신과 배반은 민주당 지지여부를 떠나서 한국정치를 퇴행시킨 천인공노할 만행으로서 준열한 역사적 응징이 반드시 이뤄져야 할 것이다./장신기

2. 민주당에서 국민통합21로 옮겨간 김민석 전 의원은 민주당의 이호웅, 김희선 의원을 부둥켜안고 "거봐, 우리가 다시 만난다고 했잖아!"라고 말했다.

1번과 2번의 상황에 대해 부연설명은 필요없을 줄 안다. 정치인의 정치적 행위에 대하여 평가를 내리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한 단면만을 보고 옳고 그름을 가려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흐름 속에서 그 의미를 찾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6.13 지방 선거 이후 계속되었던 민주당의 분열을 조장한 인물들에 대한 사후평가는 앞으로의 정치개혁과 관련하여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한국 정치사에서 이토록 짧은 기간 동안 이토록 많은 인물들의 정치적 생명이 오락가락했던 적은 없었을 것이며 그만큼 2002년도야말로 시대의 흐름이 역동적으로 바뀌는 시기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드라마틱한 인물은 바로 김민석 전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라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할 것이다. 이인제 진영에 가담했다는  소문이 돌더니 노풍이 부는 시점에 다시 중립을 지키고, 노풍에 올라타며 국민경선을 기획했다 자부했던 사람이 정몽준 지지로 돌아서며 국민경선을 비판했고, 결국 다시 "거봐, 우리가 다시 만난다고 했잖아!"라는 말로 자신의 업적을 자축하는 샴페인을 터뜨리며 다시 한번 화려한 도약을 꿈꾸고 있으니 말이다.

나는 김민석 전의원에 대한 평가는 후보단일화의 정당성 여부와 상관없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비단 김민석 전의원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일찌감치 탈당한 후단협 사람들과 애매한 행보를 보였던 재야 4인방, 그리고 아직도 당에 남아서 눈치를 보고 있는 박상천-정균환 투톱 등의 정치적 행위의 판단 기준이 바로 김민석 전의원의 평가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미워도 다시 한번, 용기와 진정성은 인정하자

김민석 전의원이 국민통합21에 입당한 뒤 나는 그를 향해 이런 글을 쓴 적이 있다.

"김전의원이 살아날 길은 민주당 내에서 노후보에게 단일화를 요구하며 압박했듯이 정몽준 당 내에서 정후보에게 단일화를 요구하며 압박하는 것이다. 왜 노후보에게 했던 것처럼 성명서 하나 내지 않는가?  심지어 평화개혁세력이라 추켜세우던 정몽준 후보가 군사정권의 잔재세력인 장세동과 손을 잡으려 하고 있다. 이것을 그대로 내버려둬도 되는가?"

김전의원은 "단일화가 필요하다고 보며, 현실적으로 정몽준 후보로의 단일화를 통한 대선승리가 불가피하고, 단일화노력과 함께 민심에 의한 실질적 단일화 노력도 병행되어야 한다고 봅니다."라는 논리로 탈당을 감행했으므로 그가 국민통합21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바로 단일화의 현실화였기 때문이다.

인터넷 신문 프레시안의 보도에 따르면 김민석 전의원이 후보단일화 관련하여 정몽준 후보에게 직언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정몽준 후보의 측근들로 채워진 국민통합21에서 그나마 통합에 적극적으로 나설 만한 사람은 전위에 이철, 후위에 김민석 정도였으니 당 내에서 그가 많은 역할을 했을 거라는 잠작은 할 수 있겠다.

그리고 민주당 내에서 정치 씹새들로 찍혀있는 다른 인물들과 비교해보더라도 김민석 전의원의 행보는 그렇게까지 치졸하다고 평가하기는 힘들다. 후보단일화의 명분을 내걸고 탈당했던 후단협은 후보단일화가 진행되자 사사오분되며 공멸의 길로 들어서고 있고, 마음은 이미 정몽준 후보 쪽으로 넘어갔으면서도 지역구 문제로 민주당에 남아 제 살 갉아먹기만 하는 박상천-정균환 투톱에 비한다면 일찌감치 혈혈단신으로 국민통합21에 입당한 김전의원의 용기 하나는 가상하지 않냐는 것이다.

김전의원 자신도 고백했지만 그의 결단은 분명히 정치적 생명을 걸었다고 인정해줄 수도 있는 일이다. 정몽준의 당선가능성이 매우 낮았던 점, 이미 한나라당의 대세론이 판을 장악하고 있던 점, 만약 이회창 집권 시 국민통합21은 붕괴의 위기에 처할 것이 명백했던 점을 모두 고려해보면 그가 단지 기회주의적으로 자리 하나 노리가 국민통합21로 들어갔다고 보기는 힘들다.

김민석 전의원, 너무나 빠른 행보

후보단일화가 합의되었다는 결과와 그 결과를 이끌어내는데 기여한 공로, 그리고 사심없는 용기와 진정성을 모두 인정한다 하더라도 김민석 전의원의 평가를 모두 긍정적으로 되돌릴 수는 없는 일이다.

김전의원은 6.13 지방선거 당시 노무현 대통령 후보와 서울시를 누비며 "대통령 노무현, 서울시장 김민석'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함께 했었다. 물론 당시까지만 해도 그 위력이 남아있었던 노풍을 활용하여 민풍을 불러온다는 선거전략의 일환이었다. 그러다 지방선거 참패 이후 김전의원은 "내탓이오."란 말로 자성하며, 노무현 후보가 선거패배의 책임으로 당내에서 무수한 공격을 당할 때 발을 뺀 상태였다.

그러다 9월 14일 민주당에서는 정몽준과의 재경선 문제, 신당 창당 문제로 어수선할 때 김민석 전의원은 <새로운 문제의식과 새로운 출발>이라는 글을 자신의 홈페이지에 발표했다.

"최근 민주당 안팎에서 신당논의가 이루어지고 있기도 하지만, 저는 이러한 정치적 논의의 복판에 정작 정치노선에 대한 논의가 다소 취약하게 느껴져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최근의 신당 논의 등 각종 정치적 논의는 당면한 대통령선거에서 어떻게 해야 승리할 것인가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출발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런 논의의 저변에는 '무엇이 과연 시대흐름에 맞고, 미래지향적인 것인가? 우리 사회와 정치의 앞날은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에 대한 다양한 판단의 차이가 담겨 있고, 또 결국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는 형태로 마무리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김민석이라는 이름은 정가에 그다지 자주 오르내리지는 않았다. 정치인이라면 누구나 해봄직한 원론적인 말에 그쳤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10월 15일의 성명서에서 노무현 후보에게 단일화를 수용하라는 압력을 넣는다.

"노무현 대통령후보는 정몽준 의원 등과의 후보단일화에 대한 입장을 즉각 표명해야 합니다. 후보단일화의 필요성 자체를 원칙적으로 부정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국민통합, 정치개혁, 남북화해정책지속 등 3대 과제를 중심으로 정책연합을 형성하고 후보를 단일화하여 대선승리를 이루어내야 합니다."

'무엇이 과연 시대흐름에 맞고 미래지향적인가?'라고 물었던 한달 전의 자문에 후보단일화라는 자답을 스스로 들고 나온 것이다. 9월 14일부터 10월 15일의 한 달은 노무현 후보가 후단협의 흔들기를 차단하며 독자 노선으로 나아가던 시기였다. 이 시기에 그는 정몽준으로의 후보단일화를 요구하며 결국 이틀 뒤에 "정몽준 후보가 시대의 요구를 실현하여 국민통합, 젊은 한국, 제2의 국가도약을 이루는데 헌신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돕겠습니다. 민주평화개혁세력, 그리고 신당과 정몽준 후보는 새로운 시대의 흐름을 타고 반드시 승리할 것입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민주당을 탈당했다.

김민석이 판단한 시대의 흐름은 승리!

김민석 전의원은 정몽준으로의 후보단일화를 명분으로 탈당했다. 그가 9월 14일의 성명서에서 원론적으로 언급한 시대흐름에 맞고 미래지향적인 인물의 주인공은 바로 정몽준이었다.

하지만 김전의원이 내놓은 성명서부터 언론의 보도까지, 도대체 정몽준 후보가 왜 시대 흐름에 걸맞는 인물이고 미래지향적인 인물인지에 대한 설명이 전무하다. 9월 14일까지만 해도 시대흐름이라는 원론을 고민하던 정치인이 10월 17일 정몽준 지지를 선언하며 탈당을 감행하까지 논리적 비약이 너무 심하다는 말이다. 그 사이에 무엇을 고민했길래 자신과 함께 서울시를 누볐던 자당의 후보를 버리고 타당의 후보를 지지하게 되었단 말인가?

한겨레21의 정영무 편집장은 바로 김전의원이 말한 미래지향적 시대흐름을 보수와 개혁의 구분을 뛰어넘는 탈이념이라 정리한 뒤 그의 결단 배경을 분석한다.

"요컨대 김민석의 결단을 재촉한 두 채찍은 승리지상주의와 정치현실주의로 여겨집니다. 그는 이 과정에서 자신의 일부였고 386세대 정치인에게 지워진 자산과 부채- 상상력·정열·이상- 를 털어냈습니다."

  정몽준과 노무현의 노선의 차이 때문에 정을 지지했다기 보다는 당시 정몽준의 지지도가 노무현보다 높고, 김전의원의 말대로 탈이념이 새로운 시대의 흐름이라면 노무현보다는 정몽준이 이회창을 꺾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 어떤 명분을 붙인다 해도 밑에 숨어있는 본질은 뭐니뭐니 해도 승리 이데올로기라는 점은 김민석 전의원 역시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그는 한겨레21과의 인터뷰에서 김전의원을 평가할 수 있는 매우 의미심장한 발언을 했다.

김민석 방식의 후보단일화는 실패했다
      
  "그분들은 노 후보를 도와주고 마지막에 단일화를 해보자고 얘기한다. 9월까지, 10월까지 하다가 요즘 11월 말까지라고 말한다. 그분들에게 거꾸로 묻고 싶다. 그렇게 해서 정말 단일화가 될 것이라고 그분들이 얼마나 생각하는지, 솔직히 궁금하다. 또 승리하지 못하는 단일화가 무슨 의미가 있는지 반문하고 싶다."

역사적 의미까지 끌어와서 추켜세운 후보단일화 역시 승리하지 못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상한 일이다. 노 후보를 도와주고 마지막에 단일화를 해보자고 이야기한 바로 '그분들'의 말대로 11월 말에야 비로소 단일화가 성사되었다. 그리고 단일화가 전격적으로 논의된 것도 노 후보를 도와준 '그분들'의 덕택에 노후보의 지지율이 정후보의 지지율에 근접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렇다면 지금 후보단일화가 되었다고 자축하기 보다는 승리할 수 없는 단일화를 왜 했느냐가 따져물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김전의원의 방식은 정후보의 지지율을 압도적으로 끌어올려 노후보의 자진 사퇴를 유도하는 것이었다. 특히 자신이 먼저 국민통합21로 건너가 행동을 주저하는 다른 민주당의 탈당파 의원들을 조속히 끌어와 민주당을 붕괴시키려 했던 의도 역시 자신의 입으로 밝혔었다. 김전의원은 한겨레21과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도 했었다.

"이대로 가면 정몽준 의원의 지지율이 떨어져, 현재의 2강1중 구도가 1강2중 구도가 되면서 ‘이회창 대세론’이 급격히 확산된다. 2강1중이면 그래도 후보단일화 가능성이 남아 있으나 1강2중이면 단일화는 물 건너간다. 내가 정 의원에게 가는 것도 그런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해서다”

  그렇다면 지금의 단일화는 김전의원이 짜놓은 후보단일화 각본과는 180도 다른 것이 아닌가? 김전의원의 노무현 낙마를 전제로 한 단일화 방식은 실패한 것이고 오히려 김전의원이 비판한 '그분들'의 방식, 즉 노무현 상승을 통한 1강 2중 구도 내에서의 단일화가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노무현 후보가 주도한 1강 2중 구도에서의 단일화라면 김전의원의 탈당은 이에 어떠한 도움을 주었다고 보기는 힘들다. 실제로 민주당의 협상팀에서는 김전의원의 배석을 거부하기도 하지 않았는가. 김전의원이 트로이의 목마식으로 정몽준 캠프로 들어가서 노무현으로의 단일화를 추진한 것이 아니라면 자신의 탈당과 지금의 단일화를 연결시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다.

김민석, 거꾸로 가는 386

{IMAGE1_LEFT} 내가 지난 글에서 김전의원에게 "후보단일화를 정몽준 후보에게 압박하라."고 말한 것은 그의 선택이 옳았다는 것이 아니다. 이미 2강 1중 노무현 낙마식 단일화는 실패로 돌아갔으니 최소한 정치적 생명이라도 유지하려면 당내에서 단일화에 앞장서라는 의미였다. 머리 빠른 김전의원 역시 이를 간파한 듯 방향을 바꿔 후보단일화에 적극 나선 듯하다.

그러나 다시 이야기하자면 정치인의 정치적 행위에 대한 평가는 결과와 대의명분만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그 과정을 역사적 흐름에 비춰 판단해야 한다. 그렇게 본다면 김민석 자신이 비판한 '그분들'의 단일화 방안이 옳았다는 결론이 나온 마당에 예전에 자신이 한 말을 뒤집고 "거봐 우리가 다시 만난다고 했잖아!"라는 말을 내뱉은 것은 그냥 완전히 매장당할 뻔한 수렁에서 간신히 살아나온 자의 감격어린 목소리 정도로만 들어주자.

결정적인 순간에 정치적인 오판을 저지른 김전의원의 실수는 결과가 좋게 나온다 해도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일은 아닌 것이다. 나는 김전의원을 기회주의자로 몰아붙이며 도덕적인 공격을 가하는데에는 동의하지 않느다. 그보다는  민심이 만들어준 국민후보의 일방적 사퇴 혹은 민주당의 붕괴를 통한 단일화가 가능하다고 믿고, 이를 실천에 옮길 정도의 역사의식이 없는 판단무능한 정치인에 대한 합리적인 비판인 것이다.

김전의원의 오판은 일회성 실수가 아니다. 이미 보수와 진보를 넘어선 탈이념적 승리 지상주의로 정신을 무장한 정치인이라면 똑같은 상황이 오면 똑같은 오판을 저지를 것이 뻔한 일이지 않겠는가?

그는 시대의 흐름을 잘못 읽고 있는 거꾸로 가는 386 정치인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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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2/11/17 [18:27]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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