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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국가 '대한민국' 혹은 서울공화국
[홍기빈 칼럼] 미일에 종속당하는 한국, 통일 고려한 독자모델 찾아야
 
홍기빈   기사입력  2005/11/16 [18:28]
쌀 시장 개방을 포함한 자유 무역 협정이 드디어 열린우리당의 손을 빌어 국회에 상정되어 비준을 기다리게 되었다. 여의도에 낟가리가 쌓여 불타고 나이 지긋한 농민들의 머리와 코에서 피가 터지는 낯익은 광경이 또 한 번 벌어지고 있다.

만물을 '상품'으로 보는 데에 익숙한 그래서 농산물도 슈퍼마켓 냉장 진열대에 놓여있는 '가격표' 이상으로 생각하기 어려운 이들에게 위의 싸움은 이미 결말이 정해져 있는 것이다. 도무지 비교가 되지 않는 채산성과 생산성의 차이를 무시한 채 언제까지 국내 농산물을 고집할 것인가. '신토불이'란 과학적 근거 없는 신앙일 뿐이며, '식량주권'이란 대한민국이 미국 혹은 초국적 곡물 메이저와 정면대립하게 된다는, 가상 소설에나 나올 법한 엽기적 상상력에 불과하다.
 
▲ 신자유주의로 상징되는 부시와 국회, 쌀 포대 모형을 불태우고 있다.     © 대자보

결국 이는 궁지에 몰린 농민들이 자기들의 이익을 전체 국민의 이익으로 바꾸어 보이게 하기 위한 정치적 수사에 불과하며, 문제의 핵심은 결국 FTA 체결이라는 진정한 '국민적 이익'과 농민 집단의 '개별적 이익'의 대립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이 이 문제에 대한 지배적 담론의 하의식(下意識)이라고 보인다.

이 짧은 지면에서 이 논리의 계산적 합리성에 대해서 시비할 생각은 없다. 단지 농업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의 질문은 ‘경제적 합리성’을 넘어서서 대한민국이 어떠한 나라가 될 것인가라는 좀 더 근본적이고 포괄적인 질문에 대한 두 개의 서로 다른 전망으로 이어진다는 점을 지적해두고자 한다.
 
어느덧 4백만 이하로 줄어든 현재의 농민층은 더욱 급속하게 분해 소멸되고 서울의 인구는 더욱 늘어날 것이고, 대한민국은 곧 '도시 국가'로 변하게 될 것이다. 이 '도시 국가 서울'은 유럽 역사에 나오는 고전적인 도시 국가와 두 가지 점에서 차이가 있다. 첫째, 후자는 도시 성곽 주변에 일정한 넓이의 농업지역을 배후지(hinterland)로 지배하여 유사시의 식량 공급에 만전을 기하는 장치였다. 둘째, 유럽의 도시 국가는 주권을 지키기 위해 용병을 고용할 경제력을 갖추든가 아니면 모든 시민들이 무기를 들고 뛰쳐나오도록 훈련시키는 엄격한 기율 국가였다.

▲ 시위에 참가한 농민들이 '식량 주권'을 영정으로 표시하고 심각하게 앉아있다.     © 대자보

'도시 국가 서울'은 이 두 가지 모두를 외국 세력과의 관계 속에서 해결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먼저 군사 안보에 있어서 미국 일본을 중심으로 하는 동아시아의 군사 질서의 요충지요 전진 기지의 역할을 하게 될 것이며, 그 결과 징병제는 유지되면서 엄청난 액수의 국방비 지출로 외국의 무기도 사들여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동시에 사회 전체의 존립 근거 자체와 운영 기조 모두가 '외화 벌이'가 될 것이다. 그러면 외곽 지역은 일단 서울로 모여드는 화폐를 다시 얻어내기 위해 서울 시민들의 온갖 욕구에 응하기 위한 거대한 위락 지구로 변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인문 지리학적으로 따져보았을 때에 사실 이 '도시 국가'는 한반도 남단에 자리 잡은 '나라'가 아니다. 미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의 지구적 재편에 통합된 '도시'일 뿐이다. 그렇다면 한반도 북단에 있는 우리 겨레와의 통일의 문제는 또 어떻게 되는 것인가.   

농업을 살리면서 도시와 농촌의 경계선을 점차 허물어가는, 그래서 인간 존재의 가장 근본적인 차원에서의 물질적 자족을 이룬 기반에서 번영과 발전을 꾀하는 '생태적 산업 경제'의 전망은 불가능한 것인가. 그래서 점점 불안정해져 가는 동아시아의 정치 경제 정세에서 한반도라는 지리적 환경에 굳게 닻을 내리고 안정성과 역동성을 함께 취할 수 있는 정치 경제 모델의 모습은 어째서 논구되지 않는 것인가. 농수산물에 담겨있는 우리의 미래와 나라의 가능성은 언제까지 그 '가격표'에 가리워져 있을 것인가. 
*홍기빈은 진보적 소장학자로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이며 캐나다 요크대에서 지구정치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는 <아리스토텔레스 경제를 말하다> 와 <칼 폴라니의 정치경제학-19세기 금본위제를 중심으로>, <미국의 종말에 관한 짧은 에세이>(개마고원 2004),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녹색평론, 2006) 등 경제연구와 활발한 저술활동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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