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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대환 인준동의안 부결의 정치사적 의미
국민의 눈(眼)을 두려워하는 시대로ba.info/css.html'>
 
서영석   기사입력  2002/08/30 [02:27]
{IMAGE1_LEFT}장대환 국무총리서리의 총리인준안이 또 부결됐다. 잘못된 것을 잘못됐다고 얘기할 때도 다 의도는 있는 법이어서, 과연 국민여론을 주도해온 일부언론들의 총리서리 검증 보도 의도가 정당한 것이었는지 의문이 들지 않는 바는 아니지만, 만사는 사필귀정이라고, 의도가 있었건 없었건, 없는 흠결 때문에 낙마한 것은 아니니, 그를 총리로 지명한 김대중 대통령이나, 20일도 채 못되는 기간동안 실컷 두들겨맞고 낙마한 격이 돼버린 장대환씨나, 다 운때가 맞지 않는 것이려니 할 것으로 믿는다.

왜 하필이면 운때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야 하는가. 대단히 유감스럽게도 두번의 인준청문회에 들이댄 엄격한 잣대는, 갑작스레 국민 의식 수준이 높아져서 생겨난 것은 절대로 아니었다. 김대중 정권의 최대 실정이라고 필자가 판단하는 인사난맥상의 필연적 결과로서 정치현실로 드러난 민심이반과, 집권말기의 이른바 통치권누수현상(레임덕현상), 8-8재보선의 민주당 참패에서 비롯된 한나라당의 국회 과반 달성 등이 종합적으로 어우러져 일어난, 말하자면 종합선물세트요, 백화점이자, 오페라였다는 얘기다. 물론 한가지 덧붙이자면, 국회 과반을 달성한 한나라당이, 차기 대선을 의식해 여론의 동향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을 수 없는 특수한 상황도 어느 정도 요인으로 작용했을 수 있겠다.

하지만 어쩔 것인가. 현상의 원인이 좀 지저분했다고 드러난 현상의 정치적 의미까지 반감되는 것은 아니다. 필자는 총리서리 인준청문회가 두번씩이나 부결됐다는 것은, 힘이 빠질대로 빠져버린 김대중 대통령의 임기말에 일어난 사건이긴 하지만, 우리 정치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고 평가한다. 그것이 무엇이냐. 비로소 국민의 눈이 정치행위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잣대로 등장하게 됐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지금까지는 미안하게도 정치행위를 결정하는 중요한 기준은 국민의 눈이 아니었다. 국민여론은 조작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 김대중정권보다 앞서 이 나라를 농단했던 민정당 이후의 역대 정권들이었고, 국회 다수를 점한(민의에 의했건, 공작에 의한 합당에 의했건) 집권당은 자신을 뽑아준 국민들보다는 청와대를 쳐다보며 대통령의 통치행위를 뒷받침하는데만 급급해 왔던 것도 어김없는 사실이었다.

지금 성급하게 얘기할 성질의 것은 아니지만, 현재로서는 차기 대통령에 가장 근접한 한나라당의 이회창씨가 집권한다면(물론 여론조사에서는 정몽준씨의 인기도가 높게 나오나,아직은 단기필마이기 때문에 일단 논외로 쳤다), 국회의 다수를 점한 한나라당이 또다시 민의를 배신하고 대통령의 통치행위에 대한 밑을 닦아주는데만 급급할 것이 아니냐는 의문도 들 수 있으나, 역사의 시계추는 거꾸로 돌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통령이 지명한 총리서리라 할지라도 일단 민의에 어긋난다는 여론이 지배적인 이상 그러한 지명이 먹혀들어가지 않는다는 선례가 확립된 이상, 아무리 집권초기의 막강한 권력이라 할지라도 이러한 역사의 시계추까지 거꾸로 돌릴 동인은 되지 못할 것이란 얘기다.

언론사 세무조사로 야기된 권력과 언론의 갈등관계도 결과적으로는 우리 민주주의의 발전에 중요한 플러스적 요인이 될 것으로 필자는 믿는다. 언론사 세무조사가 설혹 언론을 길들이기 위한 방편으로 시작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러한 결과 권력과 언론간에 갈등관계가 형성됐다는 점은 지극히 중요하다. 이런 얘기를 해야만 하는 필자 스스로도 지극히 부끄러운 고백이 되겠지만 지금까지 권력과 언론의 관계는 유착 아니면 굴종의 관계였다고 할 수 있다. 쉽게 얘기해 끼리끼리 붙어서 서로 잘먹고 잘살든가, 아니면 권력의 지시에 굴종하고 복종하는 관계가 거의 전부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원론상 권력과 언론은 갈등관계여야만 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출발은 지극히 불건전했는지 몰라도, 그러한 결과로 드러난 권력과 언론의 갈등관계는 앞으로도 권력을 감시하는 언론 본연의 사명을 수행하는데 더할나위없는 추동력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

권력이 강할 때 잠시 숨을 죽일지는 몰라도, 그 권력이 명을 다하는 시점에 가면 모든 과오가 있는대로 까발려질 것이란 역사의 교훈은 권력을 잡은 사람이 보다 겸허하게 국정을 수행하는데 보약의 역할을 할 것이란 얘기다. 지금 언론도 각양각색이기 때문에 향후 누가 집권하든 모든 언론과 유착관계를 유지할 수는 없을 것이고, 국정수행에 문제가 있다면, 그 정권의 끝나는 시점에 가서는 정권에 적대적 관계를 유지했던 언론들의 집중포화가 예상된다는 것쯤은 삼척동자라도 알 수 있는 노릇이다. 이제 정권은 스스로의 도덕성 이외에 어떠한 방패도 없다는 것이 명백하게 입증됐으며, 역설적이게도 이 점은 김대중 정권의 커다란 업적으로 기록될지도 모를 일이다.

민주당은 이런 점에서 민의를 겸허히 수용하는데 앞장서야 할 정당이다. 지금 상태야 어찌됐건 민주당은 김대중 대통령이 만든 정당이며, 얼마전까지만 해도 집권여당이었다. 민의가 등을 돌린데 일등공신을 한 것도 역시 정치적으로는 민주당인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민주당은 8-8재보선 결과 호남을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참패를 하고, 한나라당이 국회 과반을 달성한 것을 단순히 받아들여서는 안된다. 이유야 어쨌든, 투표율이야 어찌됐건, 그것은 결과로 드러난 민의기 때문이다. 따라서 민주당은 국회 과반을 달성한 한나라당을 존중해야만 한다. 한나라당이 하는 정치적 행위의 바탕은 그들을 지지한 국민들이 있다. 즉 다수당인 한나라당의 정치행위는 다수 민의가 뒷받침되고 있다는 것이다. 억울하면 다음 총선에서 더 많은 의석을 획득해야지, 다수를 점하고 있는 한나라당의 정치행위를 물리적으로 제어하려 들어서는 안된다.

장대환 총리서리 인준투표를 앞두고 민주당이 당론으로 찬성을 정했다는 것은 정말로 추저분하기 짝이 없는 결정이었다. 시민단체나 각종 여론은 분명히 인준안 반대에 더 많은 포인트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어설픈 여론조사 결과를 내세우면서 찬성을 유도했다는 것은 정말 민의도 모르고, 민주당의 구성원인 국회의원들을 모독하는 행위였다. 이제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지경으로까지 몰려 있는 자신들의 처지를 아직까지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인가.

{IMAGE2_RIGHT}한나라당이 당론으로 반대입장을 정하든 말든 민주당은 의원들 자유의사에 맡겨야 온당했다는 얘기다. 같은 맥락에서 민주당이 행여 김정길 법무장관 해임건의안 처리를 놓고 물리적인 저지를 기도하고 있다면 그것 역시 민심을 모르는 어리석은 행위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이제 권위주의적 정권이 있는 것도 아니요, 오로지 국회는 민주주의의 원칙인 다수결에 따라야 한다. 민의의 결과로서 드러난 국회 다수당이 결정하는 것은 억울하더라도 소수의 입장에서 반대의사를 표명할 수는 있을지언정 이를 물리력으로 저지하려 들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다수의 힘으로 국무위원 해임건의안을 처리하든 말든 평가는 국민의 몫이지, 국민의 신임을 받은 국회의원 숫자가 모자란 소수당이 평가할 일은 아니다. 이러한 정치행위는 2년 뒤 총선거에서 국민들이 심판할 일이라는 얘기다.

민주주의의 정도인 표결로 대결해서, 표결에 진다면 깨끗하게 승복하고 훗날을 기약하는 것이 오히려 민주당이 지금 국민과 민주주의를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대통령이 지명한 총리서리에 대한 두차례에 걸친 인준투표의 부결은, 당장 민주당이나 청와대에게는 뼈아픈 일이 될지 모르나, 민주주의 발전에 막대한 기여를 했다는데 만족해야 할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국무위원 해임건의안도, 민주주의의 원칙에 한치 어긋남이 없이 대응해야지, 결과를 예견해서, 혹은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마지막 충성심에서, 다수결 원칙을 물리력으로 돌파하려 한다면 국민의 냉혹한 시선은 그것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김대통령이야 임기를 마치고 물러나면 그뿐이지만(필자의 개인 생각이지만, 김대통령은 오히려 퇴임하면 제대로 평가받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계속 정치행위를 해야 할 민주당이 지금까지 잃은 것 이외에 더 잃을 것이 뭐가 있다고 정도를 포기한단 말인가.

사진출처 : 한겨레신문


* 이 글은 필자의 사견(私見)이오니,이 점 양지하시고 읽어주시되 특히 오프라인 국민일보의 견해를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기자 개인의 홈페이지에 올리는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란 점을 분명히 밝힙니다.
** 본문은 서영석기자의 노변정담(爐邊情談)에서 제공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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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2/08/30 [02:27]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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