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도 목사님!
당신이, 지진 해일 쓰나미가 기독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하느님의 심판이라고 설교했을 때, 저는 당신의 설교 내용보다 많은 신자들이 “아멘”이라고 화답하는 모습을 보고 가슴이 아팠습니다.
신도 수 수만을 거느린 거대교회의 절대군주(?)가 된 이상한 교회의 이상한 목사가 상식을 깨는 어처구니없는 발언을 하자 사회적으로 적지 않은 파장이 일었고, 당신의 설교 내용을 담은 동영상 파일이 인터넷에 떠돌아 다녔으며, 당신의 설교 내용 못지않게 교인들의 “아멘”으로 화답하는 모습이 제 가슴을 아프게 파고들었습니다.
|
▲김홍도 목사가 카트리나 허리케인 대참사는 동성애자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말해 또 한번 논란을 빚을 것으로 보인다. ©금란교회 홈페이지 |
뉴올리언스를 덮친 허리케인이 동성애자에 대한 하느님의 심판이라고 해석한 당신의 최근 설교에 대해서도 아마 당신의 자랑스럽고 충직한 교인들(물론 다는 아니겠지만)은 “아멘”으로 화답했겠지요.
일부 목사들이 자연재해를 하느님의 심판이라고 제멋대로 해석하는 결과가 자기 얼굴에 먹칠하는 것으로 그친다면 굳이 아까운 시간을 내어 이렇게 하느님과 성서를, 그리고 기독교신앙을 변호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한 사람의 기독교인으로서, 덜떨어진 목사들의 무모한 발언에 의해 내가 믿는 하느님, 내 스승 예수님이 함께 매도되는 현실을 참을 수 없으며, 순진하고 착한 교인들이 바보가 되어가는 모습을 무력하게 보고 있기에는 너무나 가슴이 아픕니다. 김홍도 목사여, 나는 동성애에 대하여 잘 모르며 내가 잘 모르는 일에 대하여 왈가왈부하고 싶지 않습니다. 다만 그들이 사회에 해를 끼치지 않는다면 그들의 독특성을 인정하고 싶습니다. 만일 동성애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차분히 근거를 들어가며 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성서에 그렇게 쓰여있기 때문에...”라는 말은 더 이상 호소력을 갖지 못합니다. 당신들이 아무리 성서가 “기록된 그대로” 하느님의 말씀이라고 우겨도, 성서의 문자적 기록은 2~3000년 전 고대인들의 기록이며, 그들의 제한된 세계관과 가치관에서 나온 것일 뿐임이 만천하에 밝혀진지 오래입니다.
성서는 지구가 창조되고 나서 나흘이 지난 다음에야 태양이 창조되었다고 말합니다. 그 성서의 기록을 “문자 그대로” 믿어야 하겠습니까? 지구 창조 이틀 만에 지각 변동이 일어나고 육지와 바다가 갈라졌다고 성서는 말합니다. 사흘이 지난 후에는 이미 식물이 자라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 보다 하루 뒤인 나흘째 되는 날에 태양과 달과 별들이 창조되었다는 성서의 기록을 정녕 “기록된 그대로” 믿어야 하겠습니까?
노아 홍수 때, (인간의 죄악이 세상 곳곳에 관영했다는 성서의 기록을 문자 그대로 수용하더라도) 어른들 뿐 아니라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들, 엄마 젖을 빠는 젖먹이들까지 몽땅 홍수로 쓸어버리는 하느님을 단지 성서가 그렇게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여전히 우리가 “하느님께서 정말로 그렇게 하셨다”고 믿어야 하겠습니까?
그 하느님을 우리는 여전히 ‘사랑의 하느님’이라고 고백하라는 것이 이치에 합당한 일입니까? 아하, 그러니까 하느님께서 동성애자들을 쓸어버리기 위해 ‘동성애’의 ‘동’자도 모르는 어린아이들, 착하고 정직하게 살고자 애쓰는 선한 이웃들, 심지어 교회 열심히 다니고 ‘사랑의 하느님’을 열심히 찬양한 신자들까지 함께 쓸어버렸군요. 그게 바로 당신이 수없이 설교해 온 ‘사랑의 하느님’의 진면목이었군요.
내가 아무리 떠들어도, 당신이 귀담아 들으실 것 같지 않기에, 이제는 당신의 충직한 신도님들께 몇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김홍도 목사의 영적(?) 권능을 존경하고 따르는 신도들이여, 만일 당신이 뉴올리언스에 이민가서 살게 되었다고 가정해 봅시다. 사랑스런 딸 아들 데리고 오손도손 열심히 살아가는데, 그 곳에 있는 동성애자들을 심판하기 위해 하느님께서 허리케인을 동원하여 당신이 사는 마을을 쓸어버렸다면, 그래서 당신의 재산 뿐 아니라 당신의 사랑스런 딸 아들이 목숨을 잃었다면, 그래도 당신들은 여전히 하느님을 ‘사랑의 하느님’이라고 고백할 수 있겠습니까? 진정 우리의 하느님이 그런 분이겠습니까? 어쩌면 당신들은 지금 혼란을 겪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맞아. 우리 하느님이 사랑의 하느님이신데, 그럴 리가 없어”라는 이성의 외침과, “아냐, 의심하면 안돼. 이건 사탄의 속임수야.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을 의심하다니... 더구나 목사님은 하느님이 세우신 종인데...”라는 세뇌된 교리적 입력 사이에서 갈등을 겪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왜 당신은, 당신의 이성(理性)이 정직하게 제기하는 의문들에 대해 마음의 문을 닫는 것입니까? 의심하지 말고 믿으라는 목사님의 권면 때문입니까? “의심하지 말고 믿으라”는 말은 “바보가 되라”는 말이며, “맹신에 빠지라”는 말입니다. 당신들이 의심하지 않고 믿으려는 이유에 대해 정직하게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혹 지옥이 두렵기 때문이 아닙니까? 의심을 하다 보면 결국 신앙을 잃게 될 수도 있고, 신앙을 잃게 되면, 천국행 티켓을 잃어버릴 지도 모르기 때문에 그냥 안전한 쪽을 선택하는 것은 아닙니까? 그렇다면 당신은 하느님을 믿는게 아니라 하느님과 거래하는 것입니다. 왜냐 하면 당신이 진정으로 관심을 갖는 것은 하느님이 아니라 천국이기 때문입니다.
|
▲우리 사회에서 예수는 어떤 존재여야 할 것인가? 한국 교회의 나아갈 방향은? ©삼인출판사,2005 |
어쩌면 당신들은, 죄인을 징계하기 위해 자연재해를 동원하셨다는 심판의 하느님, 즉 ‘김홍도식 하느님’에 대해 잠시나마 의심하며 혼란을 느꼈던 것조차도, (아, 그런 의심은 정직하고 바른 신앙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인데...) 주일에 교회에 가서 다시금 김홍도 목사의 확신에 찬 설교를 들으며 ‘의심하는 자를 심판하시는 하느님’께 회개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괜히 갈등을 끼쳐드렸다면 죄송합니다. 진정 갈등을 느끼고 괴로워해야 할 사람은 당신들이 아니라, 당신들을 진정으로 행복하고 아름다운 삶으로 이끌지 않고, 교리에 세뇌되도록 만든 목사들, 아니 먹사들에게 있는데 말입니다.
언제나 한국 교회(주류 개신교)가 주님의 뜻을 바로 깨달아, 지구촌에 사는 사람들을 두루 행복하게 하고 세상에 평화를 심는 아름다운 종교로 거듭날 수 있을까요. 그 날이 오기는 올까요.
아, 주님, 그 날이 오기는 올까요...
주님, 가엾은 한국 교회, 이 가엾은 한국 교회를 어찌하면 좋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