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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계는 계모임인가?
- Episode Ⅱ : E대의 습격
 
공희준 Cinema Jockey   기사입력  2002/07/25 [02:54]
{IMAGE1_LEFT}한국사회가 서민과 특권층이 확연히 구분되는 파국적 상황으로 치닫고 있음을 많은 식자들이 우려하고 있다. IMF 관리체제 이후 빈부 격차가 최악으로 벌어졌다는 소식이다. 집 없는 노숙자의 존재는 경기하강에 따른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생존경쟁에서 패배한 이들이 최종적으로 굴러 떨어지는 구조적 지형으로 자리잡았다.

한국사회의 특권층의 표준모델을 구체적으로 묘사해보자. 강남에 거주하고 고급 외제차를 굴리며, 자식들을 일찌감치 미국으로 조기유학 보내고, 상당한 규모의 금융자산을 운용하고 있으며 특정신문을 구독한다. 주말에는 골프를 치고 수시로 외국을 들락거린다. 개혁세력을 빨갱이라 매도하고 결혼은 그들끼리만 한다. 몸은 한국에 있지만 호적은 미국에 있는 이중국적 소지자로서 대한민국 국방부가 관장하는 군대는 가지 않으면서도 대한민국 보건복지부가 제공하는 의료보험혜택은 꼬박꼬박 챙겨먹는다. 보험료는 한국국적의 서민이 납부하고 보험금은 한국계 미국인이 타먹는 희한한 양태다. 나도 오늘부터 누가 흘리고 챙기지 않은 미국국적이 혹 있는지 부지런히 살펴볼 작정이다. 베트남 국적이나 필리핀 국적, 파키스탄이나 네팔국적은 절대 사양하겠다. 줘도 안 갖는다.

특정학교 OB와 YB에게는 대단히 송구스런 말씀이지만 나는 한국의 특권층을 표상하는 징표의 하나로 우리나라에서 제일 좋다는 여대를 졸업한 배우자를 가진 것도 포함되지 않았을까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어렴풋한 기억이기에 이 글을 읽는 누군가가 확인해줬으면 좋겠다. 예전에 모여대 출신들과 결혼한 출세한 남자들이 학교당국의 주관 하에 한 자리에 모이는 행사가 열렸던 것 같다. 면면을 살피면 정관재계 및 언론계와 학계 등 우리나라를 실질적으로 좌지우지하는 주요 권부와 핵심 요직을 꿰찬 사내들이 정치적 지향성과 소속집단을 불문하고 일시에 몰려든 것 같다. 사내들의 득의양양한 표정과 사내들 바로 곁에 다정스레 붙어 앉아 흐뭇이 미소짓는 여자들의 얼굴이 좀처럼 잊혀지지 않는다. 솔직히 그 틈에 나 역시 얼렁뚱땅 끼여보고 싶은 생각은 굴뚝같지만 그러자면 현재 사귀고 있는 여자와 헤어져야 하는 고충이 따른다. 여자의 학맥이 탐나서 애꿎은 미래의 조강지처를 버리고 싶지는 않다.

당장이라도 잡아먹을 듯 도끼눈을 부라리고 장상총리서리에게 달려들던 한나라당과 거대신문회사들이 싹 태도를 돌변했다. 박근혜를 둘러싸고 요란스레 찧고 까불던 그 많던 진보진영 인사들과 페미니스트들도 갑작스레 확 자취를 감췄다. 고등학교도 제대로 나오지 못한 아내를 둔 노무현만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된 형국이다. 와이프 아버지가 좌익활동을 한 건 용서할 수 있어도 마누라가 특정여대를 나오지 못한 건, 하다 못해 학적이라도 잠깐 올리지 못한 건 용서할 수 없다는 뜻인지 도통 접수가 안 된다.

세기가 바뀌어 물러갈 법도 한 비판적 지지의 망령이 장상총장의 총리인준문제 주변을 여전히 배회하고 있다. 전국의 비판적 지지자들이여 단결하라!

소외된 여성계를 배려하는 대국적 견지에서 장상씨를 감싸야 한다는 여론이 엄존하는 것을 부인하지는 않겠다. 그런데 그 소외된 여성계는 소외 받는 객체인 동시에 소외하는 주체인 듯 하다. 김규항이 악담을 퍼부은 한국의 그 여성계는 지배블록 내에서는 소외 받는 억울한 피해자이지만 서민들에게는 구름 위에 몰인정하게 군림하는 야멸 찬 가해자이기도 하다. 그 여성계가 소수이기 때문에 예외로 둬야 한다는 주장에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다수자의 핍박과 박해를 견뎌내기 위해서라도 소수자는 다수자에 비해 더욱 윤리적이어야 한다. 억울한 소수자라 동정 받는 그 여성계의 도덕지수는 그들을 왕따시키는 패권적 마초들에 견주어 별로 고결하거나 높은 것 같지 않다.

귀족여성들이 귀족남성들과 맞짱을 뜨건 눈이 맞아 야반도주를 하건 내 상관할 바 아니다. 하지만 애꿎은 이들까지 나서서 장상씨의 총리인준이 여권신장과 양성평등의 증진에 있어 획기적 분수령인양 시뮬레이션 액션을 주저리주저리 해대는 꼴은 차마 눈뜨고는 못 볼 목불인견이라 하겠다.

한국에서 배울 만큼 배웠고 사회적 성공을 거두어 존경받고 있다는 여성계 인사들이 장상총리를 위해 마련한 출정식 이모저모를 스케치해보자. 구사하는 단어나 어휘가 세련되고 디테일할 뿐이지 속내를 주형하는 정서나 좌중의 분위기는 완전 동네 아줌마들 모여 수다떠는 계모임 수준이다. 자기들끼리 돌려먹고 나눠먹은 민정계나 동교동계 저리 가라다. '형님-아우'가 '언니-동생'으로 살짝 모습을 비틀었을 따름이다.

찬찬히 훑어보니 특정 여대 출신들이 똘똘 뭉친 것과 진배없단다. 끈끈한 단결력과 가열찬 투지만큼은 유신과 5공 시절 권력을 농단하고 이권을 농간한 육법당(陸法黨) 패거리 부럽지 않다. 고명하신 여사님들의 훌륭한 언변을 잠시 감상해보자.

개인적으로 장상총리서리를 잘 모르고, 공인으로만 알고 있지만 장상총장이 총리로 발탁되었을 때 너무나 기뻤다. 쓸데없는 것을 트집잡아 사람을 깎아 내리면 그 누구도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다. 장서리를 둘러싼 여러 논쟁은 시기와 질투에서 나온 것 아니냐?

개인적으로 모르면 그냥 가만히 계셨으면 좋았을 텐데, 장상씨의 총리직 지명이 불편한 이들에게 트집잡지 말라고 눈을 부라리신다. 아무리 한국의 총리가 대독하고 의전하는 동네 북 신세라 해도 명색이 대통령에 이은 No.2 위치에 올라선 나라의 큰 어른이시다. 대통령이 유고상태에 빠진다면 나라의 명운을 틀어쥘 중차대한 소임을 담당하는 자리란 것이다. 그런 중요한 직위를 맡을 인사의 자질검증과 적격여부에 대해 개인적으로 잘 모르시는 분이 감놔라 배놔라 참견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아파트 부녀회장도 이런 식으로 뽑지는 않는다. 장서리를 둘러싼 여러 논쟁이 시기와 질투의 소산이라고...그래 나 샘 나서 환장할 지경이다. 전용면적 20평도 안 되는 집에 사는 내가 왜 100평이 가까운 큰집에 사는 부유한 미국 청년의 의료보험료까지 물어줘야 하나. 시기하고 질투하지 않도록 좀 차분히 설명해주시라. 짜증 이빠이지만 다른 분이 하신 썰렁한 말씀도 한번 더 들어보자. 아 귀 가려워 미치겠다.

장상 총리서리는 첫째, 학창시절부터 남녀평등을 역설한 타고난 지도자다. 둘째, 공평하고 사심 없는 리더다. 셋째, 선이 굵고 배포가 큰 성격이다. 넷째, 타인에게 관대하고 자신에게 엄격한 생활이다. 다섯째, 명석하고 뛰어나며 빠른 행동력을 갖췄다. 여섯째, 원칙에 충실하며 합리적이다. 일곱째, 유창한 외국어 실력이 있다. 여덟째, 친화력이 높으며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다

쉬지 않고 읽느라 숨넘어갈 뻔했다. 그래도 누구처럼 가랑잎 타고 바다 건너며 솔방울로 수류탄 만들었다는 무용담이 없어 불행 중 다행이다. 장총리서리가 방세 올려달라며 독촉했던 우리 집 집주인도 아니었으니 첫째는 물론 두 번째 까지 통크게 관대히 넘어가자. 자녀의 이중국적 문제로 단명한 장관이 여럿 있었는데 과감히 총리직을 수락한 것 보면 장총리가 선이 굵고 배포가 큰 성격인 것은 맞는 얘기인 듯 하다. 타인에게 관대하고 자신에게 엄격한 것은 좋은데 가족에게까지 엄격했다면 공인으로서 금상첨화였으리라. 박사학위까지 취득했으니 명석한 건 인정해야 하겠다. 총리서리로 지명되기 바쁘게 한나라당 민주당 자민련까지 두루 순시하셨으니 행동은 민첩하신 편이다. 원칙에 충실하고 합리적이었는지는 장총리서리 내면의 목소리가 판단할 사안이다. 외국어 실력이 유창한 것이 총리발탁 사유라면 나는 민병철씨나 정철씨를 총리로 추천하겠다. 뛰어난 친화력은 그 여성계가 강철대오를 형성해 장서리를 옹호결사보위하는 데에서 충분히 입증된 듯 하다. 마당발 이수성의 여성 버전이다. 그렇다면 혹 장총리서리도 잠재적 대권후보... 그런데 친화력이 있고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다는 것이 주류 폐미니즘에 적합한 품성인지 선뜻 수긍하기 어렵다. 그런 수식어는 자타칭 국민작가가 끔찍이도 흠모하는 돌아가신 지 수백 년 경과한 장씨 할머니께 바쳐야할 오마주다.

{IMAGE2_RIGHT}한나라당이야 도둑이 제발 저리다고 이회창 후보를 줄곧 괴롭히고 있는 여러 가지 악재들을 고스란히 공통분모로 공유하고 있는 장상씨를 감싸고도는 게 당연하다고 치자. 왕회장 DJ가 손수 낙점한 인물이라는 점을 십분 참작해도 장상총리서리를 대하는 민주당 한화갑 대표의 반응은 실로 가관이다.

장서리는 청문회를 두려워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정직하게 말하면 된다. 아들문제, 집 문제 등은 별 문제될 게 없고, 아파트 두 채도 친정부모와 시부모를 모시고 사는 것이므로 오히려 효행상을 받아야 할 일이다

이회창 후보 정말 억울하다. 한화갑 대표의 논리대로라면 아들-손자-며느리 다 모여서 오손도손 알뜰살뜰 패밀리 타운을 영위한 이회창 후보는 자식에 대한 자상한 배려를 아끼지 않는 모범적인 부모 노릇을 성실히 수행하였기에 장한 어버이상을 포상해야 마땅하다. 이런 이후보에게 집이 크다고, 빌라가 호화롭다고 온갖 흠집내기를 시도한 민주당 의원들은 한나라당 이규택 총무의 독설처럼 빨치산 집단이 아닌지 의심스럽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도통 헷갈린다. 한화갑 대표 너무 기특하다. 어서 이회창 총재는 서청원 대표 쫓아내고 한화갑 대표를 신임 한나라당 대표로 스카우트해야 한다. 눈치 없이 입을 잘못 놀려 경질된 김무성 후보비서실장 자리가 여전히 공석이라면 한대표를 후임 비서실장으로 중용하라.

장상총장에게 굳건한 지지의사를 표명했다는 국제교류재단 이사장도 참 딱하신 분이다. 주 러시아 대사직을 역임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서양사 전공자께서 한국식 인맥관계의 폐해가 물씬 묻어나는 남의 학교 동문회 잔치에 가서 후배들이 듣지 말았어야 할 말까지 뭐 하러 발설하셨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꼭 페루자에 강제로 말뚝 박힌 안정환처럼 어색하기 그지없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초당파적으로 환영하고 특히 이회창 후보로부터의 우호적인 시각을 지켜나간다면 장상총리서리는 최초의 여성 총리라는 기록 이외에 다른 하나의 기록을 추가할 개연성도 있다. 바로 정권을 이어가며 총리직을 수행하는 것이다. 포용력 부족으로 비판받는 이회창씨가 집권한 다음 장상씨를 또 다시 총리직에 유임시킨다면 굉장히 흥미진진한 광경이 연출될 것 같다. 거대매체들은 "여성의 세기에 발맞춘 역사적 결단" "국민화합을 위한 전향적 조치" "통합의 큰 정치를 향한 대장정의 첫 발" 뭐 이런 레토릭으로 용비어천가를 불러댈 게다. 참으로 우습다.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따로 없다.

여사님들의 자중자애를 당부 드린다. 진정으로 후학들을 아끼고 사랑한다면 당분간 잠수해주시라. 챙길 건 다 챙기고 할 건 안 하는 분들 때문에 말단 공무원 시험 준비하던 어린 후배 여성들이 꼴통 마초들에게 수모를 당하는 것이다. 공사 구분 못 하는 덜 떨어진 사내들도 지겨운 판에 여성계를 마님들의 화려한 외출을 위한 우아한 계모임으로 착각하는 구습은 지양해주셨으면 한다. 문정왕후와 정난정이 왕을 싸고돌며 서로 짝짜꿍하던 시대는 이미 오래 전에 지났음을 명심해 주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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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2/07/25 [02:54]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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