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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자유 원한다면 MBC는 더 싸워야
[김영호 칼럼] 국민의 알권리 위해 테이프에 담긴 육성을 들려줘야 한다
 
김영호   기사입력  2005/08/22 [13:16]

문화방송이 엑스파일이란 희대의 특종을 낚고도 낙종해 버렸다. 도청문건을 입수했으나 일곱 달 가까이 미적거리다 불발탄에 그치고 만 것이다. 그 사이 인터넷에는 입을 열라는 글이 더러 나왔다. 그런데 지난 6월 불쑥 문화방송이 '보도불가'라고 매듭을 지었다. 내용의 윤곽은 이미 언론계에 떠도는데도 말이다. 

조선일보가 7월 21일 안기부가 비밀조직을 두고 불법도청을 일삼았다고 보도했다. 한국방송은 같은 날 밤 녹취록의 일부를 익명으로 보도했다. 그러자 이튿날 문화방송이 오늘 밤 터트리겠다고 나섰다. 삼성측이 기다렸다는 듯이 법원에 방송금지가처분을 냈고 받아 들여졌다. 문화방송은 이 사실을 크게 알렸으나 막상 내용은 변죽만 건드렸다. 반면에 한국방송은 구체적으로 보도했다.

 1971년 6월 13일 뉴욕타임스는 국방부의 극비문서를 특종보도했다. 첫날 1면의 절반을 채우고 6개 면에 걸쳐 깔며 기획연재를 시작했다. 이 문건은 2차 대전 이후 미국이 월남전에 개입하게된 모든 과정과 배경을 담은 것이다. 닉슨 행정부는 안보를 이유로 중단을 요구했다. 거절당하자 15일 법원에 보도금지가처분을 신청했고 받아들여졌다.

타임스의 움직임을 낌새 챈 워싱턴포스트는 낙종을 기다릴 수 없다며 뛰었다. 이 문건을 누출시킨 내부고발자와 접선이 이뤄져 마침내 18일 월남전의 내막을 폭로할 수 있었다. 닉슨 행정부는 역시 보도중단을 요구했고 포스트도 거절했다. 뉴욕과 달리 워싱턴에서는 보도금지가처분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족쇄가 채인 타임스는 에이피 통신이 인용한 포스트의 보도내용을 전재하는 통한의 아픔을 겪어야만 했다.

항소심에서 일진일퇴의 공방이 있었고 대법원은 이 사건을 병합심리했다. 첫 보도이후 13일 만에 6대 3으로 언론의 손을 들어줬다. 그 이유는 가처분은 위헌적인 사전통제이며 정부는 국가안보를 위협한다는 사실을 입증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이른바 '뉴욕타임스 대 합중국' 사건이다.

▲ 언론개혁국민행동 김영호 대표     © 대자보
타임스는 석 달 동안 기사를 작성하며 법률적 검토도 마쳤다. 포스트는 이틀 동안 작업하며 법률적 판단을 내렸다. 둘 다 결론은 부정적이었다. 하지만 기자들이 앞장서고 경영진이 결행에 옮겼다. 포스트는 언론의 자유를 수호한다는 뜻에서 가처분에 정면 도전했던 것이다. 언론사에 찬란하게 기록될만한 용기다.

문화방송은 법이란 덫에 걸려 스스로 운신을 옥죄었다. 통신기밀보호법이 언론자유를 제약할 수 있다고 믿었다면 그것은 잘못이다. 보도하지 않아 얻을 사익과 보도해서 생기는 공익을 깊게 생각했는지 묻고 싶다. 보호이익과 침해이익을 놓고 법익의 균형성을 재어봤는지 말이다. 거기에는 사생활이 없고 그들은 공인이다. 돈과 언론을 동원해서 정권을 창출하려는 쿠데타적 음모가 들어있을 뿐이다.

취재기자가 검찰송환에 순순히 응한 이유도 모르겠다. 이 사건의 핵심은 불법도청과 음모내용이다. 그런데 검찰이 본질적 문제는 제쳐두고 취재과정부터 조사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취재과정은 취재원 보호의 연장선상에 있어 언론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크다. 언론인한테 취재원 보호란 생명 같은 직업윤리다. 불법적 생산물인 취재물건을 왜 검찰에 자진제출했는지도 의문이다.

언론자유는 쟁취하는 것이다. 때로는 잘못된 법과도 싸워야 한다. 진실을 말하려면 말이다. 국민은 그 테이프에 담긴 육성을 듣고 싶다. 이것이 국민의 알 권리다.




언론광장 공동대표
<건달정치 개혁실패>, <경제민주화시대 대통령> 등의 저자  
본지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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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5/08/22 [13:16]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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