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촛불의 ‘티핑포인트’, 10대는 왜 나섰나
[강준만의 세상이야기] ‘0교시’등 MB 교육정책이 10대 움직인 기폭제
 
강준만   기사입력  2008/06/09 [18:33]
 “악성 댓글 수백 개가 달릴 각오를 하고 말한다면 이것은 ‘검역 주권’ ‘굴욕적 외교’라는 말에서 보듯이 한국인들의 대미 민족주의적 자존심을 은밀히 건드리고 있다. ‘미국=쇠고기=광우병’ ‘한국=한우=건강’이라는 도식이 성립한다. 그 덕택에 시위는 민족적 문제에 민감한 많은 시민들의 지지를 이끌어내고 있다.”
 
 “세계는 지금 세계화에 대한 반동으로 부글거리는 중이다. 미국 대통령선거 과정에서 극명해진 보호무역주의와 이민 반대, 유럽을 휩쓰는 외국인 혐오와 공공조직 파업 등이 그 증상이다. 맞아죽을 각오로 말한다면 우리나라의 미국 쇠고기 반대도 여기에 해당된다.”
 
 촛불시위에 대한 분석이다. 첫 번째 말은 권혁범 대전대 교수, 두 번 째 말은 김순덕 동아일보 편집국 부국장의 것이다. 동의하건 동의하지 않건 내용도 창의적인데다 ‘악성 댓글 수백 개가 달릴 각오를 하고 말한다면’과 ‘맞아죽을 각오로 말한다면’이라는 표현이 재미있어 소개해 보았다. 생각은 다를망정 같은 글쟁이로서 동병상련(同病相憐)하는 마음도 없지 않다.
 
 그런데 내가 관심을 갖는 건 컵의 물을 넘치게 하는 ‘마지막 한 방울의 물’이다. 기존 주류 분석도 맞고 위 두 분석도 맞다고 할지라도, 중요한 건 행동을 촉발시키는 마지막 그 무엇인가가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 일에 대해 강한 불만을 갖고 분노를 느낀다고 해서 곧장 시위로 들어가진 않는다. 시위에 들어가기 위해선 자신에게 가해지고 있는 그 어떤 직접적인, 지금 당장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 있어야만 한다.
 
 그러나 시위에 들어간 사람들은 자신을 마지막으로 촉발시킨 그 무엇보다는 어떤 일과 직집적으로 관련된 것에 대해서만 말하는 경향이 있다. 아무래도 그게 더 명분이 서거니와 자신의 솔직한 심정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번 촛불시위의 주도자였던 10대들의 행동을 촉발시킨 그 무엇은 무엇인가? 이미 많은 논자들이 지적했고, 10대 스스로도 곁가지로나마 털어 놓은 이야기다. 몇가지 소개해보겠다.
 
“0교시가 싫은데 억지로 시키니까 공부도 안되고, 아침밥을 먹을 권리를 왜 빼앗아 가는지 모르겠다.”(중학생 강아연 15세, 한겨레 5.3)

“0교시 허용, 촌지 합법화 등 우리가 생각해도 말도 안 되는 정책들을 이명박 대통령이 내놨다. 점점 학교가 학원이랑 똑같게 된다.”(고교 2년 김강균, 한겨레 5.5)

“노무현 대통령은 실업계 특성화를 많이 시켰는데 이명박 대통령은 자사고만 늘리겠다고 한다. 실업계 특별전형을 없앤다는 말에 우리 학교 학생들이 다 분개하고 있다.”(고교생 류 아무개양, 한겨레 5.5)

“현 정권은 학생들에게서 자유를 빼앗고, 학생들이 건강하게 지내길 바란다면서 0교시까지 부활해 몸과 마음을 더 아프게 하고 있다. 더 이상 가만히 앉아 당할 수 없다는 생각이 10대들의 마음을 움직였다.”(다음 카페 ‘2MB 탄핵투쟁연대’에서 활동하며 집회를 이끈 아이디 ‘안단테’ 고2 학생, 한국 5.6)

“10대들이 대거 광장으로 쏟아진 것은 쇠고기에 앞서 ‘0교시’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점을 바로보지 못하면 이번 사태를 이해할 수 없다. 2.0세대는 불편한 것은 참지 않는다.”(고등학교 때부터 청소년 단체에서 활동해 온 전누리씨 21세, 한겨레 5.14)

 
 이런 주장들이 잘 말해주듯이, ‘0교시’로 대표되는 교육정책이 10대들을 움직인 ‘티핑포인트’였다. 티핑포인트란 물을 넘치게 만드는 ‘마지막 한 방울의 물’이 더해지는 계기를 말한다. 이명박 정권이 이번 촛불시위에서 꼭 교훈을 얻길 바란다. 가만 있다고 가만 있는 게 아니다. 폭발할 티핑포인트를 기다리고 있는 사안들이 많다. 다음은 ‘혁신도시’로 대표되는 지방 문제다. 이 문제는 촛불을 넘어서 횃불로 갈 수 있다. 슬기로운 판단이 필요하다.

* 본문은 <선샤인뉴스>(www.sun4in.com/)에도 게재됐습니다.
* 글쓴이는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입니다.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기사입력: 2008/06/09 [18:33]   ⓒ 대자보
 
  • 도배방지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