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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투기 정당화하는 '이헌재 사태'
[논단] 투기눈덩이 이 부총리 경질않으면 '투기와의 전쟁' 막을 수 없어
 
이태경   기사입력  2005/03/06 [21:07]
지금 대한민국은 거대한 투전판이다

이헌재 부총리의 투기의혹이 연일 불거지고 있는 가운데 이를 바라보고 있는 서민들의 심정은 매우 복잡하다. 최고위급 공직자이자 부동산 정책을 비롯한 경제정책 전반을 총괄하는 경제수장의 자리에 있는 이부총리가 부동산 투기를 통해 막대한 불로소득을 얻은 데 대해서 대부분의 서민들은 분노하면서도 마음 한켠으로는 부러운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인 듯 하다.

여러 시민단체들과 네티즌들의 열화와 같은 사퇴압력에도 불구하고 일반 여론이 그리 흉흉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것도 바로 이 같은 서민들의 질시어린 시선 탓은 아닐지 조심스럽게 진단해 본다.

이른바 '이헌재 사태'가 서민들에게 준 교훈은 대한민국에서는 역시 토지를 비롯한 부동산 투기가 돈을 벌게 해 준다는 사실의 새삼스러운 재확인이었다. 서민들은 언감생심 만져 볼 수도 없는 거액의 불로소득을 간단히 얻는 마술을 이부총리는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가진 것이라고는 달랑 집 한채거나 이 마저도 없는 서민들에게 이부총리의 행위는 비난과 탄핵의 대상이라기 보다는 찬탄과 경외의 대상은 아니었을지? 지금 이순간에도 오매불망 내집마련의 꿈에 가위눌리고 있는 서민들에게 이부총리의 눈부신 성취(?)는 본받고 싶은 모범에 다름 아닌지 심히 우려스럽다.

눈을 감고 한번 상상해 보자! 당신은 재건축이 임박한 1억 짜리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다. 불행히도 세상 돌아가는 일에 그닥 관심이 없던 당신은 별 생각없이 아파트를 처분하고 같은 단지에 있는 다른 아파트에 전세로 입주했다. 당신이 아파트를 처분한 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테지만 집은 소유의 대상이 아니고 거주의 대상이라는 평소의 신념도 일부 작용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정작 이 때부터다. 당신이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가 재건축 급물살을 타면서 당신이 헐 값(?)에 매각한 아파트가 연일 폭등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불과 1년 반 사이에 아파트 가격은 3억이 되었다.

액운이 여기서 그치면 좋으련만, 불행은 혼자 오지 않는다는 옛 속담처럼 당신이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 주변의 거의 모든 아파트들이 두배 이상 앙등했다. 결과적으로 당신은 굴러온 복을 발로 차서 2억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사실상 내집 마련의 기회를 거의 영구히 상실하게 되었다.

물론 당신도 1년 반 동안 부지런히 일하고 절약해서 천만원 정도의 돈을 저축했지만 천정부지로 뛰어오른 아파트 가격에 비하면 그야말로 '조족지혈'수준이다. 사정이 이럴 경우 당신이 할 수 있는 선택은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는 것과 애꿎은 술병을 부지런히 없애는 일 정도일 것이다.

그리고 얼마후 당신은 매일 부동산 관련 인터넷 사이트를 검색하며 돈 될 만한 물건을 찾기에 혈안이 된 스스로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당신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돈 될만한 부동산 매물에 대한 정보이고, 당신은 좋은 매물을 찾기 위해서 발품 파는 것을 마다하지 않게 될 것이다.

우리가 익히 아는 것처럼 위와 같은 예는 주변에 비일비재해서 화제거리도 되지 않을 지경이다. 부동산에 일찍 눈을 떠 거부가 된 사람과 부동산에 무관심했다가 낭패를 본 사람, 집이 여러 채 있는 사람과 내집 마련이 꿈인 사람, 이 모든 사람들의 이 시대 최대 화두는 단연 '부동산'이다.

이러한 사람들의 관심이 가수요를 불러오고 이러한 가수요는 또다시 집값 상승을 불러오는 악순환에 우리 사회가 멍들고 있다. 이런 와중에 대한민국의 성인남녀들은 시나브로 부동산 투기꾼으로 변신하고 있다.

부동산 투기의 폐해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지만 그 중 대표적인 것이 국민들의 근로의욕을 훼손하고 투기심리를 만연시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생각해 보라! 부동산 투기를 통해서 적게는 수천만원에서 많게는 수억원에 이르는 불로소득을 얻을 수 있는데 도대체 누가 열심히 공부하고 땀 흘려 일하려 하겠는가?

따라서 부동산 투기로 돈 버는 것이 가능한 시대가 지속된다면 국민들의 심성은 투기심리로 오염될 것이고 대한민국의 국가경쟁력은 추락을 면치 못할 것이다.

제2, 3의 이헌재가 출현하는 것을 막기 위하여

이른바 '이헌재사태'도 따지고 보면 이헌재 개인만의 잘못은 아니다. 물론 그의 행위는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부동산 투기로 돈을 벌 수 있는 제도가 온존하는 한 또 다른 이헌재가 나타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있는데도 이를 외면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으며 청백리 정신을 지니고 투기할 마음을 다스리라는 주문도 그리 큰 공명을 얻기는 어려울 성 싶다.

고위공직자들이 부동산 투기를 하는 행위를 개인적 차원의 도덕적 결단이나 결 고운 윤리의식을 통해 막으려고 하는 것은 무력하기 짝이 없어 보인다.

주지하다시피 사람들이 부동산 투기를 하는 이유는 부동산 투기로 인해서 돈을 벌 수 있으리라는 '기대이익'때문이다. 따라서 부동산 투기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부동산 투기를 통해서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경로를 원천적으로 차단함으로써만 가능할 것이다.

부동산 투기를 통해서 불로소득을 얻는다는 경험이 일반화되고 이러한 경험이 확신으로 굳어질 때 국민들은 누구나 투기에 몰두하게 된다. 만약 참여정부가 부동산으로 인해서 불로소득을 얻을 수 있다는 믿음을 불식시키지 못한다면 '부동산 투기 바이러스'는 국민들의 몸을 숙주삼아 왕성할 활동을 계속할 것이다.

이제 우리 국민들도 '어디에 있는 무슨 아파트를 사면 돈이 될까', '재건축을 바라보고 저 연립을 사면 좋을까', '판교에 입성하기 위해서 청약저축을 청약예금으로 전환해야 할까'하는 따위의 비생산적인 고민과 궁리에서 벗어날 때가 되었다.

참여정부는 부동산으로 인한 국민들의 스트레스를 덜어 줄 역사의 의무가 있다. 그리고 그 의무의 이행은 이헌재 부총리의 경질과 고위공직자들의 투기현황 조사에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 편집위원

* 필자는 토지정의시민연대(www.landjustice.or.kr)에서 정책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 글쓴이는 <대자보> 편집위원, 토지정의시민연대(www.landjustice.or.kr) 사무처장, 토지+자유 연구소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블로그는 http://blog.daum.net/changethecorea 입니다.
대자보 등에 기고한 칼럼을 모은 [한국사회의 속살] [투기공화국의 풍경]의 저자이고, 공저로는 [이명박 시대의 대한민국], [부동산 신화는 없다], [위기의 부동산]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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