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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과 신동엽, 그리고 詩의 길
‘멀리서부터 부서지는 파도는 결코 내 발끝까지 밀려오지 못한다’
 
감자꽃   기사입력  2004/08/29 [13:11]

김수영, 그 탁월한 눈빛


▲생전의 김수영 시인     © 국학자료
1960년대 우리에게는 탁월한 詩人 두 명이 있었다. 김수영과 신동엽. 문학을 하는 자들에게 언제나 화인처럼 따라다니는 ‘빛나는 상처’로 말이다. 이 두 명에게 늘상 따라다니는 수식어가 하나 있다. 4.19. 우리민족 역사상 처음으로 민중에 의해 정치지도자가 바뀐 사건을 말한다.


왜 그들에게 4.19 시인이라는 영광스러운 칭호가 붙었을까. 김수영의 시집 『사랑의 변주곡』을 잠시 들여다본다.


  푸른 하늘을 제압하는

  노고지리가 자유로 왔다고

  부러워 하던

  어느 시인의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자유를 위해서

  비상하여 본 일이 있는

  사람이면 알지

  노고지리가

  무엇을 보고

  노래하는가를

  어째서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가를

  혁명은

  왜 고독한 것인가를

 

  혁명은

  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가를.

 

- 「푸른 하늘을」 全文


이 시를 처음 읽었을 때가 고등학교 1학년 이맘때였다. 그때의 느낌은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의 ‘전율’이었다. 양 쪽 귀가 한꺼번에 뚫리고 최신형 서라운드 스피커와 같은 울림으로 이 작품의 낱말 하나하나가 내 망막으로 뚜벅거리며 들어왔다. 김수영은 왜 이리 쓸쓸할까. 혁명이 시작되기도 전에 그는 이미 지친 것일까.


신동엽, 내 아버지와도 같은


▲신동엽 시인     © 국학자료
김수영의 심성이 도시 지식인의 전형을 보여준다면, 신동엽의 그것은 우리네 민중(민초라는 말은 일본어이다)들의 막막한 일상 그 자체이다. 제도화되고 시스템화된 가난의 세습과 성장주의의 그늘 아래 하나 둘씩 허물어져가는 서민들의 삶이 신동엽의 작품들 속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그래서 신동엽의 시편들은 소중하다. 마치 우리가 윤동주를 읽으며 마음의 때를 벗겨내는 것처럼, 신동엽의 작품을 읽어 가노라면 시인이라는 존재가 우주에서 뚝 떨어진 생명체가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과 똑같이 먹고 마시며 배설하고 욕지거리도 하는 이웃이라는 걸 알게 된다.


신동엽의 시 중에 가장 유명한 것이 「껍데기는 가라」일 것이다. 4.19 직후 써내려간 이 작품에는 당대의 ‘혁명’을 바라보는 민중의 시선이 녹아 있다. 그러나 그 작품을 읽어가는 내내 불편했다. 그의 목소리는 그것보다 더 차분하고 따스하기 때문이다. 그의 시 중 ‘제일 좋은 것’을 꼽으라면 나는 주저없이 「종로 5가」를 가리킨다.


  이슬비 오는 날,

  종로 5가 서시오판 옆에서

  낯선 소년이 나를 붙들고 동대문을 물었다

 

  밤 열한시 반,

  통금에 쫓기는 군상 속에서 죄 없이

  크고 맑기만 한 그 소년의 눈동자와

  내 도시락 보자기가 비에 젖고 있었다

 

  국민학교를 갓 나왔을까.

  새로 사 신은 운동환 벗어 품고

  그 소년의 등허리선 먼 길 떠나온 고구마가

  흙 묻은 얼굴들을 맞부비며 저희끼리 비에 젖고 있었다

 

  충청북도 보은 속리산, 아니면

  전라남도 해남땅 어촌 말씨였을까

  나는 가로수 하나를 걷다 되돌아섰다

  그러나 노동자의 홍수 속에 묻혀 그 소년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지

  눈녹이 바람이 부는 질척질척한 겨울날,

  종묘 담을 끼고 돌다가 나는 보았어

  그의 누나였을까

  부은 한쪽 눈의 창녀가 양지 쪽 기대 앉아

  속내의 바람으로, 때묻은 긴 편지를 읽고 있었지

 

  그리고 언젠가 보았어

  세종로 고층건물 공사장,

  자갈지게 등짐하던 노동자 하나이

  허리를 다쳐 쓰러져 있었지

  그 소년의 아버지였을까

  반도의 하늘 높이서 태양이 쏟아지고,

  싸늘한 땀방울 뿜어낸 이마엔 세 줄기 강물

  대륙의 섬나라의

  그리고 또 오늘 저 새로운 은행국의

  물결이 뒹굴고 있었다

 

  남은 것은 없었다

  나날이 허물어져 가는 그나마 토방 한 칸

  봄이면 쑥, 여름이면 나무뿌리, 가을이면 타작마당을 휩쓰는 빈 바람

  변한 것은 없었다

  이조 오백 년은 끝나지 않았다

  옛날 같으면 북간도라도 갔지

  기껏해야 버스길 삼백 리 서울로 왔지

  고층건물 침대 속 누워 비료광고만 뿌리는 그 머리 마을,

  또 무슨 넉살 꾸미기 위해 짓는지도 모를 빌딩 공사장,

  도시락 차고 왔지

 

  이슬비 오는 날,

  낯선 소년이 나를 붙들고 동대문을 물었다

  그 소년의 죄 없이 크고 맑기만 한 눈동자엔 밤이 내리고

  노동으로 지친 나의 가슴에선 도시락 보자기가

  비에 젖고 있었다.

 

- 「종로 5가」 全文


신동엽이 잠시 부르짖었던 그 ‘혁명’은 다카키 마사오의 쿠테타로 의미를 잃었고, 시인은 아마도 쓸쓸했을 것이다. 어둠이 밝음을 가리고, 거짓이 진실을 구타하며, 반역이 역사를 강간하는 그러한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면, 우리는 시인보다 더 쓸쓸할 것이다.


선천성 외로움


문학을 하는 사람, 특히 詩人들은 외로움을 ‘잘 탄다.’ 아니 어쩌면 그 외롭고 낮고 쓸쓸한 상황을 ‘즐기고’있는지도 모른다. 일전에 미술평론을 하는 여자 후배의 출판기념회에 간 적이 있다. 미술판의 상황이 어떤지 전혀 알지 못했던 나로서는 곤혹스럽기 그지없는 ‘번거로움’을 안겨준 날이었다.


아무개 교수에, 아무개 선생에, 아무개 화백에……. 온통 대한민국 최고 학벌의 전시장 같았다. 그 순간 내 머리 속을 꽉 채운 낱말이 ‘이중섭’이었다. 그가 살아 있다면 호텔 라운지에서 열리는 그 화려하고도 ‘정중하며’, ‘와인 몇 잔을 홀짝거리는’ 기념회에 갈 수 있었을까.


시인들도 출판기념회를 한다. 간혹 신문지상에 보도되는 그런 기념회를 떠올리지 마시라. 우리는 그럴 돈도 없고, 설사 그럴만한 여유가 있다하더라도 차라리 쌀을 살 것이다. 보통의 시인들이 하는 ‘출판기념회’는 실상은 걸판진 소주파티일 뿐이다.


쓸쓸함을 일용할 양식으로 살아가는 시인들은 살이 좀처럼 찌지 않는다. 아니, 살이 쪄서는 안되는 직업인 것이다. 세상의 그 무수한 혼돈과 이웃들의 아픔과 내 조국의 황량한 거리를 바라보는 자가 어찌 살이 찔 수 있겠는가. 물론 선천적으로 ‘우량아’로 태어났다면 예외지만.


누구인들 쓸쓸함 혹은 외로움을 즐기겠는가. 홀로 가는 이의 뒷모습만큼 아린 실루엣도 없는데……. 詩를 쓰는 자들의 영혼은 대개 저물 무렵의 색깔을 지니고 있다. 하루가 저물어가는 그 시간에 우리는 보통 지나온 시간대를 곱씹고 후회하며, 즐거워하기도 한다. 그리고 침잠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그 시간대에는 누구나 낮은 목소리로 자신의 영혼과 소통한다.


별과 꽃과 이슬, 그리고


습작기에 있는 후배들과 만나면 “詩 쓸 소재가 없다”는 말을 많이 듣게 된다. 나 역시 그 당시에는 그랬다. 소재가 말라가고, 언어의 변비증에 걸리고, 습작노트를 다 태워버리고, 한동안 시집을 읽지 못하고…….


그러나 그 기나긴 고통의 시간대를 통과하면 비로소 어렴풋이 보인다. 詩가 뭔지, 그리고 내 목소리가 어떤 음색을 소유하고 있는지. 그러는 동안 ‘어투’가 서너 번 바뀐다. 詩를 접하던 그 첫날의 목소리는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고, 기억해서도 안된다. 그때의 목소리는 ‘나’의 것이 아닌, ‘남’의 것이기 때문이다.


노래를 부르듯이, 누구나 알 수 있는 말로 이야기 하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詩를 가장 잘 쓰는 사람이다.


시인에는 세 종류가 있다. 제도적인 방법으로 ‘등단’한 사람들이 첫 번째 부류다. 그러나 이들 중 상당수는 등단을 이력서의 빈 칸을 메꾸어주는 통과의례 정도로 치부하고 있으므로 논할 가치가 없다. 나 역시 제도적 방법으로 문단에 얼굴을 들이밀었으므로 무효다.


두 번째는 평생 詩를 쓰는 사람이다. 비록 그 사람의 이름 앞에 ‘詩人’이라는 공식화된 수식어가 붙지 않는다 하더라도 평생 詩를 쓰는 것 자체로도 그는 이미 詩人이다. 언어의 수준이 높고 낮음과 소재의 빈곤이 엿보인다 하더라도 말이다.


세 번째는 평생을 詩를 쓰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이들이 바로 ‘진짜’ 詩人이다. 시를 쓰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누구나 약간의 감성과 약간의 언어유희와 약간의 시간만 투여할 각오가 되어 있다면 말이다. 그러나 자신이 쓰는 詩처럼 살아가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별과 꽃과 이슬을 노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등단이 취소되었던 시인도 있다. 바로 김수영이다. 별과 꽃과 이슬을 노래하는 것만이 시인의 자격조건이었던 짐승 같은 세월도 있었다. 믿지 못하겠지만 말이다. 우리가 호흡하고 살아가고 있는 ‘지금’은 그래서 더욱 소중하다.


어제를 동여맨 편지 하나


함경도 속담에 이런 것이 있다. “동네 개가 짖어도 황소는 제 갈 길을 간다”라고. 우리는 한 번도 우리의 사랑에 대한 댓가를 요구하지는 않는다. 세상을 사랑하려는 자, 피와 땀과 눈물과 고통을 감내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호흡이 짧으면 결코 먼 거리를 걸을 수 없다.


내 고향 강릉의 경포바다는 파도가 높고 거칠다. 멀리서부터 하얗게 포말이 부서지며 내게로 달려오는 파도 너울을 볼 때마다, 이런 생각이 들곤 했다. 일종의 개똥철학이다.


‘멀리서부터 부서지는 파도는 결코 내 발끝까지 밀려오지 못한다.’


함박눈 내리는 경포에서 내가 얻은 결론이다. 미리 부서지지 말자. 온 영혼의 화살을 힘껏 당겼다가 단 한 발의 화살로 끝낼 수 있을 때, 그때 가서 처연하게 부서지면 된다. 그것이 두렵다면 우리는 아마 평생 단 한 편의 ‘튼튼한 서정시’도 쓰지 못할 것이다. 미리 절망하고, 벌써부터 불면의 나날들을 보내지는 말자. 우리가 걸어온 길 보다 더 많은 길들이 지금 열리고 있다. 이제 시작일 뿐이다.


제발 진도 나가자.


내 마음의 변방에서, 감자꽃 필 무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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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4/08/29 [13:11]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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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번째시인 2004/09/26 [12:08] 수정 | 삭제
  • 저는 첫번째를 꿈꾸다가 포기하고 세번째시인으로 살아가려고 하는데 모르겠네요. 그렇게 사는지
  • 민중? ! -,.- ;;; ^,.^ 2004/08/31 [21:45] 수정 | 삭제
  • 본래의 취지일런지는 몰라도, 글을 읽고 나니 그래 되네요.
    시만큼 감동을 느끼고 갑니다. 정말! 진도 나갑시다!!!!!!
  • 깎다만 밤 2004/08/30 [16:35] 수정 | 삭제
  • 좋은 글 잘 읽고 가네여^^

    진도 나갑시데이..
  • 고엽 2004/08/30 [03:16] 수정 | 삭제
  • 가을 향기가 물씬 풍기네요.
    감자꽃님 덕분에 가을정취가 물씬...
    좋은 글 많이 부탁드려요^^
  • 공평 2004/08/29 [22:31] 수정 | 삭제
  • 김수영 시인의 사진은 있는 데 신동엽 시인의 사진은 없네요...
    공평해야지요^^
    여기 있습니다~


    ▲신동엽 詩人

  • 까뮈 2004/08/29 [21:54] 수정 | 삭제
  • 잘보고 갑니다..좋은 글 많이 많이 부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