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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폐인, 메가 사이버 브레인의 전달자들
미래 사이버 펑크 세상의 새로운 주인공ba.info/css.html'><
 
민경진   기사입력  2003/01/16 [14:56]
마샬 맥루한은 도구는 신체의 연장이라는 시각을 선보인바 있다. 망치는 손, 바퀴는 발, 옷은 피부. 자동차 역시 마찬가지다. 운전이 익숙해지면 흔히 차와 한 몸이 된다고 말한다. 운전석에 앉으면 자동차가 당신 몸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바퀴는 발, 운전대는 팔, 전조등은 눈 그리고 범퍼는 엉덩이가 된다.

난폭운전을 하는 자동차를 보면 사람들은 운전자가 보이지 않더라도 차체 자체에서 어떤 감정을 느낀다. 신체의 각 부분이 확장되면서 자동차가 의인화된 것이다. 거리를 질주하는 거대한 덤프트럭에서 위압감을 느끼는 것이나 소형차를 은근히 얕보게 되는 것 역시 마찬가지 현상이다.

{IMAGE2_LEFT}인간은 알고 보면 지극히 인본주의적인 동물이다. 세상의 모든 사물을 자신의 신체를 본 따 만든다. 차의 ‘얼굴’ 좌우에 자리잡은 두개의 전조등, 중앙부의 그릴과 로고 등은 정확하게 사람의 얼굴을 본 딴 것이다. 폭스바겐 비틀의 전면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응시하는 아기의 얼굴을 모티브로 삼았다고 한다. 아기는 귀엽지만 연약하여 어른들의 보호본능을 유발시킨다. 안아주고 예뻐해 주고 보살펴 주어야 한다. 비틀이 수십년이 넘게 자동차 매니아들의 사랑을 받아오다 급기야 최근 들어 부활하기에 이른 것은 사람들의 본능에 호소하는 인본주의적 디자인 탓일 것이다.

수십년 전 TV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맥루한은 이상한 상상을 한다. 눈동자의 각막이 한없이 늘어나 TV 스크린과 하나가 되고 신경촉수는 방송국의 중앙안테나를 따라 전 세계의 시청자와 다시 하나의 시신경으로 접속되며 결국 지구는 그 자체가 살아서 꿈틀거리는 거대한 바이오 신경망으로 진화한다. 데이빗 크로넨버그의 컬트영화 ‘비디오드롬’을 연상하게 하는 장면이다.

당시 학자들은 맥루한의 이해할 수 없는 이런 기괴한 상상을 괴팍한 학자의 공상 정도로 취급했지만 사람들은 맥루한이 말하고자 했던 것의 정체가 무엇이었는지 이제서야 서서히 깨닫고 있다. 맥루한이 상상했던 것은 바로 다름 아닌 인터넷이었던 것이다. 인터넷이 지금처럼 보급되기 이미 30년도 전에 맥루한은 네트워크로 연결된 실시간 커뮤니케이션의 미래를 예언하고 있었던 셈이다.

도구가 신체의 연장이라는 맥루한의 사유를 인터넷과 네티즌에도 적용해 보면 우리는 우리 뇌의 연산과 사고, 기억의 기능을 네트워크를 통해 확장시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컴퓨터 메모리의 도움 없이 처리할 수 있는 일은 이미 거의 사라진지 오래다. 이제 우리의 대뇌 시신경은 컴퓨터 모니터와 하나가 되어 네트워크를 따라 흘러가고 거대한 서버에서 합류하여 또 하나의 사이버 브레인에서 만난다. 지난 몇 년 간의 게시판 여론 폭발은 바로 이런 기계를 매개로 한 메가 사이버 브레인의 형성 과정이었던 셈이다.

당신은 이제 네트워크와 분리되는 순간 이미 온전한 사람이 아니다. 마치 금단현상처럼 몸이 오그라들고 불안해지며 잠시라도 컴퓨터 스크린과 떨어져서는 살 수가 없다. 왜? 당신의 두뇌 기능의 일부를 이미 메인 서버의 다른 네티즌이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사고기능 일부를 네트워크에 이전시켰기 때문일 수도, 혹은 인터넷 커뮤니티를 알기 전에는 없었던 새로운 사고기능이 뒤늦게 추가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어쨌든 당신은 이제 인터넷을 떠나는 순간 온전한 인간의 기능을 잃고 반신불수가 된다.

{IMAGE1_RIGHT}이것이 바로 인터넷 폐인의 증상이다. 맥루한 선생의 선견지명으로 진단이 내려졌으니 이제 처방이 따라야 할 터인데 아쉽게도 필자에게는 당장 명약이 없다. 인류가 자동차 없이는 하루도 제대로 된 삶을 누릴 수 없듯이 이제 컴퓨터 네트워크의 도움 없이 돌아갈 수 있는 것 역시 거의 남아 있지가 않다. 매일 자동차로 출근하는 사람을 자동차 중독자라고 부르지 않고 김치 없이 밥 못 먹는 한국인을 김치 중독자라고 부르지 않듯이 인터넷 역시 이제 우리의 삶의 일부로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다만 조금씩 우리의 인터넷 폐인들에게 해결의 서광이 비치고 있으니 바로 always-on 고속무선인터넷이 서서히 보급되고 있다는 것이다. 조금만 참으시라. 이제 첨단 무선 단말기로 언제든지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그 날이 속히 올 터이니, 인터넷 폐인들이여 당신을 더 이상 폐인으로 부르지 마시라. 당신은 네트워크 중독증도 아니고 반신불수도 아니다. 그렇게 미래사회에서 사는 방법을 남들보다 먼저 체득한 선각자들이다. 언젠가 우리들은 <매트릭스>의 주인공들처럼 기계와 신체가 하나가 된 사이버 펑크 세상의 주인공들로 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니까.

우리 모두 그 날을 기쁜 마음으로 준비하자.

jean

* 필자는 [테크노 폴리틱스](시와사회, 2002)의 저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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