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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1등의 추억 그리고 '살인의 추억'
[변상욱의 기자수첩] '베를리너 럭셔리 뉴웨이브 중앙일보'를 아시나요?
 
변상욱   기사입력  2009/03/13 [14:31]

12일 중앙일보 독자들은 케케묵은 옛날 모습의 신문을 받아들었다. 1995년 4월 4일 화요일 신문이 1면에 등장했다. 1995년 4월이면 중앙일보가 저녁신문에서 아침신문으로 바꾸기 직전이다.
 
◈ '베를리너 럭셔리 뉴웨이브 중앙일보'라고 아시는지?
 
중앙일보가 다음주(16일자)부터 신문 판을 바꾼다. 우선 신문 크기가 달라지고 신문의 디자인도 대폭 바꾸겠다고 한다. 신문에 담는 내용도 기존의 신문과는 다를 것이라고 호언장담하는 중이다.
 
갑자기 신문 크기나 디자인이 바뀌어 배달되면 독자들이 혼란스러워 할까봐 신문 판을 바꾼다는 예고를 이번주 들어서며 9일, 10일, 11일 연 사흘간 대대적으로 신문에 실었다.
 
이렇게 사흘간 예고한 뒤 12일에는 예고 수준이 아니라 충격요법으로 시선을 잡아 끌었다. 독자들은 잠깐 혼란스러웠겠지만 지금의 중앙일보와 14년 전 중앙일보를 비교해보면서 새로 판을 바꾼 것이 훨씬 때깔이 좋고 읽기도 편하다고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는 다음주에 판을 또 바꾼다는데 그러면 얼마나 더 좋아질까 은근히 기대를 했을 것이다. 이것이 중앙일보가 노린 효과.
 
신문의 크기는 한국식 대판(흔히 접하는 우리 나라 대부분의 신문들), 유럽식 대판(한국 대판보다 가로가 좁고 세로는 길다), 콤팩트판(지하철 무가지 신문이나 버스터미널 등에서 많이 파는 주간신문들의 판), 그리고 베를리너판이 있다. 중앙일보가 이번에 베를리너판으로 바꾸겠다는 것. 베를리너판은 대판과 콤팩트 판의 중간 쯤 되는 크기이다.
 
중앙일보는 영국 가디언, 프랑스의 르몽드, 르 피가로, 스페인의 엘파이스 등 유럽의 고급신문들이 베를리너 판을 사용하고 있다고 자랑한다. 그러니 베를리너 판을 사용하는 중앙일보도 고급이 아니겠냐는 이야기인가 본 데 호박에 줄 그으면 수박이고 까마귀에 브리지 넣으면 까치 되나? <뉴욕타임즈>, <워싱턴포스트> 찍는 잉크랑 똑같은 잉크로 찍는다고는 안할 지 몰라.
 
신문의 크기를 대판에서 콤팩트나 베를리너 판으로 줄이는 건 옛날보다 사람들의 이동이 많기 때문에 집 배달판보다는 가판이 많이 읽히고 승용차, 버스, 지하철 등에서 편하게 읽도록 신문 크기를 줄여야 하는 현실적 이유에서이다. 대판보다 면적에서 30% 정도 줄어들지만 그건 페이지를 늘리고 디자인을 시원하게 바꾸면 해결된다.
 
◈ 1등의 추억…그리고 살인의 추억
 
중앙일보는 뭐든지 먼저 하는 걸로 유명하다. 첫 전문 기자제, 첫 섹션 발행, 첫 인터넷 뉴스, 첫 일요신문…. 중앙일보가 자랑하는 첫 번째 실시의 기록들이다. 신문의 중요한 변화를 중앙일보가 항상 앞서가는 이유는 뭘까?
 
맞다, 돈이다. 자금이 가장 넉넉하고 마케팅에 강하니까 투자를 해서 새로운 변화를 도입하기 가장 유리하다. 대신 다른 신문들의 원망과 분노를 산다. 중앙일보 따라하기가 결코 쉽지 않으니 말이다.
 
섹션으로 신문 면을 늘리고, 인터넷 따라가야지, 일요신문 만드느라 돈 더 들고 기자들 휴일 없이 출근해야지, 마케팅 따라하느라 공짜신문에 선풍기.자전거 경품 사 뿌려야지…. 중앙일보 따라가다 가랑이 찢어진 신문들이 지금 저렇게 진이 빠져 허덕이고 있는 것 아닌가.
 
그러다 신문지국 배달과정에서 과열경쟁으로 살인사건이 터졌던 것을 기억들 하실 것이다. 96년 조선일보와의 신문전쟁, 그리고 지국장 살인사건. 돈을 뿌려가며 신문시장을 점령해 들어간 중앙일보의 역사를 중앙일보는 1등의 추억으로 품고 있나 보다.
 
신문을 찍어내려면 윤전기가 필요하다. 한국 대판과 콤팩트 판은 하나의 윤전기로 찍을 수 있다. 대판을 절반 접으면 콤팩트 판이니까 콤팩트 판 두 면을 대판 찍던 윤전기로 한 번에 찍을 수 있다.
 
베를리너판은 어정쩡한 중간 크기여서 새 윤전기를 사와야 한다. 중앙일보가 새 윤전기 6대를 사들여 오느라 1,500억 원을 쏟아부었다고 한다. 설마 현찰 박치기는 아니었을 것이고 리스로 이자 갚아가는 방식일 것. 그런데 그 윤전기가 또 일본제라니 요즘 같은 엔고 시대에 환율 때문에 이자가 만만치 않은 정도를 넘어 엄청날텐데 어쩌려는지….
 
소문에 의하면 조선일보 등 다른 신문들도 베를리너판으로 가려다 환율 등 자금문제로 얼른 발을 뺐다는데 중앙일보는 혹시, 또 1등에 욕심내다 서둘러 계약해 버려 발도 못 빼고 울며 겨자먹기로 판을 뜯어 고치는 것은 아닐까?
 
올해 신문사 광고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교해 30~40% 정도 줄었다. 2월의 경우 조선일보가 2008년 210억원에서 2009년 140억원, 동아일보는 130억원에서 90억원으로 줄었다는 광고업계의 전언이다. 중앙일보 역시 2008년 2월 170억원에서 올해는 100억원에 머물러 40%나 줄었다는데 이걸 어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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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9/03/13 [14:31]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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