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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오리포트] 우리들의 종교는 오직 하나, 자유
별 따라, 길 따라 수백년 떠도는 삶...방랑의 영혼 집시ba.info/css.html'><
 
지오리포트   기사입력  2002/03/09 [15:57]
{IMAGE1_LEFT}지구상에는 나라 없이 떠도는 난민들이 많다.
어떤 사람들은 고향을 찾기 위해 총을 들고 투쟁한다.
또 어떤 이들은 애틋한 향수를 그저 가슴 속에 묻은 채 낯선 땅에서 살아간다. 그런데 집시들은 이들과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다.
집시는 고향이 없는 사람들이지만, 고향에 대한 꿈 역시 없는 사람들이다.
국가를 이룬 적이 없기에 돌아가야 할 곳도, 고향을 되찾기 위해 싸울 필요도 없는 이들이다.
그래서 집시에게는 방랑과 ‘역마살’이 서러움도, 저주도 아니다.



◀ 무허가 판잣집에서 살고 있는 루마니아 집시 가족.
ⓒ David Dare Parker
    


집시에게는 발길이 닿는 곳이면 어디든지 안식처가 된다.
자유가 ‘유전자’ 깊숙이 박혀있는 집시들이라 방랑할 수 없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죽음과도 같다. 그들은 그저 그렇게 수 백년 동안 떠돌며 살아왔다.

http://jabo.co.kr/zboard/▲ 불가리아 집시 빈민촌의 댄스 카페.
이 곳에서 집시 남성들은 하루 종일 술을 마신다. 잊기 위해...ⓒ Stacia Spragg
    

많은 이들이 떠올리는 집시에 대한 인상은 두 가지 쯤으로 정리될 듯하다.
사회의 관습에 구애받지 않고, 음악과 춤을 즐기는 로맨틱한 방랑자가 그 하나라면 또 다른 하나는 그리 유쾌하지 않은 인상이다.
술과 담배에 절어 사는데다, 떼로 몰려다니며 구걸하고, 도둑질하고, 아이들에게 앵벌이나 시키는 뻔뻔스러운 부류로 연상되기도 한다.

소수 유랑민족인 집시는 14~15세기에 걸쳐 유럽 각지에 나타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집시의 유래에 대한 정설은 없지만, 최초의 출신지를 인도로 보는 게 대체적인 추정이다. 피부색은 황갈색이거나 올리브색이며, 머리카락과 눈동자는 까맣다. 비교언어학자들은 인도의 고대 언어인 산스크리트어, 프라크리트어, 펀잡어 등과 집시 언어의 유사성을 밝혀 냄으로써 집시들의 고향이 인도라는 가설을 세우기도 했다. 집시는 북인도에서 ‘신드’라는 아름다운 왕국을 이루고 살았는데 이슬람과 몽고의 침략을 피해서 떠돌게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지기도 한다.

집시에 얽힌 몇 가지 일화 또는 전설을 통해 집시들의 자유로운 방랑혼을 엿볼 수 있다.

  
▲ 슬로바키아 동부 지역 집시 여가수 베라 빌라가 노래를 부르고 있다.   ⓒ Radio Prague
    

5세기경 페르시아의 왕이 인도에서 음악으로 자신을 즐겁게 해줄 ‘기쁨조’ 1만여 명을 데리고 왔다. 왕은 그들을 ‘루리’라고 불렀고 이 말은 ‘로마(Roma)’의 기원이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집시들은 스스로를 ‘로마’라고 부르는데 집시어로 ‘인간’ , ‘사람’을 의미한다.
집시들은 그 밖에도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영국에서는 처음 집시를 보고 이집트에서 온 것으로 잘못 알고 이집트인(Egyption)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집시(Gypsy)’라는 말은 여기서 유래했다.
북구와 북독일에서는 ‘타타르’ , 독일에서는 ‘치고이너’ , 헝가리에서는 ‘치가니’ , 이탈리아에서는 ‘징가리’ 혹은 ‘지가니’로 불린다. 이 단어는 중세 그리스어에서 유래했는데 ‘건드릴 수 없는(Untouchable)’ 이라는 의미로 마술사, 점쟁이, 뱀춤 마법사 등을 일컬었다고 한다.
또 체코의 보헤미아 지방에 사는 집시들은 ‘보헤미안’으로 불렸다.

많은 유럽인들은 집시들이 대책없이 삶을 살아가며, 구걸과 도둑질, 그리고 사기에 능하다고 여긴다. 그래서 집시에 대한 그런 인식을 뒷받침하는 우스개 이야기들도 다양하게 전해진다.

우스개 이야기 하나.
<옛날에 집시들의 교회는 돌로 만들어져 있었고 , 세르비아인들의 교회는 치즈로 만들어져 있었다. 세르비아인들은 집시들에게 자신들의 치즈 교회에 5 페니를 더 얹어 줄 테니 돌로 만든 교회와 바꾸자고 제안했다. 거래가 성사되고 난 다음 날 집시들은 치즈 교회를 몽땅 먹어버렸다. 그런데 세르비아인들은 5 페니를 주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그래서 아직까지 집시들에게는 교회가 없다. 또 세르비아인들에게서 5 페니의 빚을 받지 못한 집시들은 아직도 날마다 손을 벌리고 5 페니를 받으러 다닌다. >
우스개 이야기 둘.
<집시들은 ‘도둑질’ , ‘거짓말’을 신이 보장한 권리라고 생각한다.
옛날에 성자 그레고리가 신을 만나러 가는 길에 집시들을 만났다. 집시들은 신을 만나면 자신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물어봐 달라고 성자 그레고리에게 부탁했다. 그러면서 성자 그레고리가 끌고 가던 말에서 금 고삐를 뺐다. 그리고 신의 대답을 알려주면 돌려준다고 부탁했다.
  

▲ 루마니아 트랜실베니아의 집시 여자 아이.
손에 담배를 쥐고 있다. 집시들은 상당수 어려서부터 술,담배를 한다.  ⓒ David Dare Parker
  
    

성자 그레고리는 신을 만나 여러 가지 일들에 대해 물어본다. 그리고 나서 돌아오려다 말 고삐가 없는 것을 보고 집시 생각이 나 “집시들이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하고 신에게 물었다.
신은 “그 사람들은 나를 조금도 괴롭히지 않으며 노래로 즐겁게 한다. 가고 싶은 곳에 가고, 먹고 싶은 것을 먹고, 갖고 싶은 것은 뭐든지 가지며 축제처럼 살라고 전해라”고 대답했다. 성자 그레고리는 집시들에게 신의 말을 전하고는, 금고삐를 되돌려 달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집시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금고삐라뇨? 그런 건 갖고 있지 않아요. 이 말이 거짓말이면 저 달이 지금 당장 떨어질 겁니다”라며 딴전을 피웠다.
그 후 집시들은 신의 말씀대로 자신들이 원하는 곳에 가고, 먹고 싶은 것은 먹고, 갖고 싶은 것은 뭐든지 가지고 노래와 춤을 즐기며 살고 있다.>

집시들 입장에서야 그런 게 즐거울지 모르지만, 구걸하며 따라다니고 틈만 나면 금품을 빼앗으려는 집시들을 대하는 사람들은 곤혹스러운게 사실이다.
집시들의 가장 큰 무기는 ‘인내심’과 ‘무리짓기’라는 말도 있다.
목적을 달성할 때까지 끈덕지게 따라다니는 ‘인내심’은 혀를 내두를 정도다.
위협적인 외모와 완력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이라면 집시가 따라붙는 느낌이 드는 순간, 도망가는게 상책이다. 특히 집시가 많은 동유럽 등지를 여행하는 중 집시 아이들이 무리지어 달려들면 자신의 소유물에 대한 애착은 포기하는 게 좋다.

옷을 제대로 추스르고 그 자리를 빠져 나온다면 행운이라고 느껴야 한다. 집시들을 피해 도망가다가 교통 사고를 당할 뻔한 사람들 얘기도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집시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기피의 대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다른 한편, 구걸로 소일하는 집시의 불결해 보이는 손가락에선 주옥 같은 악기의 울림이 퍼져 나오기도 한다. 천연덕스레 거짓말을 해대는 그들의 입은 때로 저릿한 감동을 주는 시를 읊는다.
그래서 집시의 또 다른 이름 ‘보헤미안’이 자유로운 예술가 정신을 상징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집시들이 남긴 시와 노래들에는 자유를 목숨처럼 소중히 여기는 영혼의 울림이 있다.

어린 시절 감옥을 제집 드나들 듯 했다는 집시 시인 스파쪼(Spatzo)가 남긴 ‘자유’를 소개한다. ‘자유’에는 수백년 이어져 온 집시들의 방랑혼이 절절히 배어있다.

<관련 웹사이트 등 자료 번역 이혜승>

- 자유 -   

우리들 집시의 종교는 오직 하나, 자유!
자유를 위해 우리는 부도,권력도,과학도,그리고 영예도 버린다
우리는 하루 하루를 세상의 마지막 날처럼 산다
사람은 죽는 순간 모든 것을 잃는다, 남루한 마차도, 위대한 왕국도…
그 때 우리는 왕보다는 집시로 살아온 게 훨씬 좋았다고 믿는다
우리는 죽음을 생각하지도,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현재를 사는 게 전부이니...
우리의 비밀은 삶이 선사하는 사소한 것들에서 기쁨을 얻는 것
다른 사람들이 지나쳐 버리는
햇빛 찬란한 아침 연못에서 미역감기,
우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눈길 같은 것들…
사람들이 그 비밀을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우린 그저 집시로 태어날 뿐...
우리는 별빛 아래를 거닐며 즐거움을 느낀다
사람들은 집시가 이상하다고,
집시가 별들에서 미래를 읽으며, 사랑의 묘약을 지녔다고 말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설명할 수 없는 것은 믿지 않는다
우리는 그러나 믿는 바를 애써 설명하려 하지 않는다
우리의 삶은 단순하고 원초적이다
지붕으로 삼을 하늘이 있다면,
육신을 데울 불이 있다면,
슬플 때 부를 수 있는 노래가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충만하다

- Freedom -  

We Gypsies have only one religion: freedom.
In exchange for this we renounce riches, power, science, and glory.
We live each day as if it were the last.
When one dies, one loses all: a miserable caravan just as a great empire.
And we believe that in that moment it is much better to have been a Gypsy than a king.
We don't think about death. We don't fear it; here is all.
Our secret is to enjoy every day the little things
that life offers and that other men don't know how to appreciate:
A sunny morning, a bath in the spring,
the glance of someone who loves us.
It is hard to understand these things, I know. One is born a Gypsy.
It pleases us to walk under the stars.
They tell strange things about Gypsies
They say they read the future in the stars
and that they posses love potions.
Most people don't believe in things they can't explain
We instead don't try to explain the things we believe in.
Ours is a simple, primitive life.
It is enough for us to have the sky as a roof,
a fire to warm us,
and our songs, when we are sad.


▲ 루마니아의 집시 가족.  ⓒ David Dare Parker
     

** 본문은 본지와 기사제휴 협약을 맺은 "지구촌을 여는 인터넷 신문 지오리포트 http://georeport.co.kr/ "에서 제공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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