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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언론은 변화 지향적 가치에 소홀"
[초대석]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가 바라본 한국언론의 문제점과 해법
 
윤창빈   기사입력  2008/07/08 [17:25]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더불어 숲’ ‘강의’ 등 세대를 뛰어넘는 저서, 한학과 서예에 조예가 깊고 우리 시대의 대표적 지식인으로 깊은 사색과 성찰 속에 살아오신 신영복(67) 성공회대 석좌교수를 지난 4월16일 성공회대 교수연구실에서 만났다.
 
인터뷰를 통해 한국 언론의 문제점과 역할, 언론보도의 문제 등에 대한 견해, 남북통일과 한국 사회의 제 문제, 집필한 저서 및 향후 계획, 삶의 역정 등의 이야기를 들었다.
 
선생은 1941년 경남 밀양 출생으로 63년 서울대 경제학과, 65년 서울대 대학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24살의 나이에 숙명여대 강단에 섰던 촉망받던 경제학자였다. 68년 여름 육군사관학교 교관으로 근무하다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27세의 꽃다운 나이에 구속돼 20년을 복역 후 47세 중년의 몸으로 88년 8·15특사로 풀려났고, 89년부터 성공회대에서 재직 중에 있다. 2006년 8월 정년퇴직 후 현재는 석좌교수로 계속 후학들을 가르치고 계신다.
 
▲‘통일혁명당’ 사건에 연루돼 20년을 감옥에서 계셨고, 출소 후 성공회대에서 재직하시다 정년퇴임 후 석좌교수로 계십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지나온 일생을 돌이켜보면 초등학교 입학 전 7년을 제외하면 감옥 이전 20년, 감옥 20년, 감옥 이후 20년입니다. 초등학교 이전에도 아버님이 교장 선생이셔서 학교 구내에서 살았습니다. 감옥도 ‘인생대학’으로 치면 평생을 학교에서 보냈습니다. 지금부터의 여생은 제가 살아온 삶의 연장선상에서 학교를 학교답게 우리 사회의 자유로운 비판적 담론의 공간과 ‘창조적 공간의 숲’으로 만드는 데 일조하고 싶습니다.
 
즉 감옥 20년(나의 대학 시절)이 ‘머리로부터 가슴까지의 긴 여행’(논리적, 이론적, 냉철한 머리보다 따뜻한 가슴이 더 중요하고 그것을 품성화하고 인격화하는 긴 여정)이었다면, 성공회대 20년은 ‘가슴에서 발까지의 여행’이었습니다. 발은 실천의 문제이자 현장의 문제입니다. 저는 사회적 실천을 통해 이 사회를 ‘건강한 숲’(성찰 공간)으로 만들고 후학을 키우는 일에 전념하려고 합니다.
 
한국 현대사에서 질곡의 역사를 경험한 세대입니다. 한국전쟁을 겪고, 4·19 세대(59학번)로 대학 및 감옥생활을 통해 느끼신 점은?
 
제가 10살에 겪은 한국전쟁의 참혹상은 고향인 경남 밀양에서의 끔찍한 학살의 현장을 목격한 것입니다. 어느 날 좌익으로 몰린 사람들의 머리를 벤 뒤 철사로 귀를 꿰어 영남루 부근의 다리 양쪽으로 장대를 세워 달아 놓았습니다. 20여 개의 머리가 걸려 있었고, 그 사이를 지나서 건너는 것은 어린 나에게 충격적인 경험이었습니다.
 
대학 2학년 시기에 4·19혁명을 맞이했고, 어리고 감수성이 예민했던 우리에겐 엄청난 충격이었습니다. 그 강고한 정치권력이 무너진다는 것은 어느 시인의 표현대로 “4·19는 총탄이 이마를 뚫고 지나간 진정한 혁명”이라는 감동을 공유하기도 했습니다.
 
4·19 직후에 나타난 여러 가지 교원연맹, 노동동맹 등의 활동은 80년대 민주화 과정에서 나타난 사회운동의 맹아적인 형태의 운동이었습니다. 또한 대학에서는 그때까지 금지된 마르크스 ‘자본론’ 강독이 정식 교과과목으로 개설되고, 학생들은 운동 서클을 조직해 사회과학 관련 서적을 탐독하는 등의 활동을 했습니다.
 
▲우리 시대의 스승, 진정한 원로인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     © 월간 <신문과방송>

5·16 군사정부 이후 저는 본격적으로 후배들의 세미나 지도를 시작하는 등 학생운동에 몰두하게 됩니다. 대학원 재학 중에도 다른 대학이나 연합 동아리 지도를 했고, 숙명여대 강사 시절 ‘청맥’ 잡지 모임 등에 참여하면서 선배들과 함께 통혁당 사건에 연루되어 실형을 선고 받습니다.
 
저는 감옥생활을 통해 20년이라는 짧지 않은 세월을 한 곳에 못처럼 박혀 있었지만, 밖에 있었더라면 만나지 못할 수많은 사람과의 ‘만남’을 통해 학생 신분으로 가지고 있었던 의식의 한계를 깨달았습니다. 또한 사람들의 참담한 삶의 조건들을 경험하면서 먼저 나 자신의 개인 품성을 개조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특히 해방 직후 일어난 여러 사건에 연루된 역사의 산증인들과의 대화에서 해방 전후의 화석화된 역사가 아니라 피가 통하고 숨결이 있는 역사의 진술을 통해 지식인들이 가지고 있는 의식의 창백한 관념성을 청산할 수 있었습니다. 즉 감옥은 제게 큰 깨달음을 주었고, 개인의 품성을 개조했던 진정한 의미의 대학이었습니다.
 
한국 언론의 가장 큰 문제점과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한국 언론의 가장 큰 문제는 언론이 ‘소통의 중심’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권력 지향의 한 축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즉 언론이 국민 여론을 대변하기 보다는 오히려 여론을 이끌고 당대 사회의 지배 이데올로기를 만들어 내는 정치적 권력으로서의 성격자체가 진정한 언론의 ‘소통’이 아니며, 언론 자체가 보수적 진지의 한 축이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더욱이 한국 사회의 언론은, 사회의 권력을 견제하고 많은 사람의 의견을 소통하려는 진보적이고 열린 언론이 사회적 영향력에서 상당히 위축돼 있는 반면에 권력 지향적이고 보수적인 언론의 위상이 상당히 크다는 점에서 우려된다고 봅니다.
 
이러한 면에서 언론은 사회에 대한 변화 지향적인 기본적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 즉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잠재역량을 억압하거나 은폐하기보다는, 사회의 건강한 가능성을 키워 극대화시키는 언론의 역할이 요구됩니다. 지금까지 언론은 오히려 사회의 건강한 가능성과 변화 지향적 가치에 소홀히 한 측면이 있습니다.
 
▲한국 현대사에서 미국이 미친 영향에 대한 평가는 무엇입니까?
 
미국이 한국 사회에 미친 영향력은 압도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본 식민지는 36년인데 해방 후 지금까지 미국이 한국 사회에 영향을 미친 기간은 63년입니다. 현재의 국내 정치 권력구도도 미군정 때 재편된 구조를 토대로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 사회의 성격을 논할 때 그 사회의 엘리트 재생산 구조에 주목하는데 한국 사회는 이미 미국 중심의 엘리트 재생산 구조를 가지고 있고, 지식인들은 거의 미국식 사고방식의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조기 유학은 물론 원정출산에서 박사학위 취득까지 한국 사회는 미국의 문화 교육 정치 경제 등 모든 분야에서 지배받고 있습니다. 자본주의 위기구조로 미국 위주의 패권적 질서가 불안한 상황에서 모든 분야에서 미국 중심으로 역량을 투입하는 것은 경계해야 합니다.
 
남북통일 문제의 해법은 무엇이며 통일 관련 보도의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우리 민족은 오랜 세월을 살아오면서 크게 두 가지 세계화에 관계된 형식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적극적 교류를 통해 발전하는 개방적 형식의 세계화와 다른 하나는 세계가 우리 민족의 정체성 및 민족적 이해관계를 침탈하려고 할 때 거기에 맞서 주체성을 지켜서 자기 민족의 안전과 삶을 지키려는 주체 쪽에 무게를 둔 세계화의 관계입니다. 우리 민족은 역사적으로 어떤 시기는 주체 쪽에 무게를 두었고 반대로 개방 쪽에 힘을 기울인 경우가 있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주체 쪽에 무게 중심을 둔 시기에는 고립되고 발전이 정체되는 위험이 있고, 개방 쪽에 무게 중심을 둔 시기에는 민족이 식민화되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따라서 이 두 개의 축을 역사적으로 적절히 조화시켜야 하는 게 한민족의 역사가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남북문제는 단순히 이데올로기의 갈등으로 받아들이기보다 우리민족의 세계와의 관계형식이 외화된 문제로 보는 시각이 더 유효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21세기는 단일한 패권적 가치를 넘어서 다양한 가치가 승인되고 공존하는 세계질서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즉 우리의 통일 과정도 단일한 이데올로기와 체제 및 구조가 아니라 남북이 가지고 있는 차이를 인정하고 다양성을 승인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개방과 주체의 두 축을 적절히 배합하는 과정에서 서로 평화와 교류협력 체제를 튼튼히 하고, 남과 북이 상호 신뢰를 쌓고 문화의 차이를 극복하는 길고 어려운 통일과정을 겪어야 한다고 봅니다. 현재 유일하게 냉전 공간으로 남아 있는 한반도의 현실을 극복하는 것이 우리 정부의 노력이었고 세계사적 흐름이라고 볼 때, 우리 언론도 분단 극복을 위한 언론 보도의 자세가 더욱 절실히 요구됩니다.
 
▲대학에 재직하면서 느낀 20대들의 급격한 보수화와 정치 무관심의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20대의 급격한 보수화 경향은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보수화 경향과 무관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젊은 학생들도 청년실업 등 사회적 진출이 불투명해지는 현실에서 자신의 개인적 문제로 집중하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우리 사회는 기본적인 문화패턴이 상품 문화이고, 상품은 팔리기만 하면 됩니다. 특히 젊은 사람들은 팔리기 위해 포장하는 디자인이나 패션 등 형식적인 것에 정서적으로 매료되고, 인간적인 진정성 등의 문제에는 소홀히 합니다.
 
즉 젊은 학생들은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보수성에 청년들이 현실적으로 당면하는 제약조건의 측면으로 인해 개인주의화하고 있고, 급격한 보수화의 측면이 나타납니다. 학교에서도 학생들의 총학생회 활동을 보면 학생들의 경제적 이해관계에 목적을 둔 신자유주의적 공약 등이 다른 사회적 참여 및 정치 등의 문제보다 우선시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  신영복체로 알려진 신영복 선생의 서예, 일가를 이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월간 <신문과방송>

▲선생님은 글씨 솜씨와 한학에 대한 조예가 정평이 나있으신데요. 서체가 완성되기까지의 과정은?
 
어려서 할아버님 슬하 사랑방에서 서예를 배웠습니다. 그러나 서도는 교도소에 초빙됐던 만당 성주표선생, 정향 조병호 선생으로부터 옥중 사사했고, 한학자인 노촌 이구영 선생과 같은 방에서 지내는 행운이 주어져 동양고전을 익혔습니다. 지금의 저의 글씨체는 한글 궁체의 귀족적인 것을 바꾸어 민중시를 담을 서민적 글씨체를 모색한 결과입니다.
 
‘민체’ ‘협동체’ ‘연대체’ 등으로 불립니다만 서민적 미학과 서로 의지하는 글씨로 제가 주장하는 ‘관계’에 대한 철학이 담겨 있습니다. 서도는 서양에는 없는 예술의 장르입니다. 동양의 관계론적 원리가 아주 잘 녹아 있는 장르입니다. 한 획, 한 글자, 한 횡이 서로 농밀히 관계하고 기대는 관계론적 미학이 서도에 담겨 있습니다. 그것은 어떤 배타적이고 개별적인 존재란 없다는 생각에 바탕하고 있고, 우리 사회의 공동체적 문화에도 적용된다고 봅니다.
 
저작 속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사람에 대한 소중함을 일깨우고 새로운 인간관계 즉“나무가 나무에게 우리 더불어 숲이 되어 지키자”는 말씀을 하셨는데?
 
서로의 다양성을 승인하고 차이를 존중하면서 큰나무 작은 나무, 어린 나무, 오래된 나무들이 서로 공존하는 그런 상징적 공간으로서의 ‘숲’이 되자는 것입니다. 자본주의적 존재양식인 도시라는 공간은 인간관계의 지속적 만남이 원천적으로 봉쇄되어 있고, 모든 관계가 상품과 상품의 물류형태로 연결되는 사회입니다.
 
많은 사람이 시장논리를 부르짖지만 우리의 삶의 모습을 보면 비시장적 공간이 얼마든지 존재합니다. 즉 인간적 만남이 가능한 ‘숲’을 만드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수세 국면에서는 숲이 인간적 가치를 지키는 방어적 진지가 될 수 있으며, 서로가 소통하고 사회를 바꾸어 내는 거점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나무야 나무야 ,더불어 숲, 강의-나의 동양고전 독법, 처음처럼 등의 저작이 있습니다. 추후 발간 계획인 책의 내용은?
 
퇴임 후에도 성공회대 석좌교수로 학교 업무가 많아서 조용히 정리하겠다는 생각을 실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두 가지를 구상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지금은 인문학의 위기구조가 개별 과학으로 칸막이하고 전문성이라는 한계에 갇혀 있습니다. 그것을 소통하고 통합해 내는 사회과학적 담론을 중심으로 한 책을 정리하려고 합니다.
 
또 하나는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 못다 쓴 부분을 다시 작성하는 일입니다. 이 책은 감옥에서 나 자신이 당국의 검열보다 자기 검열을 더 철저히 해 가족에게 보낸 편지의 글이었기 때문에 많은 이야기들이 빠져 있습니다. ‘다시 쓰고 싶은 편지’ 및 ‘나의 대학 시절’이란 제목으로 해방 직후의 사건에 연루되었던 한국 현대사의 산증인들이 20대 후반의 한 젊은이에게 들려주었던 해방 전후부터 전쟁 기간 그리고 지리산 이야기까지 수많은 참혹하고 생생히 살아 있는 역사를 통해 한국 현대사를 재조명하려고 합니다.
 
▲신영복 주요 이력 및 저서
1941년 경남 밀양 출생
1963년 서울대 상과대 경제학과 졸업
1965년 서울대 대학원 경제학과 졸업
1965년 숙명여대, 육군사관학교에서 경제학 강사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무기징역형을 받고 20년 20일 복역
1988년 8·15 특별가석방으로 출소
1989년〜현재 성공회대에서 정치경제학, 한국사상사 등 강의
1998년 출소 10년 만에 사면복권
2006년 8월 성공회대 정년퇴임 후 석좌교수로 강의

 
▲주요저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1988), 엽서(1993), 나무야 나무야(1996), 더불어 숲 1, 2권(1998),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증보판(1998), 신영복의 엽서(2003), 강의-나의 동양고전 독법(2004), 처음처럼(2007)
 
▲역서: 외국무역과 국민경제(1966), 사람아, 아! 사람아(1991), 루쉰전(1992), 중국역대시가선집(1994)

* 본 기사는 월간<신문과 방송> 7월호에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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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8/07/08 [17:25]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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