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IT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좌파들은 이념 고집말고 우측으로 이동하라
[진보 논쟁] 사회통합형 경제와 시장중심형 경제, 어느 쪽이 승리했는가?
 
최용식   기사입력  2007/02/26 [16:47]
이분법은 참으로 편리한 논법이다. 무엇보다, 명쾌하다는 것이 큰 장점이다. ‘둘 중 하나가 틀렸으면, 다른 하나는 옳다’는 논리를 성립시키는 것이다. 물론 이런 흑백논리가 전적으로 옳은 것은 아니다. 흰색과 검은색 사이에 무수한 색상들이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런 흑백론에 흔히 현혹되곤 한다.

이런 틈새를 파고든 것이 또 다른 이분법적 논리이다. 즉, ‘둘 중 어느 하나가 완전히 옳은 것이 아니라면, 다른 하나도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다’라는 논리가 그것이다. 이런 논법은 ‘어느 하나가 존립할 수 있다면 대립적인 다른 하나도 존립할 수 있다’는 논리로 발전하기도 한다. 물론 이런 논법 역시 올바른 것은 아니다. 어느 하나는 존립할 수 있고 다른 하나는 존립할 수 없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또한 어느 하나가 완전히 옳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다른 하나가 옳다는 것을 보장하지도 않는다.

우리나라 좌파들이 내세우는 ‘경제에는 영미식도 있고 유럽식도 있다’는 논리도 그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이다. 이들은 “시장중심형 ‘영미식 경제’로 성공한 나라들이 있는 반면에, 사회통합형 ‘유럽식 경제’로 성공한 나라들도 있다”고 강변하고자 한다. 그러나 이것은 과학적인 좌파들이 내세울 논리는 결코 아니다. 현실과는 전혀 맞지 않는 논리이기 때문이다. 오늘은 이 문제를 따져보자.

소련의 붕괴 이후 심각한 지적 좌절을 맛봐야 했던 우리나라 좌파들은 무엇인가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 했다. 그래서 찾아낸 것이 소위 ‘유럽식 사회민주주의’였다. 유럽 인민의 높은 생활수준이 사민주의의 결과인 것처럼 내세움으로써, 좌파의 존립당위성을 찾고자 했던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영미식 경제’와 ‘유럽식 경제’를 대비시키는 논법은 그 설득력을 더욱 키웠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이분법적 논법은 심각한 오류를 내포하고 있다. 무엇보다 ‘영미식 경제’라는 것이 오랜 세월 존재해온 전형적인 형태는 결코 아니며 시간에 따라 변해왔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오히려, ‘유럽식’ 사민주의는 영국에서 처음 태어났다고 해야 한다. 세계대전이 끝난 뒤, 영국 노동당은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정치구호를 내세워 복지사회 건설을 추진했고 집권에도 성공했었다. 지금은 소위 ‘유럽식 사민주의’ 노선을 걷는 나라들조차 감히 상상할 수 없는 ‘국유화 조치’들이 이때에 대대적으로 취해지기도 했었다. 미국의 사정 역시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이미 세계대공황 직후부터 뉴딜정책이 시행되었고, 세계대전 후에는 사회복지가 우선적인 정책적 고려 대상이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반면에, 지금 우리나라 좌파들이 ‘유럽식 경제’로 칭송하는 나라들은 당시에는 정반대의 정책을 펼쳤었다. 독일과 프랑스는 현재의 전형적인 ‘영미식 경제’의 정책을 펼쳤던 것이다. 심지어 사민당이 집권하고 있던 스웨덴도 마찬가지였었다. 특히, 노동자와 사용자가 힘을 합쳐 임금상승을 억제하여 산업경쟁력을 먼저 키웠고, 이를 통해 고용을 보장받으려 했던 점은 주목할 만하다.

그런데 왜 상황이 지금처럼 반전된 것일까? ‘사민주의’에 입각한 정책들이 경제를 장기침체에 빠져들게 했기 때문이다. 영국의 경우는 더욱 심각했다. 세계대전에서 더 결정적인 피해를 입었던 독일이나 프랑스에 비해, 성장률이 훨씬 낮아졌고 실업률도 높았으며 물가상승률까지 높아졌다. 1970년대 이후에는 사정이 더 나빠졌으며, 결국 1976년 말에는 외환위기를 겼어야 했다.

미국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아서 록펠러 빌딩이나 콜럼비아 영화사 등이 세계대전의 패전국이었던 일본에 팔려나가는 비극을 맛봐야 했다. 그 반작용으로 나타난 것이 우리나라 좌파들이 말하는 소위 ‘영미식 경제’이다. 우리나라 좌파들이 무조건 적대시하는 대처리즘이나 레이거노믹스 등은 1980년대 이후에야 이렇게 등장했던 것이다.

이와 때를 같이 하여, 독일이나 프랑스는 그와는 반대로 점차 사민주의에 기울어졌다. 그리고 그 결과는 영국과 미국이 경험했던 것과 비슷했다. 1980년대 이후 성장률은 상대적으로 낮아졌으며, ‘일자리 창출’이나 ‘일자리 나누기’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실업률은 오히려 훨씬 높아졌던 것이다.

이제는 사민주의를 공식적으로 내세웠던 독일의 사민당이나 프랑스의 사회당도 변신을 꾀하고 있다. 복지와 재정을 축소하고 시장이 더 잘 기능할 수 있는 정책을 펴고 있다. 국가경제의 장기적인 정체가 이렇게 변신하지 않을 수 없도록 했던 것이다. 사실 이런 기류는 이미 오래 전부터 나타났었다. 1970년대에 영국식 복지사회를 본격적으로 흉내 냈던 네덜란드는 1980년대 후반부터 심각한 경제난에 시달려야 했고, 결국은 지금처럼 변신해야 했다. 또한 가장 강력한 사민주의를 내세웠던 스웨덴을 포함한 북유럽 나라들은 1990년대 초에 심각한 금융위기를 겼어야 했고, 이를 계기로 지금처럼 변신해야 했다.

마르크스의 최대의 공적이 무엇이던가? 사회주의를 과학화한 것이 아니던가. 그렇다면 좌파는 모름지기 과학적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위와 같은 역사적 발전과정을 우리나라 좌파들은 왜 굳이 외면하려는 것일까? 나는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다. 이들은 과학적 사회주의자들이 결코 아니다. 현실적 사회주의자들도 아니다. 공상적 사회주의자들일 뿐이라고 해야 한다. 이미 화석화된 논리에 아직도 집착하는 그들이 무엇을 이룰 수 있겠는가?

다행히, 행정부에서는 이런 ‘꼴통 좌파’들이 차츰차츰 밀려나고 있다. 그러나 집권여당에서는 여전히 막강한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분배나 복지를 내세우지 않으면 정치적 입지를 마련하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극소수의 사민주의 숭배자들이 당내 분위기를 장악해버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대통령의 절대적인 정치적 신임을 바탕으로 권력투쟁에서 완벽하게 승리했기 때문이라고도 전한다. 참으로 우려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현실적 사회주의자도 아니고 과학적 사회주의자도 아닌, 화석화된 논리에 몰입해 있는 정치인들이 만변하는 현실에 어떻게 부응할 수 있겠는가? 답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좌파를 하더라도 유연해야 한다. 세상사에 시대흐름을 역류해서 좋을 일이 어디에 있겠는가? 이념도 마찬가지다. 1960년대까지는 우파들이 이념의 중앙선을 넘어 좌측으로 이동했었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에는 좌파들이 이념의 중앙선을 넘어 우측으로 이동했었다. 세월이 흐르면 이것이 또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다만, 지금은 좌파도 변해야 할 때라는 사실은 확실하다. 이념을 고집하는 좌파가 지배하는 나라들은 경제적 어려움에 처해 있지만, 이념의 중앙선을 넘어 우측으로 간 좌파가 지배하는 나라들은 상대적으로 번영하고 있고, 인민들의 생활도 상대적으로 훨씬 더 윤택한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을 받아들이는 좌파가 진정한 의미의 과학적 좌파라고 할 수 있다. 과학은 현실을 떠나서는 존립할 수 없으므로.

* 필자는 <21세기경제학연구소>(www.taeri.org) 소장이며, <대한민국 생존의 속도>(리더스북, 2005) 등 다수의 경제학 서적을 출간했습니다.
* 본문은 <대자보>  '진보 논쟁'에 대한 필자의 세번째 기고문입니다.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기사입력: 2007/02/26 [16:47]   ⓒ 대자보
 
  • 도배방지 이미지

  • 이런거짓말쟁이.. 2007/02/27 [16:59] 수정 | 삭제
  • 조금씩 변화한 모습 시장을 연구하는 모습 그때 그 당신의 모습에 비추어 너무 달라진 현재 당신의 모습들을 쳐다보며 애써 그나마 시장의 긍정적 뭐 그런걸 연구하리라 믿으려 했었죠 이걸 보니 이젠 실망을 넘어 끝장이란 생각이 듭니다.. 복지를 위한 FTA를 하고 사민주의를 꼴통이라니.. 이게 당신이 연구하겠다고 홀홀히 떠났던 '가치'입니까
  • 깊은생각 2007/02/27 [10:22] 수정 | 삭제
  • ‘주장’이 ‘사실’을 재단해 버리는 아마추어리즘의 과잉
    -‘사실’에 제대로 입각하지 않는 주장은 ‘이데올로기’에 불과


    님의 글에 대하여 한번 더 써봅니다. 한번 더, 저는 경제학자도 아니고 그냥 이공계 공부를 한 사람으로서 경제에 대하여는 독학 독습한 사람에 불과함을 말씀 드립니다. 물론 최용식님도 스스로 말씀하시는 바에 따르면 ‘효용 가치설’과 ‘노동 가치설’을 모두 극복 지양한 ‘21세기 경제학’을 창안하신 분이시지만 중요한 사실은 ‘독학’했다는 점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인간은 극단으로 흐르기 쉽다” 사실 ‘중도’의 진리는 부처님의 맨 처음 ‘설법’에서 확정된 바 있습니다. 요즘은 누구나 ‘중도’를 표방하지만 최용식님은 ‘오른쪽으로 이동하시오’ 이렇게 솔직히 말씀 하시니 정말 이 점 하나만은 인정하겠습니다. 최용식님 같은 분처럼 열린우리당 분들은 바로 이렇게 얘기하면서 ‘난 사민주의 아니야’라고 말하는게 옳습니다. 그리고 님과 같은 분이 가령 열린우리당을 탈당한 강봉균 김한길 이런 분들하고 함께 하시면 딱 맞을 것입니다.

    그런데 정치적으로 ‘포지셔닝’하다 보면 결국 ‘한나라당’과 마주하게 됩니다. 지금 국회에서 분양원가 공개와 ‘분양가 상한가제’를 핵심으로 한 이른 바 .1.11대책‘의 입법화가 논의되고 있습니다. 밤샘 심의 결과 ’보류‘가 되었다고 하죠! 신기한 사실은 정부와 언론 모두 1.11대책의 ’결과‘로서 집값이 하향 안정되었다고 주장한다는 점에서 같다는 사실입니다. 다만 정치적 상황평가 능력이 뛰어난 건교부 장관님 이분 ’한분만‘ ’입법화 좌절‘되면 ’다시 집값 오를 수도‘ 이렇게 미리 빠져나갈 자리 하나 만들어 놓고 계시죠! 입법화 되지도 않은 대책이 ’효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떠들 수 있는 나라가 우리나라 정치와 언론입니다!

    무슨 말을 하려는가 하면, ‘분양원가 공개’나 ‘분양가 상한제’를 ‘반대’하는 ‘논거’가 다름아닌 ‘시장원리, 공급부족’ 이런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늘 같이 붙어 다니는 담론이 ‘규제완화 민영화’이고 한걸음 더 나아가면 ‘노무현 정부 = 좌파’ 이렇게 까지 나가는데, 사실 그동안 저는 노무현 정부도 ‘한국정부’이며 님이 말씀하시는 ‘신자유주의 대외개방 노선’을 급진적으로 추구하는 정부이지만, 그래도 ‘좌파정부’라는 조선일보류의 ‘딱지 붙이기’는 아니다라고 생각해왔습니다. 그런데 최용식님이 ‘열린우리당내의 좌파 꼴통 사민주의’를 언급하시면서 ‘오른쪽으로 이동’을 주문하시는 것 보니, 어떤 면에서 정말이지, ‘조선일보’의 주장이 옳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요컨대 최용식님. 노무현 대통령이 그러했듯, 님도 ‘경제 역적들아 들어라’에서, 조중동의 근거없는 ‘경제위기 선동’을 극복하자면서 ‘경제는 심리’인데 그 ‘심리’를 자꾸만 비관의 나락으로 빠뜨리는 조선일보에 대하여 ‘경제정책에 대한 안티조선운동’의 중심에 계셨었는데, 결국은 ‘시장원리 규제완화 민영화’에서 마주치고 말았다는 이런 것이 제 결론입니다. 이렇게 같은 결론을 내리고 있으니 노무현 정부를 ‘좌파’로 보는 것도 동일해진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면 이제는 그만 ‘조선일보 한나라당’이 절대악이니 반대해야 한다는 ‘명제’를 버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제 얘기의 요점은 이것입니다. 왜 국민들에게 ‘정치적 메시지’를 보낼 때는 ‘절대악’으로 몰아대다가, 지금 와서 ‘시장원리 규제완화 민영화’ 이런데서 똑같아 졌는가 이것입니다. 똑같아 졌다면, 열린우리당과 같은 정당이 따로 있을 이유가 없죠. 한나라당과 통합하면 됩니다.

    사실 이 점에서 ‘님’이 솔직하신 것이죠. ‘시장원리 규제완화 민영화’ 이것이 ‘오른쪽’에 있는 정책임을 인정하고 열린우리당의 ‘꼴통 사민주의’에 오른쪽 이동하시오 라고 솔직하게 말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다른 얘기를 하고자 합니다. 국회에서 입법화가 ‘지금 당장’ 지연되고 있는 ‘분양원가 공개 분양가 상한제’ 이런 것과 결부지어 말입니다. 사실 그것이 자꾸만 ‘지연’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님이 주장하시는 ‘신자유주의’ 테제에 대한 반대 논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는 이유는 아주 간단한데, 한국은 아직 또는 전혀 ‘사민주의’같은 것과 전혀 거리가 멀기 때문입니다. 요컨대 ‘정상적인 시장’이라는 것이 헝성되는 단계에 있다고나 할까요? 그런데 그것이 자꾸만 왜곡되는 것이죠. 누가? 정보를 독점한 엘리뜨 계층에 의해서. 한국사회에서의 ‘양극화 속도’는 소위 87년 체제라는 ‘정상적 자본주의’ 체제로 향한 흐름이 범세계적인 ‘신자유주의’흐름과 마주친 ‘결과물’로서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심각하게 빠른 속도’일 것입니다. 노무현 정부의 등장은 87년 체제를 ‘정권교체 정부의 정권 재창출’로 ‘연장 또는 공고화’하라는 신호가 아니었습니다. 바로, 정상적인 자본주의 경제체제로의 이행과 그 표현인 ‘절차적 민주주의 체제의 제도화’의 ‘결과’로서 막 싹트기 시작한 ‘양극화’의 ‘단초적 극복’을 임무로 맡아 등장한 것이죠. 분양원가공개는 대통령 공약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임기말이 되었지만 ‘국회 재정경제위원회’를 통과조차 하지 못합니다. 바로 이순간, ‘신자유주의와 구보수주의’의 사회경제적 연합이 공고화되는 것이고, 열린우리당이 갈라지는 것입니다.

    님 말씀대로, ‘경제성장’은 ‘신자유주의 체제’로 이룩하고, ‘기회균등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는 ‘경제성장’과 별도의 문제로서 ‘정부’가 맡아서라도 제대로 한다면야 한결 낫겠죠. 사실 이 말씀이 유시민이나 심지어 ‘교육양극화 해소’를 부르짖었던 김진표 현 열린우리당 정책위 의장 이런 분들의 기본 이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좋습니다. 이것을 철저히 추구하셔서, ‘성장’은 ‘신자유주의 체제’로 시장에 맡기고, ‘기회균등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는 정부가 부분적으로 맡아서 한다는! 이제 알겠습니다. 님과 조선일보의 차이는 바로 후자에 있었다는 점을 말입니다. 그 ‘선의’를 인정하면서 다음 얘기로 넘어가죠.

    최용식님은 제가 제기한 ‘구체적 문제’에 대하여는 하나도 응답안하시고 전부 ‘유럽 경제사’로 대체하셨는데, 그것도 좋습니다. 다만 제가 알고 있던 ‘지식’과 좀 다른 것만 지적하는 것으로 한정하겠습니다.

    “우리나라 좌파들이 내세우는 ‘경제에는 영미식도 있고 유럽식도 있다’는 논리도 그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이다. 이들은 “시장중심형 ‘영미식 경제’로 성공한 나라들이 있는 반면에, 사회통합형 ‘유럽식 경제’로 성공한 나라들도 있다”고 강변하고자 한다. 그러나 이것은 과학적인 좌파들이 내세울 논리는 결코 아니다. 현실과는 전혀 맞지 않는 논리이기 때문이다. 오늘은 이 문제를 따져보자.“

    경제제도를 영미식과 유럽식으로 나누는 ‘좌파경제학자’의 사례가 어디에 있습니까? 그리고 이렇게 나누는 것하고 ‘좌우파’가 무슨 상관이 있으며, 이렇게 나누는 것이 왜 ‘흑백논리’입니까? 이렇게 추상적으로 말씀하시지 말고 구체적인 논문 인용문 학자를 들어서 얘기하는 것이 맞지 않습니까? 그리고 ‘영미식’과 ‘유럽식’은 몰라도, 님 자신이 이미 ‘영국’과 ‘미국’이 ‘독일’과 ‘일본’을 ‘추월했다’고 말씀하시면서 ‘영국식과 미국식’의 신자유주의와 ‘독일식과 일본식의 신자유주의 아닌’ 이런 경제제도에 대하여 ‘함축적으로 분류하여’ 말씀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이미 님 스스로 ‘독일일본식’을 일종의 사회통합적 경제 영미식을 ‘시장중심 신자유주의 경제’ 이렇게 전제하고 논의를 하셨으면서 이런 구분에 대하여 ‘흑백논리’ 딱지를 붙이는 것은 부적절한 것 아닙니까?

    “소련의 붕괴 이후 심각한 지적 좌절을 맛봐야 했던 우리나라 좌파들은 무엇인가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 했다. 그래서 찾아낸 것이 소위 ‘유럽식 사회민주주의’였다. 유럽 인민의 높은 생활수준이 사민주의의 결과인 것처럼 내세움으로써, 좌파의 존립당위성을 찾고자 했던 셈이다.”

    최용식님. ‘좌파’를 너무 기계적으로 재단하시는 것 같습니다. 임꺽정이나 홍경래는 체제 문제가 심각해지는 사회에서는 어떤 사회이건 나오게 마련입니다. ‘유럽식 사회민주주의’가 좌파의 존립 근거가 됬다니요! 이런!

    “이런 상황에서 ‘영미식 경제’와 ‘유럽식 경제’를 대비시키는 논법은 그 설득력을 더욱 키웠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이분법적 논법은 심각한 오류를 내포하고 있다. 무엇보다 ‘영미식 경제’라는 것이 오랜 세월 존재해온 전형적인 형태는 결코 아니며 시간에 따라 변해왔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최용식님. 아마도 수 많은 문서를 뒤지고 발굴하여 ‘기술’해야 마땅한 ‘경제사’에 대한 설명을 너무도 ‘쉽게’하시는 것 같습니다. “영미식 경제가 시간에 따라 변해왔다는 사실을 간과했다‘는데 누가 그것을 간과했답니까?

    “오히려, ‘유럽식’ 사민주의는 영국에서 처음 태어났다고 해야 한다. 세계대전이 끝난 뒤, 영국 노동당은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정치구호를 내세워 복지사회 건설을 추진했고 집권에도 성공했었다. 지금은 소위 ‘유럽식 사민주의’ 노선을 걷는 나라들조차 감히 상상할 수 없는 ‘국유화 조치’들이 이때에 대대적으로 취해지기도 했었다. 미국의 사정 역시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이미 세계대공황 직후부터 뉴딜정책이 시행되었고, 세계대전 후에는 사회복지가 우선적인 정책적 고려 대상이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최용식님. 님이야 말로 ‘유럽식 사민주의’ 노선이라는 새로운 ‘범주’를 발명하고 계신것이 아닙니까? 요컨대 유럽식 ‘사민주의 노선’과 영미식 ‘신자유주의 노선’ 이렇게 말입니다. 그리고 영국이 ‘사민주의 노선의 원조’라는 것과 지금 영국이 신자유주의 노선을 채택하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반면에, 지금 우리나라 좌파들이 ‘유럽식 경제’로 칭송하는 나라들은 당시에는 정반대의 정책을 펼쳤었다. 독일과 프랑스는 현재의 전형적인 ‘영미식 경제’의 정책을 펼쳤던 것이다. 심지어 사민당이 집권하고 있던 스웨덴도 마찬가지였었다.”

    사실 이대목이 아마추어로서 의문스럽습니다. “지금 우리나라 좌파들이 유럽식 경제로 칭송하는 나라들이 당시에는 정반대의 정책을 펼쳤다’는데 ‘내용’을 말해야죠? 어떤 나라들이 어떤 ‘정반대 정책’을 택했는지 설명이 없습니다. 제가 아는 바 가령 북구의 스웨덴 핀란드 같은 나라들은 출발부터 모든 교육은 ‘무상화를 토대로한 공교육’이었습니다. 그리고 스웨덴 사회민주당이 바로 1930년대의 대공황을 거치면서 ‘독자노선’으로 등장했구요. 그런데 웬 ‘정반대의 정책’입니까? 어느시기 어느나라의 어떤 정책이 그랬는지 예시가 없으면 이런 것을 ‘데마고그’라고 합니다! ”알고보면 영국이 사회민주주의 원조이고 핀란드 스웨덴은 과거에 지금의 영국처럼 사실은 모두 ‘신자유주의 단계’를 거쳐왔거든! 그런데 역사를 모르는 너희 좌파들은 무슨 유럽형 사민주의를 보물단지처럼 생각하니?“ 자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은 좋지만 대체 몇 년대 어떤 나라들이 그랬는지 얘기 않하니 도통 알길이 없습니다.

    사실 다음 문장에 대한 얘기를 하려고 윗 글을 인용했습니다.

    “특히, 노동자와 사용자가 힘을 합쳐 임금상승을 억제하여 산업경쟁력을 먼저 키웠고, 이를 통해 고용을 보장받으려 했던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렇게 주목할 만한 점이, ‘비정규직’으로 자국 국민을 ‘주변화시키는’ 이런 강제적인 신자유주의 정책하고 어떻게 다르다는 말입니까? 이런 것이야 말로 유럽식 사민주의 노선의 핵심이 아닙니까? 이것도 님이 말씀하시는 ‘시장의 자유 규제완화 민영화’에 맞아 떨어지는 신자유주의 정책에 속합니까?

    보충해서, ‘임금상승을 억제’ 시킨다는 것이 님의 주장의 핵심이고 이것이 ‘신자유주의’의 핵심이라고 인정해 봅시다. 문제는, 이것으로, 가령, 미국노동자의 3% 임금으로 노동한다는 중국과 ‘경쟁’이 되겠습니까? 님. 이런 것이야 말로 다음에 나오는 ‘산업경쟁력’ 키우기에 대한 자본과 경영의 책임 또는 ‘사회적 효율성’의 문제에 대한 정답이 됩니다! 경제가 ‘시장원리’ 또는 ‘무정부적 시장에 떠맡겨 놓는 것’ 만으로 안된다는 설명이라는 말입니다! 잘 보십시오. 주식시장이 조금이라도 하락기미 있으면 당장 나오는 소리가 ‘정부 뭐하나’죠! 님! ‘규제완화 민영화 시장원리’ 다 좋습니다만 그런다고 결코 정부가 사라지지 않아요! 잘 알면서 그러십니까? 간단히, ‘임금약탈적 자본주의’로 중국과 겨룰 수 없다는 것 다 알아서 동북아 금융허브니 이런것 나오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왜 상황이 지금처럼 반전된 것일까? ‘사민주의’에 입각한 정책들이 경제를 장기침체에 빠져들게 했기 때문이다. 영국의 경우는 더욱 심각했다. 세계대전에서 더 결정적인 피해를 입었던 독일이나 프랑스에 비해, 성장률이 훨씬 낮아졌고 실업률도 높았으며 물가상승률까지 높아졌다. 1970년대 이후에는 사정이 더 나빠졌으며, 결국 1976년 말에는 외환위기를 겪어야 했다.”

    순전히 님 말씀대로라면, 영국이 ‘심각해져간 이 시점’에 독일과 일본은 엄청나게 ‘성장’하여 미국과 겨룰 만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이하여 ‘영국’의 특수한 사례 한가지만으로 ‘사민주의 일반의 실패’라는 테제를 검증하려 하십니까? 실패한 것은 영국 또는 님 말씀대로 영국식 사민주의이지 독일과 일본은 적어도 1950년에서 1980년까지의 30년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어찌하여 당시 독일과 일본이 ‘영미식 신자유주의’를 채택하지 않았는데도 ‘미국과 겨루는 경제대국’으로 성장했는지도 함께 설명하셔야죠!

    “미국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아서 록펠러 빌딩이나 콜럼비아 영화사 등이 세계대전의 패전국이었던 일본에 팔려나가는 비극을 맛봐야 했다. 그 반작용으로 나타난 것이 우리나라 좌파들이 말하는 소위 ‘영미식 경제’이다. 우리나라 좌파들이 무조건 적대시하는 대처리즘이나 레이거노믹스 등은 1980년대 이후에야 이렇게 등장했던 것이다.”

    휴. 제 상식적 소견으로 영국과 미국이 그렇게 된 까닭은 그 나라들이 선택한 비효율적인 ‘사민주의’ 때문이 아니라, 일본과 독일이 ‘효과적 효율적’으로 영미 경제를 추격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왜 일관되게 ‘사민주의’로 돌리십니까? 그리고 역시 제 소견으로, 독일과 일본은 결코 ‘시장’에 모든 것을 떠맡기는 ‘영미식’을 추종한 적도 없습니다.

    “이와 때를 같이 하여, 독일이나 프랑스는 그와는 반대로 점차 사민주의에 기울어졌다. 그리고 그 결과는 영국과 미국이 경험했던 것과 비슷했다. 1980년대 이후 성장률은 상대적으로 낮아졌으며, ‘일자리 창출’이나 ‘일자리 나누기’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실업률은 오히려 훨씬 높아졌던 것이다.”

    아이구. ‘이와 때를 같이하여’의 ‘연대’를 밝히지 않으면 정말 골치 아픈 일입니다. ‘이와 때를 같이하여’를 님의 말씀 흐름에 따라 정리해 보면, ‘대처리즘이나 레이거노믹스’가 등장한 1980년대 이후가 되겠군요! 전 처음 듣는 얘기인데, 바로 이때부터 ‘일본과 독일’이 ‘사회민주주의 노선’으로 기울었다는 이런 얘기 말입니다! 하하하. 최용식님 먼저 ‘경제사 책’부터 잘 읽으셔야겠습니다. 아니 독일과 일본이 ‘대처리즘 또는 레이거노믹스’가 나오던 시점에 사민주의로 기울었다는 얘기는 정말 난생처음 듣는 얘기군요! 독일과 일본을 ‘사회민주주의’라고 딱지 붙일 수 있는지 없는지는 아마추어인 제가 감당할 문제가 아닙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일본의 경우 ‘금융개방’을 중심으로 한 ‘영미식으로의 개혁’이 이루어지는 시점은 1980년대 중반이었습니다. 요컨대, 대처리즘이나 레이거노믹스가 나오던 무렵과 그 이전에는 ‘영미식 신자유주의’와 거리가 먼 독자적 모델을 취했습니다. 하여튼 최용식님 말씀마따나, 영국이나 독일이 ‘신자유주의적 대처리즘 레이거노믹스’와 반대방향으로 그무렵 ‘사민주의’로 기울었다는 얘기는 제 소견으로 심각한 ‘역사왜곡’이며 데마고그입니다!

    바로 이런 것이 참여정부의 결함중의 하나인 ‘소인주의’의 함정이라는 것이며, 인터넷을 매개로 참여정부가 등장하는데 초기에 굉장한 힘이 되었지만 또한 ‘참여정부 몰락’의 원인이 되기도 한 ‘과잉 아마추어리즘의 지나친 자기 주장’의 사례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일본이 자신의 독자모델을 버리게된 데는 사실 미국의 압력이 있다는 것이 제 해석입니다. 일본과 독일이 ‘장기침체’로 빠져들고 반면 미국과 영국이 10년호황으로 넘어서는 ‘갈림길’이 대략 1980년대 후반이었습니다. 1987년 플라자 합의가 있었던 해였습니다. 로버트 브레너에 따르면 미국의 10년호황은 ‘플라자 합의’에 의해 독일과 미국의 화폐가치를 강제로 ‘절상’시킨 결과 미국 제조업의 경쟁력이 조금 높아진 덕분이었다고 합니다. 라비 바트라 교수에 따르면 걸프전 승리에도 불구하고 ‘경제문제’ 때문에 패배한 부시와 달리, 클린턴은 집권 8년에 걸쳐서, 플라자 합의에 기초한 제조업 경쟁력의 회복과, 실리콘 밸리로 상징되는 아이시티 산업의 눈부신 성장 - 상당부분 나스닥 거품에 빚지고 있었던 - 이런 것에 더하여, 사회보장세의 증세와 같은 레이거노믹스적인 ‘감세정책’의 부분적 철회, 나아가 경제적 호황기에 정부가 할 일을 제대로 챙긴 것에 속하는 ‘재정적자의 감소’ 즉 ‘나라 빚 갚기’ 통한 균형재정 또는 흑자재정 이런 것을 실제로 해냈다는 것입니다. 요컨대 최용식님이 찬양하는 그 ‘레이거노믹스’ 이것을 고스란히 이어받은 ‘조지부시 1세’가 걸프전 승리에도 불구하고 선거에서 실패한 이유가 ‘경제’때문이었습니다. 클린턴의 선거구호가 ‘문제는 경제야 이 바보야!“였는데 이때 ’바보‘가 된 것이 레이거노믹스였다면 틀린 말입니까? 클린턴의 경제정책은 ’레이거노믹스‘와 반대로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 결과 10년 호황이 가능했다는 것입니다. 최용식님. 왜 님은 제가 지난 글에서 한 이런 주장에 대하여는 ’일언반구‘ 언급도 없습니까? 사실 이 얘기는 제것이 아니라 ’라비 바트라‘ 교수의 것입니다. 그는 ’앨런 그린스펀‘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탁월한 ’묘파‘속에서 이른바 ’레이거노믹스‘라는 것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고 있는지를 너무도 신랄하게 파헤치고 있습니다. 그의 책 ’그린스펀 경제학의 유산‘이라는 것도 한번 읽어 보십시오!

    내친김에 영국의 사례까지 얘기해 보렵니다. 님 말씀대로 대처리즘이 성공했다면 1998년 영국 노동당 토니 블레어 정부의 등장은 어떻게 설명하시렵니까? 토니 블레어가 우경했다구요? 틀리지 않죠. 하지만 토니 블레어가 아무리 ‘우경’해도 영국의 국가의료체제는 그대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고등학교까지의 ‘무상 의무교육 체제’도 유지되고 있구요! 입만 열면 ‘평준화가 교육을 망쳤다’고 떠드는 사람들, 그것이 고등학교 교육의 ‘보편화 계기’였으며 일제시대때부터 ‘대물림’ 비슷하게 내려온 1도 1학교식의 ‘귀족 명문고교 체제’를 해체하는 것이었다는 이런 것은 무시하고 넘어가려 들죠! 허나 한국은 아직 고등학교 등록금 다 내고 다니는 나라입니다! 핀란드 스웨덴 모두 출발부터 대학까지 ‘무상의무교육’이었습니다.

    나아가 영미식 대처리즘과 ‘레이거노믹스’의 유산은 금융빅뱅이라는 것인데, 사실 일본의 10년 장기불황으로 빠지게 된 이유가 자신들의 모델을 너무도 조급하게(!) 내버리고 영미식 금융빅뱅 체제로 변신했기 때문이랍니다. 이 얘기도 제 것이 아니라 ‘라비 바트라’ 교수의 얘기입니다. 미국의 요구에 의해 플라자 합의를 체결하고 이것도 부족하여 금융과 외환을 영미식 ‘개방체제’로 완전히 바꿔버리죠. 그 결과 일본은 미국의 종이쪽지 국채를 엄청나게 사주면서도 국가 채무 지디피 150%에 이르는 ‘신용불량국가’가 되버린 것입니다! 최소한 지금의 유럽처럼, 유로화 도입과 더불어 ‘재정적자 편성’을 극도로 자제시키면서 미국에 대한 경쟁력을 갖추는 이런 구도를 만들기 전에 영미식 금융신자유주의를 급진적으로 수용한 결과 몰락했다는 것이죠! 여기에 관료세력의 ‘무능력’이 크게 기여했습니다. 영미식을 급진적으로 수용하면서도 ‘관료의 경제 통제권’을 놓지 않고 한 일이 과도한 ‘국채 발행을 통한 경기 진작책’의 남발로, 10년 불황기간 중에 가령 시골의 농로 아스팔트를 무지개색으로 포장하는 이런것이 있었습니다. 골프장 건설확대고 그러하구요. 그 결과가 지디피 150%의 국가 빚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모피아가 이것을 고스란히 흉내내고 있다는 것이죠! 급진적 대외개방 금융빅뱅과 골프장 경기부양 같은 정책의 결합! 이래서 일본따라 하고 있다는 것인데 그 핵심 이념이 최용식 님 말씀하시는 시장원리 규제완화 민영화라는 거죠.

    “이제는 사민주의를 공식적으로 내세웠던 독일의 사민당이나 프랑스의 사회당도 변신을 꾀하고 있다. 복지와 재정을 축소하고 시장이 더 잘 기능할 수 있는 정책을 펴고 있다. 국가경제의 장기적인 정체가 이렇게 변신하지 않을 수 없도록 했던 것이다.”

    이것도 ‘구체적인 정책내용’을 갖고 말하지 않는한 ‘데마고그’가 될 수 있습니다. 유럽은 실업률이 높습니다. 독일도 그렇다고 하죠. 이것은 ‘화폐가치’를 제대로 유지하기 위해 적자재정 편성 이런 것을 극도로 자제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아는 한 그러합니다. 이런 것에 답해 주셔야죠. 그렇지 않고 독일 프랑스도 ‘영미식으로 전환중이다’라고만 말해서는 안됩니다. 오히려 ‘영미식’으로 끌려들어가지 않고 ‘독자적 유럽식’을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는 것 아닐까요? 참고로 하나 더 얘기한다면, 스웨덴은 1970년대 초반부터, 독일은 중반부터 ‘원전폐기정책’을 채택했고, 한걸음 더 나아가 스웨덴은 2020년 ‘연료용 석유 제로’ 정책을 채택했습니다. ‘탈석유 시대’로의 이행을 준비하고 있죠. 유럽 여러나라들이 대부분 그러합니다. 님. 자꾸 스페인 사례를 말씀하시는데, 스페인과 독일 유럽은 대등한 유럽의 ‘큰 나라들’에 속합니다. 그걸 미국과 한국으로 ‘대치시켜서’ 에프티에이 하면 ‘경제적 약소국이 혜택본다’고 말씀하시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사실 이런 기류는 이미 오래 전부터 나타났었다. 1970년대에 영국식 복지사회를 본격적으로 흉내 냈던 네덜란드는 1980년대 후반부터 심각한 경제난에 시달려야 했고, 결국은 지금처럼 변신해야 했다. 또한 가장 강력한 사민주의를 내세웠던 스웨덴을 포함한 북유럽 나라들은 1990년대 초에 심각한 금융위기를 겼어야 했고, 이를 계기로 지금처럼 변신해야 했다.”

    쯧쯧. 유럽의 여러나라들은 다 자기 독자성이 있죠. 제가 아는 네덜란드는 히딩크처럼, 개기인의 역량이 뛰어난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외국어를 몇 개씩 구사하고 개인 역량을 대단하게 개발한다구요. 이런 것에 알맞게 '노동유연화정책‘을 취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님 말씀처럼 ’영국식 복지사회‘를 도입했고 그것 때문에 심각한 경제난에 시달려야 했다는 것은 금시초문입니다. 님. 한국은 복지사회 같은것 없어요. 사실 그래서 님의 이런 글이 내는 효과가 ’조선일보‘가 환영할 일이 되는 것이죠! 복지국가는 커녕 아직도 무상의무교육 수준이 중학교에 멈추어 있는 나라에서 ‘사회복지가 나라망친다’ 이런 소리를 떠들다니! 님. 영국이 진짜 그랬을 수도 있다지만, 간단히 말해서 영국과 우리나라는 조건이 달라요! 이 다른 조건들 같이 얘기하면서 설명해야 ‘데마고그’가 안되죠. 안그러면 ‘복지’가 나라를 망치니 ‘복지’를 해체하고 ‘국영기업’이 경제를 정체시키니 ‘민영화해야하고’ 이런 이데올로기로 곧바로 빠져들게 되는거죠! 영국에서 철도의 대형사고는 ‘민영화’이후의 일이지 국영기업때는 이런일이 없었다는 것도 같이 말해야지요. 그리고 북유럽의 금융위기는 바로 영미식 금융개방의 결과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그것도 ‘사민주의’ 때문이었다고 우기실 건가요? 북유럽의 ‘금융위기’ 와 그것의 극복 사례는 지금 한국이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는데 훌륭한 반면교사인데 최용식님은 이런 것 아주 모르시나봐요. 좀 알려 줬으면 합니다. 왜 그랬는지요.

    “마르크스의 최대의 공적이 무엇이던가? 사회주의를 과학화한 것이 아니던가. 그렇다면 좌파는 모름지기 과학적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위와 같은 역사적 발전과정을 우리나라 좌파들은 왜 굳이 외면하려는 것일까?”

    먼저 ‘역사적 발전과정’을 사실에 입각해서 잘 ‘해석’하셔야 겠죠! 이게 안되고 ‘사실’이 아니라 자신의 ‘주장’에 입각해서 함부로 일반화 하려다 보니 오류가 발생합니다. 요컨대 님은 ‘영국’ 하나의 사례를 갖고 영국은 사민주의 때문에 망했지만 대처리즘 신자유주의로 다시 중흥했다 이런 ‘테제’하나로 ‘신자유주의 전도사’노릇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님의 ‘영국’에 대한 사례 제시가 설령 맞는다고 해도 그것을 ‘일반화’시키지는 마십시오.

    “다행히, 행정부에서는 이런 ‘꼴통 좌파’들이 차츰차츰 밀려나고 있다. 그러나 집권여당에서는 여전히 막강한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분배나 복지를 내세우지 않으면 정치적 입지를 마련하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극소수의 사민주의 숭배자들이 당내 분위기를 장악해버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대통령의 절대적인 정치적 신임을 바탕으로 권력투쟁에서 완벽하게 승리했기 때문이라고도 전한다. 참으로 우려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현실적 사회주의자도 아니고 과학적 사회주의자도 아닌, 화석화된 논리에 몰입해 있는 정치인들이 만변하는 현실에 어떻게 부응할 수 있겠는가? 답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하하. 정말 재밌습니다. 아마도 ‘이정우 실장’과 ‘정태인 경제수석’을 염두에 둔 발언 같습니다. 이 분들이 ‘골통좌파’라구요? 사실 이분들이 물러났기 때문에 관료의 장벽이 더 두터워진 것이구요. 또 국회 재경위에서 그나마 ‘분양원가 공개 분양가 상한제’ 이런 법안들이 좌충우돌하면서 한나라당 장벽에서 막히는 것이죠! 물론 강봉균과 같은 ‘열린우리당 정책위의장’님과 같은 장벽도 있었구요. 최용식님이 가장 좋아할 법한 ‘이헌재님’도 계셨습니다. 그런데 청와대 브리핑에서는 전 재경부 장관 이헌재 이분을 ‘10/29 대책’을 완화시키고 골프장 건설 등 과도한 건설경기 부양책을 써서 부동산 폭등의 원인을 제공한 장본인으로 지목하더라구요! 그러면 최용식님 말씀하시는 ‘꼴통좌파’들이 아직도 남아 있는 것입니까?

    그리고 님. 걱정 마십시오! 열린우리당에서는 아마도 님이 주장하시는 꼴통좌파가 ‘김근태 님’과 그를 따르는 재야출신들 정도 라고 여겨지는데 이 분은 물러났고, 물러 나시면서 ‘김진표님’을 정책위 의장으로 올려 놓으셨습니다. 이 분은 이헌재님보다 앞서서 재경부 장관했고 교육부 장관까지 하셨으며, 사립학교법에서는 ‘약자보호’ 원칙에 따라 한나라당에 맞서지만, ‘신자유주의 시장원리 규제완화 민영화’에 대한 신념이 남다르기에 님이 걱정하시는 ‘골통좌파’를 제어하기에 충분하실 것입니다.

    “좌파를 하더라도 유연해야 한다. 세상사에 시대흐름을 역류해서 좋을 일이 어디에 있겠는가? 이념도 마찬가지다. 1960년대까지는 우파들이 이념의 중앙선을 넘어 좌측으로 이동했었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에는 좌파들이 이념의 중앙선을 넘어 우측으로 이동했었다. 세월이 흐르면 이것이 또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이미 대통령께서 ‘유연진보’에 대하여 좋은 말씀 다 하셔서 더 말이 필요 없습니다.

    “다만, 지금은 좌파도 변해야 할 때라는 사실은 확실하다. 이념을 고집하는 좌파가 지배하는 나라들은 경제적 어려움에 처해 있지만, 이념의 중앙선을 넘어 우측으로 간 좌파가 지배하는 나라들은 상대적으로 번영하고 있고, 인민들의 생활도 상대적으로 훨씬 더 윤택한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을 받아들이는 좌파가 진정한 의미의 과학적 좌파라고 할 수 있다. 과학은 현실을 떠나서는 존립할 수 없으므로.”

    이 얘기는 제식으로 바꾸는 것으로 마치겠습니다.

    “다만, 지금은 신자유주의자들도 변해야 할 때라는 사실은 확실하다. 시장원리 규제완화 민영화를 이념처럼 고집하는 시장만능주의자가 지배하는 나라들은 하나같이 금융위기를 겪고 나서 장기 침체에 빠져드는 어려움을 겪어 왔으며 특히 금융자산 미소유 국민들은 폭등하는 부동산과 집값을 대책없이 쳐다보면 근로 의욕을 잃어가는 극단적 양극화의 나락으로 빠져들고 있다. 반면 금융자산 소유계층에게는 두 번다시 올 수 없는 호시절 로서, 자신들이 지지하지도 않는 정부에 환호하면서 세금폭탄을 제거해 줄 ‘정권교체’를 목을 빼고 기다린다. 이런 현실을 받아들이는 신자유주의자가 진정한 의미의 제정신을 차리는 과학적 시장주의자라고 할 수 있다. 과학은 현실을 떠나 존립할 수 없으므로”
  • .. 2007/02/27 [10:08] 수정 | 삭제
  • 대체 무슨 근거로 이런 헛소리?
    대자보가 겨우 이 정도 수준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