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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랑아, 황진아, 그~은혜야!
처녀가 다시 유부남과 동거하는 이유는?ba.info/c
 
임흥재   기사입력  2002/11/20 [07:51]
태어나 여지껏 살아 오면서 실제 내 삶과 가장 밀접한 관계를 맺어야할 정치라는 것과 단 한 번도 제대로 대면하지 못한 나의 운명으로 인하여 나는 오래 전부터 그 첫경험을 향한 설레임을 잊어버렸다. 그리하여 정치라는 만나지 못할 운명의 여인 대신 나는 다른 것들을 무시로 욕망하였다. 그러나 삶은 아무데서나 ‘정치같은’ 괴물과 불쑥불쑥 만나게 하고 나는 그 산적의 노략질을 피해 에둘러 거짓말을 하며 정치를 잘 알고 있는 듯이 너스레를 떨었다. 그 참담한 행색을 감추기 위해 정치적인 글에 하등 상관없는 문화적인 기제들을 은근슬쩍 끼워넣었음을 고백한다. 마치 밀가루로 손톱을 감춘 옛날 얘기 속의 호랑이처럼 말이다.

그래도 할 수 없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이 미친 세상에서 날카롭게 자란 나의 손톱으로 내 가슴을 찢어버리고 내 머리를 쥐어짜며 죽어갈 것만 같다. 좀 더 살아야겠기에 단편보다 더 짧은 장편(掌篇) 소설의 줄거리를 창작하는 것으로 이 밤의 불면을 견디어볼까 한다.



장편(掌篇)소설-‘동거(同居)’의 줄거리

방 한 칸이 있다. 그 공간에 두 사람이 있다. 아니 아주 많은 사람들이 함께 살고 있었을 것이다. 다른 사람은 적어도 오늘만큼은 중요하지 않기에 나는 무시하기로 하였다. 그들이 같은 방에 살고 있었으므로 그들은 동거인이다. 남자와 여자였으므로 또한 동거남 동거녀다. 그런대로 사이가 좋던 그들의 밀월과 금슬이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은 여자가 많은 것을 가지게 되면서 부터다. 아니다. 여자가 많은 것을 요구하기 시작하면서 남자와 여자는 함께 살기가 어려워진다. 여자는 남자에게 이것저것 요구하고 동거공간에서의 함께 지켜야할 생활의 방식에 대하여 바꾸고 고치기를 고집하면서, 이를 받아 들일 의사가 없는 남자와의 갈등이 시작된다.

이를 테면 이런 것들이다. 같은 방에 살면서 ‘왜 남자만 제왕으로 군림하고 문패에는 남자의 이름만 있고 딸린 식구들, 예를 들면 비서에 운전수에 기타 생활을 보조하는 사람들의 채용에서부터 그들을 부리는 것까지 전부 남자만이 전유해야 하는 것인가’하고 의문을 제기하고 내가 고른 사람도 쓸 수 있어야 하고 남자 혼자 제 멋대로 소비하는 행위 역시 자신도 맘대로 사고 싶은 것 사면서 동등한 사치와 낭비를 향유해야겠다고 여자는 생각한다. 또 그 방을 소유하고 유지하는데 드는 일정한 물적 인적 기여를 자신이 하고 있는 만큼, 특히나 한 시대를 총칼로 호령한 아버지를 둔 친정의 막강한 배경을 남자가 절대 무시해서는 안된다고 확신한다. 비록 자신이 쓰던 애검에 찔려 죽었지만 친정동네에서는 여전히 그 아버지의 후광이 든든하다고 생각하는 여자에게는 당연한 요구다.

남자는 귀찮기만한 가사를 분담할 마음이 전혀 없고 그동안 활개치며 살아온 제 방에서 여자에게 휘둘리는 꼬락서니를 아랫 사람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다. 더욱이 죽어 귀신된 아버지만 믿고 설치는 여자가 건방지기 짝이 없다. 그래서 그 둘은 툭하면 싸우고 서로를 욕하다 끝내는 여자가 집을 나가겠다고 엄포다. 남자는 마침 잘 되었다는 듯이 여자가 나가는 것이 차라리 반갑다. 여자는 동거를 포기하고 제 멋대로, 존중받는 ‘미래여납’(未來女笝:미래의 여자들끼리 울타리로 얽어맨)한 세상에서 살겠다며 집을 나간다. 나가보니 해방감도 들고 음심 품고 달려드는 남정네도 꽤있고 그런대로 살만하다. 돈많은 정모도 만나보고 예전에 정승까지한 낙향선비도 만나보며 허전한 심사를 달래보지만 시간이 갈수록 나온 집이 그립고 함께 살던 남자의 체취가 영 잊혀지질 않는다.

이제 여자는 혼자 사는 자유보다 동거하며 다투던 그 시절이 그립다. 겨울밤은 길기만 하다. 마침 그 남자가 예전처럼 혼자 살림하도록 강요하지도 않을 것이고 자신이 요구하던 것들을 어느 정도 들어주겠다고도 한다. 돌아갈 명분마저 생겼다. 부끄러운 욕망을 감추면서 남자의 손에 마지 못해 이끌려 들어온 그럴듯한 모양새도 갖출 수 있다. 여자는 집나가서 꼬셔모은 식구들까지 데리고 들어감으로 남자의 식구들에게 은연중 받았던 구박을 면할 수도 있게 되었고 남자는 덤으로 자신이 부릴 종복들이 늘었으니 둘 다 대만족이다. 남자는 옆방 식구들이 함께 합친다는 소식에 괜히 주눅이 들어있던 차에 여자가 돌아온다니 화색이 돈 얼굴로 옆방 사람들에게 큰 소리 칠 거리도 생겼다.

그래서 어제 남자와 여자는 다시 합방하였다. 그들의 동거가 또 얼마나 갈 것인지 싸우지 않고 얼마를 견디어낼지는 아무도 모른다. 남자가 5년간을 준비한 프로젝트가 성공하면 그런대로 궁합 맞춰가며 잘 살게될까? 오히려 토사구팽 당하여 이번에는 자의가 아닌 타의로 쫓겨나는 처지가 되는 것은 아닌지... 또한 실패하면 그 절망과 암담함에 서로를 물어 뜯으며 죽기살기로 싸우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무튼 혼인신고도 한 적 없는 남자와 여자의 이상한 재결합과 동거는 다시 시작되었다. 여기까지가 오늘 나의 손바닥 분량 소설의 대강이다.

‘아랑의 정조’와 ‘황진이의 역천’

월탄 박종화가 1937년에 ‘문장’지에 발표한 소설로 ‘아랑의 정조’라는 것이 있다. ‘삼국사기’ 열전(列傳)에 기록된 도미전(都彌傳)에서 취재하여 소설화한 작품으로 박종화는 ‘도미’의 아내에게 ‘아랑’이라는 이름을 주어 그 녀의 정조 혹은 절개에 대하여 작품을 빗어 놓았다. 이 소설의 개요는 다음과 같다.

‘아랑’은 백제 개루왕 대의 목수인 ‘도미’의 아내다. 아랑은 부드러우면서 기품이 있고 미모가 빼어나 신라와 고구려에까지 그 소문이 자자하였다. ‘개루왕’은 정사(政事)는 잘 다스렸으나 여색을 밝히는 임금이었다. 그는 소문을 듣고 사자를 보내 아랑을 청한다. 그러나 아랑은 남편 있는 몸이란 이유로 왕의 청을 거절한다. 이에 개루왕은 도미를 불러 아랑의 정조를 시험해보자는 내기를 건다. 도미의 집을 방문한 개루왕은 아랑을 위협하여 정조를 꺾으려하나 아랑은 불을 끄게 하고 옆집 홀어미인 부전이를 단장시켜 침실로 들여보내 위기를 모면한다. 이 사실을 나중에 안 개루왕은 도미의 두 눈알을 뽑아 강물에 버리고 아랑을 대궐로 끌고 간다. 대궐로 끌려간 아랑은 그래도 고집을 꺽지 않고 이런 저런 꾀를 내어 개루와의 동침을 거부하다 병부를 훔쳐 달아난다. 달아난 아랑은 끝내 도미를 다시 찾고 그들은 고구려 땅으로 피신한다.

이상이 ‘아랑의 정조’의 내용이다. 사실 글의 도입부부터 페미니스트들의 오해를 사 시달릴지도 모를 글을 쓰면서 이제는 아예 케케묵은 정조(情操) 운운 하였으니 벌써 머리가 띵하다. 그러나 나는 여성차별주의자나 남성우월주의자가 절대 아님으로 오해없기를 바란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일반 통념상의 정조를 말하고자 함이 아니며 한 여성정치인의 오락가락하는 지저분한 정치적 동거에 관하여 설명하고자 함이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정조를 쉽게 설명하기 위해 한용운님의 시 한 수를 인용해야 할 것 같다.

{IMAGE2_RIGHT}내가 당신을 기다리는 것은
기다리고자 하는 것이 아니고 기다리자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당신을 기다리는 것은 정조보다는 사랑입니다.
남들은 나더러 시대에 뒤진 낡은 여성이라고 삐죽거립니다.
구구(區區)한 정조를 지킨다고
그러나 나는 시대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닙니다.
인생과 정조의 심각한 비판을 하여보기도
한 두 번이 아닙니다.
자유연애의 신성(?)을 덥어 놓고 부정하는 것도 아닙니다.
.....
나는 님을 기다리면서 괴로움을 먹고 살이 찝니다.
어려움을 입고 키가 큽니다.
나의 정조는 자유정조(自由情操)입니다.

<<한용운, ‘자유정조’ 중에서>>

한용운님은 정조보다는 사랑이라고 말한다. 지조와 절개를 (항일하며 독립을 기다리는 것은) 지키는 것은 사랑이다. 너도 나도 친일하던 암담한 시절에 그 시대성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그는 괴로움을 먹고 어려움을 입으며 정조를 지킨다. 그래서 그의 정조는 자유한 의지의 자유정조이며 올곧은 신념의 사랑이다. 불민한 내가 감히 그 자유정조를 논하는 것은 우리의 삶에 필요한 것은 그 자유정조를 가진 지도자이기 때문이다. 창이고 몽이고 하물며 이 땅의 역사발전에 아무런 기여를 한 것이 없는 독재자의 영애(한 때 그렇게 불렸습니다)가 백성과 국가에 대한 사랑을 참칭하며 정조를 아무 곳에나 팔고 다니다니...

영화 ‘은마는 오지 않는다’ 속의 우리의 어머니 누나들은 오직 힘없는 나라에서 태어난 운명으로 능욕을 당하였고 살아남기 위해 살갗이 다른 이방인들에게 가랑이를 벌이며 정조를 팔아야했다. 정조의 개념도 없는 여자가 재동거를 선언하는 그 시각에 여전히 이 땅의 주둔군인 켐프 케이시 법정에서는 장갑차에 깔려 죽은 우리의 딸들이 양키의 판관에게 영혼까지 죽임을 당하는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우리의 지도자 중의 한 사람인 민노당의 권영길 후보가 그 법정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부대 정문에서 한국 경찰에 봉쇄 당하는 괴상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차라리 영화 속의 ‘언례’는 부끄럽지 않다. 내가 참을 수 없는 것은 내 소설의 주인공이 된 한 여자의 몰염치한 정조인 것이다.

‘아랑의 정조’와 대비되는 박종화의 소설 중에 ‘황진이의 역천’이 있다. 황진이가 누구인가? 서출로 태어나(대체적인 견해다) 한 시대를 풍미한 기생이었으며 여류 시인이었고 시대를 뛰어넘는 자유연애주의자였으며 여성해방을 당대에 구가한 기인이 아니던가? 스스로를 박연폭포 서경덕과 함께 송도3절이라 내세웠고 지족암의 선승 지족선사를 파계시킨 정염의 여인이었으며 시서화에 고루 능한 예인이기도 하였다. 그 녀는 정조를 버림으로서 스스로를 해방시켰다. 그렇다면 그 녀는 요부일 뿐이며 색정의 노예라 말해야 하지 않을까?

그 녀가 버린 것은 정조가 아니라 기성의 관습과 낡은 도덕이었고 인간의 의지를 전족(纏足:어린아이의 발이 자라지 못하도록 발에 피륙을 감았던 중국의 풍습)시켰던 허위와 허식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단지 성적인 정조를 벗어 던진 기생이었다면 어떻게 황진에게서 그 깊은 현학과 울림이 배어나올 수 있었겠는가? 아무튼 황진이는 거추장스런 정조를 벗어 던졌고 그로 인하여 자신의 가슴 속에 자신만의 사랑이 머무는 세상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런 황진이도 정조를 내던진 댓가로 우리가 알지 못하거나 혹은 관심을 가지지 않는 불행한 말년을 보냈던 것 같다. 그 불행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 ‘역천’이다. 김우종의 글을 인용하면

“...미모와 재담과 탁월한 문학적 기량으로 최고 인기스타가 되었던 그 녀는 지금의 스타들이 대개 인기가 사라진 뒤의 단계에서는 외롭듯이 꽤 외로왔던 것 같다. 아니 외로운 정도가 아니라 박종화 작 ‘역천’에서 보면 너무도 비참했다.

나이 서른의 기생 환갑이 지나서 살이 다 떨어진 발월의 신세가 되었을 때 그 녀는 왕년의 명성을 팔아서 생계를 유지하려고 사방으로 돌아다닌다.

그래서 술꾼들이 모이면 거기서 노래를 불러 주고 밥을 얻어 먹는다. 그리고 어떤 때는 양지바른 곳에 혼자 앉아서 옷속을 헤치며 이를 잡는다. 빨래도 못하고 이곳 저곳에서 딩구는 신세이니 어쩔 도리가 없다. 그리고 그런 일이 굳이 부끄럽다고 얼굴을 가릴 필요가 없다. 이 땅에 영원히 이름을 남길 조선조 최고의 여류시인이라는 것을 알 사람은 아무도 없고 그 녀는 다만 이놈 저놈에게 몸 팔다 끝나버린 더러운 퇴기일 뿐이었으니까”  

우리는 황진이의 화려했던 명성과 사랑의 편력만을 본다. 그 내면 혹은 뒤에 감추어진 슬픔, 온갖 녀석에게 몸을 맡기고 아양을 떨어야 했던 황진이의 눈물은 없었던 것이었을까? 그렇지 않았으리라. 비록 자신의 자유분방한 삶과 사랑을 위해 내팽개친 정조일망정 그 정조를 버림으로해서 그 녀는 불우한 자신의 삶 또한 가혹하게 견디었을 것이다.

하물며 아무런 이념의 표대도 세우지 못하고 진실한 의지의 표적을 삼지도 못한 주제에 밥그릇과 수저와 설거지의 분담을 요구하며 동거와 별거와 재동거를 해대는 재미없는 소설의 주인공인 한 여자에게 나는 애처로운 동정을 보낸다. 그 여자는 한 번 쯤 자신의 정조란 것이 있기나한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순결과 같은 정조의 의미로서가 아니라 스스로 지도자연하는 자신의 부끄러운 얼굴을 거울에 비춰보며 내가 국민을 위한다는 거짓말을 해대며, 그 국민을 위한다는 정조를 진정으로 지켜볼 노력을 한 적이 있는지 이제라도 속으로라도 생각해 보아야한다.

혹시 이 사람 저 사람 이 방 저 방 옮겨다니다 다시 돌아온 것으로 자신의 정조를 스스로 위안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숙고하여야 할 것이다. 나는 정조란 것이 반드시 지켜야할 것이라 좁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아무데서나 아무에게나 지키지 않아도 되는 것이라고는 더욱 생각하지 않는다. 지킬 수 있으면 지켜야 하는 것이 정조이며 특히나 국민을 상대로 거창하게 동거 별거(사실혼의 관계였으므로 이혼이나 편의상 쓴다)의 변을 욕해대며 하던 여자가 다시 그 추한 합방식을 국민들에게 떠벌이며 해댈 적에는 더러운 애욕만이 느껴질 뿐이다.

끈적거리는 애욕에 정조 아니 사랑을 판 여자에게 비록 술을 따르며 몸을 팔며 울었을 지언정 사랑을 잃지 않았던 황진이의 시 한 수를 보여주며 조소하는 것으로 이 글을 마친다./논설위원

청산은 내 뜻이요 녹수는 님의 정이요
녹수 흘러간들 청산이야 변할손가
녹수도 청산 못잊어 울어예어 가는고.
 

* 이 기사는 하니리포터에도 게재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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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2/11/20 [07:51]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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