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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여성의 난자문제는 언급안한다
[정문순 칼럼] 최첨단 유전공학도 여성을 애낳는 존재로 밖에 인식 못해
 
정문순   기사입력  2005/12/26 [11:45]
난자도 할 말 있다
 
미열과, 약간의 저체온, 체력의 저하. 배란기만 되면 어김없이 몸에서 보내는 신호들은 감기몸살의 초기 증세와 비슷하다. 감기라면 더운 방에 이불이라도 덮어쓰고 몸을 보양하는 것이 우선이겠지만 '아는 병'에는 몸을 호강시킨다고 될 일이 아니다.
 
증세가 심하지 않아서 그렇기도 하거니와 무리한 일을 되도록 피하는 것 외에는 몸이 대응할 일은 딱히 없다. 그러나 이 기간이 나에겐 결코 대수롭지 않게 넘겨도 좋은 때가 아니다. 나는 월경이라는 어두운 터널을 통과하기 위해 마음의 대비를 해야 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인다. 월경에 비하면 이 정도의 증세는 '장난'이거나 예행연습에 지나지 않으니까.

늘 겪는 일이지만, 생리가 시작되면 안도의 한숨과 함께 새로운 걱정이 몰려온다. 임신의 두려움만큼은 일단 벗어났지만 일주일 남짓 겪어야 할 고초를 생각하면 몸은 벌써부터 물먹은 솜처럼 가라앉는 듯하다.
 
생리 기간 중 적어도 며칠은 병든 병아리처럼 빌빌거려야 하고 졸지에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지경에도 이른다. 어지럼증에다 요통, 복통, 신경과민, 의욕 부진까지, 멀쩡하던 몸이 이렇게 많은 병을 한꺼번에 조롱조롱 달고 있는 건 다른 경우에는 찾기 힘들 것이다. 꼼짝없이 중병 환자 신세로 전락하다 보니 월경 기간 중 아프지 않은 것이 오히려 신기하게 느껴질 정도이다.
 
그러나 월경통은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여지기에 질병으로 취급되지 않는다. 아무리 아파도 그건 병이 아니라 월경과 동반하여 나타나는 증세일 뿐이다. 월경이 당연히 있어야 하는 것이라면 아픈 것 역시 마찬가지다. 배란기부터 월경이 끝날 때까지 한 달의 절반 넘게 몸이 아픈 게 정상인 양 취급되는 것, 그건 정상인가 비정상인가.     

월경이 여성의 당연한 생리 활동으로 비치는 사정은 임신과 묶어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평생을 통틀어 1~2번 출산을 하는 대다수의 여성들에게 월경이 임신과 관련된 활동으로 뼈저리게 인식될 기회는 많지 않다. 행여 여성들이 월경이 임신과 결부되는 생리 작용이니 아픔을 묵묵히 견딜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섣부르다.
 
일생에 한두 번 치르는 임신을 위해 자신의 몸이 매달 빠짐없이 월경을 감당해야 한다는 건 조금도 유쾌한 일이 아니다. 여성들에게 배란과 월경을 포함한 난자의 활동은 여자로 태어난 까닭에 당연하고도 자연스럽게 치러내야 하는 것이라기보다, 맞닥뜨리고 싶지 않은 피곤하고 버거운 일상의 한 부분에 가깝다. 그저 피할 수 없는 일이니 단념하며 터널 끝 햇살이 어서 보이기를 기다릴 뿐이다. 10대에서 50대에 이르기까지 질병으로 대접받지도 못하는 병 아닌 병을 생활의 일부로 감당해야 하는 건 월경통보다 더 무겁게 여성의 몸을 짓누르고 있다.

그러나 여성의 몸에 부여된 참혹한 현실은 사회적으로 제대로 고찰된 적이 거의 없다. 대신 여성의 몸을 고작 애 낳는 도구로 치부하는 유구한 관습은 1960~70년대의 산아제한 정책을 거쳐 지금은 출산장려정책으로 이름만 바꾸어 추진되고 있다. 최근의 배아줄기세포 연구 또한 난자의 활동이 여성의 일상에 어떤 의미를 띠는지는 눈 감은 채 여성 몸의 수단화에만 파묻혀 있다는 비판을 당연히 피해갈 수 없다.

생리와 임신을 통해 여성의 일상에 버겁고 피곤하게 비집고 들어오는 난자는 여성 삶의 체온을 이탈하여 실험실에서 국가경쟁력 강화와 난치병 치료라는 목적을 위한 도구로 탈바꿈한다. 그러나 줄기세포라는 이름이 세간에 오르내리기 시작한 이후부터 난자 추출이 윤리적 쟁점으로 떠오른 지금까지 줄곧 여성의 관점은 빠져 있다. 배아복제 과정에서 난자가 핵을 잃고 자신의 유전 형질을 남기지도 못하는 도구 중의 도구로 쓰이다가 폐기되는 과정에서 여성은 자신의 목소리를 거의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여성 몸을 도구로 삼는 것이 얼마나 정당한가 하는 문제는, 여성 몸의 맥락과 동떨어진 데 난자가 소비되는 일에 여성의 목소리가 왜 실려 있지 않느냐는 물음에 비하면 차라리 사소하다. 자기 몸의 세포를 사용하는 일인데도 여성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없다는 점이야말로 몸의 도구화라는 문제 못지않게 문제적이라고 생각한다. 황우석 교수를 포함하여 정부와 여론창출집단들은 철저히 남성의 이름으로, 아버지의 법으로, 여성들에게 복제 배아의 어미가 되어달라고 부추긴다.

복제양 돌리의 '아버지'라 불리는  윌머트 박사는 여성들이 유전자 복제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자신의 몸과 난자를 내놓을 것이라고 자신만만해했다. 어미만 셋을 가진 돌리에게는 실제적인 아비가 없다. 윌머트가 복제양의 ‘아버지’라 불리는 사정은, 실험실에서 복제동물을 생산해낸 과학자에게 창조주에 버금가는 절대적 권위를 부여한 것과 다르지 않다. 새 생명을 주재하는 전지전능한 아버지 남성의 위치에 자신을 올려놓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여성을 실험 도구로 동원되는 존재로 치부하는 건 비단 그만이 아니다. 황우석 교수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가 위계 구조상 자신의 영향권에서 벗어날 수 없는 여성 연구원으로부터 난자를 제공받은 일이나, 많은 여성들이 기꺼이 줄기세포 연구를 지지하고 난자를 기증할 것이라고 믿는 그의 자신감도 스스로 신이 된 가부장적 남성성이 빚은 산물이다.
 
자신의 연구가 단군 이래 오 천년 역사 동안 기를 펴지 못했던 대한민국 역사에 날개를 달아줄 것이라는 그의 호언은 겸손이나 양보라곤 모르는 전형적인 남성주의를 보여준다. 이에 화답하여 언론매체들과 시민사회는 난자를 하찮고 쓸모없는 것으로 비틀어 여성의 희생과 동원을 선동하는 데 열심이다. 

여성의 목소리가 개입되지 않는 한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반대하는 이들의 목소리에도 한계는 있다. 아무리 여성 인권을 부르짖는다고 해도 그들이 난자의 활동이 임신을 위한 것 이전에 여성의 일상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 현실임을 외면하는 한 공허해질 수밖에 없다. 여성의 몸에 대한 고려가 빠져 있는 반대의 목소리가, 거창하고 숭고한 목적을 내세운 찬성의 목소리보다 얼마나 도덕적으로 우월하고 설득력을 갖추었는지는 알 수 없다. 생명 존중을 강조하며 배아 복제에 반대하는 종교적 근본주의자들의 논리 역시 공중부양하듯 허공에 떠 있기는 마찬가지다. 낙태도 배격하는 그들이 여성의 인권을 생각해서 배아복제를 반대하겠는가. 신의 영역이라 믿어지는 것에 인간이 개입, 조작, 창조하겠다고 하니 싫은 것일 뿐이다.   

여성운동가들이 생명 경시라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낙태합법화를 주창해온 이유는, 여성 몸의 자기결정권을 다른 어떤 것보다 중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자기 몸을 관리할 권리야말로 여성 인권의 출발점에 속하는 한 여성 인권의 역사는 여성이 몸에 대한 결정권을 스스로 쟁취해가는 과정과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이만큼이라도 힘들여 일구어왔던 여성 인권의 역사를 정면으로 들이받는 양상으로 나타나는 것이 오늘날 유전공학의 모습이다. 더욱이 현대 생명공학은 여성을 생식과 출산과 관련된 데만 동원함으로써 전통적인 여성의 역할을 뜯어고치기는커녕 오히려 그것에 들러붙는 모습을 보인다. 최첨단 학문이 여성을 애 낳는 존재로나 보는 덜떨어진 사고에 의존하고 있다는 건 얼마나 역설적인가.

여성에게 난자는 몸에서 그냥 흘러나오는 잉여물이나 폐기물도 아니며, 생명의 가치를 지닌 존엄한 존재도 아니다. 싸우면서 정 든다고 했던가. 난자의 활동은 지긋지긋하지만 어쩔 수 없이 여성이 한 평생 달고 갈 수 밖에 없는, 삶의 일부로 녹아든 것이다. 줄기세포 연구는 난자 제공과 매매의 윤리 문제로 한동안 떠들썩하더니 이제는 2005년 <사이언스> 논문의 조작이 드러난 상태이다. 그러나 난자와 평생 씨름해야 하는 여성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는 문제는 아직 거론조차 되지 않고 있다.   
* <대자보> 편집위원, 문학평론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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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5/12/26 [11:45]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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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난자 2006/01/14 [00:30] 수정 | 삭제
  • 난자문제를 난자하게 들어놓으니 정신이 난자한게 온 세상이 난자로 보이네...난자도 난자로보이고 정자도 난자로보이고.... 이제고만하지...난자한 정신 좀 챙기게...
  • B 2006/01/08 [01:48] 수정 | 삭제
  • 불교계를 "대표"한다는 분들이 얼마나 불자들의 생각을 "대표"하고 있는지 말입니다.
    황우석 교수(어쨌거나 아직까지는 교수 직함을 갖고 있는걸로 압니다. 자의든 타의든)를 지지한다는 불교계 "지도자"들께서는 자신의 개인적인 의견을 불교계 전체의 입장과 구별해 주십시요. 개인적 입장이라면 참견할 이유 없으니까요.
    불교계에서 과연 생명윤리 문제에 대한 내부적 입장정리나 공청회라도 한 적이 있었던가요?
    이참에 현대과학과 생명윤리의 문제에 대해서 불교교리에 입각한 토론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 니그리 2006/01/03 [12:25] 수정 | 삭제
  • 수많은 불교인들에게 다 물어 보았는가?
    모두 황우석을 지지한다던가?
    아니면 그런 근거없는 유언비어를 유포시키지 마시오..
  • 신정모라 2005/12/26 [19:22] 수정 | 삭제
  • 불교계 종교인들이 황우석을 지지했다고 합니다. 천주교와 개신교는 생명논리로 반대했고. 황우석이 불교신도라는 단순한 이유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