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록위마(指鹿爲馬)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흔히 '윗사람을 농락하여 권세를 마음대로 휘두르는 짓' 혹은 '모순된 것을 우겨서 다른 사람을 속이려는 짓'을 이르는 말이다. 이 고사성어는 중국 진(秦)나라 때 조고(趙高)라는 환관이, 황제인 호해(胡亥)에게 사슴을 바치며 말이라고 강변했다는 옛 이야기에서 유래한다.
까마득한 과거의 일, 그것도 다른 나라의 고사를 새삼스럽게 떠올린 이유는, 5월 10일자 〈중앙일보〉에 게재된 김정호 자유기업원 원장의 칼럼 "토지국유제로 가려는가?"를 읽고 든 소회 때문이었다.
물론 김정호 원장이 위력이나 강박으로 자신의 의사를 관철시키려고 한 것은 아니지만, 사슴을 말이라고 우긴 조고의 행동과 참여정부의 부동산 대책을 토지국유제와 유사하다고 비판하는 김정호 원장의 주장에는 일말의 근친성이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와전을 피하기 위해서 여기서 김정호 원장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보는 것이 좋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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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호 자유기업원 원장의 중앙일보 칼럼 '토지국유제로 가려는가' © 중앙일보 5월 10일자 PDF |
고강도의 투기대책이 또 나왔다. 이번에는 의무적 토지거래허가제, 임야 취득자격 제한이지만 그것 말고도 보유세 및 양도세 강화, 재건축 개발이익 환수 등 다 기억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참여정부 들어 터져 나온 투기억제책은 다양하고 많다.
이와 관련해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있다. 잠시 주춤하겠지만 짧으면 몇 주, 길면 몇 달 뒤 부동산값이 다시 들먹일 것이라는 사실이다. 특히 전반적 경기활성화가 빨리 올수록 그 시기는 앞당겨질 것이다. … 공급 위축이라는 부작용은 미래의 가격 상승효과를 더욱 크게 한다. 본래 시장은 그런 것이다.
우리보다 보유세 부담이 큰 미국에서도 최근 1~2년 사이 집값이 30%나 올랐다는 사실은 필자의 예측을 뒷받침해준다. … 사유재산제가 남아 있는 한, 인간은 집과 땅을 가지고 돈을 벌려 애쓸 것이고 투기 문제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부동산 투기 문제를 없애려면 부동산 거래를 금지해 시장을 없애야 한다. 그러면 시장가격도 사라질 테니 개발이익도, 투기도 걱정할 필요가 없어진다. 요즘 유행하는 주장대로 토지가치의 100%를 환수하는 제도 역시 동일한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그것은 실질적인 사유재산제 폐지를 뜻한다. 한 평의 땅을 구하려 해도, 집 한 채를 처분하려 해도 국가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상황은 국유재산제에 가깝다. 어쩌면 참여정부의 토지철학은 그쪽을 향하고 있는지 모른다. … 주택에서 나오는 이익은 모든 국민이 공유해야 한다는 대통령의 발언도 그런 맥락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 사유재산이라면 거기서 나오는 이익도 소유자의 것이 됨이 원칙이다.
개인의 자유에 대한 제한은 타인에게 손해를 끼칠 때 비로소 정당화된다. 그런데 토지.주택의 소유와 거래는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일이 아니다. 거래 당사자 모두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에 거래가 성립한다. 사기나 강탈을 통해 취득한 게 아닌 데도 주택.토지 소유를 범죄시하는 것은 자유에 대한 부당한 제한이다.
물론 거품이 발생할 때는 개별적 거래가 사회적으로 해로운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지만, 현재의 가격이 거품이라는 증거는 없다. … 주택정책의 목표는 국민의 주거를 편하게 만드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려면 새로운 주택이 많이 지어져야 한다. 투기 억제로는 한 평의 주택도 늘릴 수 없다. 오히려 줄일 뿐이다.
역사를 돌이켜 보면 국가의 토지 소유는 늘 폭정의 기반이 되었다. … 튼튼한 사유재산제 없이는 자유민주주의도 어렵다.
물론 우리나라가 당장 토지국유제로 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 토지의 취득과 판매에 국가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면 국유제와 크게 다를 것이 없다. 그리고 우리는 이미 거기에 상당히 가까이 와 있다. 새삼스럽긴 하지만 토지가 사유재산임을 다짐해야 할 때가 왔다.
최근에 발표된 5.4 부동산대책 등을 포함한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한 김정호 원장의 비판은 위에서 보는 것처럼 매우 신랄하다.
그러나 불행히도 김 원장의 비판은 잘못된 전제와 사실관계에 대한 몰이해, 논리적 비약으로 가득하여 건강한 비판으로서의 생명력을 잃고 있다. 이제 김 원장의 주장을 따라가면서 그의 주장이 어째서 잘못되었는지 조목조목 살펴보기로 하자!
먼저 김 원장은 5.4 부동산 대책 등 참여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일련의 투기억제책은 필연적으로 공급위축을 수반하므로 실패할 수 밖에 없다고 갈파한다. 그는 우리 보다 보유세 부담이 높은 미국의 경우를 들면서 자신의 예측이 맞을 것이라고 기염을 토하고 있다.
김 원장의 주장은 일면 타당하다. 5.4 부동산 대책은 '보유세 강화'와 '거래세 인하'라는 방향설정에서는 나름대로 성공하였지만, 토지와 건물을 분리해서 사고하지 못한 약점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며 이는 향후 건물 공급의 위축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우리 보다 보유세 부담이 높은 미국의 예를 들면서 보유세 강화가 오히려 공급위축을 불러올 것이고, 이는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연결될 것이라는 김 원장의 주장에는 전혀 동의할 수 없다.
근래 미국의 집 값이 가파르게 상승한 이유는 투기적 가수요 때문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보다 타당할 것이고, 이는 미국의 부동산 보유세율이 투기적 가수요를 잠재우는 데 충분할 만큼 현실화되어 있지 않다는 반증에 불과하다. 따라서 미국의 예를 들면서, 보유세 강화 등을 통해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키려는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는 김 원장의 주장은 그리 합리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또한 김 원장은 사유재산제가 존속하는 한 부동산 투기는 없어질 수 없고 이를 없애려면 부동산 시장을 없애는 것이 최선이라고 주장하면서, 요즘 운위되는 토지가치의 전액환수도 이와 동일한 효과를 발휘할 것이고 이는 곧 실질적인 사유재산제의 부정이라고 단정하고 있다. 그는 이에 덧붙여 주택의 소유 등으로 인해서 발생하는 이익은 개인에게 귀속되는 것이 사유재산제에 부합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 원장이 이해하고 수호하려고 하는 사유재산제가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자유주의의 이론적 창시자라고 할 수 있는 로크와 노직의 주장을 따르더라도 부동산 소유 등을 통한 불로소득의 발생은 자유주의 혹은 시장경제의 원칙에 정면으로 반한다. 그러나 김 원장은 주택의 소유 등으로 인해서 발생하는 이익은 개인에게 귀속되는 것이 사유재산제에 부합한다고 전제한 뒤, 사유재산제가 존속하는 한 부동산 투기는 사라질 수 없고 부동산 투기를 없애려면 부동산 시장을 없애야 한다는 다소 과격한(?) 논리적 비약을 거듭하고 있다.
그러나 주택의 소유 등으로 인해서 발생하는 이익은 거의 전적으로 사회 혹은 공동체의 기여이므로 이를 조세로 환수하는 것이 시장경제에 부합한다. 또한 부동산 소유 등으로 인해서 불로소득을 수취할 수 없다면 투기가 발생할 까닭이 없어 부동산 시장은 실수요자 위주로 거래가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따라서 김 원장의 글은 잘못된 전제가 얼마나 잘못된 결론을 이끌어 내는가 하는 사실을 실증하고 있을 따름이다.
한편 김 원장은 개인의 자유에 대한 제한은 타인에게 손해를 끼칠 데 정당화되는데 토지 소유와 거래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주택문제를 해결하려면 투기억제가 아니라 공급에 눈을 돌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위의 주장을 보고 있노라면 김 원장의 현실인식이 얼마나 균형을 잃고 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토지 소유와 거래가 타인에게 손해를 끼치지 않는다고 김 원장은 주장하고 있는데 현실은 어떠한가?
기실 합법의 외피를 두르고는 있지만 토지 소유와 거래로 인해서 환호작약하는 사람은 불로소득을 얻는 극소수일 뿐이며 사회 구성원 대다수가 고통에 신음하고 있음을 김 원장은 정녕 모르는가? 진실은 건조한 경제학 교과서가 아니라 피와 땀이 배어있는 현실에 있음을 김 원장이 알았으면 좋겠다. 주택문제를 해결하려면 투기억제가 아니라 공급에 눈을 돌려야 한다는 김 원장의 주장은 분명 일리가 있다. 아직도 열악한 환경에서 거주하고 있는 구성원들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것이 현실이고 보면 양질의 주택을 저렴한 가격에 대량으로 공급해야 한다는 주장에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문제는 공급위주의 정책만을 가지고는 부동산 가격 안정과 서민들의 주거안정을 이룰 수 없다는 사실이다. 건국 이후 정부는 줄기차게 주택공급정책을 펴 왔지만, 작금의 상황이 지시하는 바와 같이 그 결과는 대체로 참혹하다. 따라서 주택 공급정책은, 보유세 현실화 등을 통해 투기적 가수요를 잠재우면서 병행되어야 그 효과를 담보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김 원장은 현재의 (부동산)가격이 거품이라는 증거는 없다면서, 역사를 돌이켜 보면 국가의 토지 소유는 늘 폭정의 기반이 되었다는 전대미문의 가설(假說)을 설파한다. 물론 튼튼한 사유재산제 없이는 자유민주주의도 어렵다는 부연설명도 따른다.
강남은 말할 것도 없고 수도권에 소재한 어지간한 아파트의 가격이 평당 천만원에 육박하는 점, 통상의 월급쟁이가 받는 1년 급여가 2천만원에서 3천만원 사이라는 점 등을 감안할 때, 김 원장의 선언은 별로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대부분 토지의 판매와 취득에도 국가의 허락을 받아야 하고 이는 토지국유제와 크게 다를 것이 없으며 국가의 토지 소유는 늘 폭정의 기반이 되었다는 김 원장의 주장은 차라리 무슨 격문(檄文)을 보는 듯 하다.
그러나 아쉽게도 비장함 보다는 웃음이 앞서니 어쩌랴! 김 원장은 너무 걱정 마시라! 토지 보유세율을 현실화하면 각종 규제도 필요없고, 김 원장이 오매불망하는 사유재산제도 훨씬 건강해질 것이다. 마지막으로 중앙일보에 한 마디 하고 싶다. 이미 홍석현 회장의 탈법, 편법 부동산 취득 사실이 홍 회장의 고백을 통해서 드러난 마당이다. 오너의 잘못에는 한없이 관대한 중앙일보가 최근에 부동산 투기를 옹호하는 듯한 인상마저 주는 것은 매우 유감스럽다.
모쪼록 자신의 발언을 자신의 발 밑에 조회해 보는 정도의 양식은 갖추기를 바란다. / 편집위원
* 필자는 토지정의시민연대(www.landjustice.or.kr)에서 정책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