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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깨만 주물러도 성추행? 얼떨결에 성추행범!
[백수광부의 정성] 성적자기결정권에 대한 개념과 이해에 철저해야
 
이승훈   기사입력  2004/04/30 [13:17]

며칠 전, 어깨만 주물러도 성추행이 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우리 법원은 종전에는 성추행이 되기 위해서는 성기에 직접 손을 대는 것 이상의 행위를 해야한다고 봤다.  성문제에 관해서는 특히나 보수적인 우리 나라 대부분의 형법학자들은 지금도 그런 내용으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최근 나온 형법교과서를 보더라도 거의 모두 "손이나 무릎, 여자의 옷 위로 가슴을 만지는 것만으로는 추행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서술되어있다.

이번 사건을 다루고 있는 언론사 토론방에 들어가보면 어깨만 주물러도 성추행이 된다는 대법원 판례를 오해하는 남성들이 꽤 많다. "어깨만 주물러도 성추행이 된다면 세상에 성추행범이 넘칠 것"이라고 항변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대표적인 주장을 이곳에 옮겨보면,

"무슨 신체적접촉이든 상대방에게 수치심을 느끼게하면 성추행이다! 어깨뿐아니라 손을잡아도..머리를쓰다듬어도, 어떠한 경우라도 스킨쉽은 하지말라! 그것만이 성범죄에서 해방될수 있는 비법이다! 본인의 선의를 가지고 어깨를 주물르든 도와주려고 손을 잡든 아무의미가 없다. 상대가 기분이 나쁘면 성범죄로 파렴치범으로 몰리는것이 현실이다! 절대 이런 어처구니 없는 법의 판결에 동의 할수없다! 이런식으로 피해자라며 합의금을 요구하면 얼마든지 부자도 될수 있지 않겠는가? "

많은 추천을 받은 글이다. 정말 그럴까? 그 남성은 어깨'만' 주물러도 성추행이 된다는 뜻을 오해한 것이다. 여기서 어깨'만' 주물러도 성추행이 된다는 뜻은 종전에는 '성기'에 손을 대는 정도의 '음란한' 행위를 해야 성추행이 될 수 있었는데 이제는 겉으로 보기에 '음란성'을 쉽게 알 수있는 행위로서 '성기'에 손을 대는 수준이 되어야 성추행이 인정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사정을 모른채 겉으로 보기에 음란한지 아닌지 알 수 없는 어깨나 손등 머리칼에 손을 대는 수준의 행위로도 성추행이 인정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성추행이 '된다' 가 아니라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어깨만 주무르는 것만으로는 성추행이 안되고 그것은 성추행이 될 수 있는 하나의 요소일 뿐이다. 어깨나 손, 머리칼 등에 접촉했다고 여성들이 "성추행이다" 이렇게 곧바로 주장하지도 않기 때문에 남성들은 '오버'하지 말기를 바란다. 법원 역시 그렇게 비약적으로 곧바로 "성추행이다"이렇게 결정을 내리지 않는다. 주변 상황, 그간의 사정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서 성추행여부를 결정한다.

성기접촉인 성추행의 경우는 거부의사표시여부는 상당히 묵시적이고 은유적이더라도 쉽게 인정될 수 있지만 성기접촉이 아닌 어깨나 손, 머리칼 등 일반적인 신체접촉의 경우에는 거부의사가 성추행성립에 중요한 고려대상이 되고 엄격한 요건아래 인정된다. 대부분 거부의사를 표현했는데도 그것을 무시하고 막무가내로 쭈물떡대기 때문에 성추행이 인정된다. 그것이 바로 성적자기결정권을 침해한 행위다.

필자가 지난 4월 6일자에 쓴 칼럼'정치적으로 올바른 성을 위해'에서 강력히 주장한 바 있는데, 성적자기결정권은 성에 관한 정치사회적인 모든 문제들를 판단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시금석으로 작용한다. 원리론차원에서 아주 중요한 개념이다.

이번 판결에서도 성적자기결정권이 성추행을 인정하는데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했다. 성적자기결정권이라는 것이 뭔지 이해를 못하면 얼떨 결에 '성추행범'이 될 수 있으니 주의하길 바란다. 또 성적으로 억압받는 성주체는 자신의 삶을 위해서 이 '성적자기결정권'을 무시로 내뱉길 바란다. 그렇게 해서 성적자기결정권이라는 단어는 누구에게나 쉽게 다가서는 단어가 되어야할 필요가 있다. 성적자기결정권은 우리 사회의 모든 성문제를 해결하는 '만병통치약'이기 때문이다.

성적자기결정권이라는 말이 생소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는데 사실 그리 생소한 말도, 어려운 말도 아니다. 중학교 고등학교 역사시간에서 3·1독립운동의 정신으로서 '민족자결권'이라는 것을 배웠을 것이다. 민족의 삶과 앞날은 민족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있고 다른 민족은 이를 인정해줘야한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단어만 바꿔서 성적자결권 즉 성적자기결정권은 모든 남성이나 여성 (남성 여성 외에 트렌스젠더, 동성애자등 제 3의 성도 포함)들은 남성으로서 여성으로서의 삶과 앞날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있고 다른 성은 이를 인정해줘야한다는 것이 기본적인 내용이다.

이번 사건은 성범죄에 관한 학문적 이론 체계, 대법원 판례에 전반적인 수정이 필요할 만큼 아주 획기적인 사건이다. 성범죄를 성기중심으로 이해하던 관행이 무너지고 성적자기결정권을 중심으로 성범죄를 이해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본격적으로 보여준 판례다. 우리 사법부가 조금 늦은 감이 있기는 하지만 시대에 발을 맞추려는 노력을 보여준 것은 고무적이다.

다만, 추행에 대한 판단문제에서 종전에는 성적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행위로서 어깨를 주무르는 정도의 행위는 성추행으로 보지않고 성희롱으로 봤는데 이번 판결로 성희롱을 넘어선 성추행으로 보기 시작했다. 이렇게 되면 성희롱과 성추행의 구별문제, 강간과 관계문제가 발생한다. 결과적으로 성범죄와 관한 종전의 대부분의 대법원 판례가 변경될 필요가 있다. 그 때는 전원합의체 판결이라는 것을 해야한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수준의 인식전환이 필요한 사건인데도 대법원은 이번 판결을 전원합의체 판결이 아니라 일반판결로 했다. 성적자기결정권에 대해 대법원은 아직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인식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 / 편집위원

자유... 백수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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