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네 마누라라면 그렇게 말할 수 있겠냐"
[백수광부의 정성] 여성은 남성의 소유물이 아니다
 
이승훈   기사입력  2004/04/02 [18:04]

"네 마누라라면 그렇게 말할 수 있겠냐"

지난 해 여름, 여군 A대위가 텐트 속에서 잠을 자다가 자신의 부하인 B병장에 의해 성추행 당한 사건이 있었다. A대위는 자신을 성추행한 B병장을 구덩이에 묻고 구타했다. -구덩이에 묻었다는 것은 소문이며 사실확인이 되지 않은 것이다-

이 사건을 두고 군 기강에 대한 논란과 더불어 그 문제와는 별도로 “부하가 상관을 성추행한 사실이 잘못된 것이긴 하지만 B병장을 구덩이에 묻고 구타한 것은 가혹행위로서 지나친 행위다”, “여군A대위의 입장을 이해하고 A대위의 폭행에 대해서는 선처해야한다”로 논란이 크게 일었다.

당시 어느 인터넷언론사의 토론방에는 A대위를 비난하는 많은 남성들의 글이 올랐는데 A대위를 비난하는 글 가운데에는 부하의 성추행 사실을 고려하지 않은 채 A대위의 가혹행위만 잡고 늘어지는 글들이 많았다. 마초이즘이 짙게 배인 그런 글에 대해 반박하는 또 다른 일단의 남성들의 글 가운데에는 “A대위가 네 마누라라면, 네 누이라면 그 때도 그렇게 말할 수 있겠냐?”는 요지의 반론을 종종 볼 수 있다.

자신을 강간하려는 남편을 정당방위로 살해한 사건에서도 마찬가지로 일단의 남성들은 강간당한 여성의 남편 살해행위를 일방적으로 비난하고 또 다른 일단의 남성들이 그 비난에 대해 “피해자가 네 누이, 어머니라면 그 때도 그렇게 말할테냐?”라고 반박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정서적으로 압박을 하는 이런 논리는 꽤 잘 먹혀들어가서 그런 반론에는 대부분 아무런 대꾸를 못하고 수긍을 한다.

결과가 좋으면 다 좋은 것 아니냐면서 일단 반여성주의적인 주장을 억누르고 상대방을 설득하는 데에 의미를 두려는 것인지 그런 반박논리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모습을 아직 어디에서도 보지 못했다.  여성을 위한 발언이라고 생각해서인지 여성주의자들 사이에서도 이 문제에 시비거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그러나 그런 반박논리는 ‘오십보 백보’다. 그 피해 여성을 자신의 누이나 자신의 마누라라고 했을 때, 자신의 누이나 마누라가 그런 일을 당하면 남성인 자신은 얼마나 괴롭겠느냐는 논리인데 이는 마초를 설득하려는 또 다른 마초의 논리일 뿐이다. 그것은 어쩌면 더 위험한 논리, 더 잘못된 사고방식일 수도 있다.

여군 A대위가 자신을 성추행을 한 부하 B병장을 땅에 묻고 구타한 행위에 대해 여군 A대위의 입장에서 “네가 여군 A대위라면…”으로 출발하는 논리는 모든 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세계관이 바탕이 되는 논리지만 “여군 A대위가 네 마누라, 네 누이라면…”으로 출발하는 논리는 잘 해봐야 그 문제만 덮을 수 있는 임시변통의 논리일 뿐이고 오히려 성문제를 계속 꼬이게 하는 세계관이 바탕이 되는 논리다.  두 논리가 기초하는 세계관의 차이는 엄청나다.

모든 인간은 자신의 인생을 영위함에 있어서 자주적으로 생활하고 그 생활을 자신이 결정하는, 자결권을 가진 하나의 인격체로 보는 세계관을 가져야 한다.  여군 대위 성추행 사건이나 배우자강간 사건 등 비슷한 모든 사건에서도 이런 식으로 봐야하지만, 그러지 못하고 한 여자를 한 남자의 부인, 자신의 누이로 보고서 문제를 해결하는 자세는 결국 한 여자를 한 남자의 소유물로서 가치를 두고 자신의 소유물이나 소유관계를 훼손하는 것만 중요시하는 세계관이 숨어있다.

모든 남성들은 여군 A대위가 되어 자신이 성추행 당하는 것을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상상을 못하면 기껏해야 ‘내 마누라가 그런 일 당하면 내가 기분이 좋을까 나쁠까’ 하는 식의 상상이나 하면서 여성의 자주성과 자결권을 부정하는 또다른 마초가 될 뿐이다.

자유... 백수광부

자유... 백수광부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기사입력: 2004/04/02 [18:04]   ⓒ 대자보
 
  • 도배방지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