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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마차에서 핸드폰들고 노트북치는 베이징
만만디에서 '현대속도'로, 중국대륙의 심장 베이징을 가다(2)
 
홍성관   기사입력  2004/03/03 [16:20]

19일. 일행은 아침식사를 마치고 대외경제무역대학으로 이동했다. 경무대는 경제무역을 중심으로 특화시킨 대학으로 주로 베이징대, 칭화대에 못간 학생들이 입학한다고 한다. 이 학교는 1951년 설립됐고, 52년에는 조선어과를 설립해 베이징대 다음으로 한국어과를 만들었다.

▲인민대회당     ©브레이크뉴스

이곳에서 일행은 대외경제무역대학의 서영빈 경제학과 교수의 강연을 통해 눈으로만 보던 중국의 눈부신 발전상에 대해 보다 전문적인 해설을 들을 수 있었다. 서 교수에 따르면 중국의 국가프로젝트 중에는 ‘211공정’이 있다고 한다. 21세기, 100개 대학, 1000개 학과를 뜻하는 말이다. 중국이 교육면에서 어떻게 미래를 준비하고 있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서 교수는 중국의 발전상에 놀랐다는 말에 ‘과연 중국의 진짜 모습을 보았느냐’며 반문했다. 그러면서 서 교수는 여러 차원에서 중국에 접근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중국은 3천만 명이 아직 의식주를 해결하지 못하는 국가이다. 동서부의 지역차이도 상당히 크다. 이는 경제개발 자체가 농촌개혁 후 도시개혁으로, 남쪽(광동성, 복건성, 상하이)에서 북쪽으로 계획되었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중관촌의 경우만 보더라도 새벽이면 우마차가 팬티엄 컴퓨터를 싣고 거리를 누비는 풍경이 연출되는 19세기와 21세기가 공존하는 곳이다.

중국인들의 가치관에 대해서 서 교수는 중국인들은 더 이상 이데올로기에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그보다는 먹고사는 문제에만 관심을 기울인다고 한다. 또 서 교수는 중국이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로 바뀌고 있다는 시각에 대해, 계획경제에서 시장경제 시스템으로 전이되는 것을 오해하고 있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맑스가 언급한 재산 공유제, 계획경제, 노동에 의한 분배 중에서 중국은 하나 반을 고치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러는 한편으로는 유교문화에 대한 향수가 되살아나고 있어, 제사지내는 방법을 다 잊어먹은 공자의 고향 곡부에서까지 한국의 성균관에서 제사문화를 배워가기도 한단다.

서 교수는 중국에 아직 시장경제의 윤리가 성립되지 않은 점이 문제라고 지적하면서 일례로 ‘납 꽃게 사건’을 들었다. 한국에서는 사람이 먹는 것에 납을 넣었다는 사실에 대단히 분개했지만, 중국인들로서는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일전에 한 중국인이 마오타이(茅苔)주를 먹고 사망한 사건이 있었는데, 모태주와 향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술이 아닌 농약을 넣어놨기 때문이란다. 이 정도니 사람이 죽는 것도 아닌데 납을 넣은 것이 무슨 대수냐는 식으로 받아들인다고 한다. 과도기적 성격을 띠고 있는 후진국으로서의 병폐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하지만 서 교수는 중국이 GATT시절부터 WTO 가입을 준비해왔고, 우려됐던 농업, 자동차산업을 비롯한 기간산업, 금융 서비스업 등에 철저한 준비를 마친 후 가입했기에  2년 지난  지금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경제의 과제로 국유기업들의 부실, 평가절상에 대한 서방의 압력, 고실업을 지적하는 대목에서는 한국경제의 과제와 상당히 흡사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FTA와 관련해 한국의 농업이 솔직히 경쟁력이 없지 않느냐고 반문하는 서 교수의 말에 가슴이 아팠다. 어찌 보면 명백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강의가 끝난 후 홍자계라는 식당에서 중식을 든 일행은 일정에 없던 천안문으로 향했다. 그래도 명색이 중국에 왔는데 만리장성이나 자금성, 천안문 중 아무것도 못 보면 너무 아쉽지 않냐는 판단에서였다. 천안문은 다른 어느 코스보다 중국의 색깔이 확연히 드러나는 곳이었다. 모택동의 초상화에서, 굳은 표정의 공안들에게서, 광장을 메운 사람들의 얼굴에서 중국의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일행들은 광장을 뛰어다니며 줄기차게 사진을 찍어댔다. 어느 날보다도 공기가 탁하고 흐린 날이었지만 상관없었다.

이후 일행은 중국의 여의도라고 할 수 있는 서단 금융가로 이동했다. 2000년 6월부터 중국은행들의 본부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는 이곳은 외향은 서울 삼성동의 코엑스몰이 확장된 개념과 비슷했다. 상하이가 현저한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대신, 베이징에서 중국 정부가 한국으로 치면 금융감독원과 같은 기능으로 콘트롤할 계획이라고 한다. 미국의 워싱턴과 뉴욕의 개념과도 비슷하다고 한다.

▲서단 금융가 주변 시내     ©브레이크뉴스

다시 서라벌 식당으로 이동한 일행은 현대자동차 현지 직원과의 간담회를 가졌다. 직원과 학생일행이 어우러진 이 자리에서 기자는 현대자동차 베이징 지사의 한 간부와 인터뷰를 가졌다.

그는 우선 ‘중국은 사회주의 역사보다 장사하던 역사가 훨씬 긴, 경제마인드가 뛰어난 국가라는 걸 깨달아야 한다’고 말했다. 또 중국의 행복지수가 우리나라보다 높다고 하면서, 하지만 벌어지는 소득격차로 인해 2008년 올림픽 전에는 일대 변화를 겪을 것 같다는 전망(올림픽을 앞두고 중국내부사정이 대내외로 상당부분 노출될 것이기 때문에)을 조심스럽게 내놓기도 했다. 그리고 이런 시기에 한국기업들이 보다 신중하고, 마켓 서베이를 더 진지하게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서단 금융단지의 조감도     ©브레이크뉴스

그는 ‘금융시장 개방이 아직 안돼 달러로 거래해야 되고, 이 경우 이중으로 환율부담이 있다’면서, ‘한국제품 브랜드 선호도 6위밖에 안되고, 버스타고 돌아다녀도 한류열풍 별거 없다’고 말했다. 차이나 드림은 없다는 설명이었다. 이 간부는 결국 방법은 시간이 지나기를 기다려야 하는 것뿐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중국 사람들 일하는 거 보면 겁난다’면서 ‘만만디는 천천히 하자는 것이지 게으른 것 아니다’라고 말했다.

20일. 일찌감치 베이징대로 이동한 일행은 그곳 교수로부터 중국 사회주의 시장경제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 인사말에서 김영삼 대통령이 왔을 때에는 보안(안전)이 큰 문제였고, 김대중 대통령이 왔을 때에는 사람이 너무 많이 모여서 문제였다는 경험담을 해주기도 했다.

강의 후 교내 식당에서(그렇다고 학생들이 이용하는 식당은 아니었다) 중식으로 식사를 한 후 베이징대 학생들 짝을 져주었다. 그런데 기자의 짝이 되었어야 할 친구들이 수업을 받는 관계로 하는 수 없이 다른 팀에 끼어들었다.

▲티벳의 전통무     ©브레이크뉴스

한수란. 20세로 흑룡강에서 수석하고 온 여학생이었다. 이 외에도 이 학교 한국어과를 졸업하고, 한국에 있는 대학원으로 오기를 희망하는 여러 친구들이 친절하게 다가와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베이징대 친구들과 교정을 돌아다니며 많은 대화를 나누었고, 베이징대 티셔츠를 선물받기도 했다. 이들은 중한무역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우리보다 열심히 공부하고 있었다. 그들에게서 무서운 중국의 단면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

이후 세기금원호텔에서 베이징대 학생들과 식사와 함께 간단한 술자리를 가졌다. 분위기가 돋우어지자, 트롯트 열창이 테이블 곳곳에서 나왔고, 한국인이니, 중국인이니 구분 없이 흥에 취했다.

마지막 날, 호텔을 떠나는 버스에 오르는 일행의 얼굴에는 아쉬움이 가득 베어 있었다. 베이징에 처음 들어설 때와 베이징을 나설 때의 중국에 대한 인상은 180도 바뀌어 있었다.

13억이라는 중국인구가 동시에 발을 구르면 지구의 궤도가 변한다는 농담이 있듯이, 중국은 많은 인구를 가졌다. 또 사방을 둘러봐도 지평선이 보일만큼 거대한 땅덩이를 가졌다. 국가시스템의 일대 혁신을 겪으면서 이 장점들이 부각되고 있는 것이 중국이다.

높고 세련된 빌딩을 돌아 뒷골목으로는 여전히 빈민들이 득실대지만, 중국은 무서운 속도와 엄청난 잠재력으로 달려오고 있다. 베이징을 떠나는 비행기 안에서 다시 한번 내려다 본 베이징 시내에는 더 이상 정적이 흐르지 않았다. 마치 살아있기라도 한 듯 쉼 없이 역동적으로 꿈틀대고 있었다. /경제부 기자

* 본 기사는 기자가 현대자동차의 (Be Global Friends!) 중국편에 참여해 베이징에서 머문 동안의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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