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에 따르면, 우리 사회에서 존엄사를 찬성하는 비율은 80~90%에 이른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자신의 마지막 순간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있다는 증거일 것입니다. 실제로 유튜브에 올라온 관련 영상들을 보면, 존엄사를 허용해달라는 노년층 독자들의 댓글이 눈물겹게 이어집니다.
연로하여, 또는 건강상의 이유로, 더 이상은 사람으로서의 존엄성을 유지하며 살 수 없는데도, 당사자의 의사는 무시된 채, 단순히 물리적으로 생명을 연장시키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요? 삶의 ‘질’이 아니라 단지 ‘시간’을 늘리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 깊이 고민해야 할 시점입니다.
이제 우리 사회는 이 문제를 더 이상 미루지 말고, 충분한 논의와 사회적 합의를 통해 제도적 결론을 내려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인간에게는 존엄하게 살 권리뿐만 아니라, 존엄하게 죽을 권리도 보장되어야 한다고 저는 믿습니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십여 년간 ‘적극적 존엄사’에 대해 고민해 온 저의 생각을 정리하여, 우리 사회에 하나의 제안으로 제시하고자 합니다. 만약 이러한 저의 제안이 수용되어, 육체적이건 정신적이건 고통스러운 노년의 삶을 원치 않는 분들의 선택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제도가 마련된다면, 여러 가지 사회적 긍정 효과를 기대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우선, 원치 않는 연명치료를 중단하고, 나아가 일정 연령에 이른 분들, 예를 들어 70세가 넘은 국민에게는 질병 유무와 관계없이 본인의 의사에 따라 존엄사를 선택할 수 있게 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노후에 대한 과도한 불안에서 벗어나 현재의 삶에 더욱 충실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또한 사회적 비용 측면에서도 긍정적인 효과가 발생될 것입니다. 원치 않는 연명치료에 쓰이던 막대한 의료 자원을, 적극적으로 치료를 원하는 환자들에게 더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될 테니까요.
이에 저는 다음과 같이 존엄사 법제화 기준을 제안합니다.
첫째, 국민건강보험공단 내에 존엄사 신청을 담당하는 전담 부서를 설치합니다.
둘째, 해당 부서에는 의사 2인과 심리 전문가 1인을 상주시켜, 존엄사를 원하는 70세 이상의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질병 여부와 관계없이 누구나 존엄사를 신청할 수 있도록 합니다.
셋째, 신청자는 총 네 단계의 심의 과정을 거쳐 최종 승인을 받도록 합니다.
1. 1차 상담
신청자는 반드시 본인이 직접 방문하여 자신의 의사를 명확히 밝혀야 합니다. 의사와 심리 전문가의 상담을 통해 신청자의 의사가 자발적이고 확고한 것임이 확인되면, 이를 기록으로 남깁니다.
상담자는 신청자에게 90일 이상 지난 후에 2차 상담이 있음을 알리고, 신청자가 원하는 날짜를 지정해 줍니다. 차후 신청자에게 사정이 생길 경우, 이 날짜는 30일 이내에서 조정될 수 있도록 합니다.
2. 2차 상담 (3개월 후)
동일한 절차로 신청자의 의사를 다시 확인합니다. 만약 신청자의 의사에 변화가 있을 경우, 기존 절차는 모두 무효가 됩니다. 그러나 본인의 의사가 확고하면, 확인 기록을 남깁니다.
상담자는 신청자에게, 60일 이상 지난 후에 3차 상담이 있음을 알리고 신청자가 원하는 날짜를 지정해 줍니다. 이 날짜 또한 사정이 있을 경우 차후 30일 이내에서 조정될 수 있도록 합니다.
3. 3차 상담 (추가 2개월 후)
앞선 단계와 동일하게 신청자의 의사를 확인합니다. 이 단계에서도 신청자 본인의 의사에 변화가 있을 경우 모든 절차는 무효 처리됩니다. 그러나 본인의 의사에 변함이 없으면 확인 기록을 남깁니다.
상담자는 신청자에게 30일 이상 지난 후에 최종 확인이 있음을 알리고, 신청자가 원하는 날짜에 존엄사 시행일을 지정해 줍니다. 이 날짜 역시 사정이 있으면 차후 30일 이내에서 조정될 수 있도록 합니다.
4. 최종 확인 및 시행 (추가 30일 후)
지정된 날에 신청자는 다시 한 번 자신의 의사를 명확히 밝혀야 합니다. 만일 심경의 변화가 있으면, 지금까지의 과정은 모두 무효가 되며, 후에 다시 신청할 경우에는 처음부터 위의 과정을 다시 밟아야 합니다.
그러나 신청자 본인의 의사가 확고할 경우, 법이 정한 절차에 따라 존엄사를 시행합니다. 단, 존엄사 시행일 10일 전까지 직계가족 1인 이상의 동의를 서면으로 받도록 하며, 직계가족이 없는 경우에는 본인의 의사만으로도 시행할 수 있도록 합니다.
이와 같은 절차를 법제화한다면, 신청자의 의사를 반복적으로 확인함으로써 오판 가능성을 최소화할 수 있으며, 사회적으로 우려되는 여러 부작용 역시 상당 부분 예방할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총 네 차례에 걸친 확인 절차를 통해 신청자의 심경 변화도 충분히 반영할 수 있습니다.
자,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상담자들, 그러니까 2인의 의사와 1인의 심리 전문가는 신청자를 심사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상담자들은 신청자를 설득할 수는 있으나 그의 요구를 수용할 것인지 거부할 것인지를 결정할 권리는 없다는 것입니다.
상담자의 간절한 설득에도 불구하고 신청자가 확고하게 존엄사를 요구하면, 상담자는 신청자의 의사가 확고하다는 점을 기록에 남겨야 하며, 존엄사의 시행 여부는 상담자가 아니라 신청자의 의사에 따라 결정되어야 합니다.
물론 저의 이러한 제안은 현재 우리나라에서 시행 중인 연명의료결정제도와는 본질적으로 차이가 큽니다. 우리나라의 연명의료결정법은 2016년에 제정되었고, 2018년 2월 4일부터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이 시작되었습니다. 저 역시 2019년에 해당 의향서를 등록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이 제도는 임종이 임박한 말기 환자에게만 적용된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즉, 개인이 자신의 삶의 마지막을 보다 적극적으로 선택하는 ‘적극적 존엄사’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이제는 보다 본질적인 질문, 그러니까 ‘인간의 존엄한 죽음이란 어떤 것인가?’ 라는 질문에 대해 우리 사회가 한 단계 더 나아가, 전제 없는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