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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학자의 격려가 한글사랑꾼 만들어
[한글 살리고 빛내기23] 한결 김윤경 교수 가르침, 한글로 자주독립국가 꿈키워
 
리대로   기사입력  2021/05/03 [02:31]

나는 광복 뒤 1947년에 충남 서산시천수만 바닷가 마을에서 태어나서 19536.25 전쟁이 끝나기 전 나라가 몹시 흔들리고 어려운 때에 초등학교에 들어갔다. 그리고 중학교 2학년 때에 4.19 혁명이 일어나고, 3학년 때에 5.16 군사혁명이 일어났다. 그 때 나라는 몹시 흔들리고 농촌은 매우 가난했다. 그리고 1962년에 예산농고에 들어갔는데 군사정부가 1964년부터 한글로 만들던 교과서를 한자혼용해서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니 농업시간에 논밭에 거름을 준다.”고 하던 말을 田畓施肥한다.”라고 말하고, 사과나무 가치치기剪枝, ‘꽃따기摘花란 일본 한자말로 바꾸어 썼다. 그러니 농업시간도 한자시간이 되고 재미있던 공부가 싫어졌다. 그 때 국어정책이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데 그때 예산농고는 교훈이 국토개발이고 조회 시간마다 전교생을 모아놓고 교장 선생님이 농촌부흥을 부르짖고 유명 인사들을 초청해 교양강연을 했다. 그 가운데 내 고교 선배인 농촌운동가 한인수님과 그 지역 출신인 미국 유타대학 교수인 이태규 박사 말씀은 감동스러웠다. 한인수 선배는 농민 80%가 문맹이고 농민들 거의 밥 세끼도 못 먹는다. 농촌이 잘 살아야 나라가 잘 산다. 덴마크 달가스처럼 농촌운동을 하자라고 외칠 때엔 가슴이 뛰었다. 이태규 박사는 미국 유타대학 교수로 있는 분인데 박정희 장군이 고국 과학발전 정책을 세워달라고 해서 귀국했다. 내 고향 젊은이들아, 농촌에 산다고 기죽지 말고 꿈을 크게 가져라. 나는 미국에 살고 있는데 나와 아들딸 5명이 박사로서 세계를 무대로 어깨를 펴고 산다.”라고 말할 때엔 나도 큰 꿈을 가지고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 왼쪽은 제1회 5.16민족상을 받는 한인수님, 오른쪽은 미국 유타대학 이태규 교수와 가족.     © 리대로

 

 

그 강연을 하는 조회 시간에 내가 우리 반 소대장이기에 강연을 하는 연단 바로 앞에 서 있어서 꼼짝 안 하고 그 분들 말씀을 들었고 그 분들과 눈이 마주 칠 때엔 마치 나보고 말하는 것으로 착각을 할 정도였다. 한인수 선배는 웅변가이기도 했는데 여러 번 학교에 와서 강연을 했다. 그때 마침 학교 도서관에 가서 畜産全書란 책을 열람해보니 일본 책이었다. 우리학교가 일제 때부터 있던 학교라 도서관이 있었지만 우리말글로 된 전문서적이 없어서 이광수가 한글로 쓴 소설 , 무정들과 심훈이 쓴 상록수를 읽었다. 그런데 그 소설 배경이 농촌운동 이야기라 자연스럽게 나는 농촌운동 꾼이 되었다. 그리고 신문을 자주 보게 되었는데 무게 있는 정치 경제면은 온통 한문이었고, 어두운 사건 사고 기사가 있는 사회면과 소설 같은 문화면만 한글이었다. 그 때 우리말을 한글로 쓰면 아무 문제가 없는데 한자를 고집하는 것은 잘못임을 깨달았고 농민들이 한글도 몰라 문맹퇴치운동을 할 때인데 한자 쓰면 농민이 더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지역사회개발에 힘쓰는 예산농고 자료(왼쪽)와 이광수가 쓴 소설 흙, 한자혼용인 옛 신문.     © 리대로

 

난 그 때에 신문에서 한글 한자 논쟁을 하는 글도 읽으면서 한자혼용정책이 잘못임을 절실하게 깨달았다. 우리말을 한글로 적는 말글살이를 하면 대학에 가지 않고 책을 읽고도 지식을 얻을 수 있는데 우리 말글로 쓴 책도 없다는 것은 매우 잘못된 것인데 거기다가 일본처럼 다시 한자를 혼용하자는 것은 일본 식민지 교육 잔재라고 보았다. 그러니 이 일본식민지교육 잔재를 쓸어내고 우리 말글로 말글살이를 해야 국민 지식수준이 빨리 높아지고 한자를 배우는 시간에 잘 살 수 있는 길을 열 수 있으며 자주문화를 꽃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더욱이 그 때 국민의 80%인 농민이고 그 농민 80%가 낫 놓고 자도 모르는 문맹인데 어려운 한자를 쓰는 말글살이를 하게 되면 더 힘들 거라는 생각이 드니 더욱 한자혼용 정책을 막아야한다고 봤다.  

 

그래서 1964년 국어선생님이 졸업 숙제로 글을 하나씩 써내라고 했을 때에 세종대왕님을 생각하며라는 제목으로 세종대왕은 훌륭한 분이었고, 한글을 사랑하자고 가르치면서 왜 세종대왕의 업적과 정신을 이어가고 빛내지 않는지 비판하고, 한글을 사랑하고 한글 전용을 할 때 이 나라가 빛난다.”라는 내용으로 내 생각을 적어서 낸 일이 있다. 그래서 대학에 가서 국어운동과 농촌운동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고 대학 시험을 봤지만 떨어졌다. 본래 농업학교이기 때문에 대학에 갈 사람은 입학 때부터 진학반이라고 따로 있어서 영어와 수학 들 입시 과목을 더 가르치는데 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농사를 지으려고 했기에 그렇지 않았다. 그러니 나는 힘든 일이었다.

 

그래도 대학에 들어가야 할 마음이 컸기에 입시에 떨어지니 충격이 커서 졸업식에도 가지 않고 고향집 방안에서 나오지도 않고 아버지와 밥도 함께 먹지 않고 있었다. 나는 6남매 맞아들이었는데 아버지는 내 동생들 다섯도 나와 똑같이 고등학교까지 보내야 하니 내가 농고를 나와 아버지를 모시고 농사를 짓기로 약속하고 고등학교에 갔었다. 그런데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중간에 내 마음이 변해 아버지와 약속을 깨고 대학에 가겠다고 하니 아버지 마음이 불편하셨다. 그러던 설날에 아버지와 의형제처럼 지내는 아저씨가 서산읍내에 나가 장사를 하고 있었는데 설 인사 차 와서 그런 집안 분위기를 보고 형님도 일정 때 중학교에 가고 싶어서 서울로 가출한 일이 있었잖습니까? 저애는 마을에서도 착하다고 소문이 난 애였는데 얼마나 대학에 가고 싶으면 저렇게까지 할까요. 제 집에 데리고 가서 우리 애들 가르치며 공부하라고 하면 어떨까요? “라고 말하니 아버지는 그러라고 하셨다. 구세주가 나타난 것이다.

 

▲ 내가 고등학교 3학년 때에 한글운동을 하겠다고 작문 숙제로 쓴 ”세종대왕을 생각하며“ 초고.     © 리대로


그래서 서산 읍내에서 장사를 하는 아저씨 집에 가서 초등학교에 다니는 그 집 애들을 가르치면서 혼자서 입시공부를 하게 되었다. 그런데 국어나 생물 같은 과목은 혼자서도 공부가 되었는데 영어나 수학은 공부가 안 되었다. 그래서 머리를 식힐 겸 태안면사무소에 면서기로 취직한 고교 동창 김원석을 찾아갔더니 월급을 받으니 그의 부모님도 좋아하시고 그 생활이 아주 재미있다고 했다. 그 친구를 만나고 나니 대학에 가는 것을 그만 둘까 갈등이 생겨서 공부가 더 안 되었다. 그래서 고민하던 어느 날 한양대 김윤경 교수님이 신문에 쓴 국어정책에 관한 글이 내 정신을 번쩍 들게 했다. 그 분 글이 내 생각과 똑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분께 바로 내 고민을 쓴 편지를 보냈다.

 

나는 잘못된 국어정책을 바로잡으려고 대학에 들어가려는데 혼자 공부도 안 되고 부모님께서는 대학에 가지 말고 함께 농사를 짓자고 하신다. 한글이 내 일생을 바친 만큼 훌륭한 글자인가? “라는 내용이었는데 꼭 답장을 기대한 것도 아니고 시골 젊은이의 울분이었다. 그런데 김 교수님이 학교에서 배우지 못한 한글이 훌륭한 점과 교수님께서는 일생을 한글 연구와 한글운동에 바쳤으나 아직 한글이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며 꼭 대학에 가서 국어학계에 크게 이바지하기 바란다는 답장이었다. 나는 그 답장을 받고 날아갈 듯 기뻐서 서산 읍내에 있는 옥녀봉에 단숨에 뛰어 올라가 서울 쪽을 바라보고 꼭 대학에 가서 한글을 살리고 지키겠다고 외치고 김 교수님께 절을 하고 김 교수님께 꼭 해내겠다는 답장을 했다.

 

그날 큰 기쁨과 감동을 준 한결 김윤경 교수님 답장은 오늘날까지 내가 일생을 국어독립운동을 하게 이끈 가르침이고 자신감과 용기를 갖게 한 큰 힘이었다. 김 교수님 편지를 받고 대학에 들어가 1967년에 국어운동학생회를 만들고 지금까지 55년 동안 한글운동을 하면서 온갖 멸시와 천대를 받으며 힘들었다. 그러나 학생 때 내 스스로 이대로라고 한글이름으로 바꾸고 한결같은 마음으로 애쓴 결과 그런대로 내가 바라는 한글세상이 되었다. 참으로 무모한 도전이었지만 그래도 젊은 날에 뜻을 세우고 그 뜻을 이루겠다는 꿈을 버리지 않고 버틴 힘은 김 교수님 편지와 학생 때 이대로라고 한글이름에 한글나라를 꼭 만들겠다는 다짐과 뜻을 담았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아직 일본식 한자혼용 주장자들이 날뛰고 있어 내 꿈이 다 이루어지진 안했다. 그러나 지난날 문자전쟁이라고 할 정도로 치열했던 한글과 한자 싸움판에서 내가 한 일과 보고 느낀 글을 젊은 후배들이 쉽게 이해하고 내 꿈을 마무리해주기 바라는 마음에서 내가 어쩌다 왜 한글운동에 미치게 되었는지 밝히는 것이 좋을 거 같아 그 사연을 적고, 1965년 대학 재수할 때 국어독립운동에 내 일생을 바치겠다고 다짐하게 만든 김윤경 교수님 편지를 소개한다.

 

 

▲ 김윤경 교수님이 신문에 쓴 글(왼쪽)과 김윤경 교수님이 내 편지를 받고 보낸 답장(오른쪽).     © 리대로

 

김윤경 교수님 답장

 

21일에 써 보낸 글은 24일에 받아 읽고 매우 반가왔습니다. 우리말과 글을 전공하는 나로서는 우리말과 글을 그처럼 사랑한다 함에 대하여 더욱 고마웠소이다. 아무쪼록 이 방면에 성공하여 우리 국어학계에 이바지함이 크기를 바라는 바외다. 올해에 못 들어갔더라도 일 년 동안 노력하면 내년에는 선공하리라고 믿습니다.

 

그러면 물어준 문제에 간단히 대답하면, 첫째, 한글이 다른 글에 견주어 좋은 점은  

(1) 말소리(音韻 phoneme)가 풍부한 점이니 일본의 말소리는 세계음성기호로 23(h kg n s S t ts tS d d...)밖에 없고, 서양말도  a b c d e f g h I j k l m n o p q r s t u v w x y z 26밖에 없으나 우리말의 소리는 56이나 됩니다.

 

ㄱ ㄲ ㅋ ... ㄴ ㄷ ㄸ ㅌ ㄹ, ㅁ ㅂ ㅃ ㅍ, ᄆᅠᆼ ᄇᅠᆼ ᄈᅠᆼ ᄑᅠᆼ, ㅅ ㅆ ㅈ ㅉ ㅊ 반시옷. ᅟᅳᆼ ㅎ ㅎㅎ = 27. ㆍㅡ ㅣㅗ ㅏ ㅜ ㅓ ㅛ ㅑ ㅠ ㅕ .... =29. 모두 56.

  그 중에 선조들이 국문을 천대하여 안 쓰고 한문만 쓴 때문에 없어진 것이 많으나 그것을 빼더라도 세계에서 가장 많음.

 

(2) 글자 만든 이치가 과학 체계를 가진 점.  

곧 닿소리는 각각 그 소리를 낼 때 그 소리 내는 기관의 모양을 본뜸(각 자리 대표 ㄱ ㄴ ㅁ ㅅ ㅇ 같이). 홀소리는 하늘의 둥근 모양 , 땅의 평평한 모양 , 사람이 선 모양 , 셋으로 대표를 삼고 남아지는 모두 다 이 셋을 둘, 혹은 셋 이상을 다른 모양으로 모아 붙임.

 

(3) 다른 나라 글은 다 자연 발달로 되어왔지마 우리 한글은 세종임금이 깊이 연구하여 만들어 냄(그 때문에 과학 체계를 가지게 됨)

 

(4) 배우기 쉬움. 한문 같은 글은 그 글만 배우자 하여도 한 평생에 못다 배우게 되지마는 우리글은 정인지 말대로 하루아침이면 깨칠 수 있음(미련하여도 열흘이면 배우게 됨

 

(5) 한 글자는 한 소리로 냄.

가령 ,은 언제나 , 소리뿐이요. ㅏㅗ 는 언제나  ㅗ ㅏ 뿐이지마는 영어의 a는 우리말 소리로  ㅏ ㅗ ㅔ ㅐ ... 따위의 열 넘는 소리를 냄을 어느 소상한 사전 범례에서 봄. 그리하여 어느 처음 보는 영어 낱말을 볼 때에 어떻게 발음할는지 모르므로 사전을 찾아 그 발음 부호란 것을 보고야 그 발음을 알게 되고, 한문은 더구나 한 자가 여러 소리로 다르게 낼 경우가 있을 뿐 아니라 어찌 낼까는 전혀 모름.

 

  둘째한글을 전용하지 못하고 있는 점은 이미 한문을 배운 사람들의 편의를 위한 이기주의를 위하여 어린이로 하여금 자기를 따르게 하려는 이유와, 신문이 영리를 위하여 한문 아는 기성 인물들의 욕심을 만족시켜 많이 사아 봄으로 이익을 얻으려는 영업정책으로 나온 이유.

  셋째,한글학자들이 한글을 빛내기 위하여 하는 일은 진리를 찾기 위하여 연구에 평생을 바침 (가령 왜정 때 이 때문에 조선어학회 사건을 일으키어 이윤재, 한증 두 분이 옥에서 죽기까지 함)

 

아는 바를 널리 국민에게 알리기 위하여 맞춤법(현재 교과서와 일반 출판물에 쓰고 있는)을 왜정 때 제정하였고, 외래어표기법제정(이도 왜정 때), 표준어사정(이제 교과서에 쓰이는 모든 말), 사전 편찬(한글학회의 큰사전 6, 중사전, 소사전, 새한글사전 들을 편찬 발행하여 모든 국어사전이 이에 좇아 여러 사람이 만들어 내게 된 것임). 문교부, 국회, 일반사회 민중에게 연구결과를 알리어 이해시키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중이라 할 것임.  

 

이상 총총히 대답하고 그만 그치겠소이다. 급히 거칠게 쓰게 됨을 눌러 보시오.

 

                             1965525     

                           

                         김 윤경


<대자보> 고문
대학생때부터 농촌운동과 국어운동에 앞장서 왔으며
지금은 우리말글 살리기 운동에 힘쓰고 있다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 공동대표

한국어인공지능학회 회장

한글이름짓기연구소 소장
세종대왕나신곳찾기모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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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1/05/03 [02:31]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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