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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연예인 스캔들,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류상태의 문화산책] 깊은 성찰 없이는, 갑은 을을 이해하기 어렵다
 
류상태   기사입력  2019/04/10 [16:21]

 1. 갑질이 여전히 반복되는 이유

 

작년에 미투운동이 거세게 일었다. 법조계, 정치계, 연예계 등으로 이어지며 우리 사회 전반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 만연한 힘 있고 돈 있는 자들의 갑질문화는 별로 개선되지 못한 듯하다.

 

올해도 이런 종류의 갑질이 승리, 정준영, 로이킴 등 유명 연예인들의 스캔들로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같은 짓을 반복하면서도 문제의 심각성을 여전히 인식하지 못하는 가해자들(대부분 잘 나간다는 남자들)이 많다는 데 있다. 이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가해자들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피해자들과 같은 위치에 있는) 젊은 여성들의 환호를 받던 스타였다. 잘 생기고 재능 있고 그야말로 멋진 젊은이들이었다. 순박한 소녀들의 눈에는 절대로 그런 짓을 했으리라고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백마 탄 왕자’들로 보였을 게다. 그런데 그들이 그런 짓을 하다니...

 

잠시 가해자들을 이해하는 시각에서 문제를 바라보고 싶다. 먼저 짚고 싶은 것은, 이 젊은이들은, 자신이 무슨 짓을 하는지 잘 몰랐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그것이 피해자를 얼마나 아프게 하는지, 그것이 얼마나 심각한 범죄인지 미처 몰랐을 수 있다. 알았다면 그렇게까지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을은 본능적으로 갑의 존재와 활동에 두려움을 느낀다. 하지만 갑은 을의 처지를 이해하기가 대단히 어렵다. 유난히 갑이 나빠서라기보다는 갑과 을이 서 있는 자리가 그렇게 다른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선과 악이 무엇인지 개념조차 없는 어린아이라도 무심코 벌레를 밟아 죽이는 경우가 있다. 징그럽다는 감정 때문일 수 있겠다. 재미삼아 죽이기도 한다. 그것이 생명을 죽이는 잔인한 일이라는 의식은 전혀 없다. 나이가 들어 성년이 되어도 벌레만 보면 밟아 죽이는 사람이 있다. 역시 징그럽다는 감정 때문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단지 조심하지 않았기에, 그냥 자신도 모르게 무심코 벌레를 밟아 죽이는 경우도 있다. 해치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다. 하지만 벌레 입장에서는, 목숨을 잃는다는 결과는 조금도 다르지 않다.

 

갑과 을의 관계가 이럴 수 있다. 자신은 특별히 악한 의도를 갖고 한 일이 아니었는데, 또는 재미삼아 가볍게 한 일일 뿐인데, 피해자가 나타나서 하소연한다. 갑의 입장에서는 억울한 측면도 있을 수 있다. 이 문제는 조금만 확대하면 국가 간에도 적용된다.

 

많은 일본인들은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한국의 주장에 황당해한다. 심지어 억울해하기도 한다. 하여 지나간 문제를 자꾸 꺼내는 한국과 한국인을 경멸하기까지 한다. 나는 그들을 이해한다. 그들은 태생적으로 갑이기 때문이다. 피해를 당한 을은 갑의 언행 뿐 아니라 그들의 속마음까지도 잘 알지만, 강자의 자리, 가해자의 자리에 서 있는 갑은 을의 처지를 이해하기가 매우 어려운 법이니까.

 

그런데 입장이 바뀌어 을이 갑이 되면, 그들 역시 자신이 가한 갑질에 대해 둔감한 경우가 많다. 일본의 역사적 범죄에 대해서는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며 비난하는 사람이 우리나라가 과거 베트남에 가했던 역사적 범죄에 대해서는 잘 알지도 못하고, 그 일을 언급하는 것조차 불쾌해하는 경우를 적잖이 보아왔다.

 

그러면 갑이 갑질을 멈출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내 생각에는, 아주 좋은 두 가지 방법이 있다.

 

2. 마음 훈련 - 입장 바꿔 생각하기

 

갑이 을을 충분히 이해하고 갑질을 멈출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는 것이다. 그냥 잠시 생각해서 되는 일은 아니다. 정말로 을의 처지로 마음 깊이 들어가서 성찰해보아야 한다.

 

어린아이가 벌레의 처지를 이해하려면, 진지하게 입장을 바꾸어 깊이 생각해보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을의 처지에 서보는 것이다. 벌레는 징그러운 것이 아니라 단지 어린 생명체라는 것을 마음 깊이 새기는 ‘마음 훈련’이 필요하다.

 

이렇게 마음훈련을 해보는 건 어떨까. 눈을 감고 상상의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황량한 들판 한복판에 나 홀로 떨어져 있다. 그런데 갑자기 거대한 공룡 티라노 사우루스가 나타났다. 존재 자체만으로도 공포다. 으르렁거리는 소리만 들어도, 지축을 울리며 걷는 모습만 보아도 정신이 나갈 지경이다. 저 공룡의 거침없는 행동이 어쩌면 내 목숨을 앗아갈 수도 있다.

 

여기까지 생각한 후에, ‘공룡과 나’의 관계를 ‘나와 벌레’의 관계로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보는 것이다. 공룡이 나에게 약간의 배려를 해주느냐 무시하느냐에 따라 내 목숨이 왔다갔다 하듯이, 내가 벌레에게 약간의 배려를 해주느냐 마느냐에 따라 벌레의 목숨이 왔다갔다 한다.

 

이런 상상은 어떨까. 몸집이 사람의 두 배 정도 되는 힘센 우주인이 지구를 침략해서 자기 쾌락을 위해 내 몸을 함부로 다루고 해치는 상상을 해보고, 그 감정을 마음 깊이 느껴보는 것이다. 그러면 보통의 남자들이 이 지구마을에서는 경험하기 어려운 성폭력이나 성추행이라는 갑질이 얼마나 사람을 비참하게 만드는지 조금은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자이나교의 승려들은 길을 걸을 때 부드러운 빗자루로 쓸며 걷는다. 혹시나 무심코 벌레를 밟을까 염려하기 때문이다. 때로는 마스크를 쓰고 생활하기도 한다. 숨을 쉬다가 작은 벌레를 들이마실까 염려해서다.

 

3. 을에게 배우기

 

갑이 더 이상 갑질을 하지 않기 위해서 꼭 해야 할 일이 하나 더 있다. 을에게 물어보는 것이다.

 

나이든 남자들 가운데 이렇게 말하는 분들이 적지 않다. “요즘 젊은 여자들은 농담이나 호감 표시를 이해하지 못하고 곡해하는 애들이 많다. 유연성이 없고 드센 애들도 많다.”

 

그런 남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자신의 언행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여자들이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면, 진지하게 배우겠다는 자세로 그들과 대화를 해보라. “혹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 있다면 고치겠으니 솔직히 말해 달라”고 말이다.

 

딸이 있다면 딸에게 물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다그치듯 묻지 말고 정말 배우겠다는 자세로 “아빠가 잘못 생각하고 있다면 솔직히 말해다오.” 라고 부탁하면서 물어보라. 아내와도 이런 문제로 진지하게 대화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직장의 상사라면 부하직원들에게 그렇게 진솔하게 물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이런 대화에서 중요한 것은 끝까지 잘 듣는 것이다. 하지만 을이 갑에게 솔직한 얘기를 하기란 쉽지 않다. 자칫 잘못 말했다가는 자신에게 큰 손해나 위기로 되돌아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여 정말로 진지한 자세로 도움을 구해야 한다. 상대가 말을 마치기 전에는 자신의 의도를 변명하고 싶어도 참아야 한다. 갑이 결코 경험하기 어려운 을의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말을 하더라도, 하고 싶은 말이 있더라도, 끝까지 잘 참고 새겨들어야 한다. 그리고 나서 앞서 말한 성찰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결국 갑은 을을 이해하는데 실패할 것이다.

 

4. 남성들이여, 성찰을 합시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갑은 누구인가? 힘이 센 사람이다. 권력이나 돈을 가진 사람이다. 물리적으로는, 남성이 여성에 비해 갑이다. 남자가 대체로 물리적으로 힘이 세니까. 사회적으로도 남성이 여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갑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을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그렇다.

 

그러므로 남자들끼리 모여 대화하고 조언을 구한다고 해서 여성들의 심리나 처지를 온전히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오히려 자신들의 생각과 감정에 더욱 몰입되기 쉽다. 물리적 강자인 서로의 경험과 처지가 비슷하기에, 생각이나 논리 또한 비슷하게 흐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남자들만 모인 단톡방에서 여성의 처지를 이해하기는커녕 자신들의 생각과 감정과 논리가 걸러지지 않은 채 흉측한 모습으로 자주 삐져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번에 스캔들을 일으킨 연예인들의 경우도 그렇게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남자들은 여성에 대해 성찰하고 공부할 필요가 있다. 아무리 선하고 올바른 성품을 가진 남자라도 여성들의 처지와 아픔을 온전히 이해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문제는, 남성 개인이 다른 여성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끼치지는 않는다고 해서 자유로울 수 있는 건 아니다. 여성의 세계에 대한 몰이해로 인해서 다른 남성들이 저지르는 갑질문화에 자신도 모르게 동조하거나 방관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여 모든 남성들은 여성과 동등한 존재로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여성을, 그리고 여성의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공부와 성찰을 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것은 같은 인간으로서의 도리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가족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서, 어머니와 아내와 딸의 행복한 삶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이다.

 

그리고, 만일 이런 마음 훈련에 성공하는 남자들이 많아지면, 여자들의 삶만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세계평화에도 이바지할 수 있는 일이다. 지나친 비약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정말이다.

 

을의 입장을 헤아리는 건 세상의 평화와 맞닿아 있다. 일본의 정치인들이 을의 입장을 헤아리는 마음훈련을 하면, 과거 한반도와 아시아에서 저지른 갑질에 대해 진정으로 마음 깊이 사과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미국이 북한의 처지를 이해하게 될 것이며, 테러리스트들을 다른 방식으로 대할 수 있을 것이다.

 

다행히도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갑의 조직에 속해있으면서도 이런 마음훈련을 통해 을의 처지를 깊이 이해하고, 자신의 조상과 동료들이 저지르는 갑질에 저항하는 많은 시민들이 있다. 일본에도 미국에도 한국에도 있다. 나는 그들을 마음 깊이 존경한다.

 

류상태 선생은 장로회신학대학원 졸업이후 20여 년을 목회자, 종교교사로 사역했지만, 2004년 ‘대광고 강의석군 사건’ 이후 교단에 목사직을 반납하였고, 현재는 종교작가로 활동하면서 ‘기독교의식개혁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지은 책으로는 [교양으로 읽는 세계종교] [소설 콘스탄티누스] [신의 눈물] [한국교회는 예수를 배반했다] [당신들의 예수]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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