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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이 대박? 누가 통일에 대해서 말하는가!
[책동네] ‘개성동영’ 정동영의 <10년 후 통일>, 통일로 가야하는 비전 제시
 
남호정   기사입력  2014/01/13 [21:33]
자신이 사는 곳을 떠나고자 하는 자는 행복하지 않은 사람이다.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작년 10월말에 발표된 갤럽 조사에 의하면 지난 1년동안 우리나라 국민의 18% 특히 30대의 30%가 이민을 심각하게 고려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민을 고려하는 주된 이유가 사회 정치적 불안(30%)과 국내 경제 불황(19%) 이라고 답했다. 견해야 분분하겠지만 이러한 불안과 불황의 주된 이유는 아직도 냉전의 언저리에서 머무르는 한반도내의 갈등과 대결이 근본요인 아닐까.

그런데 여기 무기력한 상태에 빠지지 않고 의연하게 살 수 있다는 저자의 육성을 담은 파란 표지의 책이 있다. <10년 후 통일>, 한반도의 미래, 지승호가 묻고 정동영이 답하다.

▲ 정동영.지승호 지음 <10년 후 통일> 표지 © 정동영.지승호 지음 <10년 후 통일> 도서출판 살림터
이 책의 저자인 정동영 전 통일부장관은 지승호 작가와의 인터뷰에서 우리가 직면해온 과거 20여년간의 한반도 정세를 개괄하고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이제까지의 남북 관계를 설명해준다. 그리고 통일에 관한 구체적인 해법을 제안한다.

독자들은 이 책이 통일의 방법론과 같은 추상적(?)인 문제를 다룸에도 불구하고 참으로 현실적인 논리로 다가옴을 느낄 것이다. 이는 저자가 골방에 갖힌 지식인이나 말만 번지르한 기득권 정치가로서가 아니라 남북대화 현장의 실무책임자로 얻은 지식과 결론을 명쾌하고 솔직하게 말하고 있기 때문인듯하다. 저자는 2007년 대선 이후 녹록치 않은 정치적 부침과 어려움을 겪어오지 않았나. 그러는 가운데 절차탁마(切磋琢磨)한 듯 까다로운 진실을 잘 정제하여 독자들에게 제대로 알려주고 있다. 그는 이 책에서 우리에게 은폐돼 있었던 희망을 보여주고 남과 북이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나가야 하는지를 가리키고 있다.

이 책의 또 한가지 장점은 가려운 곳을 긁어주듯 지난 남북관계에 관한 오도된 진실을 바로잡고, 못보고 있던 사실들을 환기시켜주고 있다는 점이다.

그 중 대표적인‘햇볕정책의 결과로 북은 핵을 만들었다’라는 퍼주기 논란은 국내 정치의 주요 쟁점이자 대 국민 단골 프로파간다였다. 이런 찌질한 주장은 사실 그것이 몇 퍼센트짜리 진실인지 따져보기도 전에 대중의 가난하고 불안한 정서에 빠르고 효과적으로 작용해온 것이 사실이다. ‘지금은 퍼주더라도 조만간 수 백배 더 퍼오지 않을까요’라는 설득은 이미 주류의견이 된 ‘퍼주기 망국’론에 전혀 힘을 발휘 못하는 대답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저자의 말을 인용하며 솔직히 말해 보자.

"핵 위기 20년 동안 핵 개발의 전성기는 이명박 정부 5년이에요."

해법은 이미 나와 있다

지금 우리는 먹고 사는 문제가 고단하고 젊은이들은 앞날이 막막하다. 최근 OECD의 한국 경제 전망에 의하면 2031년 한국의 성장 동력은 고갈되어 성장률 0%가 된다고 한다. 인구는 노령화 돼가고 기업들이 투자할 신 성장 동력도 마땅치 않은 상태에서 한국 경제의 엔진이 꺼지게 된다는 어두운 예상이다.

그런가 하면 정반대의 예측도 있다. 국제 금융시장의 대표적인 기업 중 하나인 골드만 삭스에 의하면 한국은 30~40년 뒤 제조업 강국인 독일과 일본을 제치고 국민소득 8만 5000불에 달하는 세계 2위의 부자국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상이한 전망이 나오는 근거는 무엇일까? 저자는 그것이 바로 남북 경협에 있음을 강조한다. 남한의 기술과 자본이 북한의 노동력과 자원을 만나면 당연히 세계최고의 경쟁력이 확보될 테고, 이로써 한국은 꽉 막힌 숨통이 트여 다시 한 번 경제적 활력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서독시절 빌리 브란트 수상의 오른팔로 동방정책을 설계하여 독일통일의 초석을 마련한 에곤 바르(Egon Bahr)박사는 남북한 경제 협력의 결과물이라는 개성공단에 관한 설명을 듣고 "개성공단 모델이야말로 놀라운 상상력의 산물"이라며 감탄을 했다고 한다. 그는 자신도 동독에 공단을 만들 생각을 미처 못했다며 이것이야 말로 한국형 통일 모델이니 복잡하게 생각 할 것도 없이 "개성공단을 계속 확장하면 중간에 경제통일이 올 것이고 결국에는 한반도의 통일이 올 것이다."라고 했다는 것이다.

▲ 브란트 수상시절 동방정책(Ostpolitik)의 설계자로 유명한 에곤 바( Egon Bahr)와 정동영. 개성공단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정동영 홈페이지
개성공단을 세일즈하러왔습니다–럼스펠드와의회담

이 책의 저자는 확신한다. 비록 지금은 개성공단이 어려운 입장에 처해있지만 오히려 잠정폐쇄로 인해 그 존재가 새삼스레 다시 알려지게 되었고 결국 개성공단은 불사조같이 살아날 것이라고.

고 정주영회장이 처음 공단에 관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김정일 위원장을 만났을 때 군사적으로 굉장히 예민한 지역인 개성이 가능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고 한다. 남측의 강경파들이 우리 기업들이 북한 땅에 들어가 투자 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보는 것과 같이 개성과 같은 주요 군사 지역을 내주는 것에 대한 북한 군부의 불만이 있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 회장은 김 위원장에게 개성공단을 장차 창원공단과 같이 2000만평 규모의 50만 공업도시로 발전시켜 첨단 산업을 유치하는 세계적 수준의 공단으로 만들겠다는 청사진으로 설득을 한다. 그리고 개성공단의 경쟁력이 성공의 관건임을 역설하여 중국이나 베트남의 3분의 1수준에서 임금과 토지비용을 협상한다.

그 후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듯 했던 개성공단 프로젝트는 그러나 미국의 ‘속도조절론’ 이라는 벽에 부딪히게 된다. 북한은 미국의 적성국가로 분류되어 공단설립에 필요한 물자 중 미국의 지적 재산권이 일정 수준 들어간 품목을 북으로 반입시키려면 미국 상무성의 허가를 받아야 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2004년 6월 통일부 장관이 되자 마자 개성공단 허가에 필요한 제반 준비를 서둘러, NSC, 즉 국가 안전보장회의 상임위원장의 자격으로 방미한다. 그리고 당시 부시 행정부 네오콘의 수장인 럼스펠드 국방장관을 만나 개성공단에 관한 대북 강경파의 생각을 바꾸어 놓는다. 저자는 럼스펠트에게"철조망, DMZ군사 분계선 너머의 북한 영토를 준다는 것인데, 그걸 하지 마라, 속도 조절하라고 하는 것은 이해할 수가 없다. 북의 병력과 화력이 밀집한 부대 주둔지역을 비워 준다는데 멈출 이유가 어디 있느냐"고 하였고, 결국 럼스펠드를 통해 부시대통령의 개성공단 승인을 얻게 된다.

이후 개성공단은 미국의 적극적인 협조에 힘입어 저자가 통일부 장관이 된 후 6개월 만인 2004년 12월 15일 그 첫 번째 생산품을 선보이게 된다.

▲ 정동영-럼스펠드 회담. 정동영은 럼스펠드에게 개성공단의 군사 전략적 가치를 설명한다. © 정동영 홈페이지
보수세력들의 부정적인 시각에도 불구하고 개성공단과 같은 남북 경협은 우리에게 안보상의 도움뿐 아니라 꽉 막힌 경제의 활력소가 될 것이다. 저자는 개성공단에 들어가려고 기업들이 줄을 섰던 예를 들며 이들이 안심하고 돈을 벌 수 있도록 정부가 마땅히 정치적 불안을 해소해 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 멀리 전쟁터나 밀림오지까지도 이익이 있으면 마다 않고 나가려는 기업가들인데 정치적인 불안만 없으면 다 들어가고 싶어 하는 곳이 바로 개성공단이라는 것이다.

지금 개성공단에 입주한 123개 공장 전 회사가 흑자라고 한다. 개성공단은 현재 물리적인 규모 상으로는 원래 계획도의 64분의 1수준일 뿐인데도 그 생산액은 지난 2012년 한국 GDP성장 기여율의 0.02%를 차지 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북의 경협으로 북의 근로자들에게 지불되는 돈이 북한 정권의 자금으로 쓰일 수 있다는 협소한 시각이 만연돼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저자는 이런 대북 압박과 단절이 북한으로 하여금 군대와 핵무기를 포기하도록 할 것이라는 바램은 헛된 것이라고 말한다. 오히려 결과적으로 우리는 사면이 막힌 섬나라가 돼버린다는 자충수를 두게 되고 또한 중국 자본의 대북 진출을 더욱 촉진 시켜 북한 중국간의 긴밀한 공조를 초래시킬 뿐 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남북경협을 확대시켜나가 북측 사회에 자본주의 시스템을 노출시킴으로 중국이나 베트남과 같은 개방 모델을 따르도록 변화를 유도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에는 다음과 같은 유명한 구절이 있다.

우리가 저녁식사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정육점 주인이나 양조장 주인, 또는 빵집 주인의 자비심 때문이 아니라 이익을 추구하는 그들의 관심 덕분이다.

저자는 정부의 정책에 따라 공단에 투자를 해놓고 정치적 불안으로 속만 끓이고 있는 개성공단 입주 사업체들을 보며 안타까워한다.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인들이 종북을 걱정해야 하다니"…

포용정책은 결코 유약한 정책이 아니다.

다윈의 <종의 기원>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살아남는 종은 가장 강한 종도, 가장 지능이 높은 종도 아니다. 변화에 가장 빠르게 적응하는 종이다.

저자는 이제 남측이 자신감을 가지고 변화하는 국제 정세를 읽고 남북관계에 주도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북한의 갑작스러운 붕괴로 탈북자들이 한꺼번에 내려왔을 땐 남한사회가 이를 감당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그리고 미국과 일본의 군사력을 믿고 대북 강경책으로 북을 붕괴시키라는 강경론자들의 주장은‘어리석다’고 말한다. 게다가 북한은 "무너진다고 해도 우리한테 흡수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지난 60여 년간 미국과 일본을 위시한 한반도 이해관계국들의 분단 고착화 정책을 감내하며 살아왔다. 한반도 현상 유지가 한반도 주변 4대 강국의 국익이라는 것이다. 특히 일본은 미국의 하청을 받아 동북아시아의 안보 관리자를 자처하며 자국 방위의 외연을 확대하려 하고 있다. 이제 일본은 북한과 중국을 상대로 한국정부와 군사정보를 공유하며 나아가 정치적 목적까지 공유하려 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북한의 위협으로부터 한국을 지켜주겠다는 명분에 이끌려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과 일본이 한반도에서 벌이는 제 2청일전쟁의 구도를 용인할 것인가? 한국의 소위 보수들은 일본과 손을 잡고 북한에 맞서야 한다고 생각을 한다. 일본은 지금도 한국 군의 두 배에 해당되는 예산을 지출하는 세계 6위의 군사 대국이다. 또한 일본은 패전 이후 전쟁 포기를 명시한 평화 헌법 9조를 개정하고 재무장을 하려고 한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나면 이 땅에 사는 우리는 어떻게 될까? 북의 전술 핵은 차치하더라도 이 땅에는 현재 남북 합쳐 수 십 기의 핵발전소와 핵 시설이 돌아가고 있는 현실이다. 미국은 한국에서 전시 핵무기 사용을 정당화 하고 있다. 핵전쟁 시나리오를 포함한 군사 훈련의 실시는 이런 미국의 의도를 보여준다. 전쟁이 나면 우리측이 이기더라도 아마 많은 인구는 살아서 승리를 못 볼 것이고 한반도의 땅과 물은 돌이킬 수 없이 오염돼버릴것이다. 다 죽고 폐허가 된 후의 승리는 누구에게 의미가 있는 것일까? 이 나라의 정치가들이 진정 해야 할 일은 전쟁 대신 외교와 대화로 국민의 이익과 평화를 지키는 것이 아닐까? 옛말에 옥이 나오는 곤륜산에 화염이 덮치면, 옥과 돌을 모두 불태운다고 하였다.

저자는 역설한다. 우리가 무엇보다 전시작전권을 찾아와야 한다고. "군사적 충돌의 위험과 전쟁의 수행을 미국이 결정하도록 하고 우리는 따라간다 라는 생각으로는 우리의 앞날을 스스로 결정하기란 힘듭니다.

그는 반문한다. 남북 합쳐 180만 대군이 서로 대치하며 남북이 서로를 적대하는데 어느 나라가 평화 체제를 만들어 줄 것이며 또 어떤 나라가 뭐가 답답하다고 앞장 서겠는가" 결국 한반도에서 우리가 계속 살기 위해선 남과 북이 손을 맞잡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대륙으로 가는 길

대륙 철도의 한 축이었던 경의선과 동해선은 십년 전부터 이어져있다. 한반도 종단 철도와 시베리아 횡단철도(TSR)를 연결하는 사업은 2011년에 완성을 보았다. 2010년에는 러시아 철도공사의 자회사(트랜스 컨테이너 물류)가 서울에 설립이 되어 육로를 통한 대륙과의 물류수송시장을 담당하고 있다. 이제 기차로 부산역에서 출발하여 모스크바역을 거쳐 파리까지 대륙을 횡단할 수 있는 철로가 완성된 채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우리의 KTX는 서울에서 부산까지 400Km만 다니는 것이 아니라 장차 모스크바 런던까지 연결될 황금노다지 노선이 아니던가! (물론 민영화가 되면 업자들에게 그렇겠지만)

▲ 정동영은 2013년 8월 서울을 출발 블라디보스톸에서 시베리아 대륙횡단 열차를 타고 바이칼호까지 현지를 답사하고 돌아왔다. © 정동영 홈페이지

우리는 이 사람을 알고 있었나?

필자는 정치가로서 정동영을 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책 <10년 후 통일>을 읽어보니 정동영씨가 참 참신한 분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동안 우리는 정동영이라는 정치가의 진심과 역량을 제대로 평가하고 있었을까.

그는 여론몰이의 희생양으로 대중들에게 한때 멀어졌던 정치인이었다. 2004년 제17대 총선 당시, 저자는 젊은 층의 정치적 관심과 참여를 독려하는 취지의 인터뷰에서 노인폄하로 오해를 받을 수 있는 단 한 줄의 문장으로 선거 대책 위원장 직을 사임해야만 했었다. 나치독일의 선전 부장 괴벨스는"나에게 한 문장만 달라, 그러면 누구든 죄인으로 만들 수 있다"라고 하지 않았던가. 이러한 연장선상에서 맞이한 2007년 대통령 선거는 결국 그에게 뼈아픈 패배를 가져다 주었다. 선거 후 그는 엄청난 절망과 마주해야 했을 것이다.

우리는 지금 한반도의 상황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국제사회에서 말발을 세울 수 있는 네트워크와 실력을 가진 선한 의도의 정치가가 정말 필요한 때이다. 정동영의 앞날의 여정은 예측할 순 없으나 한반도와 남북을 둘러싼 힘의 대결이라는 도전에 직면한 우리에게 꼭 필요한 정치가가 아닐까 생각된다.

좋은 책은 사람을 변화시킨다. 이 책이 고마운 것은 비록 지금은 어렵지만 우리 장래를 낙관할 수 있을 좌표를 제시해 준다는 점이다. 행동하는 현실 정치가로서 저자는 우리가 쥐고 있었던 카드를 가리키며 이렇게 말을 걸어 오는 듯하다. .

아직 우리는 통일이라는 막강한 히든카드가 있습니다!

* 편집실 주: 글쓴이는 대학에서 철학전공하고 현재 프리랜스 작가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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