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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와 이승만에게 낀 김대중을 빼내야 한다
故 김대중 전대통령 3주기..오동명의 화보집 <사랑의 승리> 눈길
 
김철관   기사입력  2012/08/23 [10:36]
▲ 김대중의 <마지막 일기>     © 김철관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3주기를 맞아 서거 직전에 썼던 일기가 가슴을 울컥하게 한다. 또 야당 총재 시절, 가끔 대화를 나눈 오동명 <중앙일보> 전 사진기자의 빛바랜 사진을 모은 <사랑의 승자>라는 화보집이 인간 김대중의 슬기로운 삶과 인생의 궤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지난 18일 오전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3주기 추도식이 서울 동작동 국립 현충원 현충관에서 열렸다. 물론 헌화와 묘소 참배도 이어졌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한 지난 2009년은 김수환 추기경, 노무현 전 대통령 등 성직자, 국가 원수들이 유명을 달리한 한 해였다. 졸지에 두 전직 대통령이 한 해에 사망한 해이기도 하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 보다 앞서 김수환 추기경(2월 16일)이 영면했고, 5월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했다. 석 달 뒤에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했다. 그래서 2009년은 애도의 한해였다. 85세 노구에, 몸도 불편해 투석 중이었던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먼저 세상을 등진 김수환 추기경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문상을 다녀오기도 했다.

그해 2월 17일 고 김수환 추기경이 안치된 명동성당을 다녀와 다음과 같은 일기를 남겼다,

“명동성당에 안치된 김수환 추기경의 시신 앞에서 감사를 드리고 천국영생을 빌었다. 평소 얼굴 모습보다 더 맑은 얼굴 모습이었다. 역시 위대한 성직자의 사후 모습이구나 하는 감동을 받았다.”

그는 5월 23일 자고 나니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전해 듣는다. 노무현 대통령이 자살했다는 보도 때문이었다. 그날 일기를 보면 그의 심정이 잘 표현돼 있다.

“슬프고 충격적이다. 그간 검찰이 너무도 가혹하게 수사를 했다. 노 대통령, 부인, 아들, 딸, 형, 조카사위 등 마치 소탕적전을 하듯 공격했다. 그리고 매일같이 수사기밀 발표가 금지된 법을 어기며 언론플레이를 했다. 그리고 노 대통령의 신병을 구속하느니 마느니 등 심리적 압박을 계속했다. 결국 노 대통령의 자살은 강요된 거나 마찬가지다.”

바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하기 한 달 전인 4월 16일에도 김 전 대통령은 노 대통령을 염려하는 글을 남겼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일가와 인척, 측근들이 줄지어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노 대통령도 사법처리 될 모양, 큰 불행이다. 노 대통령 개인을 위해서도, 야당을 위해서도, 같은 진보 진영 대통령이었던 나를 위해서도 불행이다. 노 대통령이 잘 대응하기를 바란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1월 6일 85회 생일을 맞는다. “오늘은 85회 생일이다. 돌아보면 파란만장한 인생이었다. 그러나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 투쟁한 인생이었고, 경제를 살리고 남북 화해의 길을 여는 혼신의 노력을 기울인 인생이었다. 내가 살아온 길에 미흡한 점은 있으나 후회는 없다.”

이 일기를 쓴 후 약 보름 만인 1월 20일 철거민이 죽고 부상당한 ‘용산 철거민 사태’가 벌어진다. “용산구의 건물 철거 과정에서 단속 경찰의 난폭한 진압으로 5인이 죽고 10여 인이 부상 입원했다. 참으로 야만적인 처사다. 이 추운 겨울에 쫓겨나는 빈민들의 처지가 너무 눈물겹다.”

바로 이명박 정부를 향한 야만적인 처사를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이 글을 쓰기 바로 전인 1월 16일 일기에도 “역사상 모든 독재들은 자기만을 잘 대비해서 전철을 밟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결국 전철을 밟거나 역사의 가혹한 심판을 받는다”고 이명박 대통령을 향한 쓴 소리를 했다.

▲ 오동명의 <사랑의 승자>. '김대중, 빛바랜 사진으로 묻는 오래된 약속'이란 부제가 눈길을 끈다.     © 김철관
한편, 지난 8월 8일 제주도에 있는 선배가 한 인터넷언론사 대표를 하고 있는 친구에게로 책과 화보집을 보내왔다. 그 친구는 두 권의 책(화보집 <사랑의 승리>, 에세이< 웃지마라 이것도 내인생이다>)을 다 읽었고 봤다면서 나를 주면서 서평을 부탁했다. 화보집은 김대중의 <마지막일기> 5월 20일자 일기를 발췌해 <사랑의 승리>라는 제목을 붙였고, 화보집 제목으로도 사용했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재직한 국민의정부 때 <중앙일보>에 대해 언론의 자기반성을 촉구하는, 대자보를 붙이고 <중앙일보>를 영원히 떠난 오동명 전 사진기자가 촬영하고 쓴 <사랑의 승자>(생각비행, 2010년 8월 18일) 화보집이 눈길을 끌었다. 과거 잘알고 지낸 선배의 책이라서 더욱 관심이 갔다.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1주기인 2010년 8월 18일 발행한 것으로 보아 1주기를 맞아 세상에 내놓았지만 가족, 측근 등을 포함해서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적어 묻힐 뻔 한 화보집이었다.

마치 고 김대중 대통령 3주기를 맞은 시점에서 화보집의 의미가 새롭게 다가왔다. 그래서 열심히 읽고 봤다.

특히 저자는 서문을 통해 "박정희와 이승만에게 끼어 있는 김대중을 현충원에서 빼내오고 싶다"는 글이 솔깃하게 다가왔다. 하지만 이로 인해 오히려 가족과 측근들에게 욕을 먹었다고...

그와 김대중 대통령과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될까. 1991년 야당 총재 시절의 화장실에서였다.

“나는 사진기자로 활동할 당시(1991년) 꽤 유명한 사람을 화장실에서 만났다. 앞의 힌 벽을 마주 보고 갗이 오줌을 눈 것이다. 내가 좀 빨리 끝내고 종이 수건을 잡아당겨 손을 닦는데 그 분이 뒤에서 물었다. ‘어디 기자이신가?’ 나는 어디 기자라고 대답했다. ‘한 장으로도 충분히 손을 닦을 수 있지 않겠소?’ 무심코 빼낸 종이 수건은 두 장이었다. ‘아아 죄송합니다.’ 얼떨결에 잘못을 시인했다. 이어서 내가 물었다. ‘근데 다른 기자에게도 이런 말을 서슴없이 하시나요?’ 사진기자라고 얕보고 이러나 싶어서였다...‘그럼 같은 상황에서 다른 말을 할 수 있겠소?’ 묵례를 하고 그는 총재실로, 나는 기자실로 각자 가야할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저자 오동명은 야댱 총재 시절과 대통령 당선 직후 담은 사진 몇 종을 프린트해 보관해뒀다. 하지만 그가 위인(대통령, 노벨상)이 되고 난 뒤, 잊고 지냈다. 시간이 흘어 김 대통령이 사망하고 난후 그에 대한 애증이 꿈틀거렸다는 것. 화보를 낸 이유이기도 하다.

“김대중이라는 사람을 우리 5000년 역사에 세종이나 이순신 같은 국내 위인이 아닌 국제적 위인으로 손꼽을 선인으로 보고 있다. 우연히도 난 그와 오줌도 같이 눠봤고, 그의 말을 가까이에서 들을 기회도 있었다.”

1993년 1월 25일 대통령 선거에서 낙마한 그가 영국으로 출국하던 날 동료기자들을 통해 한 권의 선물을 받았는데 바로 <사랑하는 가족에게 :김대중 옥중서신 모음>이었다.

“김 후보가 낙선 후 영국으로 나간 다는 말을 듣고 인사차 신문사에 들른 비서실장을 통해 그가 활짝 웃는 모습을 찍은 사진 한 장을 전해 달라고 했다. 그 사진 뒤에 ‘돌아오실 땐 예전에 국민과 약속한 '한국현대사'를 써 가지고 사진처럼 웃는 얼굴로 다시 국민과 만날 수 있길 바란다’고 적었다. 바로 이 사진에 대한 보답이 바로 <사랑하는 가족에게 : 김대중 옥중서신 모음>이었다. 김대중 후보는 이 책에 친필로 ‘사진 감사합니다. 오 기자의 간곡한 격려말씀도요’라고 적혀 있었다.”

화보에서 인용한 글의 상당수는 김대중 선생의 쓴 옥중서신을 인용했다고도 그는 밝히고 있다.

또 그는 “천진한 건지 천민적인 건지는 몰라도 저자의 천성이 김대중이란 인물을 가만히 내버려두지 못하게 한다”면서 “국민을 떠나 박정희와 이승만 사이에 들어가 쉬고 있다는 사실이 못마땅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현충원 안의 김대중은, 자기평생 삶을 스스로 부정하고 국민으로부터 불신을 얻는 옥중서신에서 조선 왕조에 대한 말한 바 있었던 지기형벌이 될 수 있다. ...죽음이후 삶이 더 고귀하다며 예수를 기억하면서 인간으로 감히 겪기 어려운 최악의 역경과 극악의 치욕을 이겨냈다. 그러나 지금 그는 부활을 꿈꾸기는커녕 살아서의 꿈이었던 진정한 자유인마저 저버리고 죽어서는 갇힌 부자유인으로서의 길을 선택하고만 꼴이 됐다.”

이에 “김대중을 진정한 자유인으로 만들어 주고 싶다”면서 “속(현충원)에 갇혀 있지 말고 자유롭게 금수강산을 떠돌게 하고 싶다”고 밝혔다.

“김대중의 편지에선 유난히 사랑이란 단어가 많이 나오며 또 자유라는 단어도 눈에 띈다. 그는 거의 평생을 구속과 속박, 질시 속에서 살아왔지만 진정한 자유인이 되고 싶었던 것 같다. 김대중을 진정한 자유인으로 만들어 주고 싶다. 속(현충원)에 갇혀 있지 말고 자유롭게 금수강산을 떠돌게 하고 싶다. 그래서 죽어서도 국민과 함께 하고 싶다. 살아생전 타의에 의해 그리 많은 기간을 집에 갇혀(연금) 살았는데, 죽어서도 스스로 감금생활을 자초하다니,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

그는 "가족들과 측근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면서 "이승만과 박정희 사이에 끼어 있는 김대중을 현충원 밖으로 나와 진정한 자유인을 만들었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화보집은 유난히 하품 장면이 많다. 1991년4월 26일 강경대 열사 장례식이 끝나고 거리행진을 할 때 야당 총재인 그에게 전경이 분말 체류가스를 얼굴에 뿌려 고통스럽지만 골목길로 참고 걸어가는 사진은 야당 총재에게 까지 체류가스를 뿌리는 당시 노태우 정권의 속성을 잘 대변하고 있다.

꽃을 가꾸는 모습, 신문을 읽는 모습, 독서 하는 모습, 측근과 대화하는 모습, 이희호 여사의 해맑은 웃음, 다리가 불편한데도 측근들의 도움을 받아 장애아를 안은 모습, 야당 대통령 후보들이 한 자리에 모여 애써 미소를 짓는 모습 등이 실려 있다.

특히 3 후보 회담 때 김대중 후보는 하품을, 간 지러 코를 만지는 김영삼 후보, 고개를 숙이는 정주영 후보의 모습이 사뭇 했고, 취임시간이 촉박해 돌아서려 당선자와 손을 내밀고 있는 아이의 모습, 끝내 악수를 못한 아이의 모습(사진)이 아쉽게 느껴진다.

당선자 부부가 국회로 떠난 후, 서성거리는 일산집 주변 주민들과 홀로 남은 개의 모습은 애처롭기만 하다.

화보는 ▲인연(서문)-국민과 영원히 함께하는 대통령을 꿈꾸며 ▲인생(화보)-하품, 기회, 양심, 소외, 보복, 독서광, 꽃, 자유, 그리움, 이희호, 오해, 가족, 원칙과 가치, 업적, 믿음, 경청, 침묵, 도덕성 결핍, 핑계, 피로, 회담, 선택, 용서, 유언비어, 임기웅변, 희망, 위로, 똘똘이, 우리, 우상화, 꼬마소원- ▲책을 닫으며 : 끝내며, 다시 ▲부록(사진색인) 등으로 구성됐다.

마지막으로 그는 2009년 8월 18일 고 김대중 전 대통령 영결식 때 나눠준 <마지막일기> 5월 20일자 글에 ‘사랑의 승자’라는 제목을 붙였고, '화보'의 제목 역시 <사랑의 승자>로 붙였다. 서거 3개월 전의 일기이다.

사랑의 승자

걷기가 다시 힘들다.
집안에서 조차 휠체어를 탈 때가 있다.
그러나 나는 행복하다.
좋은 아내가 건강하게 옆에 있다.
나를 도와주는 비서들이 성심성의 애쓰고 있다.
85세의 나이지만
세계가 잊지 않고 초청하고 찾아온다.
감사하고 보람 있는 생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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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2/08/23 [10:36]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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