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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명 숨진 '용산철거'…겨우 '주차장' 만드려고?
철거민 사면·진상 규명·책임자 처벌 등에 정부, '묵묵부답'
 
고무성   기사입력  2012/01/20 [18:41]
철거민 5명과 경찰특공대원 1명의 목숨을 앗아간 '용산참사'가 20일로 3주기를 맞았다.

유족들이 요구하는 철거민 사면과 진상 규명, 책임자 처벌 등에 정부는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하지만 3년 동안 희망의 씨앗도 싹텄다. 희생이 컸던 만큼 재개발을 놓고 정부와 시공사가 사회적 시선과 우려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작은 용산'으로 불렸던 두리반과 '제2의 용산'으로 통하는 명동 카페마리에서, 철거민들은 용역들과 적지 않은 충돌을 겪었지만 큰 희생 없이 사태가 해결됐던 게 대표적이다.

소설가 유채림(51)·안종녀(53.여) 씨 부부가 운영하는 홍대 앞 국숫집 두리반. 지난 2007년 주변에 공항철도역 공사가 시작되면서 건물이 팔려 제대로 된 보상도 없이 쫓겨날 상황이었다. 그리곤 지난 2009년 12월 이곳에 철거용역들이 갑자기 들이닥쳤다.

두리반의 소식을 접한 용산참사 유족들은 가족을 잃은 슬픔을 잠시 뒤로한 채 한 걸음에 달려왔다. “자신들과 똑같은 상황에 놓인 두리반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는 게 용산참사 희생자인 고(故) 양회성 씨의 부인 전재숙 씨의 말이다. 여기에 시민단체 활동가와 문화예술인, 홍대 주변 인디음악가들도 힘을 보탰다.

결국, ‘작은 용산’의 농성은 유 씨 부부가 홍대 주변에 두리반을 다시 열 수 있는 금액을 시행사로부터 지원받게 됨에 따라 531일 만에 무사히 막을 내렸다.

지난해 4월에는 서울 명동 3구역의 세입자와 용역업체 직원 사이에 농성장인 '카페마리'를 놓고 뺏고 뺏기는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각목과 소화기 등이 동원돼 용역업체 직원과 세입자 등 부상자가 속출했다. 충돌은 장기화될 조짐을 보였지만 2개월여 만에 극적으로 협상이 타결됐다.

이원호 용산참사 3주기 추모준비위원회 사무국장은 "철거민들이 희생된 뒤에야 대책이 나와서는 안 된다는 것을 용산참사가 한 번의 충격적인 사건으로 보여줬다"고 강조했다.

이어 "두리반과 카페마리가 제도적으로 이어져 해결된 것은 아니지만 용산참사를 통해 많은 시민들이 개발 문제에 대해 남의 일처럼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제2의 용산참사 재발을 막기 위한 법안도 지난 18일 발의됐다. 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 등 인권시민사회단체는 정동영 민주통합당 의원 등 국회의원 33명과 함께 강제퇴거금지법을 발의했다.

법안의 주요 내용은 불법 철거·퇴거 현장 내 폭력행위 금지 및 위반 시 형사처벌 조항 신설, 국가인권위원회가 권고한 퇴거 금지 시기(일출 전과 일몰 후, 공휴일, 겨울철, 악천후) 명시, 재정착대책의 구체적 내용 명시 등이다.

이밖에 용산참사 직후 상가 세입자에게 주는 영업손실보상비를 3개월에서 4개월로 늘리는 방안과 자치단체장이 재개발의 전 과정을 관리하는 제도 등이 시행됐다.

하지만 철거민 유족은 아직도 아물지 않은 상처를 안고 산다.

전재숙 씨는 "당시 진압 작전의 책임자였던 전 경찰청장 후보자는 일본 오사카 총영사가 되더니 8개월 만에 총선 출마를 선언했다"며 "검찰의 왜곡된 주장만을 받아들여 철거민들에게만 중형을 확정 판결한 양승태 판사는 대법원장으로 임명됐다"고 울분을 터뜨렸다.

용산참사 당시 망루에 올라갔던 이충연 씨를 비롯한 7명은 지난 2010년 11월 대법원에서 징역 4~5년의 실형이 확정돼 수감돼 있다.

유족 측은 최근 이들에 대해 설맞이 특별사면을 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지난 10일 발표된 사면대상자 명단에 이들의 이름은 포함되지 않았다.

고(故) 이상림 씨의 부인이자 이충연 씨의 어머니 김영덕(70) 씨는 "사람들은 우리가 많은 보상금을 받은 줄 아는데 당시 남편의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병원 영안실에서 355일 동안 정부와 다시 한 번 싸우다가 오히려 빚이 더 많아졌다"고 토로했다.

김 씨는 "결혼 8개월 만에 감옥에 간 아들과 추모준비위원회에서 정부와 싸우는 며느리를 보면 아파도 아프다고 하면 안 된다"며 "수십 년 수백 년이 걸리더라도 진상을 밝히기 위해 싸울 것"이라고 다짐했다.

참사를 일으키면서까지 철거를 서둘렀던 남일당 건물 일대는 공터만 남아 지금은 주차장 용도로 쓰이고 있다.

조합은 시공사와 추가 분담금 문제 등으로 갈등을 빚고 현재 새로운 시공업체를 모집 중이다.

또, 강제철거를 놓고 서울만해도 서대문구 북아현동 뉴타운과 동작구 상도4동, 중구 명동2, 4구역, 서초구 현인마을 등에서 용역과 세입자들간에 크고 작은 충돌이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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