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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면제자에게 화풀이는 그만하라
[정문순 칼럼] 약자 배제를 통해 남성을 만드는 군대, 민주적 통제가 답
 
정문순   기사입력  2011/07/25 [14:13]
군 면제자로서, 군대에 갔다 와야 했던 남자들에게는 얼마간의 안쓰러움과 미안함을 느낀다. 남자들 덕분에 나는 분단조국에서 태어난 억울함을 절감할 일이 없도록 팔자 편하게 살아왔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해병대 총기난사 사건 같은 것을 접하고 보니 멋있고 늠름한 군인에 대한 환상에서 깨어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계급에 목숨을 거는 군대에서 고참 병사가 신참 후임병까지 가세한 왕따와 가혹행위를 당하는 일이 다른 군대도 아닌 천하의 해병대에서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 군대는 연령도, 학벌도, 사회적 지위도, 출신 지역도 따지지 않고, 오로지 계급과 짬밥 크기만 따지는 사회가 아니었나. 귀신도 잡는다는 군대가 어떻게 했기에 동료병사 잡는 일이 시급히 풀어야 할 과제가 되었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달리 생각해보면, 결속력을 요구하는 조직일수록 왕따가 나올 가능성은 높아지기 쉬울 것이다. 집단의 단합을 강조하는 조직이라면 각자의 차이에 대해 너그러워져야 할 것 같지만, 조금이라도 다른 점은 어떻게든 색출하여 배제하려고 드는 것이 현실이다. 합심을 빌미로 한 가지 기준이나 잣대만 적용되는 집단에서는 눈에 띄거나 별스럽게 보이는 사람은 조직의 발전을 방해하는 이물질로 취급될 수밖에 없다. 

평균적인 기준에 맞지 않는 사람을 집단의 응집력을 가로막는 훼방꾼으로 지목하고 솎아내는 것은, 조직에서 배제되는 불운을 겪지 않은 다수에게 자기 색깔을 스스로 죽이도록 자기검열을 주입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남은 것은 주변 눈치를 보는 데 능하고 힘의 논리에 고분고분히 따름으로써 모두가 바보가 되는 일체감뿐이다. 군대 지배층은 그런 일체감을 통해 병사들이 시키는 대로 명령을 따르는 것밖에 모르는, 전쟁 대비에 가장 적합한 몸이 되었다고 믿는다. 그래서 기수열외 문제가 수차례 불거졌어도 뜯어고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조직 속의 부속품이 될 것을 강요받은 자에게 자긍심이나 자기 존중이 깃들일 공간은 없으며, 자신을 사랑할 줄 모르는 자가 남의 처지를 헤아리는 사람이 되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군대 가서 몸만 고생한 것이 아니라 군대가 바라는 인간형으로 다시 태어나 사회에 복귀하는 남자들이, 자신과 처지가 다른 이들을 얼마나 존중할 수 있을까. 군대에서 배웠던 대로 자신의 기준에 맞지 않는 이를 괄시하고 깔아뭉개고 싶은 유혹과 늘 싸워야 할 것이다.

제대 군인들이 군에서 받은 영혼의 상처를 비뚤어진 남성 우월주의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무시를 통해 푸는 것은 저급하면서도 손쉬운 선택이다. 누구 덕분에 여자들이 태평하게 살거나 자신들이 피땀 흘린 곳에 무임승차하고 있다는 남자들의 생각은 과녁을 엉뚱하게 겨냥한 것 같아 안타깝기 그지없다. 제대군인 가산점 따위에 집착하는 남자들의 피해의식은 자신과 남을 사랑하고 다른 점을 용인할 수 있는 넉넉한 존재가 될 기회를 박탈한 군대로 향해져야 마땅하다.

그러나 자긍심을 제대로 배우지 않은 이들이 자신을 괴롭힌 존재에게 저항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군대를 욕하자니 자신의 젊은 날을 스스로 부정하는 것 같고, 군대를 떠받들자니 여자들에게 피해의식을 겨눌 기회를 날려버리는 것 같으니, 남자들의 필요에 따라 군대는 신성한 병역의 의무를 치른 곳이 되기도 하고 여자들 지키느라 개고생을 한 곳으로도 탈바꿈한다.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야외 훈련 중인 군인이 살아있는 뱀을 날로 잡아먹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저 병사는 자신의 엽기적인 행동에 대해 우월감 같은 것을 느끼지 않고도 저 상황을 감당할 수 있을까, 그가 제대 후에 자신과 같은 일을 겪지 못한 병역면제자를 어떻게 대할까 생각하니, 병사의 마음 상태가 심히 걱정되었다.

아무리 군대가 특수한 곳이라고 하지만, 군인이 사회에 복귀한 후에는 평범한 생활인으로 남과 어울려 살아야 할 사람임을 가르치지 않는 군대가 문제의 핵심이다. 군대에 대한 민주적 통제 외에는 답이 없다. 

^ 본문은 7월 22일자 <경남도민일보>에 게재한 글입니다.

* <대자보> 편집위원, 문학평론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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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1/07/25 [14:13]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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