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보서적의 퇴장과 '향토서점 도미노' 우려동보서적이 지난달 30일을 끝으로 폐점했다. 동보서적은 부산권 최대 향토서점이다. 1980년 12월 3일 시작해 30년만인 올해 부산 최고의 상권인 서면의 중심지에서 물러났다. 1980년 100평 짜리 동보서적은 폐점 당시 600평 수준으로 컸지만 최근 10년은 '겨우 버티는' 수준이었다.
▲ 폐점한 동보서적. 여전히 동보서적은 부산사람들의 '만남의 장소'다. © 대자보 | |
동보서적의 퇴장으로 부산권 최대 향토서점이 된 영광도서도 동보서적의 전철을 밟을지도 모른다. 부산일보 보도에 따르면 영광도서 김윤환 대표는 "경영이라기보다는 버틴다는 표현이 맞다. 실속으로 따지면 서점 운영보다는 건물 임대수익을 노리는 게 합리적이다. 이대로 가다간 지역 향토 서점은 씨가 마를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유일의 온라인 서평지, 부산청소년연극제 개최, 요산문화제 독후감 공모, 정기 독자-지역 작가의 만남, 정기 문화기행 등 '동보서적'만이 할 수 있는 일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다. 서울 자본의 끊임없는 침투로 부산 지역문화는 깊은 수렁에 빠지게 되었다.
서면은 부산의 상권의 핵심으로 자리매김해왔다. 부산이 '소비도시'가 될수록 서면의 역할은 커졌다. 센텀시티(신세계백화점, 롯데백화점, 홈플러스)가 2000년대 생겼다고 하지만 고급 상권을 중심으로 일부만 옮겨갔을 뿐이다.
서면에서 부산의 향토서점으로 굳건히 지켜온 동보서적과 영광도서는 '소비도시' 부산의 상징이었다. 1980년부터 2000년까지 그들은 전성기를 누렸고 서울 자본의 영풍문고도 서면 서점시장에서 퇴출시킬 정도였다.
그러나 지금은 부산의 향토서점 전체의 위기가 '본격화'되고 '가시화'됐음을 동보서적이 보여줬다. 동보서적과 영광도서에 밀려 서면에서 퇴출된 영풍문고는 다시 부산 상권에 진입했다. 지난 7월 개장한 롯데백화점 남포점에 입점한 것이다. 동시에 남포동 상권에 자리잡았던 '문우당서점'이 매달 매출이 20% 이상 급감했다.
부산권 향토서점은 최대위기를 맞았다. 위기는 더 가속화 될 조짐이다. 보유 권수가 65만 권에 달해 부산소재 교보문고보다 훨신 많았던 '부산 최대 서점' 동보서적도 무너진 상황에 지역 내 대형 향토서점들이 생존하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
2003년 전국 서점이 3천589개에서 2009년 2천846개로 줄어드는 동안 부산은 301개에서 238개로 줄었다. 부산의 서점 감소율은 전국 서점 감소율의 10%나 차지하고 있다. 2000년 이후 소비도시 부산의 방향이 '서울행 소비도시'로 바뀐 결과다.
'서울행 소비도시'가 된 부산, 서울의 수탈 대상이 되다 동보서적의 폐점은 부산 상권이 10년동안 줄기차게 '서울행 소비도시'로 변모해온 뇌관이 터진 셈이다. 이제 서울의 자본이 지역의 문화자본까지 파탄내는 것이다.
▲ 제2의 동보서적, 제2의 태화백화점은 누가 될 것인가. 향토자본들의 현실은 어느 누가 먼저 무너지느냐 시간 싸움이다. © 대자보 | |
그 신호탄은 '서면'에서 시작됐다. 동보서적 옆에 위치했던 '태화백화점'의 부도였다. 소비도시 부산의 전매특허인 서면의 중심가를 서울 자본이 장악하는 첫 발이었다. 1997년 IMF 때문이 아니라 롯데백화점(서면), 현대백화점(중앙동)의 부산시장 진출로 향토백화점들이 줄줄이 도산 한 것이다.
부산시민들에게 추억으로 남은 태화백화점, 부산백화점, 미화당 등 7곳의 향토백화점이 이때 부도를 맞이했다. 태화백화점 사장 투신자살이란 비극까지 벌어진 당시, 그 어느 누구도 이 일이 부산은 곧 '서울행 소비도시'가 되리라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후 2002년 교보문고의 부산 상권 진입을 막지 못하면서 서점시장도 서울 자본의 쓰나미가 불어왔다. 교보문고는 서면점을 외에도 신세계백화점 센텀점에도 입점했다. 영풍문고는 해운대역 앞 스펀지에 이어 롯데백화점 남포점에 입점하면서 부산 상권에서 안정적인 정착을 이뤘다.
여기에 인터넷서점의 가파른 상승세는 향토 서점의 몰락의 결정타였다. 2004년 출판시장 규모의 15.9%에 불과했으나 2009년에는 40%까지 증가했다. 작년 하반기부터는 인터넷서점들이 '부산, 경남지역도 당일 배송'을 내걸어 지방 출판시장 장악을 위한 쐐기를 박았다.
서울의 지방 자본 수탈은 계속된다 지난 10년간 서울 자본의 급속한 유입은 향토 자본을 말살하고 있다. 향토자본 말살과 동시에 부산의 자본을 서울로 남김없이 가져간다. 지방의 수확물들을 수도로 올려보냈던 그 시절로 돌아가고 말았다.
서울 자본의 '저가와 물량 공세'에 소비자의 입장에서 값싼 가격에 구매한 만큼 지방경제는 파탄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부산의 내리막이 거침없고 제동이 걸리지 않는 것에도 상당한 영향을 받았다.
부산이 '서울행 소비도시'로 변하면서 지역에서 돌아야 할 자본이 서울로 올라간다. 서울에서 내려오지 않으면 그만큼 지역 자본은 없어진 것이다. 이러한 과정이 10년동안 지속되었다.
서울 자본의 지방 자본 수탈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더 넓어진다. 대학가는 1순위다. 경성대학교 상권은 서울 자본의 놀이터가 되고 있다. 경성대학교 상권은 부산에서도 손꼽아주는 상권으로 '리틀 서면'이란 별명을 가지고 있다. 동시에 '커피 삼국지'를 연상시키는 전국 최고 수준의 커피전문점 대결이 벌어지고 있다. 신촌, 이화여대를 주무대로 한 '찰리브라운 커피'가 지방 첫 진출지역을 부산 경성대로 잡았을 정도다.
경성대학교 상권을 두고 벌어지는 '커피 삼국지'는 2009년과 2010년에 급속도로 이뤄졌다. 기존의 스타벅스, 엔제리너스 양강 구도에서 탐앤탐스가 입점하자 엔제리너스는 '경성대 2호점'을 냈다. 찰리브라운 커피가 지방 1호점을 경성대에 내고 파스쿠치, 카페베네, 핸즈커피까지 입점하면서 커피전문점은 8개로 대폭 늘어났다. 이미 서울, 해외자본의 커피전문점들이 기존의 영세 커피전문점들을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핸즈커피만 대구에 본사를 두고 있고 나머지는 서울이나 해외에 본사를 두고 있다.
'규제'가 필요한 지금 부산 정치는 조치를 취할 생각조차 없다
▲ 태화백화점과 동보서적이 물러난 서면 중심가. 부산 서면은 이제 서울 서면이 될지도 모른다. © 대자보 | |
부산은 이대로라면 'Made in Busan'보다 'Made in Seoul'인 곳으로 뒤덮일지도 모른다. 부산에 살지만 부산에서 생활하는 게 아니라 서울에서 생활하는 것이다. 부산에서 소비하지만 실은 서울에 소비한다. 부산에서 서울을 위하여 소비를 하고 우리가 번 돈은 모두 서울에서 가져가는 날이 곧 온다.
김대중 정부에서부터 종교화된 자유경쟁 시장논리는 서울이 부산을 수탈하고 지배하게 했다. 노무현 정부, 이명박 정부를 거치면서 부산의 서울 종속구조는 더 심화되고 있다.
지방은 이제 없다. 서울의 종속 도시일 뿐이다. 지방에서 수많은 인재를 수혈하던 서울은 자본과 경제까지 수탈하고 있다. 이러한 국가적 재난에도 지자체는 물론이며 지방 정치권에서는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다.
서울 자본의 유입으로 자본의 다양화가 일어났고 소비자들은 눈에 보이는 혜택을 얻은 게 사실이다. 서울 자본이 지방에서 독과점이나 독점이 된다면? 그때도 소비자들에게 한없이 친절한 자본일지 아닐지는 알 수 없다.
'규제'가 절실하다. 지자체와 지역 정치권이 규제책에 나서야 한다. 향토자본들이 지역 특성에 맞는 독보적인 영역을 유지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동시에 서울 자본이 독과점 혹은 독점이 되더라도 지역의 소비자들에게 횡포를 부릴 수 없도록 해야 한다.
서울 자본의 수탈은 부산만의 일이 아니다. 모든 지방의 문제이자 국가적인 재난이다. 지금대로라면 문제는 또다시 묻히고 도미노 현상을 지켜만 봐야 할 것이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