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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9 재보선에서 메이데이, 그리고 촛불 1주년
[벼리의 느긋하게 세상보기] 우리의 활력 재점검, 저들의 헛점 간파하자
 
벼리   기사입력  2009/05/04 [10:14]
5월이 한국사에서 차지하는 상징성은 남다르다. 적어도 BBC 다큐로나마 518의 잔학상을 접했던 90년대 초중반 학번들까지는 그렇다. 올해 5월 또한 첫 주에 펼쳐지는 정세가 어김없이 예사롭지 않다.
 
요약하자면, 4.29 재보선 은 '반MB' 공동전선을 구축했던 야당의 승리로 끝났으며, 그 뒤를 이어 메이데이 투쟁, 그리고 촛불 1주년 투쟁이 있었다. 이 일련의 정세 추이 안에서 몇가지 시사점을 발견한다면 다음과 같다.

우선 재보선을 살펴 보자. 눈여겨 봐야 할 것은 재보선에 대한 평가와 전망이 야당과 재야에서 각각 다르다는 것이다. 이는 각각의 세력이 가지고 있는 정치성향에서부터 비롯된 것이겠지만, 본질적으로는 그들의 이념적 지향점이나 이해득실에 대한 판단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다가 이번 선거가 가지고 있는 제 정당 내부 세력 다툼이라는 복합적인 특징이 고려되면 분석은 훨씬 복잡해진다.
 
▲ 울산 북구에서 승리가 확정된 직후, 진보신당 조승수 당선자가 노회찬 대표와 심상정 전 공동대표 등과 함께 재보선 승리를 자축하고 있다.     ©CBS노컷뉴스

이번 선거가 '반MB전선의 승리'라는 데에는 대부분이 동의하고 있다. 당연한 반응이지만 한나라당 쪽은 이러한 사실을 알면서도 애써 사안을 축소하려고 하고 있다. 이를 조중동이 적극적으로 거들고 있기 때문에 전통적인 수구세력을 기만하는 데는 상당부분 성공했다고 보인다. 하지만 대부분의 언론과 시민들은 그러한 축소해석과 기만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실제로 이번 선거가 반MB전선 형성에 얼마나 기여했으며 이것이 MB에 대한 심판론으로 얼마만한 힘을 발휘할 것인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선거 전선 형성 과정과 그 사전 조건을 살펴 봐야한다. 사실 이러저러한 정황들을 짚어 보면 소위 '선거승리'라는 것이 100% 인민의 활력(potentia)으로 전화되라라는 기대를 가지기 힘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선 민주당은 정동영 출마로부터 비롯된 내부 잡음을 봉합하지 못하고 선거를 치름으로써 전체 선거판을 '지역주의'와 '연고주의'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방치하고 말았다. 결과적으로 반MB전선이라는 대의를 충족시키고자 한 그들의 시도는 일정부분 흠결을 안을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정동영-신건 무소속 연대 후보가 모두 당선됨으로써 민주당은 자신의 텃밭에서조차 정치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당 내외의 비판에 직면하게 되었다.

따라서 민주당은 정세균 대표를 필두로 한 당내 386세력의 입지가 상당 부분 위축될 수밖에 없는 내부 조건이 형성됨과 동시에 '정동영 분파'라는 새로운 골치거리를 안게 된 것이다. 선거 전에 터지고 선거 기간 내내 암울한 그늘을 드리웠던 노무현-박연차 커넥션은 사안이 진행됨에 따라 이러한 민주당 주류 의 정치적 추락에 가속력을 부여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하겠다. 다행히도 반MB 전선의 형성이라는 선재적인 목표가 재보선을 통해서 전면에 배치된 상황에서 이러한 당내 투쟁이 격화될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하지만 어쨌든 이 갈등은 항상 잠재적인 진행형으로 남을 것이다.
 
▲ 한나라당은 승리를 자신했던 인천 북구와 경주 지역에서도 패배함에 따라, 향후 정국 운영에 상당한 타격을 받게될 전망이다.     ©CBS노컷뉴스

민주당 사정에 비해 민노당과 진보신당 쪽은 선거 이후 상황이 매우 양호한 편 이다. 그런데 사실상 민노당은 후보경선에서 패배함으로써 견원지간이었던 진보신당에 울며 겨자먹기로 '몸빵'을 해야할 처지에 놓였었다는 걸 먼저 인정해야 하겠다. 대부분의 당원들이나 지도부는 이런 사실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했겠지만, 자기 정서에 솔직한 몇몇은 그렇지 못했던 것 같다. 사실 오월동주를 거부하는 것이 민노당의 당이념에는 더 맞아 들어간 것일지도 모르겠다.

여튼 진보정당 단일 후보 조승수의 승리는 두 정당, 특히 진보신당의 의회 내 입지를 강화할 것임에는 틀림없다. 원내에 교두보를 두는 투쟁과 그렇지 않은 투쟁은 부르주아 정치판에서 상당한 차이를 노정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보신당은 민노당이 선거에서 '몸빵'을 한 것에 대한 '은혜'를 잊어서는 안 되는 처지에 있다는 것도 분명하다. 이를 당내에서도 분명히 인지하고 있다는 것은 이들의 당선 축하 연설에서도 드러난다.

분명한 것은 의회 내 투쟁에서 두 정당은 사안 별로 전술적인 동맹을 추구해야 할 것인데 이럴 경우에는 먼저 사안의 경중을 재는 기준이 상이하다는 것을 서로가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오월동주한 이상 선거정당이 안고 가야할 당이념의 전술적 후퇴와 명분의 작은 흠결 정도는 앞으로 감내해야할 사안이 아닌가 생각한다. "연대라는 것은 선언문에 서명하는 것 이상"(홀거 하이데)이라는 것을 되새기면서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또 한 가지 톺아 봐야 하는 사항은 이러한 선거 승리가 결코 인민 투쟁의 동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작용하는 필연적인 모멘텀은 아니라는 것이다. 역사적으로도 '선거'라는 부르주아 대의정치 기제는 본격적인 의회 정치를 위한 일종의 사전 정지 작업의 성격을 띈 경우가 많았으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는 것을 보여 주는 사례가 많다. 실상은 오히려 반대다. 인민투쟁의 성과가 선거에 반영되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이다. 이번 선거가 그러하다. 야당이 내걸었던 반MB전선이라는 캐치프레이즈도, 정확히 말하자면 지금까지의 촛불투쟁과 용산투쟁의 성과에 정치권이 무임승차하기 위한 티켓에 불과한 것이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선거가 인민투쟁의 활력을 갉아 먹는 사태가 발생한다는 게다. 선거 연합 과정에서 이미 드러났듯이 의외의 변수(정동영 출마, 무소속 연대)나 연합 조건에 대한 복잡한 계산 등이 돌출됨으로써 투쟁의 활력과 대의가 손상되는 사태들을 방지하는 과정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다.

또한, 인민의 다수를 형성하고 있는 소부르주아 시민계급이 부르주아 대의 장치에 매몰되어 직접적인 행동 투쟁에 결합하지 않는 시나리오도 가능하다. 사실 '선거'라는 장치가 그런 효력을 달성한다는 건 상식에 속하는 것이다. 현장 투쟁에 결합하지 않거나 또는 결합할 수 없는 스스로의 객관적 조건에 대해 냉소하면서, '선거 때 보자'는 식은 권력(potestas)에 어떠한 결정적인 타격도 줄 수 없으며, 자칫 그 권력의 포획망에 스스로 걸어 들어가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일각에서 제기된 선거 비판론도 새겨 들을만 하다 하겠다.
 
마지막으로 이 주에서 가장 중요한 정세 사안이 남았다. 4.30에서 5.1 메이데이 그리고 촛불 1주년에 이르는 인민투쟁의 정세 조건이다. 이는 아직 진행중이다. 먼저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이번 투쟁을 통해 인민들 다수가 촛불에 대해 정권이 얼마만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지 확실히 학습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1만이 넘는 중무장 병력을 촛불 하나 달랑 든 시민들을 진압하기 위해 배치한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는 일이다. 
  
▲ 지난2일 서울 프라자호텔 앞에서 경찰들에게 연행되고 있는 한 시민.     © 민주노총

중요한 것은 권력의 두려움을 간파한 인민들이 본능적으로 대담해진다는 사실이다. 5월 2일 현재까지 현장에서 두 가지 주목할만한 사건이 있었는데, 그것은 투석전이 벌어졌다는 것이고, 하이서울페스티발(저들이 의도적으로 시청광장을 선점하기 위해 벌인) 을 무대 점거를 통해 무력화했다는 것이다. 전자는 지금까지 촛불 다중이 가지고 있었던 대항폭력에 대한 과도한 거부반응이 일정정도 해소되었다는 표식이며, 후자는그러한 위축감의 극복이 권력의 두려움을 간파한 이후 대담함으로 승화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객관적으로 보자면, 투석전이라고 해봐야 명동거리에서 잠시동안 이어졌고(이틀 간 2번), 무대 점거라고 해봐야 10분 정도였지만, 투쟁 현장의 급박한 좌표계 안에서는 이 작은 사건들이 피아 적대 함수의 중대한 변곡점을 형성한다고 보아야 하겠다. 현장의 판도가 인민들의 의식 안에서 승산 있는 싸움으로 표상되려면, 이러한 급작스런 폭발들이 자꾸 이어져야 하며, 수동적 정념이 적극적인 정념으로 진화하는 체험을 누적해 감으로써 결국 승리를 쟁취하는 잠재적 활력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 투쟁일정의 두 번째 긍정적인 모멘텀은 노학연대의 새로운 가능성이 열렸다는 것이다. 혹자는 대학생들을 '불쌍하고 멍청한 집단'이라고 했지만, 그렇지 않은 축들도 많다는 것이 점점 더 뚜렷해지고 있다. 조직적으로 봤을때 이들은 '21세기 한국대학생연합'(한대련)으로 대표될 수 있지만 이에 결합하지 않은 다수도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이번 메이데이를 기점으로 출범을 선언한 '대학생 반독재 투쟁 위원회' 가 있을 것이다. 이 외에 여기에다 한총련, 대학생 다함께, 민노당 학생위 등이 결합하고 있다. 조직에 속하지 않은 축들, 그리고 '10대 연합'을 비롯한 고등학생 조직까지 아우르면 이들이 가지고 있는 앞으로의 가능성은 결코 작다 할 수 없을 것이다. 청년 실업 100만이라는 객관적 정세로 봐서도 이들의 역할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양적으로 뿐만 아니라 질적으로도 이들이 80년대, 90년대 식의 노학연대 틀을 벗어나고 있다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이념적으로 이들이 실용주의에 매몰되지만 않는다면, 다시 말해 등투만 가지고 투쟁의 외연을 좁히는 우를 범하지 않는다면 매우 훌륭한 투쟁의 자산이라 하겠다. 사실 이들은 투쟁 당일 노동자들과 함께 움직이기 보다는 대오에서 빠져 잠실로 향했으며, 전술적으로 매우 훌륭한 성과를 냈다. 상집에 기고, 현장 머리수를 채우거나, 문화 공연에서 아양 떠는 방식이 더 이상 아닌 것이다. 이들이 과연 68세대로 대표되는 유럽의 새로운 좌파와 같이 새로운 운동의 단초가 될지 어떨지는 두고 봐야 하겠지만 말이다.

정세를 살펴 보았을 때, 2009년 5월 첫 주 주말이 그 여느 때와는 다르게 뜨겁게 가고 있다는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하지만 싸움의 성과에 들뜨기 보다는, 이럴 때 일수록 우리의 활력을 재점검하고 저들의 헛점을 분명하게 간파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단순한 정세판단을 넘어 적의 약한 고리를 타격할 수 있는 실천의 무기가 더 날카롭게 벼려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부정의 변증법을 유지하며 긍정의 실천을 하는 건 그래서 힘들지만, 고귀하다 하겠다.                     
 
- written by REDBRIGADE
수유너머N에서 공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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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9/05/04 [10:14]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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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05/05 [12:34] 수정 | 삭제
  • 원문 글만 읽어보고서는 감을 잡지 못하겠는데, 일단 '인민'들이 모여서 '적의 약한 고리'를 타격하는 '투쟁'을 하자는 것 같은데요.

    무엇을 내걸고 '투쟁'을 하나요? 걍 '독재타도' 'MB하야'인가요 아니면 때 마다 광장에 모여서 직접민주주의로 정치사안 결정하는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