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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부독재 저항, 버마인의 '국민 주권'을 지지하자
[새사연의 눈] 미영의 패권주의 벗어나 연대의 기준 ‘인권’에서 ‘주권으로
 
새사연   기사입력  2007/10/15 [17:11]
우리 국민이 1987년 6월 항쟁으로 군부 독재의 기반을 무너뜨린 이듬해 8월 8일 버마(미얀마)에서도 한국과 동일하게 독재 정권을 반대하는 국민 항쟁이 일어났다. 수천 명이 희생된 이 8888 항쟁을 짓밟고 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세력이 탄 슈웨 등 현재의 버마 군부다. 정치 주권 실현 기회를 빼앗긴 버마 국민이 19년간의 독재에 저항하여 시위를 벌이자 9월 26일 군사 정권은 또다시 시위대에게 무차별하게 총을 난사하고 곤봉을 휘둘러 적어도 수십 명에서 수백 명을 살상했다.
 
부패한 정권과 해외 자본에 국민 주권 빼앗겨
 
버마의 이번 9월 시위는 정부의 급격한 에너지 및 교통비 인상이 도화선이 되었다. 에너지 산업을 독점한 정부가 천연가스와 휘발유값을 기습적으로 올린 탓에 체감 물가 상승률이 500퍼센트에 이르렀고 버스 요금이 2.5배나 뛰어올랐다. 하루 일당의 절반 이상을 출퇴근 교통비로 지불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 버마인들이 거리로 나선 것이다. 놀라운 것은 버마는 마르타반만과 벵갈 해안 등에 엄청난 양의 천연가스가 매장된 자원 부국이라는 사실이다. 천연가스에서만 향후 40년간 매년 20억 달러씩의 수입이 나올 것으로 추정된다.
 
이 에너지 자원을 노리고 주변국들이 버마의 부도덕한 군사정권과 협조 관계를 유지한다. 세계의 공장으로 팽창하면서 에너지 자원 확보에 열을 올리는 중국이 가장 큰 이해관계를 걸고 있다. 이번 사태로 자국 기자를 잃은 일본은 버마에 대한 최대 원조 공여국이다. 한국은 버마 A-1 가스전 개발에 대우인터내셔날 60퍼센트, 한국가스공사 10퍼센트의 지분을 가지고 참여중이다.
 
차베스 집권 이전의 베네수엘라가 그랬듯이 풍부한 천연 자원이 부패한 정권과 그에 결탁한 국내외 독점 자본의 배를 채워줄 뿐, 버마 국민의 생활 처지 개선과 미래를 위한 투자에는 전혀 쓰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버마 국민은 경제 주권 역시 철저히 박탈당한 상태다.
 
부창부수(夫唱婦隨), 로라 부시의 인권 타령
 
버마 사태에 국제사회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상황에서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의 부인 로라 부시가 버마 군사 정권의 퇴진을 강력하게 촉구하고 나섰다.
 
아무리 미국의 ‘퍼스트 레이디’라지만 외교 문제에 관여하여 한 나라의 정권 퇴진까지 요구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유엔총회 연설에서 버마 인권을 거론하며 경제 제재를 압박하고 있는 남편 부시를 뒷받침하는 부창부수다.
 
그러나 로라 부시가 언론에 버마 정권 퇴진을 요구한 바로 그 다음날 이라크에서는 미군의 헬리콥터 공습으로 어린이 9명과 여성 6명이 또 숨졌다. ‘또’ 라는 것은 이런 일이 이미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다는 뜻이다. 미군은 ‘무장 세력이 일부러 데려다 놓았다’는 발언으로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헬리콥터 공격이 일반 공습과 달리 목표물에 근접해 조준 사격을 위주로 한다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 이후 지금까지 희생당한 이라크 민간인 수가 100만 명에 이른다. 이라크 민간인의 피를 낭자하게 묻히고 있는 부시 부부가 다른 나라의 생명 존중과 인권을 논하는 장면은 역겨움 그 자체다.
 
여기에서 우리가 다시 환기할 사실은 미국이 이라크 침공 이유로 ‘대량 살상무기’를 내세웠다가 낭패를 겪자, 다시 수정해 내건 명분이 ‘후세인 독재 청산과 이라크인의 인권’이라는 점이다. 언제부터인가 ‘인권’은 미국이 주먹을 휘두를 때마다 전가의 보도처럼 꺼내드는 다시없는 좋은 명분이다. 많은 인권 운동가들조차 그 이면을 직시하지 못한다.
▲버마 민주화를 지지하는 국내 시민사회단체의 모임 \'버마민주화지지긴급행동\'이 서울 중국대사관 앞에서 중국정부의 버마 군부 지원중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대자보

16세기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신대륙을 약탈할 때 ‘미개인에 대한 선교’를 명분으로 내세웠던 이래로 패권 국가들이 약소국을 침략할 때는 항상 명분을 내세웠다. 20세기 열강의 제국주의 침략 명분은 ‘문명화와 통상’이었고 2차대전 이후 한국을 포함한 모든 독재정권에 대한 미국의 지원은 ‘공산주의 저지’를 구실로 삼았다. 냉전 해체 이후 그 명분은 ‘반 테러’ 또는 ‘인권’으로 바뀌고 있다.
 
못 먹는 감 찔러나 보자는 패권주의 시각
 
버마 사태에 미국이 방방 뜨는 데는 ‘지금 못 먹는 감 일단 찔러나 두자’는 고약한 심리도 존재한다. 중국과 2천 킬로미터에 달하는 국경을 맞댄 버마는 경제, 지리적으로나 군사적으로 중국의 영향에 강하게 편입되어 있다. 남미가 미국의 뒷마당이었다면 버마는 중국의 앞마당 격으로 서방 국가들이 함부로 손댈 수 없는 지역이다.
 
그럼에도 미국이 버마의 정권 교체를 거론하고 한때 버마를 식민지로 가지고 있던 영국의 데이비드 밀리번드 외교장관이 ‘수치 여사가 버마를 통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면에는 이 사태를 당장에는 중국을 외교적으로 압박하는 카드로, 향후 언젠가 버마가 민주화될 경우 친서방 정권 수립을 통해 중국을 견제하는 수단으로 남겨두자는 군사외교적 판단이 깔려 있다.
 
미국은 추악한 중남미 군사 독재 정권들을 지원하며 단물을 빼먹다가 남미 전반에 민주화가 진행되자 전략을 바꾸어 새로 수립된 민선 민간정부를 경제적으로 포섭하여 잇속을 차렸다. 독재를 무너뜨린 라틴아메리카 대부분의 민간 정부가 ‘인권 친구’라고 여긴 미국의 신자유주의에 포획되어 잃어버린 10년을 보낸 것이다.
 
연대의 기준을 ‘인권’에서 ‘주권’으로
 
인권은 인간의 천부적인 권리다. 그러나 남미와 이라크, 버마의 사례에서 우리는 그 소중한 인권조차 주권이 전제되지 않는 한 아무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새삼 직시하지 않을 수 없다.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를 뜻하는 주권은 정치적으로는 국민이 정부와 통치 체제를 스스로 자유롭게 결정할 권리, 경제적으로는 국민의 경제적 생존과 처지 개선, 일할 권리를 포함하며 나아가서는 국가적으로 다른 나라의 침략과 간섭을 받지 않고 자주적으로 행동할 권리를 의미한다.
 
이번 버마 사태는 세계인의 공분을 자아냈다. 더구나 80년대에 한국과 동일한 궤도 선상에서 목숨을 걸고 군부독재 퇴진 투쟁에 버마인들에 대해 우리 국민은 많은 안타까움을 지닌다. 버마인들을 지원하고 연대해 나가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그 지원과 연대의 기준이 침략과 패권에 익숙한 국가들이 내세우는 그들 식의 ‘인권’일 수는 없다.
 
우리는 버마인들이 자신이 원하는 형태의 정부를 세우고 그들의 국부를 국민경제를 위해 쓸 권리, 대외적으로 어느 나라의 간섭과 침공도 받지 않고 살아갈 권리, 즉 버마인들의 ‘국민 주권’을 지지하며 연대해 나가야 할 것이다. 87년 6월항쟁과 97년 외환위기 이후 신자유주의 상황을 두루 경험한 우리 국민은 부시 부부의 알량한 인권 타령의 속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 정희용(새사연 미디어센터장)
 
* 본문은 <새로운사회를는연구연>(http://eplatform.or.kr/)이 발행하는 'R통신 65호' 이슈해설을 옮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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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7/10/15 [17:11]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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