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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누구도 신정아의 몸 매도할 권리없다
[정문순 칼럼] 언론이 만든 ‘신정아 스캔들’, ‘변양균 의혹’으로 바꿔야
 
정문순   기사입력  2007/09/14 [19:47]
악녀 대 불쌍한 남자, 언론이 창조한 ‘신정아 스캔들’

권력형 비리 의혹이 짙던 전 동국대 교수 신정아 씨의 학력 위조 수사가 언론이라는 암초를 만나 돌연 섹스 스캔들로 변질되고 있다.
 
검찰이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을 수사하면서 두 사람이 주고받은 전자우편의 내용을 흘리자 언론이 이들의 부적절한 관계를 캐는 데 골몰하더니, <문화일보>가 유력 미술계 인사의 집에서 발견되었다고 하는 신씨의 옷 벗은 사진을 입수하여 처음으로 게재하면서, 사건의 정치적 성격은 날아가고 대중에게 관음증만 자극하는 한 개인의 성적 추문만 남게 되었다.
 
기껏 한 여성의 스캔들을 파헤치자고 검찰이 대대적으로 수사를 벌여온 것은 아니다. 수사 중인 사건이기는 하나 어디까지나 고위 관료의 부당한 권력 행사 여부를 밝혀내는 것이 이 사건의 방향임은 분명하다. 사건의 중심에 신씨가 아니라 변 전 실장이 있다는 점도 분명하다. 사건의 이름은 ‘신정아 의혹’이 아니라 ‘변양균 의혹’이 되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그는 신씨와의 사적인 관계가 드러나자, 사건이 ‘여자 문제’임을 부각하고 싶었던 언론에 의해 ‘신정아의 남자’들 중 하나로 주변화되어 핵심에서 밀려나고 있다. 사건의 주연은 한 여성이 되고, 권력층에 포진하여 그녀와 접촉한 남성들은 조연으로 내몰렸다. 

▲14일 오후 언론 시민단체들이 문화일보 사옥 앞에서 신정아 씨 알몸사진 게재에 항의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대자보
 
신씨의 누드 사진 게재는, 권력의 비리에 대해 언론이 작정하고 신씨의 스캔들로 몰아가기 위해 의도적으로 저지른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 선정적인 사진 한 장의 위력은 엄청났다. 사진 게재를 전후로 언론의 취재 방향은 크게 달라졌다. 신씨의 남자 관계를 추적하러 다니고, 그녀를 출세욕에 미친 사람으로 단정 짓기 위해 심리학자까지 동원한다. <문화일보>를 비난하는 기사를 쓰면서 문제의 사진을 다시 싣는 뻔뻔한 언론사도 있을 정도다.
 
권력형 비리 의혹은 가뭇없이 사라지고 신씨만 부각되면서, 한 여성이 권력과 명예를 얻기 위해 어떻게 유력한 남자들에게 접근하여 그들의 힘을 이용했는가 하는 것이 사건의 알맹이인 양 돼버렸다. 그것의 정답은, 사진 속 신씨의 벗은 몸에 있다고 언론사는 말한다.
 
 신씨 사건을 ‘성(性)로비’로 단정 짓는 근거로 문제의 사진을 내세운 <문화일보>의 태도는 선정성을 이용한 돈 벌이에 급급한 욕심과도 관련이 있지만, 젊은 여성의 출세 비결을 권력층 남성에 대한 성 상납과 연결 지으려는 사회적 편견이 작용한 결과이기도 하다. 어떻게든 신씨의 출세를 몸과 엮어보고자 했던 언론에게 문제의 사진은 좋은 구실이 되었다.
 
한 사람의 몸을 비난하거나 비하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 이는 누구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이유로 찍었는지 알 수 없고, 진위도 명확히 판가름 나지 않은 사진 속 여성의 몸은, 보수 언론에게는 사회적 지위를 얻고 싶은 여성이 함부로 ‘놀린’ 비천한 ‘몸뚱이’로밖에 취급되지 않았다.
 
한 여성의 몸이 더없이 하찮게 매도되고 농락되는 것에 대한 모욕감 때문에 사진은 두 눈 뜨고 보기 불편하다. 언론이 한 사람의 고귀한 신체를 만인에게 공개하여 비하와 농락을 벗어나지 못하도록 만들어버린 건 여성의 몸에 대한 성폭력과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분노를 잠재울 수 없는 것이다.
 
 권력이 개입된 사건에 대해 권력자를 욕하지 않고, 권력자의 힘을 이용한 사람에게 비난이 쏟아지는 현실은 우리 사회의 완강한 성적 편견이 작용한 탓이 크다. 보수 언론이 불 지핀 장난은, 순식간에 이 사건을 나쁜 여자와 불쌍한 남자라는 인습적 대립 구도로 굳어지도록 만들고 있다.
 
<연합뉴스>는 신씨가 자기애가 강한 인격성 장애가 있다고까지 진단하면서, 변 전 실장이 한 여성의 출세와 권력욕에 휘말려 인생을 망친 남자인 듯한 인상을 심어주고 있다. <조선일보>는 초췌한 모습의 변 전 실장을 찾아내 인터뷰를 하여, 벌거벗은 신씨의 이미지와 교묘하게 대비시킨다. 사람들을 피해 숨어 다니는 남자와, 카메라 앞에 벗은 몸을 부끄럼 없이 드러낸 여자의 대립 구도가 의도하는 것은 명백하다.
 
도덕적으로 타락한 여자와, 자제력을 잃고 무너진 아까운 재능의 남자. 이런 구도라면 누구에게 돌이 던져지겠는가. 언론이, 권력을 얻기 위해 성까지 동원하는 존재로 여성을 바닥까지 끌어내린 덕분에 남성 권력자들은 ‘악녀’한테 당한 피해자로 탈바꿈하고 있다.
* <대자보> 편집위원, 문학평론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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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7/09/14 [19:47]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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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허슬러 편집장 2007/09/15 [11:18] 수정 | 삭제
  • 권력의 단맛을 좇는 문화일보가 급기야 구 썬데이서울류의 옐로우페이퍼(Yellow Paper) 도색지로 커밍아웃했군요. 축하합니다. 플레이보이지 허슬러를 위시한 미국의 각종 도색잡지와도 연대해 주시면 더욱 좋겠습니다.

    이윤섭(sunlus)의 "복수와 테러의 화신이 된 언론"중에서

    *한국 언론이 제 역할은 하지 못하면서 제 요구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선, 동아, 중앙은 언론의 자유를 넘어 언론의 방종까지누리고, 가끔은 사회악을 범하고 있는데에도, 한국 언론 스스로가 자정과 개선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국 언론은 지난 과거 시대에 파쇼 정권의 가랑이 사이로 기어 들어가 나팔수 노릇을 하지 않았는가 하면, 스스로가 언론 폭행을 저지른 죄과도 있다. 독재 정권보다 더 민주 진영과 민주 인사에게 비수보다 날카로운 비판과 질타를 날리기도 했다. 그러한 그들이 과거사에 대한 제대로 된 성찰과 반성도 참회도 없이 과거를 망각하고 언론을 펼치다가, 급기야는 정권에 대한 테러를 서슴치 않는 것이다.
    *한국 언론에게는 아무래도 군사 독재의 폭압 정치만이 약인가 보다. 지난 시대의 군사 독재 탄압 아래에선 갖은 아양과 애교, 추태를 다 떨면서 생존했던 그들이 보다 넓은 언론 자유를 보장하고 있는 국민, 참여 정부 아래에선 정부를 향해 갖은 횡포와 행패를 다 부리고 있다. 언론이 사회악의 괴물이 되고 악마가 되어도 그것을 질타하면,언론 탄압이라고 한다. 이런 언론을 제압하려면 폭압 정치로 잡아야 할 모양이다.
    *한국 언론의 한계다. 그들이 무한한 힘과 권력을 소유하고 과시하고 있는 듯 하지만, 그 힘이 미치지 못하거나 힘을 미친다 해도 미미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 있다. 그 분야가 무엇인가 하면 바로 재벌 또는, 재력가들이다. 필자가 사회를 살펴 볼 때, 재벌들과 재려가들은 정치를 좌지우지 하려거나, 심하면 정권까지 바꾸려고 수시로 음모를 꾸미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부분은 건드리지도 못하고 있다.
    *미운 짓은 미운 짓이고 예쁜 짓은 예쁜 짓이다. 그른 일은 그른 일이고, 옳은 옳은 일이다. 이쁜 짓 좀 했다고 미운 짓까지 이쁘다고 해서는 안 되며, 미운 짓 좀 했다고 이쁜 짓까지 미운 짓으로 매도할 수는 없다.이것이 언론이 지켜야 할 정도다. 필자의 현재의 감정대로라면 과거 언론의 죄악과 해악을 물어, 언론인은 참형하여 그 몸을 박재로 만들어 후손 대대로 보여 주고 싶다. 과거 언론이 국가와 국민에게 얼마나 사악한 짓을 저질렀는가 하는 것을 전하며, 그렇기 때문에 언론이 극형을 받을 수밖에 없었으며, 그런 해악을 저지르면 언제든 간에 극형을 면할 수 없다는 교훈을 알리기 위해서 말이다.

    고 정주영 회장당시 창간직후엔 순수하고 참신했는데 조중동과 같아져버렸네요. 초록은 동색이지만 쉽게 휩쓸렸네요. 근묵자흑이 더 정확한 표현일까...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