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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승희, 너를 위로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도끼빗의 갈라치기] 바바라와 가레트와 조승희, 그리고 우리의 영성
 
도끼빗   기사입력  2007/04/23 [13:05]
조승희 사건에 접했을 때에 짜증만 났다. 죽은 32명과 조승희 본인, 그리고 총알에 다친 이들과 그 가족들에 대해서는 가슴이 아프고 안타까왔다. 하지만 이 사건 가지고 난리를 쳐댈 매체와 세상과 지식인 나부랑이들 때문에 이런 나의 그리고 우리 대다수의 마음이 묻혀 버릴 게 틀림없었으니까.
 
매체들은 이제부터 가뜩이나 황당해 있을 유족들과 관계자들을 있는대로 쑤시고 다니며 설쳐 댈 것이며, 지식인이니 먹물들이니 하는 것들은 또 신이나서 있는대로 "이번 사건을 보는 시각"이랍시고 되도 않은 소리를 풀어댈 것이며, 그러면 그런 지식인 먹물 축에 끼고 싶어 안달이난 오만  wannabe 들이 또 그 새롭게 윤색해 댈 것이다. 그래서 "미국 자본주의 어쩌구 저쩌구 총기 문화 어쩌고 이민 2세 어쩌고 저쩌고 어쩌고 등등....순식간에 조승희도 또 32명과 여러 부상자들 그 가족들은 사라지고 벼라별 것들이 다 설쳐댈 것이 틀림없으니까.
 
근데 최근 인터넷에서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었다. 바바라는 32명의 희생자들과 함께 세운 버지니아텍 캠퍼스의 추모비에다가 "너를 위로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라고 글을 썼다고 한다. 총알이 다리에 박혀있는 가레트는 조승희를 미워하지 않는다고 말했고, 그도 조승희를 미리 만나지 못해서 안타깝다고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버지니아텍 사람들은 조승희를 악마로 몰지 않고 다른 32명과 함께 추모비를 만들어 주었다.

▲버지니아 공대 학생들이 희생자 뿐만 아니라 가해자인 조승희 마저 용서하는 행사를 벌였다.     ©
 
무어라 말할 수 없는 것이 가슴에서 벅차오른다. 세상은 갈수록 쓰레기 같아지지만, 아직 사람들 마음의 따스함과 넓음과 현명함은 이와 같이 건재하다. 인간들을 분열시키고 헷갈리게 만드는 온갖 책동이 전 세계적으로 이루어져 왔다. 그 와중에 이라크 사람들은 몇 만명 몇 십만명이 죽었고, 또 미국 군대의 청년들도 숱하게 죽어야 했다. 질리지도 않고 끊임없이 씨부려대고 죽여대는 이 지배 집단과 엘리트의 책동 속에서.
 
사람들은 지쳤다. 나도 지쳤고, 너도 지쳤을 것이다. 이렇게 온갖 이유로 사람 가슴을 메마르게 하면서, "그러니까 너는 저 ** 저 *을 혐오하고 공격해야 해"라는 온갖 개소리들.
 
어쩌면, 어쩌면 말이다. 가레트도 바바라도 또 버지니아 텍 사람들도 이런 소리들에 지칠대로 지친게 아닐까. 그래서, 이 사람의 이성과 감정을 압도해버리는 어처구니없는 비극 앞에서 그동안 우리들 가슴 속에  숨어서 꿈틀거렸던, 우리 목을 간질거리면서도 토해낼 수 없었던 말을 토해낸 게 아닐까.
 
"우리는 아무도 미워하고 싶지 않다. 우리의 고통을 치유하는 것은 사랑이지 증오가 아니다"라고.

나도 괴롭다. 죽어간 32명 생각하면. 좋은 대학 들어오느라 성실히 열심히 살아와서 이제 대학들어와 막 어린 날개짓을 하려던 아이들. 얼마나 무서웠을까. 이유도 없이 들이닥친 놈이 쏜 총알에 죽어가던 그 순간에. 내 맘속엔 조승희도 똑같이 아프다. 나도 내 삶의 거의 5분의 1을 외지에서 보냈는지라 그가 무엇으로 힘들었을지 너무나 잘 안다. 이 놈을 그 황량한 북아메리카의 하늘 아래에서 한번이라도 만날 수 있었더라면.

죽음을 당한 32명과 나란히 승희의 비석을 세운 버지니아텍 사람들은 그 33개의 풍선을 하늘로 올려보내고 끌어안고 엉엉 울었다고 한다. 나도 함께 운다. 바바라 가레트 또 버지니아 텍 분들 모두 너무 고맙다. 이젠 정말 아무도 미워하지 않도록 나아갈 자신과 목표가 생긴다. 내 생전에 그 어떤 원수 - 개인의 원수이건 인민의 원수이건 - 도 미움의 감정을 끌어올려 대응하지는 않을 자신이 당신들 덕분에 생기기 시작했다. 이제 내가 또 우리가 당신들의 그 넓은 사랑의 마음에 화답할 것이다.

고통 뿐인 세상. 치유와 사랑을 부르짖는 우리의 울부짖음이 이 하늘과 땅을 채워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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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7/04/23 [13:05]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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