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버지니아공대 총기사건과 한국의 가치 타락
[독자의 소리] 조승희 총기사건과 한국의 가치관, 합리적 분석이 절실
 
박상준   기사입력  2007/04/18 [16:09]
일본에서 큰 지진이 일어나 많은 인명이 다치고 죽었을 때, 대한민국 안에서는 믿지 못할 일이 너무 당연하듯이 발생했다. 고귀한 존엄이 훼손된 사태에 대해 애도의 감정보다, 한국국적을 소유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일본국적을 지닌 이들(즉, 일본인)의 참사에 대하여 “고소하다”, “잘됐다” “더 죽어라” 라는 식의 댓 글이 기사의 댓글란을 점령하다시피 했다. 생명을 경시하고 존엄에 대한 자각조차도 없는 그러한 행태에 누군가가 그들의 행위의 그릇됨을 지적했다. 과연 그러한 행위에 대한 반응은 어떠했겠는가?
 
그들은 그를 일본인이라고 몰아 부치며, 일본인을 옹호한다고 비난하기 시작했다. 과연 여기서 무엇을 공유할 수 있단 말인가! 인간의 존엄과 정의 그리고 인류애를 공유하지 않는 집단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민족? 국가? 국민? 허울좋은 추상적인 색채로 도배된 의미를 끌고 와 불의를 당당하게 관철시켜나가는 걸 용납하는 사회적 공감대!! 이게 바로 현실의 대한 민국의 실체임이 곳곳에 증거로써 드러나는데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2007년 4월 17일, 미국 버지니아 공대에서 총기난사사건이 벌어지자, 또 다시 한국인이냐, 중국인이냐에 관심이 모아졌다. 중국인이란 말이 들려오자, 생명과 존엄에 대한 관심보다 중국인에 대한 비하만이 넘쳐 났다. 한마디로 추악하고 이기적인 중국인이기 때문에 그러했다는 것이다. 무엇이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것 같지 않은가! 이 땅의 교육, 사회, 경제, 문화 등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시키는 전반이 총체적으로 잘못되지 않는 한 이러할 수 없다고 여겨진다.
 
뒤늦게 버지니아 총기사건의 범인이 한국인, 조승희로 밝혀지자, 미국 거주 한국인들은 벌벌 떨며 두려워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한국인에게 집단 보복이 돌아오지 않을까 해서이다. 2002년 주한 미군 장갑차에 의해 효순. 미선이가 치여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그때, 대한민국 전국민은 반미 감정에 휩싸이며, 수백만 인파가 오직 한국인이란 공감대 하나만으로 사건경위나 과실유무 그리고 책임유무 등을 논하지 않고 거리로 뛰쳐나와 미군 및 미국에 대한 규탄시위와 폭력시위를 벌였다. 감성이 이성을 완전히 집어 삼켜 한국인이라면 너나없이 미국과 미군에 대한 분노를 표출했다. 주한미군의 두려움은 어찌했을까? 주한미군이 모두 범죄자이며, 미국인 모두가 범죄자가 되어 버렸다.
 
주한미군에 자식을 보낸 미국인들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과실의 유무 등도 밝혀지지 않은 사건에 대해 한반도에서는 그러했다. 집단적 통합을 네 편, 내 편으로 확연하게 갈라버리는 이런 식으로 이뤄온 것이다. 지엽적인 문제를 국가적. 국민적 문제로 확대시켜 버린 후, 국민(한국인)과 국민(일본인과 미국인 등)을 경계 짓고, 국가(한국)와 국가(일본과 미국 등)를 경계지은 후, 통합을 이루려 시도한다. 이리 되면, 정의나 존엄에 대해 거론할 수 없는 체재가 확립되고, 다양성 자체도 사실상 사멸하게 된다.
 
버지니아 총기사건의 범인이 한국인, 조승희로 밝혀졌지만, 미국에서는 대규모 시위나 보복행위 등이 보도되지 않고 있다. “왜? 그가 그러한 범죄를 저지르게 되었을까?” 라는 원인 분석과 그에 대한 사회구조의 결함에 대한 분석이 대부분이다.
 
배가 고픈 가운데, 도둑질을 할 개연성과 가능성(확률)이 높아지고, 차별 등과 같이 비존중 받는 가운데, 분노가 폭발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건 당연하다. 적대와 분노 속에 전쟁이 발생할 확률이 높아진다. 인간은 인종, 성별, 국가 등에 상관없이 일반적인 본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하기 때문에 범죄가 빈번히 발생할 때는 분명 구조적인 결함이 있기 때문이다. 몇몇 한국 언론에서는 이번 참사에 대해 미국의 “총기소지의 용이”에 대해 그 원인을 찾으려는 시도가 있다. 과연 그러한가!
 
한국도 자신의 신체와 생명 그리고 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으로 총기소지를 허락하면 어찌 될까? 1~2년 전 내가 군포물류센터 등을 비롯해 대부분의 물류센터를 전전하며 야간물류 일을 했을 때, 100 여명 이상을 대상으로 물어본 적 있다. 그러했더니 어떠한 대답이 나왔는지 아는가! 끔찍한 대답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극도로 비존중 받고 있다고 확신하고 있고 또한 사실이 그러했다. 그리고 그러한 대상에 대한 분노의 깊이가 결코 얕지가 않다는 것이다.
 
나는 야간 일을 마친 아침 5시~9시쯤, 지하철에 앉아 몇몇 아주머니에게도 똑같은 질문을 했다. (지하철이 첫 출발할 때쯤 되면, 수원 등 여러 지방으로 막노동을 하려 나가는 사람들로 지하철 안이 가득 채워진다.) 아주머니들은 결코 총기소지는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 이유는 이러했다. 총기소지가 된다면 아마 대한민국은 살인으로 가득찰 것이라고!! 여러분들의 견해는 어떠한가! 부당한 판결에 분노하여 판사를 석궁으로 위협한 일명 “석궁테러” 로 불리는 김명호 전 교수에 대해 국민 대다수(포탈 사이트의 댓글을 분석해보면 90% 이상이 대한민국 사법부에 대한 불신을 보이고 있다)가 석궁의거라고 한다.
 
(만약 총기소지가 대한민국에서 아주 오래 전부터 허용되었다면 과연 이렇게 곪을 대로 곪은 상태까지 사법체재가 썩을 수 있었을까! 인간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순국한 이들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마음이 있다면 우리는 지금이라도 헌법에 “무기를 소지할 권리”를 기본권으로 첨가해야 할지를 심각히 고려해 봐야 할지도 모른다. 덩치 큰 어른이 아이를 때리면 아이는 여지없이 맞아야 한다. 남자가 여자를 때리면 여자는 맞아야 한다. 여자나 아이가 주먹으로 반항하면 더 큰 주먹이 날아와 여자의 면상을 뭉개버린다. 여자나 아이의 주먹은 무력하다. 민주시민에 대한 철저한 교육이 없는 사회에서 무기가 대등하지 않고는 결코 존엄은 치우쳐지게 되어 있다.)
 
대한민국은 오랜 세월 부당과 차별, 불의 등을 방치하여 이렇게 곪고 곪았다. 미국은 헌법초기부터 “총기소지의 권리”를 미국 시민의 기본권으로 보장해왔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미국 내 총기로 인한 참사 및 참혹한 범죄는 생각만큼 발생하지도 않는다. 왜 그러할까!
 
미국의 “총기소지”는 초기 헌법의 취지에 따라 자신의 신체,생명,재산을 보호할 수 있는 강력한 수단이다. 즉, 아무리 강력한 권력이나 많은 부를 가지고 있더라도 부당하고 불의하고 차별 등을 통해 타인의 존엄을 훼손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곧바로 존엄을 훼손당하고 상처 입은 자의 상태는 심히 나빠지게 된다. 그리 되면, 영락없이 범죄가 발생할 확률이 급격히 증가하기 때문이다. (범죄란 추상적 의미만을 지닌 국가나 국민의 종류에 의해 발생하는 게 아니라, 바로 환경에 의해 확률적으로 발생할 가능성만을 예측할 수 있다.)
 
즉, 미국의 “총기소지”는 병(범죄 등)이 발생할 징조가 보이는 초기 때부터 확연하게 드러나게 해준다. 따라서 병의 초기상태에 완치가 가능하다. 병의 말기상태까지 가지 않는다. 그러나 한국은 어떠한가! 나는 한국에서 대부분의 교육을 이수했다. 그러한데, 한국의 교육에서 존엄이 없었다.(내가 경험하고 나의 동시대가 경험했기 때문에 이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만큼 증거는 무수히 많다.)  총기소지가 허용된다면 100% 로 교육의 장은 아수라장이 될 것이라 여겨진다. 그렇다면 한국의 사회는 어떠한가! 한국의 문화는 어떠한가! 한국의 경제는 어떠한가! 한국의 모든 시스템은 어떠한가!
 
버지니아 총기사고는 한국인, 조승희가 저질렀지만, 그 일로 한국인이 보복이 두려워 벌벌 떨 필요는 없다. 그건 분명 지엽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두려움에 벌벌 떨고 있다면, 타 국민, 타 국가인이란 이유만으로 그들을 한국인의 이름으로 탄압했고 그러한 것을 당연하게 여겨왔던 지속된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과거의 일? 한 개인의 범죄가 일본인이라는 이유? 또는 미국인이라는 이유?’하나만으로도 광분했던 흔적들이 곳곳에 산적해 있다. (1종 교과서로 국사를 배우는 한국 교육에서 사상의 자유, 학문의 자유, 양심의 자유가 존재할 수 있을까! 기본권마저도 통제해놓고 무엇을 논할 수 있단 말인가! 이러한 환경을 구축해 놓고 원하는 정보만을 취사선택하여 목적만을 관철시키려 하는 자들의 역사적 접근법을 아무 의혹도 없이 믿어야 하겠는가! 그리하면 결국 그 엄청난 피해는 누가 받게 될까!)
 
며칠 전에도 초등학교 학생들을 축구지도 한답시고, 어린 아이들을 개 잡듯 패는 뉴스를 접한다. 주변의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제재하는 사람도 없었다. 이러한 일이 너무나 빈번하고 당연시 되어 왔었지 않는가!(나조차도 이젠 너무 많은 불합리와 부당과 차별을 보고 접함으로 인해 내가 곧 불합리와 부당과 차별에 익숙해져 있지 않는지를 의심하고 있을 지경이며, 언젠가 나의 가치관이 뒤바뀌는 날이 온다면, 나에게서 이러한 식의 칼럼은 더 이상 보지 못할 것이다. )
 
국민 90%가 반대하는 국민연금조차도 국민의 의사는 전혀 반영되지 않는다. 국민 90%의 의사조차도 반영시키기 어렵다면, 국민이란 허울좋은 도구이며 대의민주주의란 탐욕스런 자들이 탐욕을 충족시키기 위한 편리한 도구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자들이 외쳐대는 100년 전의 과거사인 “친일청산”은 현재, 한국과 일본을 적으로써 구별 짓고 있다. 한국 놈과 일본 놈으로…, 아마 한반도에서 일본인 범죄가 일어나거나 일본열도에서 한국인 범죄가 일어나는 날, 한일전쟁이 발발할지도 모를 것이다. 한국인, 조승희의 총기난사 사건에서 드러나는 미국 내 한국 교민들의 두려움의 근원은 바로 한국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늘을 바라보며 북극성을 중심으로 별들이 한바퀴 도는 것을 본다. 지구가 도는 것일까? 별이 도는 것일까? 오늘도 매국노 친일파들이 부를 독차지 해서 한국인의 삶이 피폐해졌다는 주장들이 난무하다. 친일이 매국인지, 애국인지 어찌 합리적인 분석 없이 누가 함부로 얘기할 수 있단 말인가! (별이 도는 것이 지구 자전의 증거가 될 수 없듯이, 반일이 애국의 증거일 수도 없으며, 친일이 매국의 증거가 될 수도 없다. 국민의 삶의 질이 무엇에 의해 향상되었는지는 합리적인 분석에 의해 여실히 드러나리라 본다.)
 
지금도 부는 탐욕스런 자들에 의해 독차지 되고 있다. 반일파, 친일파, 친미파, 반미파, 친북파, 반북파, 반한파, 친한파, 친중파, 반중파 등 사상에 상관없이 부는 탐욕스런 자들에 의해 독점되고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에도, 공산주의에도, 사회주의에도 어디에도 인간의 탐욕은 덜하지 않는다. 공산주의 북한에도. 사회주의 러시아에도. 민주자본주의 미국에도. 그리고 한국에도. 탐욕의 차이는 오직 그 사회의 가치적 공감대에 의해 결정될 뿐이다. 미국 버지니아 공대의 한국인 ‘조승희’ 에 의해 발발한 총기난사 사건을 통해 얼마만큼 한국인의 가치관이 타락했는지 점검해야 하지 않겠는가!  인간의 존엄이 시도 때도 없이 무너지고 있는 곳에 자신의 존엄과 기본권을 보호할 수 있는 자력 수단인 ‘무기를 소지할 권리’가 절실히 필요하지 않겠는가!
 
박상준 : 전 경문전문학교 교수 임용. 전 정보통신기업 비와삼시스템 대표. 한양대학교 전자공학 박사 수료(국내외논문 20여편.특허1 실용신안 1 저서 2편 등), 전 한양대학교 강사. 저서:::SF소설 "우주의 항문 화이트홀" 외 2편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기사입력: 2007/04/18 [16:09]   ⓒ 대자보
 
  • 도배방지 이미지

  • 도이토 2007/04/20 [21:01] 수정 | 삭제
  • 지금 한국에 정말 중요하고 절실한 테마입니다. 글쓴이의 의견은 저의 평소생각과 일치점이 많아 깊이 공감합니다.

    우리 사회의 근본 가치관에 대해 자문하고 의견을 나눌 공론소통의 공간 (: Oeffentlichkeit, 공론장. 민주사회라면 미디어의 역할이지만...)이 거의 없다는 것도 아주 큰 문제입니다.

    지엽적으로는, (Verfall der Werte 가치의 전락?)가 오늘 아침도 제 머리에서 화두로 얼른거렸는데 여기서 걸맞는 한국어를 만나 반갑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