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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동당, 정치는 ‘연예기획사’ 프로젝트 아니다
[기자의 눈] 진보정당은 인물 올인정치가 아닌 정책정치로 승부걸어야
 
황진태   기사입력  2006/09/11 [10:36]

벌써부터 대선을 논한다는 것은 한국사회에 산재해 있는 의제들을 가릴 우려가 있다. 그러나 그러한 의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대승적인 관점도 필요하다. 대승적 관점에서 단연 정책의 중요성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이번 졸고에서는 다가오는 대선뿐만 아니라 앞으로 한국정치에서 선거정치가 아닌 정책정치의 공고화를 다지기 위한 논의의 진행과 더불어 최근 정책정치에 대한 혹자들의 몇 가지 의견에 대한 반론을 제기하고 나름의 방안을 제언하고자 한다.

결국 정치는 인물에 의해 구현된다?

민주노동당 부설 진보정치연구소 연구기획실장 김윤철은 <월간 인물과 사상> 8월호에 기고한 '5·31 지방선거, 진보정당은 왜 대안세력이 될 수 없었나'에서 지난 5·31 지방선거에서 민주노동당의 패배 요인으로 선거정치의 구성요소를 조직, 구도, 의제, 인물을 손꼽으면서 민주노동당은 조직을 제외한 나머지 요소에서 열세여서 패배했다고 분석했다.

기자는 이승만에 의해서 축출당한 '진보당 사건(1958년)'을 기점으로 이후 반세기 가까이 한국정치지형이 기성 보수정당의 양당제를 축으로 한 강력한 관성에 의하여 유권자가 이진법 선택을 벗어나기가 여전히 요원하다는 점과 선거 기간만 되면 양당 대리전으로 흥행몰이를 하는 대중매체로부터의 '진보정당 왕따놀이'가 민주노동당의 선전을 고전시켰다는 점도 진보정당 열세의 결정적인 요인으로 덧붙이고자 한다. 그런데 아쉽게도 김윤철은 이러한 외부적인 문제점은 지적하지 않았다.  

김윤철은 "결국 정치는 인물에 의해 구현된다"는 발언의 전제로 "당내 유력 정치인들을 유능한 진보정치의 리더를 가려내고 등장시키는 차원에서 하루 빨리 민중들에게 선보여야 한다. 그들 간의 경쟁을 통해 민중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동시에 진보적인 이념과 정책의 콘텐츠도 더욱 다양해지고 풍부해질 수 있다"1)고 주장하고 있다.

과연 선거기간에 후보 간의 경쟁에서 나온 이념과 정책의 콘텐츠를 선거기간과 상관없이 평소에 면밀하게 개발했던 정책 콘텐츠와의 질적 평가가 가능한가. 나는 질적평가가 어렵다고 본다. 가령 지난 대선에서 충청도 표심을 의식하고 급공약으로 내걸었던 행정수도 이전건만 하더라도 (지방분권의 당위성에 그 취지는 공감하지만) 현재까지도 분열의 정치를 보여주지 않았던가.

여기서 김윤철의 주장을 개량주의로 몰고 가려는 것이 아니다. 진보정당 부설 싱크탱크 일원인 김윤철이 선거정치의 구성요소로 보았던 조직, 구도, 의제, 인물 중에서 왜 하필 의제에 좀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하지 않았는지 묻고 싶어서다. 기자는 김윤철의 발언을 통하여 이번 지방선거에서의 패배에서 기인한 내년 대선에 대한 조바심을 느꼈다.

지난 '노풍 효과'에서도 보았듯이 '인물'은 하루만에 급조되는 것이 아니다. 노무현이 5공 청문회에서 일약 스타가 되어 대중적인 인지도가 있었다지만 대통령 후보감 수준의 인지도를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독자들도 익히 잘 알고 있듯이 민주당 광주경선 전까지만 하더라도 그야말로 초라한 투표율을 보여주지 않았던가.

현재 민주노동당에는 권영길, 노회찬, 단병호, 심상정, 박용진 등의 정치인들이 대중적인 인지도를 꾸준히 쌓아가고 있다. 인물경쟁의 비교우위를 공감하고, 김윤철의 조바심을 충분히 이해함에도 불구하고 대통령 후보가 연예 기획사의 '스타 만들기 프로젝트'처럼 구체성을 띠는 것이 가능하지도 않을뿐더러 (전근대적 왕권신수정치라면 가능하겠지만) 치열한 인물경쟁을 통해서 뽑혔다는 노 대통령의 임기 4년을 돌이켜 보더라도 인물 올인정치보다는 정책정치가 선차성을 발휘함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대선에서 과연 정책투쟁은 실효성이 없을까

대선에서 인물이 아닌 정책 내세우기가 실효성이 없을까에 대한 의문은 열린우리당의 '베끼기 정치'를 상기하면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004년 당시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은 민주노동당의 성과물인 학교급식법을 마치 열린우리당의 성과물인냥 발표하여 민주노동당을 황당하게 만들었는데 당시 기자가 썼던 칼럼의 일부를 재인용하여 사건을 상기 해보자. 

"열린우리당의 정당지지율을 높이고 총선에 승리하며 멀리는 대선에서 '정동영 효과'를 최대화시키기 위해서 지난 한해(2003년) 민주노동당이 발이 닳도록 학교급식법 개정에 총력을 기울였던 것은 아니다. 민주노동당의 풍부한 정책 브레인을 기성정당이 따를 수 없는 게 사실이니 기성정당이 민주노동당의 정책을 베끼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베끼는 것도 좀 창조적으로 베낄 수는 없는가. 왜 멀쩡한 원본마저 훼손하면서까지 베끼려 드는가.

민주노동당의 논평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학교급식법 개정안은 "우리 아이들의 건강과 농민들의 삶은 지켜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 의장은 학교급식법 개정을 "4·15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이 원내 1당이 될 경우"라는 정치적인 조건을 달았다. 아이들의 건강을 정치공학의 승부수로 던지는 파렴치한 생각을 어떻게 굴릴 수 있는 지 그저 신기할 뿐이다. 여기서 열린우리당이 민주노동당의 정책을 고스란히 베꼈다고 말하는 것은 오히려 민주노동당에게는 수치일 것이다."2)

이상 열린우리당의 '진보정당 정책 베끼기 사건'에서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첫째, 선거에 있어서 정책의 중요성을 기성정당조차도 진보정당으로부터 베껴올 정도로 처절히 인식하고 있다는 점. 둘째, 진보정당의 정책개발이 기성정당의 그것보다 실천적, 질적인 측면에서 우수하다는 점이다. 

또한 김윤철이 당내 싱크탱크 소속인 만큼 정책과 관련하여 진보정치연구소에 고언하자면 현재 대통령제 체제를 인정하고 대선을 준비하는 것과 더불어 다른 한편으로는 대통령제에 대한 문제점과 총체적으로 '87년 체제의 위기'를 돌파하는 대안을 내놓는 연구도 병행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싶다. 예컨대 진보적 싱크탱크인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에서 내놓은 국민직접정치의 실현을 위한 국민소환권, 발안권의 현실화, 생활정치의 활성화, 거주지 보다 직장 우선의 선거구 제안, 시민감사제, 청빈관료제 등 그동안 유럽의 사민주의 정치를 이상적인 모범답안으로 제시한 수준이 아닌 더 나아가 한국정치지형을 감안하고 고민한 재기발랄한 대안 등을 구체적으로 고민해 봐야 할 시점이다.3) 

진보정당 정책토론사이트 활성화 방안 강구해야

지난 대선에서 당시 노무현 후보가 승리할 수 있었던 요인 중에 인터넷의 기여를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이를 상징적으로 드러내주는 것이 정치토론사이트 <서프라이즈>다. <서프라이즈>를 필두로 노무현 정권 출범 이후 여러 정치토론사이트가 붐이 일면서 진보진영에서도 '민주노동당을 비판적으로 지지한다'는 기치 하에 <진보누리>(jinbonuri.com)가 개설됐다. 하지만 현재 진보누리를 접속하면 알겠지만 노무현 정권 출범 당시보다 트래픽이 현저히 저조하고 몇몇 필진들의 글만 실리는 좋게 말해서 오붓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동네 반상회로 전락했다.4) 

이러한 반상회 분위기를 일신하고 <진보누리>가 갖고 있는 진보진영 내의 치열한 의사소통 을 담아낼 공론장의 복원에는 몇 가지 변화가 선행되어야 한다. 우선, 기존의 진보누리 필진인 허영구, 박용진, 노회찬, 홍성태와 함께 진보진영 논객들을 보강하고 앞서 고언 했던 민주노동당의 싱크탱크인 진보정치연구소의 정책 제안이 <진보누리>와 연동되어 <진보누리>내에서 네티즌들의 토론을 거쳐 정책을 다듬어 나가는 장(場)이 되는 선순환적인 구조로의 쇄신이 따라야 할 것이다.5)        

<서프라이즈>가 결국 인물 중심 정치 프레임을 벗어나지 못한 태생적 한계로 인하여 현재 사이버 상에서의 '노무현 경호팀'으로 추락한 것을 반면교사 삼아서 <진보누리>가 진보정당 내부의 의제설정, 정책제안 기능을 강화한다면 민주노동당 당원뿐만 아니라 진보에 관심이 있는 일반 네티즌들까지도 이끌어낼 수 있다고 본다.

이는 서두에서 기자가 진보정당 선전의 열세요인으로 지적했던 기존 매체의 '진보정당 왕따놀이'에 대한 완전한 해결책은 될 수 없겠지만 그러한 놀이를 낙후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즉, '조중동프레임'보다는 상대적으로 진보정당에 관심을 가져준다는 <한겨레>, <경향신문>으로부터 갖는 진보정당 선전의 불만족과 당 정책 콘텐츠와 당 활동 홍보 기능에서는 탁월하지만 대중성이 결여된 <진보정치>, <이론과실천> 등 당기관지의 한계 그 사이에서 진보정당을 선전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대중매체로서의 역할을 기대할 수 있다는 점이다.   

매니페스토를 바라보는 김만흠의 오류

매니페스토(manifesto) 논의가 본격적으로 매체를 타고 선거로까지 이어진 것은 올해 들어서였다. 그런데 정치평론가 김만흠은 "유권자의 선택기준은 다양할 것인데,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나서서 '정책선거'를 강요한다. 매니페스토와 같은 정책에 대한 검증 운동은 바람직하고 필요하지만, 유권자의 선택 기준이 반드시 정책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적절치 않다"6)(굵은체는 필자주)라며 실질적으로 매니페스토 논의의 싹을 자르고 있다.

아무래도 김만흠은 "매번 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정책선거론"과 매니페스토를 동급으로 두고 있는 듯하다. 매니페스토는 "정치의 기능이 적절한 시기적 선택에 있고, 정당의 존재 가치가 사회의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관심을 복수의 선택으로 집약하며, 정당이 제시하는 정책은 재원을 동반한 실현 가능한 것이어야 한다" 즉, 매니페스토에 담겨질 내용은 검정과 평가 가능한 구체적인 목표, 실행 체제와 방식, 정책 실현을 위한 공정표 등을 담은 "기존의 선거 공약에도 이 같은 요소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를 전면에 내세우거나 이 같은 형식을 전제로 작성되지 않았"7)다는 점에서 매니페스토(정책공약)와 기존의 선거공약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계속해서 김만흠의 주장을 들어보자.

"기본적으로 시민단체와 언론이 완벽한 정책 검증의 주체가 될 수는 없다. 또 정책의 목표, 우선순위, 절차, 재원, 기한 등이 정책검증의 기준으로 제시되었지만, 여전히 추상적일 수밖에 없었다."8)

그렇다면 '천상의 이데아 정치'를 하자는 말인가. 어떤 제언이든 장단점이 있는 법, '여전히 추상적일 수밖에 없'다는 말이야말로 추상적이고 무책임한 발언이다. 매니페스토가 한국정치에 뿌리내리고, 시민단체에서 공약실천 모니터링이 유기적으로 결합된다면 김만흠을 만족시킬만한 '완벽한 정책 검증' 수준에는 못 미치더라도 기존의 정책 검증보다는 나아질 것이다. 해보지도 않고 문제점이 있다며 시작부터 발목을 잡는다면 어떤 정책정치의 공고화도 불가능하다.

"알다시피 중앙정치의 소용돌이가 지방선거를 지배했고, 중앙정치는 거대 정당의 싸움이었다. 따라서 매니페스토 운동과 그에 따른 정책 검증이 선거에서 당락에 별다른 변수는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9)

사실 김만흠의 저서 곳곳에서 노무현 정권을 예로 들며 제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음10)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매니페스토에 대해서는 평가절하하고 있다. 누가 "반드시"를 붙여가며 매니페스토 지상주의 논리를 펼쳤으며 어떤 전문가들이 매니페스토를 "강요"했는가. 극단적인 수사는 논의의 싹을 자를 뿐, 떡잎도 못 본다. 재차 말하지만 정책 정치로의 이행이 이제 갓 유아기 수준인 한국정치에서 매니페스토 논의를 선거에서 '별다른 변수가 아니었다'며 찬물을 끼얹는 것은 무책임한 발언이다. 앞으로 매니페스토가 '선거의 변수'가 되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이야말로 책임 있는 처사가 아닐까.

"권력행사는 대통령이 하면서 그 책임은 보조기능을 하는 여당이 지고 있으며, 정당정치 또한 대권 경쟁의 대리전이 되고 있다"11)는 김만흠의 문제의식도 인물에 올인 할 수밖에 없는 그야말로 '초'대통령제에 포섭된 정당정치가 정책에 신경 쓰지 않고, 대권 경쟁으로만 쏠리기 때문이다. 대권경쟁의 대리전이라는 체스판을 뒤집기 위해서라도 매니페스토는 대안으로써 필요조건은 못되지만 충분조건은 충족시킨다. 

'비판적 지지' 논쟁 되풀이 되어서는 안된다

이번 대선에서 만큼은 지난 대선에서 벌어졌었던 '비판적지지 논쟁'12)으로 '진보정당은 뽑아봤자 사표(死票)'라는 논리에 맞서 정책을 통하여 평가받는 선거가 되어야 할 것이다. 제 버릇 개 못준다는 선연들의 말마따나 한나라당과 대연정을 논의하다가도 조변석개로 '좌파신자유주의'를 작명하는 일관성 없는 열린우리당과 노무현 대통령의 처신은 5·31 지방선거에서 특히 서울시장 선거에서 민주노동당 지지자들에게 비판적 지지를 호소하는 몰염치를 또다시  보였는데 이제는 '열린우리당을 뽑아봤자 사표'라는 역발상의 공세적인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다.13)

인물 올인정치의 극단적 폐해, 무오류 집단 최면시스템과 엘리트 정치

현대정치에서도 여전히 '인물'이 갖고 있는 강점을 인정하면서도 정책과 제도의 강점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은 작금의 노무현 정권이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는 '비판적 지지'가 진보정당을 지지하는 유권자들에게 '꽤' 먹혀들어갔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5·31지방선거에서는 그 효과가 미미했고, '비판적 지지' 논쟁조차도 찻잔 속의 태풍으로 사라졌다.

초록정치연대 정책실장 우석훈은 황우석 사태를 언급하면서 이러한 찻잔 속의 태풍이 돼버린 현 정국의 맹아를 다음과 같이 예리하게 짚어내고 있다. 

"'황금박쥐'의 핵심인 김병준 전 정책실장은 끝까지 사과하지 않았다. 이건 나쁜 징조다. 좁게 해석하자면 청와대가 '닫힌 구조'를 고수하며, 자신들이 '무오류 집단'이란 최면에 깊게 빠져들어 가고 있다는 징후다. … 그들은 새로운 진화 대신 '퇴행'의 길을 택했다. 그 순간 청와대의 '닫힌 시스템'이 완성되었다. 황우석 사건의 연장선에서 그와 그를 둘러싼 몇 명. 즉 '대통령의 측근'들이 꺼내든 새로운 국면전환카드가 한미FTA였을 것이라고 보는 것은 지나친 억측일까? '무오류 집단최면 시스템'이 끝까지 간 것이 스탈린 시스템이다. '당의 무오류성 원칙'과 '민주집중제', 즉 전체가 선택하고 일단 선택한 것은 모두가 따른다는 두가지 원칙이 결합되면 얼마나 비극적인 일이 발생하는지 인류는 이미 경험했다."14)

어디 '황우석 사태'뿐인가. 이라크 파병, 대추리 사태, 한미FTA 협상 등에서 노무현 정권의 '무오류 집단최면 시스템'을 통한 현 정권의 오만과 엘리트 정치의 폐해는 수두룩하다. 홍세화의 주장처럼 '모든 지지는 본디 비판적 지지'여야 하는 이유는 진보정당 내부에서 아무리 좋은 인물이 나오더라도 제도, 정책의 불완전성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노무현 정권의 전철을 또다시 밟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 정책개발이 유권자들의 눈에 '표(標)'가 나지는 않겠지만 이러한 정책의 축적은 곧 대선에서 진보정당을 지지하는 '표(票)'로 나타날 것이다.

[각주]
1) 김윤철,「5.31 지방선거, 진보정당은 왜 대안세력이 될 수 없었나」,『월간 인물과 사상』8월호, 94쪽

2) 황진태,「정동영의 과잉 '이미지정치'와 민주노동당」,『대자보』, 2004년 1월 19일자 

3) 김문주 외,『새로운 사회를 여는 상상력』,시대의 창, 2006 참조

4) 사실 진보누리 필진이었던 진중권의 탈퇴가 진보누리 침체의 결정타였다. 그런데 이러한 사이트의 흥망을 보더라도 얼굴마담 역할을 하는 '인물'에 기대어서는 사이트가 얼마 못가 침체되는 것은 명약관화다. 비단 제도, 시스템의 중요성은 정치판만의 문제는 아닌 듯하다. 

5) 이러한 아이디어는 진보적 싱크탱크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에서 정책토론웹사이트로 새롭게 개설한 이스트플랫폼(www.eplatform.or.kr)을 참조했다.

6) 김만흠,『민주화 이후의 한국정치와 노무현 정권』,한울, 2006, 9쪽

7) 이홍천,「매니페스토 도입을 제안하며 한국정치는 변할 수 없는가」,『월간 인물과 사상』, 2006년 3월호, 66∼67쪽

8) 김만흠, 앞의 책, 250쪽

9) 김만흠, 앞의 책, 251쪽

10) 김만흠은 대통령제의 폐해와 관련하여 "지역주의 구도의 해체를 과제처럼 말하는 사람들이 있으나, 분열의 해체가 아니라 분열을 통합하는 양식과 제도를 만드는 것이 과제이다. … 승자독식의 한국 대통령제는 적대적 대립 정치의 중요한 배경이 되었다. 기본적으로 현행 대통령제는 의회와의 관계 설정 등에서 민주화 시대 정치체제로서 정합성을 상실하고 있다. … 제도개편이 요구된다."(김만흠, 앞의 책, 186쪽)며 제도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선거정치의 문제점의 언급에서도 "선거정치가 정부권력의 보편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기제가 되고, 이를 토대로 국민들의 욕구표출과 정치행위가 제도적으로 수렴되는 정치체제가 구축되기 위해서는 여러 정치사회적 조건과 제도가 부합해야 한다."(김만흠, 앞의 책, 209쪽)고 밝혔다.

11) 김만흠, 앞의 책, 10쪽

12) 주대환,『진보정당은 비판적 지지를 넘어설 수 있는가』,이후, 2002 ; 강준만,「노무현에 대한 '비판적 지지' 논쟁」,『인물과 사상』제21권, 개마고원, 2002, 27∼69쪽 참조

13) 홍세화는 비판적 지지에 대하여 "모든 지지는 본디 비판적 지지이다. 디제이와 와이에스의 분열 이후 한국사회에서 '비판적 지지'라는 말은 그 본디의 의미를 상실하고 부정적이거나 왜곡된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 비판적이지 않은 지지는 맹신이거나 광신을 뜻할 뿐이다."(홍세화,「한겨레 신문 이야기」,『월간 인물과 사상』2005년 4월호, 66∼67쪽)고 밝히고 있다. 그동안 '비판적 지지'에 대해서 불편할 수밖에 없었던 진보정당이 이제는 '비판적 지지'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불어넣고 자기화할 필요가 있다.  

14) 우석훈,『한미 FTA 폭주를 멈춰라』, 녹색평론사, 2006, 166쪽


* 본 기사는 민주노동당 정책이론지 월간 <이론과실천> 9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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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6/09/11 [10:36]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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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기빈 2006/09/14 [22:22] 수정 | 삭제
  • "인물"은 싸우면서 만들어집니다. 그것을 위해서는 "판"이 먼저 벌어져야 하고, 그 판은 폭넓은 쟁점과 싸움을 담아낼 수 있을 만한 내용과 넓이와 깊이를 가진 판이라야 합니다. 민노당이 "인물"을 만들려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그 "판"을 짜는 일입니다. 그렇게 벌어진 판에서 싸우고 힘을 발휘하는 과정에서 대중적인 존경과 신뢰를 얻게 되는 것이 큰 정치가가 나오는 과정입니다.
    인물 만들기 이벤트를 통해서 만들어지는 인물은 동방신기나 전지현이 있습니다. 민노당이 에스엠 기획사가 아니라면, 이런 짓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만들어진 스타인 줄 알면서도 연예인들을 좋아 합니다. 연예인들에게 조국의 미래와 자신의 행복을 기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그저 잠시 눈과 귀가 즐거우면 그만이니까요. 그런데 정치가에 대해서 똑같은 기준으로 판단하고 평가하는 사람들은 분명 한계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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