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여당의 높은 이들이 입만 열면 양극화 해소를 말한다. 막연히 성장보다는 분배가 우선이라며 그저 증세론만 부르짖는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구호로 변질되는 양상이다. 노무현 정부 들어 빈부격차가 더 벌어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것은 장기간에 걸친 사회정책·경제정책의 누적적 실패에서 비롯됐다. 단순히 증세만으로 단기간에 해결될 성질이 아니다. 이 문제는 국가정책의 총체적 점검을 거쳐 다각적으로 풀어나가야 할 과제다.
양극화의 첫째 원인은 자산소득의 격차이다. 아파트 투기는 김대중 정부가 경기부양을 위해 투기규제를 몽땅 푼 데서 발단했다. 그런데 노 정부는 저금리의 문제점을 무시하고 금리부터 인하했다. 오갈 곳 없던 부동자금에게 탈출구를 마련해 준 셈이다.
투기억제책도 강남 위주로 폈다. 여기에다 중앙집중을 완화한다면서 수도권 개발정책을 잇달아 내놓다. 그것도 모자라는지 행정수도, 기업도시, 혁신도시를 건설한다며 전국의 땅값, 집 값을 들쑤셨다. 지역에 따라 부동산값이 2∼3배나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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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빈부격차로 인한 양극화, 그리고 희망없는 미래이다. © 대자보 |
주가급등에 따라 빈부격차가 더욱 벌어지고 있다. 개인투자가의 투자이득이 문제가 아니다. 대기업의 경영책임자들이 주가상승을 기대하는 주주들을 의식하여 단기적인 수지개선에 주력한다. 인건비를 절감한다며 상시적으로 인력감축을 실시하거나 비정규직으로 전환한다.
또 상습적으로 하청업체의 납품단가를 깎는다. 이런 수탈적 경영호전을 통해 주가를 띄우고 배당을 늘린다. 자본소득의 양극화가 심화되지만 주가하락을 염려하여 주식양도세는 거론조차 못한다.
IMF 사태 이후 노동시장이 양극화로 치닫는다. 노동자의 절반 이상이 비정규직이다. 같은 일을 하고도 봉급은 정규직에 비해 절반도 못 받는다. 그나마도 언제 쫓겨날지 몰라 고용불안에 떤다.
많은 비정규직이 월 100만원을 받을까 말까 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격차가 날로 벌어진다. 대기업 임원은 연봉이 수 억 원, 수십 억 원에 이른다. 이런 착취적 노동시장-임금구조를 그냥 두고는 양극화를 해소하지 못한다.
유통시장 개방 10년 만에 외국자본·거대자본이 전국의 상권을 완전히 장악했다. 쓰나미 마냥 구멍가게고 재래시장이고 싹쓸이했다. 가격파괴를 내세운 이른바 할인점이라는 양판장이 300개를 넘어섰다. 중-저가품 위주에서 벗어나 고가품에도 진출했다.
재벌계열의 편의점이 골목마다 버티고 있다. 막상 외국자본의 본고장에서는 도심에 양판장을 두지 못한다. 자본도 기술도 없는 사람들은 먹고 살 길이 막막하다. 온 식구가 달라붙어 품삯이나 뜯던 곳이 거대자본·외국자본의 사냥터가 되고 만 것이다.
직장을 잃은 사람들이 할 일을 찾아 밥장사나 해볼까하고 덤벼든다. 골목마다 늘어나는 것은 식당뿐이다. 이마저 외국자본·거대자본의 몫이 되어 버렸다. 고급식당은 물론이고 패스트푸드니 패밀리 레스토랑이니 해서 돈 있는 손님이나 젊은 고객들을 저인망 훑듯이 뺏어간다. 그것도 체인화해서 길목 좋은 곳은 몽땅 그들의 차지다.
부가가치세는 소득수준과 상관없이 단일세율을 무차별적으로 적용한다. 부자나 빈자나 똑같이 세금을 내는 대표적인 간접세다. 이런 세금부담의 역진성(逆進性)을 보완하기 위해 특별소비세를 도입했다.
그런데 노 정부는 24개 고가품에 대한 특소세를 아예 없애버렸다. 자동차의 경우 세율을 배기량 2,000cc 이상은 10%, 그 이하는 5%로 인하했다. 1994년까지만 해도 세율이 65%이었는데 말이다. 부자를 위한 감세잔치다. 그 까닭에 고가품 수입이 늘어나고 억대 수입차가 불티나게 팔린다. 양극화를 해소하려면 간접세 비중부터 줄여야 하는데 거꾸로 간다.
저금리가 빈부격차를 더 벌린다. 퇴직금을 은행에 맡겨도 이자소득세을 빼고 물가상승률을 제하면 남는 게 없다. 하지만 은퇴자우대 금융상품 같은 게 없다. 그런가 하면 부자는 저금리를 이용해 주식에도 부동산에도 투자해 돈을 번다. 금리가 낮다지만 저소득층은 공금리의 10배, 20배나 되는 사채에 매달린다. 담보가 없어 은행 문턱을 넘지 못하는 까닭이다. 이자제한법을 되살린다는 소리도 없다.
사교육비 부담이 가난한 사람을 더 가난하게 만든다. 미국과 FTA(자유무역협정)을 맺으면 농민을 어디로 가란 말인가? 신자유주의를 신봉하는 관료집단이 적하효과(滴下效果 : trickle-down effect)를 믿는 모양이다. 그들이 이 나라를 지배하는 기득권 층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양극화 해소라는 정책방향은 옳지만 접근방법이 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