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보도에 의해 김대중 전 대통령의 '숨겨논 딸'이 있는 것으로 심증이 굳어가고 있는 상태에서 숨겨논 딸에 대한 김 전 대통령의 행동과 언론의 행태를 강하게 비판하는 글이 25일 한 일간지에 실려 화제가 됐다.장명수 한국일보 이사는 <'숨겨진 모녀'의 파괴된 삶>이라는 자신의 기명칼럼에서 "부동산 투기를 한 공직자가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하던 사람들이 ‘숨겨진 모녀’의 망가진 삶을 보면서 ‘전직 대통령의 사생활 보호’를 주장하는 것은 언어도단"이라며 '숨겨진 모녀’의 인권을 말하기 곤란하다면 최소한 조용히라도 있어야 한다고 언론의 보도행태를 비판했다.
|
▲김대중 전 대통령의 딸이 아닌 '숨겨진 모녀'의 파괴된 삶을 조명한 한국일보 장명수 이사의 기명칼럼 © 한국일보 2005년 4월 25일자 PDF |
장 이사는 "명예훼손이니 사생활 보호니 음모니 하는 주장은 모두 치졸한 소리"라며 "어떤 ‘큰 일’도 남의 생을 파괴하는 변명이 될 수 없다"고 김 전 대통령의 행동을 비판했다. 장 이사는 "공직자나 보통 사람이나 혼외자녀를 갖게 될 수 있다"고 전제하고 "어떤 사정이 있든 가슴 아픈 일이다. ‘남자의 사생활’ 운운하며 덮어주는 풍조가 있지만, 상대방과 자녀의 운명을 생각한다면 너그러울 수 없는 문제"라고 지적한 후 그 이유를 "자녀에겐 죄가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그들 모녀의 망가진 삶을 바라보면서 나는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한평생 투쟁하고 그 공로로 노벨상까지 받았던 김대중 전 대통령을 생각한다"며 "여러 사정이 있었겠지만 아버지로서 바른 선택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여자와의 관계는 한 때의 외도에 불과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랜 세월 주변에서 돈으로 그 모녀를 달래온 상황을 보면 자신의 딸임을 부인할 수 없었던 것 같다. 죄 없이 태어난 딸에게 어떻게 그처럼 가혹할 수 있었을까"라고 DJ의 행동을 비판했다.
장 이사는 "그들 모녀를 돌봐 주곤 했다는 이태영 선생님에게도 유감이 남는다"며 "한국 최초의 여성 법조인으로 무료 법률 상담에 한평생을 바쳤던 선생님이 왜 그들 모녀를 법률적으로 돕지 않고, 정치인 김대중에게 부담이 안 가도록 선을 그었는지 안타깝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장 이사의 칼럼은 여성 특유의 감성으로 김 전 대통령의 '숨겨진 딸' 논란이 철저하게 남성중심적 사고와 논리로만 흐르는 것에 제동을 걸고, '대통령의 딸'이 아닌 모녀의 '파괴된 삶'을 본격 제기한 칼럼으로 평가된다.
다음은 장명수 이사의 칼럼 원문이다.
[장명수칼럼] '숨겨진 모녀'의 파괴된 삶(한국일보, 2005. 4. 25)SBS가 김대중 전 대통령의 딸이라고 주장하는 한 여성에 대한 의혹을 보도한 후 여러 반응들이 나왔다.
신문 방송들은 일제히 ‘진승현 게이트’와 국가정보원 관련설을 철저하게 조사하라고 요구했다. 국정원 간부들이 기업인의 돈을 뜯어서 대통령의 숨겨진 딸과 그 어머니를 관리했다면 권력남용 등 법적ㆍ도덕적인 문제가 있다는 주장이다.
정치권은 공식 논평 없이 유감 표시에 머물렀다.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에선 “한국 정치 발전에 크게 기여했고 퇴임 후에도 국가를 위해 헌신하고 있는 분의 과거사를 들춰 먹칠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반응이 나왔다. 한나라당은 “왜 하필 이때 그런 보도가 나왔는지 의미심장하다”고 ‘음모설’을 제기했다.
권력 남용에 대한 지적은 매우 중요하고, 국정원 스스로 이번 의혹을 밝혀야 한다는 주장에 동의한다. 전직 대통령의 사생활을 들춰내는 것에 대한 유감도 일리가 있다. 그러나 나는 다른 말을 하고 싶다. 그것은 ‘숨겨진 모녀’의 파괴된 삶과 인권에 대한 얘기다.
공직자나 보통 사람이나 혼외자녀를 갖게 될 수 있다. 어떤 사정이 있든 가슴 아픈 일이다. ‘남자의 사생활’ 운운하며 덮어주는 풍조가 있지만, 상대방과 자녀의 운명을 생각한다면 너그러울 수 없는 문제다. 결혼할 수 없지만 상대를 너무나 사랑해서 아이를 낳았다는 여자도 있다. 부모의 어떤 말도 혼외자녀로 살아가는 고통을 달래줄 수 없을 것이다. 자녀에겐 죄가 없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상황을 볼 때 DJ의 ‘숨겨진 딸’ 이야기는 사실인 것 같다. 한정식 집에서 일하던 20대 초반의 여자가 국회의원이던 DJ를 만나 1~2년 사귀었고, 그를 사랑하게 됐고, 1970년에 딸을 낳았으나 끝내 그의 호적에 올리지 못했고, 그가 대통령이던 지난 2000년 자살했다는 사실이 주변 사람들을 통해 밝혀지고 있다.
지금 35살인 ‘숨겨진 딸’은 “엄마가 시킬 때마다 어린 나이에 거지처럼 생활비를 얻으러 가곤 했다”고 털어놓았다. 아버지는 자신을 받아들이지 않고, 엄마는 결국 자살을 택한 상황에서 그가 얼마나 불행하게 성장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는 SBS 기자와 인터뷰하면서 소리지르고 울부짖었다.
그들 모녀의 망가진 삶을 바라보면서 나는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한평생 투쟁하고 그 공로로 노벨상까지 받았던 김대중 전 대통령을 생각한다.
여러 사정이 있었겠지만 아버지로서 바른 선택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여자와의 관계는 한 때의 외도에 불과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랜 세월 주변에서 돈으로 그 모녀를 달래온 상황을 보면 자신의 딸임을 부인할 수 없었던 것 같다. 죄 없이 태어난 딸에게 어떻게 그처럼 가혹할 수 있었을까.
그들 모녀를 돌봐 주곤 했다는 이태영 선생님에게도 유감이 남는다. 한국 최초의 여성 법조인으로 무료 법률 상담에 한평생을 바쳤던 선생님이 왜 그들 모녀를 법률적으로 돕지 않고, 정치인 김대중에게 부담이 안 가도록 선을 그었는지 안타깝다.
그것이 그 시대의 한계였을까. ‘큰 일’하는 사람에겐 ‘작은 허물’이 문제가 안되고, 남자의 외도는 너그럽게 덮어 주던 시절의 한계일 것이다. 김대중씨의 목숨까지 노렸던 박정희 전 대통령도 ‘숨겨진 딸’ 문제는 덮어 줬다고 하지 않는가.
하긴 박정희씨도 첫 부인과 그 소생인 장녀를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았으니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부동산 투기를 한 공직자가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하던 사람들이 ‘숨겨진 모녀’의 망가진 삶을 보면서 ‘전직 대통령의 사생활 보호’를 주장하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숨겨진 모녀’의 인권을 말하기 곤란하다면 최소한 조용히라도 있어야 한다. 명예훼손이니 사생활 보호니 음모니 하는 주장은 모두 치졸한 소리다. 어떤 ‘큰 일’도 남의 생을 파괴하는 변명이 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