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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의 독재 체제 우화적 서사로 비판한 ‘신성한 나무의 씨앗’
모함마드 라술로프 감독, 칸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 수상 ‘신성한 나무의 씨앗’
 
임순혜   기사입력  2025/05/29 [12:13]

영화 ‘신성한 나무의 씨앗’은 이란의 거장 모함마드 라술로프 감독이 각본과 연출을 맡은 작품으로, 모함마드 라술로프 감독은 체제를 비판하는 영화를 만들었다는 이유로 감시와 탄압을 받던 와중에 만든 영화로, 2024 칸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 국제영화비평가연맹상,  에큐메니컬상, 프랑수아 샬레상, AFCAE상 등 전 세계 영화제 36개 부문에서 수상한 영화다.

 

▲ 영화 ‘신성한 나무의 씨앗’의 한 장면     ©그린나래미디어㈜

 

'신성한 나무의 씨앗’은 대규모 히잡 반대 시위가 시작된 테헤란, 권력 안에 속한 수사판사 이만과 그 밖에 있는 아내와 두 딸 사이에 생긴 균열을 그린 서스펜스 스릴러로, 모함마드 라술로프 감독은 이란의 독재 체재를 우화적 서사로 강하게 비판한 작품이다. 

 

모함마드 라술로프 감독은 새 영화가 공개될 경우, 기존의 징역형 외에 추가로 새로운 형벌이 내려질 것이 확실해져, 감옥과 망명 중에 선택해야 하는 갈림길에 놓였고 결국 국경을 넘어 유럽으로 망명했다.

  

칸영화제에서 상영된 ‘신성한 나무의 씨앗’은 스크린데일리 평점 3.4의 최고점을 기록했으며 15분 가량의 기립박수를 받았으며, 칸영화제는 이 영화를 기리기 위해 ‘심사위원 특별상’이라는 새로운 상을 만들어 수여했다.

 

‘신성한 나무의 씨앗’의 칸영화제 공식 상영 후, 모함마드 라술로프 감독은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어서 정말 기쁘고, 이 영화가 만들어질 수 있게 해준 모든 분들을 떠올리고 있다. 이름을 다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분들이 있다. 한 사람 한 사람께 감사드린다. 저는 진심으로 바랍니다. 이란의 억압과 독재 체제가 언젠가는 반드시 끝나기를”이라는 말을 남겼다. 

 

▲ 영화 ‘신성한 나무의 씨앗’의 한 장면     ©그린나래미디어㈜

 

‘신성한 나무의 씨앗’은 모함마드 라술로프 감독이 수감되었던 2022년, 이란에서는 22세 여성 마흐사 아미니(지나 아미니)가 히잡을 올바르게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찰에 체포된 후 사흘 만에 의문사한 사건을 다룬 이야기다.

 

모함마드 라술로프 감독은 마흐사 아미니의 사망을 계기로 “여성, 삶, 자유(WOMEN, LIFE, FREEDOM)”라는 슬로건과 함께 시위가 시작되고, 이란 정부는 경찰과 군대를 동원해 무자비하게 진압했지만 시위의 불씨가 전국으로 퍼져 대대적 반정부 시위가 발생하기에 이르렀던 사실을 영화로 만들었다. 그는 여성들의 용기와 결단력에 깊이 감동했고 출소 후, 이 운동에 기여하고 싶어 대규모 히잡 반대 시위를 배경으로 한 영화를 만들었다. 

 

▲ 영화 ‘신성한 나무의 씨앗’의 한 장면     ©그린나래미디어㈜

 

 

‘신성한 나무의 씨앗’은 2022년 이란의 대규모 히잡 반대 운동을 배경으로, 가족의 균열, 세대의 변화, 권력과 정치 시스템에 대한 이야기까지 담고 있는데, 이란이라는 국가에 한정되지 않고 다양한 국가, 집단, 가족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 시대의 많은 사건들을 떠올리게 하며 관객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영화다.

 

‘신성한 나무의 씨앗’은 두 딸들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는데, 특히 둘째 딸 사나(세타레 말레키)는 모함마드 라술로프 감독이 가장 공들여 구축한 캐릭터 중 하나로, 사나는 관찰자이자 목격자이며 자기 분석 끝에 스스로 결론을 내리는 인물로, ‘여성, 삶, 자유’ 운동을 이끌어 세계를 놀라게 했던 이란의 젊은 세대 그 자체를 상징한다.  

 

▲ 영화 ‘신성한 나무의 씨앗’의 한 장면     ©그린나래미디어㈜

 

꿈에 그리던 수사판사로 승진하게 된 주인공 이만 역을 맡은 미사그 자레는 레자 도르미시안 감독의 ‘아임 낫 앵그리!’, 모함마드 라술로프 감독의 ‘집념의 남자’ 등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 다양한 이란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한 배우로, 2006년부터 본격적으로 연기 활동을 시작, 이란뿐만 아니라 독일, 러시아, 호주 등 여러 나라의 영화와 연극 무대에서 다양한 역할을 소화해 온 배우다. 

 

미사그 자레는 이만 역을 맡아, 꿈에 그리던 수사판사로 임명된 시기에, 대규모 히잡 반대 시위가 터지고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사형을 집행하며 힘들어하나, 가족에게도 체제의 통제를 강요하며 서서히 변화하는 캐릭터 이만을 완벽하게 연기한다. 

 

▲ 영화 ‘신성한 나무의 씨앗’의 한 장면  © 그린나래미디어㈜


이만의 아내 나즈메 역은, 이란 테헤란 출생으로, 무대미술을 전공해 학사 학위를 받았으며, 다수의 연극 무대에 참여해왔던 소헤일라 골레스타니가 맡았다. 2001년 연극 무대를 통해 연기 활동을 시작했으며, 2006년에 스크린 데뷔를 하며 영화계에 입문해 이란 내 다양한 연극 및 영화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왔다. 

 

소헤일라 골레스타니는 ‘신성한 나무의 씨앗’에 출연했다는 이유로 태형 74대와 징역 1년형을 선고받을 위기에 처했다. 그는 2022년에도 시위에 연대하는 영상을 SNS에 올린 후 체포되어 감옥에 수감된 적이 있었다. 시상식 참석은 물론, 국제 활동도 전면 제약된 그는 현재 테헤란 자택에 연금된 상태다. 

 

두 딸을 둔 엄마, 나즈메 역을 맡은 소헤일라 골레스타니는, 수사판사로 승진한 남편과 함께 살아가며, 남편의 출세가 가져온 안정된 삶과 거리에서 일어나는 시위 사이에서 겪는 나즈메의 내적 갈등을 선보여 공감하게 하며 감동하게 한다.

 

▲ 영화 ‘신성한 나무의 씨앗’의 한 장면     ©그린나래미디어㈜

 

이만과 나즈메의 딸 레즈반은 마흐사 로스타미가, 사나 역은 세타레 말레키가 맡아, 두 딸은 공권력의 울타리 속에서 변해가는 아빠, 이만을 보며 조용히 저항의 씨앗을 틔우는 역을 연기해 공감하게 한다. 

 

‘신성한 나무의 씨앗’에 출연한 마흐사 로스타미, 세타레 말레키, 그리고 레즈반의 친구 사다프 역을 맡은 니우샤 악쉬는 서로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으나, 세 배우는 2022년 9월, 마흐사 아미니(지나 아미니)가 경찰 구금 중 사망한 사건 이후, 더 이상 이란 당국과 타협하지 않기로 결심한 공통점을 갖고 있다.

 

전국적 시위에서 500명이 넘는 시민이 희생당한 상황에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연기 활동을 이어가는 건 불가능했던 세 배우는 결국 가족을 남겨둔 채 이란을 탈출, 지금은 베를린에서 함께 살고 있다. 

 

▲ 영화 ‘신성한 나무의 씨앗’의 한 장면  © 그린나래미디어㈜


이란의 독립영화 감독이자 각본가, 프로듀서, 모함마드 라술로프 감독은 대학에서 사회학을 전공하며 동시에 다큐멘터리와 단편영화로 영화 경력을 시작했다. 첫 장편영화 ‘황혼’(2002)은 이란의 파즈르 영화제에서 작품상을 수상했으며, 두 번째 장편영화 ‘철의 섬’(2005) 제작 이후 이란의 검열 법규와 충돌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이후 영화 제작 및 상영 기회는 크게 제한되거나 금지되었다. 그는 총 8편의 장편영화를 제작했으나, 검열로 인해 이란 내에서는 단 한 편도 상영되지 못하고, 그의 작품들은 해외에서 상영되었고 관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모함마드 라술로프 감독은 대부분 우화적 서사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했으나, 2010년 이후에는 보다 직접적이고 정치적인 표현 방식을 사용, 2010년 3월, 자파르 파나히 감독과 함께 프로젝트를 촬영하던 중 현장에서 체포되었고, 1심 재판에서 징역 6년형을 선고받았으나 이후 1년형으로 감형되어 보석으로 풀려났다. 

 

▲ 영화 ‘신성한 나무의 씨앗’의 한 장면     ©그린나래미디어㈜

 

모함마드 라술로프 감독은 2011년에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서 ‘이별’로 감독상을 수상했고, 2013년, 같은 부문에서 ‘진실은 불타지 않는다’로 국제영화비평가연맹상(FIPRESCI)을 수상했다. 2017년에는 ‘집념의 남자’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 최고상을 수상했으나, 2017년 9월, 이란 귀국 이후 출국 금지 조치를 받았고, 지금까지도 유효하다. 그는 ‘국가 안보 위협’ 및 ‘이슬람 정권에 대한 선전 선동’ 혐의로 기소되었으나, 영화 제작을 멈추지 않았다.

 

2020년에 감독, 각본가, 제작자로 참여한 ‘사탄은 없다’로 베를린국제영화제 최고상인 황금곰상을 수상한 모함마드 라술로프 감독은, 2022년 7월8일, 이란 남서부 아바단(Abadan)에서 발생한 건물 붕괴 참사에 대한 정부 대응을 비판하는 성명서에 서명한 뒤 체포되어, 이전 판결이 근거가 되어 재수감되었고, 2023년 2월 에빈 감옥에서 7개월 만에 석방되었으나, 석방 직후, 해당 성명서 및 그의 여러 영화들을 근거로 한 새로운 수사가 시작되었다. 

 

▲ 영화 ‘신성한 나무의 씨앗’의 한 장면  © 그린나래미디어㈜


모함마드 라술로프 감독은 출국 금지 상태에서 2021년 베를린국제영화제 심사위원으로 원격 참여했고, 2023년에는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 심사위원으로도 초청되었으나 이란 당국의 제재로 참석하지 못했다. 2024년 4월, 이란 법원은 그에게 징역 8년형, 태형, 벌금, 자산 압류 등을 선고했다. 

 

‘신성한 나무의 씨앗’이 2024년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공식 초청된 직후, 이란 당국은 출연진과 제작진을 소환해 심문하고 출국을 금지했으며, 모함마드 라술로프 감독에게 출품 철회를 강요하도록 압박했으나, 모함마드 라술로프 감독과 일부 스태프는 비밀리에 유럽으로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 

 

▲ 영화 ‘신성한 나무의 씨앗’ 포스터  © 그린나래미디어㈜


2024년 5월 12일, 제77회 칸영화제 개막 전 모함마드 라술로프 감독은 “며칠 전, 긴 여정 끝에 유럽에 도착했다. 약 한 달 전, 저의 8년형 징역 판결이 항소심에서 확정되었고, 곧 집행될 예정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새 영화 소식이 곧 공개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기에, 저는 기존 8년에 새로운 형벌이 추가될 것이라는 것을 확신했다. 결정을 내릴 시간이 많지 않았다. 감옥에 가는 것과 이란을 떠나는 것 사이에서 선택해야 했다. 무거운 마음으로 저는 망명을 선택했다”며 “망명을 택하게 한 최근의 부당한 판결에 강력히 항의한다“고 밝혔다.

 

이어 ”탄압의 범위와 강도는 끔찍할 정도로 심각해져, 사람들은 정부가 저지르는 흉악한 범죄 소식을 날마다 예상한다. 이슬람 공화국은 지속적이고 체계적으로 인권을 유린하고 있다“고 항의하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삶을 위한 싸움에서 모든 것을 걸고 있는 많은 이란 여성들에게 보내는 위대한 헌사”(Vanity Fair)라는 찬사를 받는, 정부의 눈을 피해 비밀리에 제작한 ‘신성한 나무의 씨앗’은 6월3일(화) 개봉한다.

글쓴이는 '미디어운동가'로 현재 미디어기독연대 대표, 언론개혁시민연대 감사, 표현의자유와언론탄압공동대책위원회공동대표/ 운영위원장, '5.18 영화제' 집행위원장으로,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방송특별위원, 영상물등급위원회 영화 심의위원을 지냈으며, 영화와 미디어 평론을 전문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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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5/05/29 [12:13]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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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는 '미디어운동가'로 현재 한신대 외래교수, 미디어기독연대 집행위원장, 경기미디어시민연대 공동대표이며, 영화와 미디어 평론을 전문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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