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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과 북경 천안문은 어떻게 다른가?
[논단] 중화사상의 중국, 어떻게 70년 만에 미국과 맞서는 나라 되었나?
 
리대로   기사입력  2021/02/02 [01:25]

 중국은 요즘 세계 중심 국가로 떠올라 미국과 맞서고 있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을 세웠을 때만 해도 중국은 나라가 몹시 어지럽고 못살았다. 그 때에는 미국에 맞서는 것은 꿈도 못 꾸었다. 중국은 70년 만에 경제가 일어나 미국 경제를 위협하더니 이제 군사력도 미국에 맞서고 있다. 그런데 어떻게 오늘날처럼 그렇게 힘센 나라가 되었을까? 공산주의가 좋아서 그랬나? 아니다. 공산주의 종주국인 소련은 벌써 망했다. 그럼 인민이 똑똑해서일까? 아니다. 글을 모르는 문맹자가 우리나라보다도 많다. 30여 년 전 우리와 외교 수립을 했을 때만해도 우리보다 못살았고 우리를 부러워했는데 지금은 아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부강한 나라가 되었을까? 여러 어려움이 있었겠지만 무언가 그만한 까닭이 있었을 것이다.

 

내 나름대로 중국이 이렇게 일어난 것은 정부가 국민을 하나로 뭉치게 하고, 슬기롭게 정책을 세우고 세차게 실천했으며 시대 흐름과 변화를 잘 탔다고 본다. 어떻게 국민을 하나로 뭉치게 했을까? 국민의 자긍심과 자부심을 살리고 자신감을 가지게 했다. 그리고 그 자신감을 가지고 정부가 경제와 과학기술을 발전시키고 나라를 안정시켜서 정부를 믿고 따르게 했다. 소련은 무너졌으나 등소평은 재빨리 개혁 개방을 했고 경제 정책은 자본주의 못지않게 바꾸었다. 중국인은 본래 장사를 잘하고 스스로 세계 중심이라는 중화사상을 가지고 있는데 중국을 세울 때부터 천안문에 “중화인민 공화국 만세! 세계인민 대단결 만세!”라는 구호를 걸고 중화사상을 부추기고 국민들에게 자신감을 갖게 했다.  

 

▲ 1949년 중국을 세우고 청나라 때 현판이 있던 자리에 중국 휘장을 걸고 그 아래 모택동과 국가 구호를 떠 붙이고 국민을 뭉치게 하고 정부와 국민이 함께 나라를 발전시켰다.     © 리대로

 

천안문은 명나라, 청나라 왕조 때 궁전이었던 자금성의 정문이었다. 명나라 영락제가 수도를 북경으로 정하고 1417년 자금성을 짓고 그 문 이름을 ‘승천문’이라고 불렀으나 1651년 청나라가 성문을 중건하면서 그 이름을 “하늘의 뜻을 받들어 편안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뜻을 담아 ‘천안문’이라고 이름을 바꾸었다. 그런데 청나라 왕조가 망한 뒤에 천안문에 국민정부 ‘손문’ 사진을 걸기 시작해 국민당 ‘장개석’ 사진도 걸었다가 공산당 정부 초기 행사 때엔 공산당 ‘모택동’과 다른 지도자 사진도 함께 걸었다. 그러다가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탄생을 천안문에서 선포하면서 그 문에 걸린 천안문이란 청나라 때 현판을 떼고 중국 휘장을 걸고 모택동 사진과 “中華人民共和國 萬歲. 世界人民大團結 萬歲(중화인민공화국 만세. 세계인민대단결만세”라는 정치 구호를 옛 한자로 써서 걸었다가 1960대에 천안문을 수리하면서 오늘날 쓰는 문자(中华人民共和国万岁 世界人民大团结万岁)로 바꿔 써 걸었고, 그 때에 승강기도 놓고 현대식으로 수리했다고 한다.

 

중국인은 문화재를 옛 볼거리로 그치지 않고 시대정신을 살려 활용한 것이다. 요즘 우리나라 문화재청이나 문화재위원들은 중국이 그러는 것을 보고 문화재는 원형 보존과 원형 복원이 원칙이라며 게거품을 물고 난리발광을 할 일이다. 그러나 그들은 오늘날 자금성이나 천안문은 청나라 왕조 때 궁궐이 아니라 오늘날 볼거리이기에 그에 그치지 않고 한 자원 높여서 천안문을 오늘날 국가 발전에 활용한 것이다. 우리나라도 1968년에 광화문을 중건하면서 우리 자주문화 상징인 한글을 살리고 빛내자는 뜻을 담아 오늘날 글자인 한글로 현판을 써서 달았다. 그리고 나라에 큰 일이 있을 때, 1980년 교황이 방한했을 때에도 광화문에 구호를 써 달고 나라 발전에 활용했다. 오늘날 광화문이 조선시대 한양 궁궐이 아니고 서울 시민이 날마다 보는 건축물이 때문이다. 그 때에 그런다고 누구도 따지지 않았다.

 

▲ 1968년 정부는 조선총독부였던 건물을 가리고 우리 자주문화 상징인 한글을 살리고 빛내자는 국민의 소망을 담아 한글로 현판을 달고 문맹이 없는 나라 만들고 잘사는 나라 만들었다.     © 리대로

 

한 나라가 일어나려면 그 나라 국민이 자부심과 자신감을 갖게 하고 국민과 정부가 한 마음으로 뭉치는 것이 꼭 필요하고 매우 중요하다. 일찍이 일본 강점기에 한글학자 외솔 최현배는 “조선민족 갱생의 도”라는 글에서 한 나라가 스스로 일어나려는 마음과 힘이 세지 못하고 스스로를 업신여기면 나라가 망한다고 보고 우리 겨레에게 생기를 불어넣고 힘차게 일어나자고 외쳤다. 그리고 광복 뒤 그 마음에서 한글로 교과서를 만들었다. 그러나 일본 식민지 교육으로 한글을 업신여기는 자들이 판치니 1960년대 한글단체는 정부에 한글을 살리자고 건의했고, 정부는 1968년 한글전용 정책을 강력하게 펴겠다는 정책을 펴면서 광화문과 현충사 들 현판을 한글로 써달고 학교에는 “한글사랑, 나라사랑”이란 구호를 써 붙이고 문맹자가 없는 나라를 만들었고 국민 자긍심과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그리고 그 바탕에서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자”고 외치면서 정부와 국민이 뭉쳐서 나라를 일으켰다.

 

그런데 문화재청은 대한제국 때 그 현판을 걸고 바로 일본에 나라를 빼앗겼던 그 한자현판 사진을 일본에서 구해다가 본떠서 복제품을 걸고 거창하게 원형 복원했다고 제막식까지 했다. 그것도 광복절에 그랬는데 그 현판이 세 달도 안 되어 갈라져서 나라 얼굴과 같은 광화문 현판이 누더기가 되었다. 그리고 그 뒤 국론도 갈라져서 임진왜란이 나기 전처럼 밤낮 싸우고 나라가 몹시 시끄럽고 흔들린다. 거기다가 2016년에 그 현판이 바탕색부터 잘못되어 원형 복원이 아닌 가짜 현판임이  밝혀졌다. 그래서 다시 만든다고 하지만 그 흐릿한 사진을 본떠서 만든 현판은 다시 만들어도 그건 복제품이고 원형이 아니다. 그래서 국민은 우리 자긍심이고 세계 문화유산인 훈민정음 해례본체로 현판을 달고 나라를 다시 일으키자고 외치고 있다.

 

그렇게 하면 세계 으뜸 글자인 한글이 그 광화문 안인 경복궁에서 태어난 것을 알리는 깃발도 되고, 찬란한 나라가 일어나던 세종시대 문화와 정신을 복원하는 것이며, 오늘날 한글을 살리고 빛내어 자주 문화를 꽃피우자는 국민 소망을 담은 민주시대 상징이 된다. 이것은 새로운 문화 창조이며 경복궁과 서울 품격을 한 차원 드높이는 것이어서 후손이나 외국인들이 그 한글현판에 담긴 이야기를 들으면 감동할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중국 관광객들은 광화문에 걸린 한자현판을 보면서 지난날 한국이 중국의 속국이었다는 증거라고 흐뭇해하는데 하루 빨리 광화문에 한글 현판을 걸고 자긍심과 자신감을 갖게 해 나라를 일으켰으면 좋겠다. 언제 쯤 세종을 닮은 지도자가 다시 나와 나라를 빛내고 안정시킬지 모르겠다.

 

▲ 왼쪽은 천안문에 청나라 현판이 걸린 사진, 가운데는 그 청나라 때 걸린 현판 자리에 오늘날 중국 국가 휘장을 건 모습, 오른쪽은 교황 바오르 2세 방한 환영 글이 걸린 1980년대 광화문     © 리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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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자보> 고문
대학생때부터 농촌운동과 국어운동에 앞장서 왔으며
지금은 우리말글 살리기 운동에 힘쓰고 있다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 공동대표

한국어인공지능학회 회장

한글이름짓기연구소 소장
세종대왕나신곳찾기모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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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1/02/02 [01:25]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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