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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정부가 국격(國格) 운운할 자격있나
[홍헌호의 진단] '사상 최고 복지지출액'이라는 호들갑, 낯뜨거운 코미디
 
홍헌호   기사입력  2009/10/09 [14:48]
노무현 정부에 대한 반반씩의 애증

노무현 정부에 대한 필자의 감정은 ‘반반씩의 애증’이다. ‘동의할 수 있는 부분 절반,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 절반’이라고 표현해도 좋을 듯하다.

경제수준에 걸맞는 개방, 단계적이고 점진적인 개방을 지향했던 2003년 FTA 로드맵을 180도 뒤집고 한미FTA를 강행한 노무현 전대통령, 지금 생각해도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 또 2003년 경기가 매우 어려울 때, 경기부양을 거부하면서 동시에 분양가 상한제 도입도 거부해 버렸던 집권층의 판단 또한 아쉬움이 많이 남는 대목이다.

2003년 작성된 참여정부 FTA 로드맵(점진적이고 단계적인 개방론)은 그대로 준수되었어야 했다. 또 2003년 경기가 매우 어려울 때 복지지출확대형 경기부양을 시도하는 대신 분양가 상한제를 시행했어야 했다. 그러나 노무현 전대통령과 그의 측근들은 그것과는 180도 다른 선택을 했다. 그리고 그것이 그들의 운명을 갈라 놓고 말았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그들이 집권후반기 비전2030을 제시하며 복지지출확대정책에 대한 강한 의지를 나타냈다는 것이다. 그것이 한미FTA에 대한 반대파들의 공격을 막아내기 위한 방어적 성격을 띠고 있어서 빛을 바랬지만 말이다.

필자는 당시 2030비전에 대하여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었다. 결정적으로 신뢰할 만한 재원마련방안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미FTA로 인하여 양극화가 심화되면 한미FTA로 발생하는 성장의 이익을 충분히 나누어서 양극화를 해소한다는 것이 그들의 논리였던 것 같다. 그러나 그런 논리는 매우 궁색한 것이었다.
 
▲ 지난해 2월25일 제17대 대통령 취임식 모습.     © 청와대

한미FTA로 발생하는 성장 이익이 거의 없다는 것이 이미 실증적으로 드러나 있었고, 또 외환위기 이후 우리는 “서민들을 희생해서 대기업들에게 퍼주면 일자리가 늘고, 서민들도 잘 살게 된다”는 주장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것인지 충분히 경험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가 노무현정부에 대하여 ‘절반의 애정’을 갖고 있는 것은 그들이 이명박 정부처럼 입만 열면 사기를 치는 그런 몰염치한 태도를 보여주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요즘 진보진영 일각에서까지 최근의 이명박 정부 행보에 대하여 친서민정책이라고 칭하고 있는데 매우 경솔한 태도이다. 그런 식으로 따지자면 1920년 일본의 문화정치도 친한국인적인 정책이라고 우겨야 할 것이고, 30년대와 40년대 한국인들의 쌀을 빼앗고 만주산 옥수수를 나눠주며 연명하게 한 일제의 정책도 친한국인적인 정책이라고 우겨야 할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서민들에게 돌아가야 할 복지혜택을 매년 십수 조원 이상 줄이고, 그 대신 후세대의 혈세를 끌어와 서민들에게 1~2조원 나눠주면서 생색을 내고 있는데 그런 정책을 일컬어 친서민정책이라니. 자신의 전문 분야에 지나치게 깊이 매몰되어 총체적인 통찰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일부 진보진영 인사들이 심각하게 반성해야 할 대목이다.   

각설하고 본론으로 들어가자.

엉터리보고서를 동원하여 난도질한 국가재정운용계획 

이명박 정부는 지난달 28일, 2010년도 정부의 세출예산안과 2009~2013 국가재정운용계획안을 발표했다. 이 글에서는 2009~2013 국가재정운용계획안에 대해서만 언급하기로 한다.

국가재정운용계획은 향후 5년 간의 중기재정운용계획을 담고 있는 것으로 이것을 들여다 보면 최고 권력자와 그의 측근들의 심중을 들여다 볼 수 있다. 그 속에는 그들의 장기적인 국정운용방향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정치학자들은 정치를 일컬어 ‘ 사회적 공공자원 배분권에 대한 권력투쟁’이라고 정의한다. 따라서 권력자들의 심중을 들여다 보려면 그들의 ‘ 사회적 공공자원 배분의 방향 ’을 들여다 보아야 한다.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의 ‘국정운용방향’, 즉 ‘ 사회적 공공자원 배분의 방향 ’이 가장 뚜렷하게 드러나는 곳도 역시 그들의 중장기 재정운용계획이다.

특히 노무현정부가 임기말에 작성한 2007~2011년 국가재정운용계획과 이명박 정부가 임기초에 작성한 2008~2012년 국가재정운용계획을 비교해 보면 정권의 뚜렷한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다.

우선 먼저 두 정부의 특징이 가장 확연하게 구별되어 드러나는 SOC부문부터 들여다 보기로 하자.
 
▲ (자료) : 기획재정부 등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노무현 정부는 한국개발연구원(KDI)이 2004년 내놓은 170여개국의 국제비교 연구 보고서를 근거로 하여 집권기간 동안 SOC 투자증가율을 2.5%로 묶었고 미래에도 당분간 SOC 투자증가율을 0~1% 대로 묶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대로 이명박 정부는 교통연구원과 국토연구원이 2006년 내놓은 엉성하기 짝이 없는 엉터리 보고서를 근거로 노무현 정부의 이런 주장을 뒤집으려 시도했다.

교통연구원과 국토연구원은 우리나라 모든 고속도로는 8차선, 모든 국도는 2차선, 모든 지방도는 1차선이라는  엉터리 가정을 전제로 하여 우리나라 유효도로연장(=차선의 총길이)이 13만 8000km에 불과하다고 우기며 SOC 투자확대가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유효도로연장 13만 8000km는 선진국 수준의 2/3수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필자가, 건설교통부가 직접 펴낸 건설통계연보(2007)를 토대로 실측치를 합산해 본 결과 그것은 13만 8000km가 아니라 25만 3000km였다.

이명박 정부는 연구보고서로서의 기본도 갖추지 못한 이런 엉터리 연구보고서에 대해 어떠한 검증작업도 없이 자신들의 장기재정운용계획에 이를 활용한 것이다.

또 이명박 정부는 국책연구소까지 나서서 수질을 더 나쁘게 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고 다수의 전문가들이 천문학적인 혈세낭비사업이라고 경고하고 있는 4대강 사업을 강행하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 별도의 글에서 다루기로 한다.)    

복지예산 증가율 목표, 노무현정부에 비해 1/4 수준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의 성격상의 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나는 또 다른 분야는 사회복지 분야이다.
 
▲ (주) : 우리나라 법률은 예산과 기금을 구분하고 있다. 즉 법률적으로 기금은 예산에 포함되지 않는다. 예산은 법률과 동일한 효력을 가지며 목적외 사용이 금지된다. 그러나 기금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자율성과 탄력성이 보다더 넓게 보장된다. (자료) : 기획재정부  
 

두 정부의 국가재정운용계획(사회복지 부문)을 들여다 보면 이명박 정부가 이 부문에서 심각하게 퇴행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노무현정부는 2009년과 2011년 복지예산 계획증가율을 12.8~14.3%(기금 제외)로 설정했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2010년 복지예산 계획증가율을 10.8%(기금 제외,이하 동일)로, 2011년과 2012년 계획증가율을 각각 2.7%, 3.4%로 대폭 하향조정했다. 복지예산 계획증가율을 노무현 정부에 비하여 1/4 수준으로 낮추어  버린 것이다.

비전2030 흉내라고 내려면 매년 복지비중 0.5%p 높여야 

보수언론의 일부 기자들은 이런 수치들을 접하고 노무현 정부의  복지예산 계획증가율이 오히려 과도한 것이며 윤증현 경제팀의 계획증가율이 보다 더 현실적이라고 우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의  복지예산 계획증가율은 과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비전 2030이라는 자신들의 장기계획에 비추어 볼 때 과소한 것이다. 최소한 그들이 만든 비전 2030이 국민들을 속이기 위한 대국민 사기극이 아니었다면 말이다.

노무현 정부는 비전2030에서 20년 후 GDP 대비 공공사회지출 비율을 현재의 6.0%에서 2006년 OECD 평균수준인 21.2%로 끌어 올리겠노라고 공언했다. 그러나 2007~2011 국가재정운용계획에 나타난 그들의 사회지출 계획증가율은 비전2030에 크게 못 미치는 것이었다.  

노무현 정부의 비전2030 목표에 근접하려면 정부는 사회복지지출액을 매년 어느 정도 수준으로 증가시켜야 할까.

비전2030의 목표를 보다더 현실적인 목표로 낮추어 잡아, 2009년 GDP 대비 7.2% 수준인 공공사회지출 비율을 20년 후인 2029년 17.2%로 올리는 전략을 정부가 추진한다고 가정하자.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20년간 GDP 대비 공공사회지출 비율을 10%p 올려야 하고, 매년 0.5%p씩 그것을 올려야 한다.

아래 표는 그 과정을 도표화해 놓은 것이다.
 
▲ (주) 경상성장률과 경상GDP : 물가변동요인을 소거하지 않은 상태의 성장률과 GDP    

이 자료를 보면 정부가 매년 GDP 대비 공공사회지출 비율을 0.5%p씩 늘리려면 향후 5년간 공공사회지출액을 매년 11.8~12.7%씩 증가시켜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명박 정부보다 복지에 더 적극적이라는 노무현 정부도 2009년과 2011년 공공사회지출액을 11.8~12.7%(예산과 기금을 포함한 공공사회지출액 증가율) 증가시킨다는 목표를 세우지 않았다. 그들의 목표는 고작 8.5~10.7%(예산과 기금을 포함한 공공사회지출액 증가율)에 그쳤을 뿐이다. 필자의 우려대로 노무현정부의 비전 2030도 근거가 부실한 공염불에 불과했던 셈이다.

OECD 꼴찌로 퇴행하는 이명박정부 복지정책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이보다 한술 더 떠서 노무현정부의 공공사회지출액 목표치를 더 낮추어 버렸다. 이명박 정부의 2009~2013 국가재정운용계획에 의하면 그들의  2010~1012년 공공사회지출액 목표증가율은 고작 5.3~8.6%에 불과하다. 경상성장률 목표치 7.6%보다 공공사회지출액 계획증가율을 더 낮추어 잡는 어이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경상성장률 목표치보다 공공사회지출액 계획증가율을 더 낮춰 잡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당연한 결과로 GDP 대비 공공사회지출 비율은 더 줄어들게 된다. 2009년 GDP 대비 공공사회지출 비율 7.2%라는 수치가 위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6%대로 떨어진다는 이야기다.

현재 우리나라의 GDP 대비 공공사회지출 비율은 OECD 30개 회원국 중 멕시코를 제외하고 꼴찌 수준인데 이명박 정부가 기어코 꼴찌 경쟁에서 멕시코를 따돌릴 모양이다.

참고로 1980년과 2005년 사이 일본은 국민순소득(NNI) 대비 공공사회지출 비율을 12.2%에서 22.9%로 끌어 올렸고, 같은 기간 호주도 그것을 12.6%에서 21.2%로 끌어 올렸으며, 우리나라보다 경제수준이 더 낮은 터키도 그것을 3.4%에서 11.0%로 끌어 올렸다.

2005년 우리나라의 NNI 대비 공공사회지출 비율은 8.0%, 멕시코는 7.9%수준이다. (NNI는 GNI에서 고정자본소모액을 뺀 나머지를 말한다. 따라서 NNI 대비 공공사회지출 비율은 GDP 대비 공공사회지출 비율보다 그 수치가 더 크게 나타난다.)   

‘사상 최고 복지지출액’이라는 호들갑, 낯뜨거운 코미디

현실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경제부처 관료들과 보수언론의 상당수 기자들은 ‘사상 최고 복지지출액’ 운운하며 경제위기 속에서도 복지지출액이 늘었다며 호들갑을 떨고 있다. 코미디가 따로 없다.  

경상성장율이 마이너스로 떨어지지 않은 이상 해마다 복지지출액이 사상최고를 기록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필자가 조사한 바로는 1970년부터 지난 40년간 복지지출액이 사상최고치를 기록하지 않은 해는 단 한 해도 없었다.( 그 이전 자료는 입수하지 못했다) 

지난 40년간 실질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한 해는 1980년(-1.5%)과 1998년(-6.9%), 두 해 뿐이었다. 그리고 경상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한 해는 1998년(-1.4%), 한 해 뿐이었다. 그런데 1998년에도 사회분야 예산 증가율은 마이너스로 떨어지지 않았다. 지난 40년간 복지지출 증가율이 마이너스로 떨어진 해가 단 한 해도 없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경제부처 관료들과 보수언론 기자들은 쌩뚱맞게 ‘사상 최고 복지지출액’이라는 말을 되풀이한다. 국내에 들어와 있는 외국언론사 특파원들이 들을까 걱정되는 대목이다.

요즘 대통령과 총리가 자주 ‘국격’(國格) 운운하는데 제발 고위공직자 자신들부터 창피한 짓 좀 안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 필자는 시민경제사회연구소 연구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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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9/10/09 [14:48]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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