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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문 밖 예수, 성문 밖 교회
 
정연복   기사입력  2009/10/12 [16:26]
히브리서는 유대 기독교인들을 독자로 하는 전체 13장으로 구성된 한 편의 잘 짜여진 신학 논문, 즉 십자가에 달린 예수는 도대체 누구이며 이 십자가에 달린 예수에 대한 믿음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가를 탐구한 그리스도론이라고 할 수 있다.

본문은 논문의 결론에 해당된다. 여기에서 히브리서 저자는 십자가 사건의 의미를 구약의 속죄 제사 전통에 비추어 해석한다. 구약 유대교의 전통에서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짐승의 피를 속죄 제물로 드리듯이 예수 역시 '당신의 피로 백성을 거룩하게 하시려고' 십자가의 고난을 당했다는 것이다.

히브리서 저자의 이런 해석은 예수의 대속적 죽음을 말하는 한국교회의 전통 신학이나 교리와 일치한다. 우리의 죄를 사하기 위해 예수가 흘린 보혈. 이것은 한국교회 설교의 단골 메뉴이며, 우리가 즐겨 부르는 찬송들의 주된 내용이다.

그러나 히브리서 저자는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간다. 예수의 대속적 죽음에 대한 믿음을 곧바로 예수를 따르는 삶과 연결 짓는다. 그래서 "그러므로 우리도 영문 밖에 계신 그분께 나아가서 그분이 겪으신 치욕을 함께 겪읍시다"라는 것을 십자가에 달린 예수에 대한 사색의 최종 결론으로 삼는다.

여기에서 두 가지 사실이 주목된다. 예수는 '영문 밖', 곧 구약의 다윗 이래로 이스라엘 종교의 거룩한 중심지로 칭송을 받아온 예루살렘 '성문 밖'에서 고난받았다는 것, 그리고 예수는 자신을 속죄 제물로 바쳐 우리의 죄를 깨끗이 사해주었으니 "우리도 그분이 겪으신 치욕을 함께 겪어야 한다"는 해석이 바로 그렇다.

'성문 밖'이 무엇인가? 예수님이 성문 '안'이 아니라 '밖'에서 고난받았다는 진술을 통해 히브리서 저자가 독자에게 전하려고 했던 의미는 뭘까?

복음서와 연관 지어 생각할 때 '성문 밖'은 부와 권력의 중심부가 아니라 주변부, 부자들의 동네가 아니라 빈자들의 동네, 율법과 종교의 도시가 아니라 율법과 종교의 엄격한 요구를 채우기에는 나날의 생존이 긴박한 사람들의 지역을 뜻한다. 복음서의 갈릴리 대 예루살렘의 긴장된 대결 구조의 의미를 이해하는 사람들이라면 이 '성문 밖'의 의미를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복음서의 예수는 어디까지나 '성문 밖 예수', 가난하고 억눌리고 소외된 이들의 삶의 자리에서 그들과 한 몸을 이루어 함께 울고 함께 웃고 함께 희망하고 함께 투쟁하는 예수다. 히브리서 저자는 유대교의 전통 신앙에 기초해서 예수의 십자가 고난을 대속적 죽음으로 해석하면서도, 이것만으로는 그 고난의 참뜻을 전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 예수님이 '성문 밖'에서 고난당했음을 꼬집어 말한 게 아닐까.

다음으로 "우리도 그분께 나아가서 그분이 겪으신 치욕을 함께 겪읍시다"라는 말씀은 굳이 머리 헷갈리는 주석을 달 필요가 없다. 예수가 살고 죽었던 그 모습 그대로 예수를 믿는 우리도 그렇게 살고 죽겠다는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는 말이 아닐까. 예수의 십자가에 대한 믿음이나 신학은 결국 몸의 실천, 즉 우리 기독교인들이 몸소 예수가 되는 것으로 귀결되어야 한다는 말이 아닐까. '성문 밖' 예수를 만나려면 우리의 삶을 부단히 '성문 밖'으로 채찍질해가야 한다는 말이 아닐까.

오늘 나는 예수를 어디에서 찾고 있는가? 나의 신앙생활의 한 걸음 한 걸음은 예수가 그리도 끔찍이 아끼고 사랑했던 세상의 가난하고 병들고 소외된 이들에게 조금씩이나마 다가서고 있는가? 그들과 점점 멀어지는 것은 아닌가? 그들을 아예 등진 반(反)예수적 삶을 살면서도 예수를 믿는 자기모순에 빠져 있지는 않는가?

오늘의 한국교회는 성문 밖 예수를 따르는 성문 밖 교회인가? 성문 안에 안주한 채로 성문 밖의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등진 반예수적 교회인가?


* 연세대학교 영문과와 감리교 신학대학 대학원을 졸업하고 현재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으로 있다. 민중신학적 글쓰기에 관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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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9/10/12 [16:26]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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