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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피
요한1서 1:7
 
정연복   기사입력  2009/10/06 [09:25]


 

예수의 피 - 요한1서 1:7


 

                                            정연복(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전체 5장으로 구성된 짧은 편지인 요한1서는 굳이 주석을 달 필요도 없이 평이하면서도 우리의 신앙생활을 근본적으로 반성하게 한다. 난해한 신학이나 교리 논쟁을 끌어들이지 않고 단순 소박한 생활 언어로 신앙생활의 핵심을 이야기하는 요한1서의 신학은 참 멋지고 힘 있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이 편지를 쓴 목적을 "우리가 보고 들은 그것을 여러분에게 선포하는 목적은 우리가 아버지와 그리고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사귀는 친교를 여러분도 함께 나눌 수 있게 하려는 것입니다"(1:3)라고 밝힌다. '우리', 곧 요한 공동체가 직접 체험하고 있는 '아버지와 그리고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사귀는 친교'를 전함으로써 '여러분'도 이 친교에 동참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편지의 목적이다.

우리는 이 짤막한 고백에서 복음 선포의 본질을 발견한다. 개별적 신자가 아닌 신앙 공동체의 '집단적' 신(神) 체험이야말로 신학의 굳건한 기초요, 이 신 체험의 감격과 기쁨을 전하는 게 바로 복음 선포의 본질적 내용이라고 말할 수 있다.

별것 아닌 것 같아도 우리는 이 점을 바로 인식해야 한다. 참된 그리스도교 신앙은 공동체 안에서의 집단적 신앙이며, 참된 신 체험은 '나'만의 뭔가 독특하고 신비한 체험이 아니라 '우리'로서의 집단적 신앙 공동체가 하나님의 뜻 안에서 살려고 노력하는 가운데 생겨나는 공동체적 신 체험이다. 그리고 이런 신앙과 신 체험에 기초한 복음 선포에는 다른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 담겨 있다.

사실 성경이 어떤 책인가? 구약은 이스라엘 민족 공동체의 집단적 신 체험의 역사이며 신앙고백이고, 신약은 '예수님의 생애와 사상과 말씀과 십자가 죽음의 의미에 대한 올바른 인식에 우리의 구원과 생명의 길이 있다'는 것을 체험한 사람들의 공동체의 신앙고백이다.

요한 공동체는 "예수의 피가 우리의 모든 죄를 깨끗이 씻어줍니다"라고 증언한다. 그런데 요한 공동체에서는 이 믿음이 '삶'과 밀착되어 있다. 예수의 십자가 보혈의 공로로 '이미' 우리의 죄가 씻김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식이 아니라, 십자가 보혈에 앞서 '삶'이 전제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빛 가운데 계신 것처럼 우리도 빛 가운데서 살고 있으면 우리는 서로 친교를 나누게 되고 그분의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의 모든 죄를 깨끗이 씻어줍니다" (1:7).

우리가 빛 가운데 살아 공동체의 친교, 곧 나눔과 섬김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아직은' 예수의 피가 우리 죄를 깨끗이 씻어주었다고 말할 수 없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고 고백하기만 하면 우리의 죄가 말끔히 씻어지는 게 아니다. 우리가 믿음 안에서 예수처럼 살려고 애쓰고 또 예수처럼 살 때 비로소 우리는 죄 사함을 받는다.

왜 예수가 십자가에 달려 피 흘렸는가? 예수의 역사적 삶에 대해 진솔하게 이야기하는 복음서에 따르면, 예수의 피 흘리심, 곧 십자가 죽음은 교리적이고 기적적이고 신비한 죽음이 아니라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과 한 몸을 이뤄 만인이 더불어 사는 따뜻한 세상을 만들고 싶어 했던 예수의 해방 실천의 삶의 불가피한 귀결이었다.

그 예수의 피 흘리심, 그분의 수난과 죽음은 오늘 우리에게 큰 도전이 된다. 이 도전에 우리의 양심이 찔려 회개하고 새 삶을 시작할 때, 우리 앞에는 구원의 문이 활짝 열린다. 예수의 피에 어떤 신비한 마술적 힘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지만 십자가에 달려 피 흘리기까지 하나님의 뜻에 절대 순종하여 가난하고 억눌린 이들을 사랑했던 예수의 생애는 오늘 우리에게 참된 삶의 길이 무엇인지 가르쳐준다.

예수가 흘린 피의 의미는 삶과 동떨어진 신학이나 교리로 이해될 성질의 것이 절대로 아니다. 우리들 자신이 신앙 공동체를 이루어 집단적으로 예수의 길을 걸어갈 때에만 예수의 피는 그 신비한 의미를 하나둘 드러낼 것이다.

* 연세대학교 영문과와 감리교 신학대학 대학원을 졸업하고 현재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으로 있다. 민중신학적 글쓰기에 관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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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9/10/06 [09:25]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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