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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께로 가는 많은 길들
[정연복의 민중신학] 간디는 그리스도교를 어떻게 보았는가?
 
정연복   기사입력  2009/09/03 [18:45]
나는 코란과 이슬람 신앙의 하디쓰를 읽었고 그것들은 나에게 깨우침을 주었다. 하지만 더욱 더 풍부해지고 폭넓어지는 것은 모슬렘들과 힌두교도들과의 개인적인 만남들이다. 특히 방글라데쉬에서 지내는 첫해 동안 하지 압둘 만난과의 대화와 우정은 다른 신앙을 가진 남자와 여자들이 하느님을 통하여 모두 형제자매가 된다는 나의 확신에 신뢰와 온정을 더하였다. 평범한 모슬렘들과 힌두교도들과 더 가까워지는 것은 다른 사람들과 그들의 종교를 인정하고 존경하기 위한 어느 다른 길보다도 더욱 나에게 도움이 된다.
 
나는 내가 그들과의 가까운 만남에 의해 풍성해지고 있다는 것을 안다. 그들은 무한히 다양한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많은 동일한 가치들을 깊이 있게 공유한다는 사실을 내가 이해할 수 있게 하였다. 나는 만남을 통하여, 어떠한 종교의 기치 아래서든지 하느님께 대한 신앙이 가치 있는 삶을 가져오고 있음을 인식한다. 더욱이 그리스도교의 가르침과 다른 가르침을 믿는 사람들 역시 하느님을 사랑하고 사랑을 실천한다는 지식보다 삶 속에서 나를 더 확실하게 하느님에게로 이끄는 것은 거의 없다.
 
모슬렘들이 자선을 베풀고, 단식을 지속하고, 경건하게 기도를 바치고, 자비롭게 혹은 관대하게 행동하는 것을 볼 때, 태양계 연구처럼 나에게 똑같은 영향을 끼친다. 즉, 그것은 내 정신과 마음을 넓혀 준다. 다른 신앙에는 눈으로 보이는 것 이상이 있다는 증거를 나에게 준다. 우주가 무한하고 여전히 확장하고 있듯이, 모든 신앙을 가진 사람들과 그들의 신앙에 대한 나의 찬미와 감사도 마찬가지이다.
 
하느님 한 분이 있고 하느님께로 가는 많은 길이 있다. 간디와 함께 나는 그 사실을 믿는다. 하느님께로 이르는 모든 길은 다 좋은 길이다. 그 길 위에 있지 않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길을 판단할 수는 없다. 우리는 멀리 떨어져서, 신앙이 머무르고 있는 그들 영혼의 바깥에서 왜곡된 방법으로 그들의 길을 본다. 하지만 다른 길을 가는 많은 사람들이 사랑으로 살아가는 것을 본다. 내 경험으로는 환대, 자비, 관대함, 그리고 관용이 내가 아는 모슬렘들의 특징이다.
 
내가 다른 사람들 삶 속에서 선을 볼 때 나는 내 마음속에서 그것들을 확신한다. 선교사를 그리스도교 신앙의 공식적인 대리인으로 여기는 모슬렘들에게 자비롭게 행동하고, 기도하고, 자선을 베풀고, 단식하고, 순례를 떠나는 사람들을 공개적으로 찬양하는 것이 내게 적합한 일 같이 보인다. 내가 그들의 행위를 찬양할 때 모슬렘들과 힌두교도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그들의 놀라운 반응은 이렇다: 그리스도교 선교사가 모슬렘들과 힌두교도들을 진정으로 찬양할 수 있는가?
 
마티우르 라만 장관이 전에 내게 말했다: "우리의 종교들은 인류를 일치시키기 위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실상, 우리는 우리 자신을 분리시켜 놓기 위해 종교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모슬렘들과 힌두교도들의 내적인 삶에 관한 우리의 무지와 함께 항상 우리 자신을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야만 하는 경향은 우리의 잘못된 우월감에서 기인한다. 우리는 남을 섣불리 판단하려는 성향이 있고 다른 종교들로부터 우리를 분리시키는 것들을 찾으려고 한다.
 
나는 마하트마 간디에 대해 하느님께 감사한다. 간디는 그리스도교와 다른 신앙을 고백하면서, 헌신의 삶과 다른 사람들을 위한 관심 그리고 하느님의 대의(大義)에 대담함을 보여주었다. 그는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을 알았으며 그 많은 부분이 아름답고 진실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수많은 그리스도교 선교사들과 가까웠으며 그들로부터 그리스도인이 되라는 초대를 받았다. 그는 자신의 종교인 힌두교가 그의 영혼을 만족시켰기 때문에 이 초대를 거절하였다. 또한 그는 세례를 요청할 만한 동기를 그리스도인들의 삶에서 거의 보지 못했기 때문에 거절하였다.
 
간디는 진리를 따르는 구도자였고, 산상설교의 메시지에 마음이 이끌려 하느님께 감사하는 사람이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그가 행한 가장 위대한 봉사 중에 하나는 우리가 그릇된 선교를 하고 있음을, 혹은 더 나아가 비그리스도교적인 방법으로 선교하고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그리스도교에 관한 그의 지식과 평가가 심오했기 때문에 그리스도교의 선교방법에 대한 그의 비판은 내 주의를 기울일 가치가 있다.
 
그는 만일 따른다면, 사람들에게 유익할 뿐만 아니라 예수의 구원 사명을 진전시키는 선교 접근 방법을 알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봉사와 완전한 단출함의 생활은 가장 훌륭한 설교입니다." 16년 동안 그의 백성들 사이에서 생활하고 있는 나의 경험은 간디가 자신이 무엇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음을 깨닫게 해준다.
 
간디가 삶의 열매와 예수에 대한 사랑으로 인해, 비록 절대적인 추종자는 아니지만, 예수의 한 추종자라는 사실을 우리는 안다. 간디 때문에, 나는 그리스도를 닮은 정신이 세례를 받지 않은 사람들 속에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그의 삶과 모범은 영웅적인 복음주의적 사랑이 공식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이 아닌 사람들에게서 실천될 수 있다는 기대를 품게 했다. 모슬렘들과 힌두교도들에게서 풍성한 선과 사랑을 발견할 수 있다고 기대하기 때문에 나는 그것을 발견한다. 만일 내가 그들 사이에서 사랑을 발견할 수 있다는 기대가 없었다면, 아마 그 사랑을 놓쳤을 것이다.
 
나는 마하트마를 살펴보고 생각한다: 마음을 넓힌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다른 종교들의 존재에 대한 불평 또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우월성에 대한 위협으로 그들을 보는 것은 비전의 협소함을 드러내는 것이다 - 마치 비록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을 알고 있지만, 모슬렘과 힌두교를 선택하거나 거기에 남아있는 사람들 사이에 하느님이 살고 계실 수 없다는 듯이. 간디와 마지막 유언으로 이렇게 권고했던 교황 요한 23세의 정신은 얼마나 닮았는가: "서로 사랑하시오. 서로를 분열시키는 것보다 오히려 일치시키는 것을 찾으십시오."
 
"하느님은 우리 마음보다 크신 분입니다"(요한1서 3:20).

(황대권 역, 『간디는 그리스도교를 어떻게 보았는가』 중에서)
* 연세대학교 영문과와 감리교 신학대학 대학원을 졸업하고 현재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으로 있다. 민중신학적 글쓰기에 관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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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9/09/03 [18:45]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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