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의 경제대통령 미네르바가 구속된 이후에 벌어진 논쟁은 미네르바의 진위에서부터 표현의 자유의 한계를 거쳐 인터넷이라는 매체의 속성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고 폭 넓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겠지만 미네르바는 사회적 논쟁을 촉발시킨 역할을 한 셈이다. 주목할 것은 과점신문들이 이른바 '미네르바 사태'를 바라보는 관점이다. 이들은 미네르바의 학력-전문대 졸업-과 직업-무직-에 집중했다. 학력이 일천한 백수에게 농락당한 것이 자못 분하다는 것이 이들 과점신문들의 논조다. 독학으로 갈고 닦은 미네르바의 실력은, 미네르바가 몇몇 굵직한 경제예측을 적중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에게 그리 깊은 인상을 심어 주지는 못한 것 같다. 과점신문들은 경제 전망과 예측은 명문대 학위를 가진 전문가의 몫이라는 생각을 은연중 드러내 보이고 있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과점신문들이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학벌지상주의와 엘리티즘은 네티즌들에게 맹렬히 비판당하고 있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 보면 과점신문들이 직설적으로 드러내 보이고 있는 학벌지상주의가 과점신문들만의 편견인 것은 아니다. 학벌지상주의는 한국사회의 가장 예민한 성감대가 된 지 오래다. 유감스럽게도 가까운 장래에 학벌지상주의가 사라질 조짐도 아직까지는 보이지 않는다.
학벌지상주의에 관한 가장 큰 의문점은 학부모는 학부모들대로 과도한 사교육비 부담으로 허덕이고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시험기계로 전락하는대도 불구하고 한국사회 구성원들이 왜 그렇게 학벌에 목을 매는가 하는 것이다. 명문대학 진학에 대한 막연한 선호정도로는 입시전쟁의 치열함과 처절함을 설명할 길이 없다. 한국사회에서 학벌주의가 기승을 부리는 이유는 무엇보다 학벌-특히 출신대학-이 경제적 보수, 상징권력, 고용의 안정성 등으로 구성된 사회적 가치 피라미드에서 우월한 지위를 점할 수 있는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학벌이 사회적 가치의 분배 피라미드에서 더 높은 위치를 담보하는 구조가 온존하는 한 입시제도를 어떻게 바꾸건, 국립 서울대학교를 폐지하건, 공교육을 강화하건 학벌지상주의가 약화될 가능성은 별로 없다. 그리고 이는 지금과 같이 극소수만 승자가 되는 입시지옥이 계속될 것이라는 의미이며 사교육에 의존하지 말자는 외침이 아름답긴 하나 공허한 울림에 그치고 만다는 뜻이기도 하다. 입시지옥을 끝내고 교육을 정상화시키고자 하는 다양한 노력들이 무의미하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다만 교육문제를 사회적 가치의 분배라는 거시적 차원에서 바라보지 못하고 교육 차원에서만 사고해서는 목적하는 바를 이룰 수 없음을 지적하는 것이다. 만약 공업고등학교만 졸업하고도 직업을 얻는데 큰 어려움이 없고 적정 수준의 경제적 보상을 받으며 사회적 시선도 차갑지 않은 사회가 된다면 애면글면하면서 명문대학을 가려는 사람들도, 입시지옥도, 과도한 사교육비의 사용 같은 자원의 낭비와 왜곡도 많이 해소되지 않을까 싶다. 물론 그런 사회라고 해도 의사와 청소부가 받는 경제적 보상과 사회적 존경이 동일하지는 않을 것이나 지금처럼 격차가 크지도 않을 것이다. 그런 사회가 보다 정의로운 사회일 것이다. 한국사회의 고질병인 학벌지상주의를 퇴치하는 것은 너무도 어려운 일이다. 학벌지상주의의 수혜자들이 한국사회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데다 학벌지상주의 구조에 기대서 사는 사람들도 참으로 많기 때문이다. 게다가 국민들도 학벌에 따라 사람의 위계를 정하는 사고방식이 굳어진 상태다. 한 마디로 학벌지상주의는 물적 토대를 가지고 있는데 더해 이데올로기도 장악하는 있는 셈이다. 분명한 것은 학벌지상주의가 사회적 가치 분배 시스템의 획기적인 개선 없이는 근본적으로 해소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미네르바 사태는 학벌지상주의의 실상과 폐해를 날 것 그대로 보여줬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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