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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심이반? 노대통령 곁에 누가 남았나
[비나리의 초록공명] 동대문, 세검정, 연신내 등 서울 지명이 뜻하는 것
 
우석훈   기사입력  2007/03/07 [01:10]
“동동 동대문을 열어라, 남남 남대문을 열어라.”
 
고무줄 놀이에 나오는 아이들의 동요다. 내가 들었던 걸로는 이 노래가 수양대군이 김종서를 죽이고, 어린 단종을 폐위시켰던 사건에서 유래한 걸로 알고 있다. 긴박하게 4대문 안으로 군대를 진입시켜야 하던 순간의 일이다. ‘살생부’라는 것은 지금의 압구정동의 바로 그 이름의 기원이 된 한명회가 이 계유정난 때 동대문과 남대문을 열고 장악한 왕궁에 불러 들여, 바로 그 날 밤 죽여야 할 사람들의 이름을 적은 것으로 알고 있다.
 
세검정이나 연신내 같은 동네는 광해군을 몰아내었던 인조반정과 관련된 동네들이다. 인조반정은 나와는 상관없을 것 같았는데, 살다보니 인조반정의 흔적이 내 근처에 너무 많다.
 
일단 나의 아내가 인목대비의 직계후손이다. 딸을 낳으면 아마도 인목대비의 적통들에게 생긴다는, 그 짱구 이마를 닮았을까? 당장 관심거리가 아닐 수 없다. 그 유명한 짝짝이 쌍꺼풀까지, 만명쯤 된다는 이 연안김씨들의 딸들에게 생겨나는 유전적 특징들이 과연 나타날지...
 
그렇게 세운 인조가 나라 말아먹고 청나라에게 밀려서 오금이 저리다고 했다는 오금동이 주로 산책하고 돌아다니는 주 놀이터이고 - 민주노동당 정책실장이던 이재영이 여기에 산다. 그리고 나는 그 때 인조가 피난가면서 물 한 잔 마시고, 물 맛있다고 붙은 이름은 문정동에 산다.
 
왜 청나라 건국 때 그렇게 밀렸음에도 불구하고 조선조가 망하지 않았는가가, 나름대로 내가 시스템 이론을 통해서 역사를 볼 때 수수께끼 중의 하나이다. 실제 조선조는 언제 망했을까? 이런 질문들이 남는다.
 
연신내는 연구소 시절에 늘 지각하던 나에게 몰래 편의를 봐주던 행정직원이 신방을 꾸몄던 곳으로 기억하는 곳이기도 한데, 이 신혼방에 가서 자고 온 날이 적지 않다.
 
인조반정 때 군대가 집결하기로 했던 곳이 연신내인데, 나중에 왕이 된 인조가 신하를 목놓아 기다렸다는 뜻에서 연신내가 된 걸로 들었다.
 
세검정은 더 참담하다. 궁궐 바로 앞인데, 난을 일으키기로 작정을 하고 칼을 갈았다는 이름에서 따온 말인데, 실제로 주력군이 훈련했던 곳이 세검정이라고 한다.
 
기가 막힐 노릇이다. 아무리 산이라고 하지만, 궁궐 바로 코 앞에서 난을 논의하고 군사들을 조련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광해군 말기에 정말 왕이 인심을 잃기는 잃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는게 바로 세검정에 대한 논의이다. 그래도 그 시절에 한양 인구가 10만은 넘은 걸로 알고 있는데, 그 많던 사람들이 세검정에서 쑥덕공론을 하고 흉흉한 군사들이 오가는데 아무도 일러준 사람이 없다는 얘기 아닐까?
 
아무리 광해군이 청과의 전쟁을 피하고, 명나라와 멀리 해서 소위 ‘앙시앙 레짐’을 거부했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 정도로까지 기본 방어와 거리가 멀게 된 것에는 뭔가 곡절이 있을 것 같다.
 
참, 그 당시의 서울 인심이라는 것은 알다가도 모르겠다. 정태인 선배가 경향신문에 노무현 대통령에게 중립외교를 했던 광해군처럼 하라는 글을 쓴 적이 있었는데, 한미 FTA를 보면 별로 그렇게 한 것 같지는 않다.
 
그렇지만 사람들의 인심만큼은 세검정에서 인조반정 세력들이 난을 논하던 시절과 달라 보이지 않는다. 이건 또 무슨 사건일까.
 
세검정에 가보면 정말 궁궐이 코 앞이다. 도대체 무슨 간이 부어서 여기에서 역적 모의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게 완전히 민심이 떠난 경우에 벌어지는 일 아닐까... 라는 생각이 잠깐 들게 된다.
 
노무현 대통령 공약 만들 때 맨 마지막 성장률 계산하는 CGE 모델 담당했던 사람이 유종일 박사라고 건너 들었었는데, 유종일 박사도 노무현의 경제정책에 대해서는 벌써 6개월째  맹비난 중이다. 정태인 선배는 아예 심상정 대선캠프에서 경제 자문을 맡고 있다. 돌이켜 대통령에 대해서 생각해보면 쓸쓸하기도 할 것 같다.
 
그야말로 권력 무상이다.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이 광해군을 몰아내고, 세 가지 죄를 물으면서 무릎 꿇렸던 인목대비나 청나라 군사들 앞에서 그야말로 ‘원산폭격’을 했던 인조나...
 
그야말로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여라...
 
서울의 동네 이름들에 붙어있는 난의 흔적들과 역사의 흐름들도 이제는 다 잊혀져갈 것이다. 그래도 세검정의 이름은 여전히 무섭다. 인심의 흔적 같은 것이라서 더욱 무섭다. 
* 글쓴이는 경제학 박사,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강사, 성공회대 외래교수, 2.1연구소 소장입니다.

* 저서엔 <88만원 세대>, <한미FTA 폭주를 멈춰라>, <아픈 아이들의 세대-미세먼지 PM10에 덮인 한국의 미래>, <조직의 재발견>, <괴물의 탄생>, <촌놈들의 제국주의>, <생태 요괴전>, <생태 페다고지>, <명랑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등이 있습니다.

*블로그 : http://retired.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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