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도 19번선은 우리나라의 국도 중에서 가장 사람들의 입에 많이 오르내리는 도로 가운데 하나다. 이 길을 화동-화개 꽃길이라고 부르고, 시인들은 가끔 이 길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이라고도 한다. 이 길을 따라 내려가면 박경리의 토지 무대가 되었던 마을들이 등장하고, 많은 시인들이 섬진강의 물과 고즈넉하게 내려앉는 지리산의 마지막 산세에 대해서 노래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다시 길을 따라 올라가면 지리산 인근에서 재배되는 녹차를 파는 다인들이 있고, 마지막에 지리산을 만나게 된다. 길 중간에 가수 조영남이 노래해서 유명해진 화개장터가 자리하고 있다. 가히 남도문학 1번지라고 해도 좋은 하동에서 지리산을 잇는 국도 19번은 문학과 문화 그리고 생태가 깃드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국도 19번선에는 몇 번의 위기가 있었다. IMF 이전이지만 과거의 현대그룹이 일관제철소를 건설하기로 했던 곳이 바로 이 국도 19번선이 바다와 만나는 곳이었는데, IMF 경제위기가 터지면서 현대그룹의 제철소 건설사업은 정지됐다. 10년이 지나 현대제철소는 IMF 경제위기의 뇌관을 제공한 당진의 한보철강 자리에 건설되게 되었다. 3년 전에도 이 길은 위기를 맞았었는데, 당시 건교부장관의 전면재검토 지시로 사실상 백지화된 적이 있다. 그리고 국민들이 대선에 온통 관심이 가 있는 지금 다시 한 번 위기를 맞게 되었는데, 이번 위기는 제대로 넘기기가 어려워 보인다.
이 도로가 맞게 되는 위기는 왕복 2차선인 이 길이 왕복 4차선이 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길에는 하루 평균 6000대의 차량이 지나가는데, 섬진강 건너편에 마주보고 달리는 지방도로 861번과 교통을 분담하게 되면서 조금씩 이용량이 줄어들고 있는 추세다. 이 아름다운 19번 국도가 막히는 날이 있기는 하다. 쌍계사의 벚꽃은 아름답기로 유명한데, 이 벚꽃이 만발한 4월 며칠 동안에는 이 국도가 실제로 막힌다. 벚꽃이 절정에 이르는 주말의 한 주 혹은 두 주 정도에는 거짓말같이 19번 국도는 주차장처럼 변하게 되고, 그래서 이 길이 4차선으로 넓혀져야 한다는 사람들의 말이 맞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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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되면 절경을 이루는 섬진강변의 벚꽃길... 자연보존인가 개발인가의 기로에 놓여있다. © 임흥재 |
그렇다면 어떤 해법이 있을 수 있는가? 건너편 431번 국도와 병목지점이 되는 지점에 다리를 하나 만들어서 우회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이 가장 간편한데, 사람들은 그건 전라도에서 관할하는 일이라서 부산지방관할청은 무조건 4차선 국도확장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상당히 답답한 노릇인데, 강을 건너면 자신들의 관할이 아니라서 두 도로를 조금 더 긴밀하게 연결하는 일은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이 아니라고 한다. 강동석 전 건설교통부 장관이 19번 도로 확장의 재검토를 지시한 것은 이런 사정을 이해했기 때문일 것이다.
전국의 모든 도로 확장에는 인근 시설물의 확장에 대한 논리가 개입되는데, 여기에도 마찬가지다. 도로를 만들어야 한다는 사람들은 주 5일제 근무와 웰빙문화의 확산을 하나의 이유로 들고 있고, 또 다른 이유로는 갈사만 경제자유지역에 공업단지가 신설될 가능성이 있다는 걸 들고 있다. 늘상 도로 신설과 확장에 내세우는 이유들이라서 새로울 것은 없지만 이런 이유가 맞는다고 하더라도 섬진강 건너편 국도와 함께 두 개의 도로가 있으니까 실제로 문제가 되는 날은 20년 후에도 벚꽃이 만개하는 며칠간이다. 환경영향평가의 교통영향량 평가도 이런 사실을 잘 보여준다.
참 난감하다. 벚꽃이 아름답기는 해도, 이 벚꽃 며칠 보자고 섬진강변의 절벽과 산을 파헤쳐서 흉물을 만드는 일을 해야 하는가? 특히 이 도로는 섬진강 상류로 갈수록 지형여건상 도로폭이 매우 협소해서 생태계에 결정적 타격을 미칠 수밖에 없는데, 그래서 이 공사비 역시 1㎞당 100억이 들어갈 정도로 돈이 많이 들어가는 값비싼 도로가 되는 셈이다. 현재로도 법정 보호종 311마리를 포함해 연간 3000마리 이상의 야생동물이 이 19번 도로를 건너면서 자동차에 치여 죽는 슬픈 도로인데, 왕복 4차선으로 확대되면 로드킬의 확률은 훨씬 높아질 것이다.
그렇다고 이 도로의 확장이 실제 주민들의 삶에 도움이 될 것인가? 도로가 넓어지면 넓어질수록 , 사람들은 도로에 차를 세우고 주변 농산물의 직거래나 작은 찻집에 들어가고 싶어지는 소위 구매욕구가 줄어들게 되고, 더 빨리 지나가버리고 싶은 직진욕구가 강해지게 된다. 도로를 확장한 지역에서 실제 판매량이 줄어드는 경우는 많은 곳에서 목격되는 일이다.
실제로 운전하다 보면 1차선 도로에서는 차를 세우고 잠깐 쉬어가고 싶은 생각이 들지만, 왕복 4차선 도로가 되면 차를 세우는 것도 위험하게 느껴지고 빨리 지나가버리고 싶은 생각이 더욱 강해지게 된다. 이래서 생겨나는 현상을 '종점 블랙홀' 현상이라고 한다. 도로가 넓어지거나 빨라질수록 양끝의 종점으로 소비지출이 집중되고, 그 중간에서는 아무런 경제행위가 벌어지지 않게 된다.
이 문제에 대한 제일 빠른 해법은 쌍계사의 벚꽃 일부를 판매하고 그 대금으로 개화일시가 벚꽃과는 다른 꽃을 심거나 다른 종류의 조경수를 심는 일이다. 그러면 1년에 3일 정도 일반국도 9번을 가득 메우는 차량행렬이 사라질 것이고, 국도 9번에 ㎞당 100억 원씩 들여서 1년에 3일 사용할 국도확장도 사라질 것이다. 대신에 19번 국도의 아름다운 모습과 생태계를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수 있게 된다. 아울러 인근 주민들도 점차 19번 국도를 중심으로 한 생태관광과 문화다양성을 유지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다.
우리나라의 땅주인들은 도로확장 및 건설명분을 찾는데 도가 튼 사람들이고, 이 사람들이 도로 만들겠다고 일단 나서면 대화는 불가능하다. 차라리 쌍계사의 벚꽃을 줄이는 것이 섬진강을 지키는 길이다. 그야말로 쌍계사 주지의 판단에 섬진강과 지리산의 생태계 운명이 달린 셈이다.
벚꽃. 슬픈 꽃이다. 너무나 아름다운 이 벚꽃은 왜 일시에 꽃을 피워 온 국토에 아픔을 주는가. 꽃도 슬프고, 나도 슬프다. 너무나 아름다워서 슬프다. 경기도의 나무들도 벚꽃축제에 밀려 지난 2년 동안 송두리째 뽑혔는데, 돈을 부르는 이 꽃이 어이하여 섬진강변에 이렇게 흐드러지게 피게 되었는가.
꽃은 아름답지만 사람들의 마음이 아름답지 않아, 벚꽃과 지리산의 싸움에 800여억 원이 넘는 돈이 피어나고, 공사구간에 사는 섬진강 천둥오리가 슬프게 운다.
* 본문은 <한겨레> [여기는 명랑국토부] 2월 22일자 기고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