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종욱 서강대 교수의 연구서 최신 연구서 [고구려사의 연구]에 대해 최광식 고려대 교수가 비판을 가했고, 이에 대한 이종욱 교수의 반론이 <교수신문>에 연재됐습니다. 두 학자의 치열한 고구려사 인식에 관한 관점을 <교수신문>의 도움의 받아 소개합니다-편집자 주.
최신 연구 반영 못해…발해, 말갈과 연합정권 / 최광식 저자 이종욱 서강대 교수는 그동안 소위 주류사학계에 비판을 가하고 ‘본연의 역사학’을 주장하면서 한국고대사를 연구해왔다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저자는 신라사를 중심으로 연구를 해왔는데, 이번에는 고구려의 실체를 입체적으로 복원하고자 이 책을 집필했다. 따라서 종래의 한국고대사 연구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가하며 한국고대사 연구의 수준을 식민사학을 여전히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후식민사학이라고 호되게 질타를 하고 있다.
그러나 기존의 잘못된 부분을 구체적으로 적시하면서 비판하고 그에 대한 자신의 새로운 해석을 개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새롭게 주장하는 점들을 보면 사실 여태까지 연구자들이 연구해온 성과에 기반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예컨대 신화를 역사로 해석하고자 하는 연구자들의 노력은 이미 일부 연구에서 시도되었으며, 저자가 처음으로 주장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고구려 초기기록의 신빙성문제에 있어서도 일부 연구자들이 이미 논하였으며, 그러한 선상에서 연구가 다양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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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종욱 교수는 새 연구서 '고구려의 역사'에서 역사를 정치적으로 해석할 것을 경고했다. 최광식 교수는 고구려와 발해의 계승을 강조했다. © 김영사, 2005 |
이 책에서는 고구려의 역사 전개를 7단계로 나누어 1장은 건국신화에서 시작하는 고구려의 초기국가 형성과 발전과정, 2장은 태조대왕에서 신대왕까지 정복왕국으로의 성장, 3장은 고국천왕에서 미천왕까지의 기간에 벌어진 왕정의 강화와 국제관계의 활발한 전개, 4장은 중국문명의 수용과 대국의로의 전환, 5장은 왕국의 전성과 왕정의 피로, 6장은 수·당과의 전쟁과 인심이 떠난 왕국의 위기, 7장은 왕국의 멸망과 한국사속의 고구려에 대해 다루었다.
저자는 사료가 부족하여 그동안 연구가 미진했던 고구려 초기 역사를 비교사적 관점에서 복원하는 한편, 건국신화에서 역사연구의 실마리를 찾고자 했다. 또한 실증적 해석과 추론을 통해 호동 왕자가 낙랑이 아닌 옥저 지역의 제후국을 정복하였다거나, ‘광개토왕비’에 일본을 부각하는 내용이 들어가 임나일본부설의 근거로 악용된 것은 고구려인 스스로가 원수였던 백제를 폄하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역사를 왜곡하였기 때문이라는 새로운 주장을 하고 있다. 또한 고구려는 예맥, 말갈, 선비, 숙신, 거란 등의 여러 종족을 지배한 일종의 제국이었다는 등 고구려사에 대해 여러 가지 새로운 해석을 제시하고 있다.
전체적인 내용이 사료를 나열하고, 그것을 저자의 관점에서 새롭게 해석을 가하고 있다. 고구려는 소국, 소국연맹, 소국 병합 과정을 거쳐 다른 왕국들을 정복해 토지와 인민을 늘려 커다란 왕국으로 발전했다고 보았다. 그러나 이러한 발전단계는 저자가 신라와 고조선의 국가형성을 논하면서 적용을 한 것으로 고구려에도 그대로 적용한 것이다. 과연 이러한 발전단계가 고구려에도 적용될 수 있는 것인가를 검증한 후에 적용을 해야 하는데 그대로 도식적인 적용을 하고 있다. 저자가 비판하는 부체제설이 모든 한국 고대 국가에 적용하는 것이 무리이듯이 이 또한 마찬가지라 하겠다.
새로 발굴된 고고학 자료나 다양한 고구려 고분벽화를 해석해 고구려의 역사와 문화를 입체적으로 복원하려는 최근의 연구 경향들을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이들 자료를 통해 생활사나 문화사 등 그 시대의 사회나 문화를 재조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쉽다. 또한 대외관계의 경우 동아시아 여러 나라와의 국제관계속에서 구조적으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고구려의 멸망을 국제적 역학관계 속에서 파악하지 않고 ‘고구려왕정의 피로’에서 그 원인을 찾고자 하는 것이 좋은 예라 하겠다.
그리고 발해의 역사적 정체성을 논하는데 있어 왕의 출신성분만을 중요시한 것도 문제라고 하겠다. 또한 대조영에 대해서는 ‘속말말갈’이라는 기록과 ‘고려별종’이라는 기록이 있는데 ‘고려별종’설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속말말갈’설에 대해서만 언급한 것은 이해할 수가 없다. 또한 고구려인 20만 명이 당나라에 잡혀갔기 때문에 마치 발해에는 고구려인은 소수만 남아있는 것처럼 인식하고 있는데, 고구려가 멸망할 때의 고구려 인구는 70만호로 기록되어 있다. 이를 70만 명이라고 보더라도 신라와 돌궐에 간 10만 명을 제외하면 발해에는 40만 명 정도가 남아 살고 있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따라서 발해는 고구려와 말갈에 의한 연합정권이라고 보는 것이 역사의 진실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역사의 정체성을 논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역사 계승의식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앞에서 몇 가지 문제점을 지적했지만 고구려의 역사를 새롭게 보려는 저자의 노력에 대해서는 찬사를 보낸다. 그리고 종래의 잘못된 점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새로운 방법론을 개척해나가는 자세에 대해서도 일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디딤돌로 하여 왜곡과 과장의 역사를 지양하고 진정한 ‘있는 그대로’의 입체적이며 본격적인 통사가 나오기를 기대한다.
* 필자 최광식 교수는 고려대에서 ‘한국고대의 제의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우리 고대사의 성문을 열다’,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등의 저서가 있다.
部체제설 역사 왜곡-말갈 國史 포함도 문제 / 이종욱
반론: 최광식 교수의 서평에 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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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구려사 연구에 새로운 지평과 함께 논란을 일으킨 서강대 이종욱 교수 © 교수신문 제공 |
최광식 교수의 서평에 감사드린다. 여기서는 그에 대해 일일이 답하기보다 ‘고구려의 역사’에 대한 몇 가지 변명을 하겠다.
첫째, 이 책에서는 본연의 역사로서 고구려를 객관화 하고자 했다. 한국사는 한국사상 존재했던 여러 나라를 다룰 권리가 있다. 그러한 이유를 갖고 이 책에서 고구려의 역사를 다루었다. 지난 세기 고구려는 한국인의 자존심으로 작용했다. 그것은 제국 일본의 지배를 받는 상황에서 한국인들이 백제나 신라와 달리 고구려를 애국심의 원천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선시대까지 고구려가 특별하게 취급된 적이 없다. 따라서 이 책에서는 고구려의 역사를 있었던 대로 그럴법하게 되살려내고자 했다. 이것이 본연의 역사다.
둘째, 이 책은 고구려의 역사가 한국·한국인을 형성하는 데 어떤 위치를 차지했는지 밝혔다. 그 하나는 고구려가 망한 후 대신라(소위 통일신라)에서 고구려인들을 어떻게 편제했나 하는 문제다. 신라에서는 원칙적으로 고구려인들에게 6두품까지의 신분을 주었다. 대륙을 지배하였던 고구려인들도 신라에 정복된 후 예외 없이 피정복민 대우를 받았던 것이다. 다른 하나는 옛 고구려의 토지에 자리 잡고 번성하였던 말갈(발해) 왕국을 한국사에 넣어야 하는가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698년 속말말갈인 대조영이 세웠던 말갈이라는 왕국은 713년 당으로부터 발해군왕으로 책봉된 후부터 발해라는 국명을 사용했다. 당연한 일이지만 그 안에 옛 고구려인들이 있었고 그들은 말갈(발해)의 신료로 활동했다. 그것을 가지고 발해를 고구려와 말갈에 의한 연합정권이라 할 수는 없다. 그것은 청나라를 여진족과 한족의 연합정권이라 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유에서다. 그러한 발해를 한국사에서 다루기 시작한 것은 조선 후기의 일이다. 그 때 안정복은 발해를 우리 역사에 수록하는 것이 부당하다고 했다.
문제는 지난 60년 동안 한국사학이 발해를 조금씩 승격시켜왔고 2002년부터는 국정교과서 ‘국사’에 발해와 신라를 일대일로 집어넣어 남북국시대를 설정하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고려는 신라의 유산이 없었다면 형성될 수 없었던 왕국이다. 그와 달리 발해는 고려의 형성에 별다른 유산을 남기지 못했다. 현재 한국·한국인을 만든 역사에서 발해는 별 의미를 찾을 수 없는 존재다. 여기에 발해를 한국사로 다루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이 있다. 셋째, 이 책은 고구려사에 대한 하나의 가설이다. 당연한 일이지만 앞으로도 새로운 가설은 나와야 한다. 그것이 고구려의 역사를 그럴듯하게 재구성해 나가는 길이다. 국정교과서 ‘국사’는 다양한 역사해석의 가능성을 말살하고 역사를 규격화하여 국민의 역사지식으로 강요하는 장치일 뿐이다. 그런 면에서 부체제설과 같이 역사를 왜곡시키는 가설을 ‘국사’에 수록한 것은 국가가 앞장서 역사를 왜곡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넷째, 이 책에서는 정치사를 중심으로 새로운 시대구분을 하였다. 시대구분은 역사를 보다 체계적·구조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이고 가설이다. 시대구분이 역사 자체일 수는 없다. 이 책에서 신라의 초기국가 형성·발전 과정에 대한 해명 중 찾아낸 시대구분을 적용한 것이 사실이다. 이는 비교사적인 방법의 적용을 의미한다. 그런데 그러한 시대구분을 이 책에서 그대로 따를 수는 없었다. 고구려라는 나라가 자리 잡았던 예맥 지역의 정치적 상황이 달랐기 때문이다. 한편 이 책에서는 부체제 단계를 시작으로 하는 기존의 시대구분이 갖는 문제도 분명히 밝혔다. 앞으로 또 다른 시대구분은 계속 나와야 한다.
다섯째, 이 책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 생활사나 문화사를 제대로 다루지 않은 것도 그 한 예다. 그것은 또 다른 작업이 되어야 할 것이다. 분명한 점은 이 책이 그러한 문제까지 다루려는 목적에서 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여섯째, 이 책은 지난 60년 동안 한국사학이 식민사학을 부둥켜안고 탄생시킨 후식민사학을 넘어서려 했다. 이 책은 그동안 한국사학이 풀지 못한 많은 문제를 새로 해석했고 결과적으로 문제도 제기하여 새로운 논쟁거리를 제공하였다. 예컨대, 지금까지 한국사학이 고구려 건국신화나 태조대왕 이전의 사료가 갖는 의미를 밝혀오기는 했으나, 태조대왕 이전 고구려의 역사를 이 책에서와 같이 본격적으로 다룬 예는 없다. 결과적으로 이 책은 후식민사학이 뭉개온 역사를 되찾는 작업을 한 셈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는 '광개토왕비'나 ‘삼국사기’와 같은 자료를 넘어 고구려의 역사를 재구성한 것도 된다.
일곱째, 이 책은 민족과 실증의 무대를 떠나 작성된 책이다. 민족·민족사를 외치며 다른 많은 사실을 은폐하는 방법으로 고구려의 강한 것으로 만드는 국수주의적인 책이 아니다. 그리고 실증을 외치며 왜곡된 역사를 정답이라고 내세우는 그런 책도 아니다. 다만 이 책은 고구려인 그들의 왕국을 그럴법하게 그려내고자 했을 뿐이다. 끝으로 이 책을 디딤돌로 하여, 정치적 목적을 버리고 고구려의 역사 그 자체를 위한 연구가 이어지기를 바란다.
* 필자 이종욱 교수는 서강대에서 ‘신라국가형성사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고조선사연구’·‘한국 초기국가 발전론’·‘신라골품제연구’·‘신라의 역사’ 1·2 등 16권의 책과 '남산신성비를 통하여본 신라의 지방통치체제'·'백제의 좌평'·'고구려의 좌·우보와 국상'·'고구려의 지방통치조직'·'고구려의 중앙정부조직' 등 많은 논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