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였다. 10. 26 보선에서 여당이 4개 선거구 모두에서 한나라당에 참패했다. 선거 결과가 알려진 직후 문희상 의장이 내심 2곳 정도에서 당선될 것을 기대했다고 속내를 털어놓은 것처럼 여당으로서는 반신반의하면서도 부천과 대구에서 혹시나 날아들 승전보를 기대하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잘 아는 바와 같이 10. 26 보선의 최종 스코어는 4 : 0이었다. 물론 대구와 부천에서 여당 후보들이 나름대로 선전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조차도 인물론과 공공기관 이전 등의 개발공약에 기댄 결과였다.
하긴 대통령과 여당에 대한 지지율이 바닥을 기는 상황에서 여당 소속 후보들이 취할 수 있는 선거전략은 인물론과 개발공약 이외에는 달리 없었다.
한편 여권 일각에서는 한나라당이 보선전문당 이라느니, 전투에서 이기고 전쟁-총선이나 대선을 의미한다-에서 진다느니 따위로 보궐선거의 의미를 평가절하 하곤 한다. 그러나 이러한 자세는 이번 보선의 결과를 ‘참여정부의 실정에 대한 국민들의 준엄한 심판’이라거나 ‘민생과 경제를 살리라는 국민의 뜻’이라는 등으로 견강부회하는 한나라당의 태도만큼이나 옳지 못하다.
언제나 그랬듯이 한나라당이 뭐 하나라도 잘한 것이 있어서 10. 26 보선에서 승리한 것은 결코 아니다. 그 보다는 여당이 자신들을 원내 1당으로 만들어 준 지지자들이 간절히 원했던 정치, 경제 부면의 개혁 의제들을 설정하는데 무능했고 그 귀결로 국정주도권을 상실한 탓이 크다.
참여정부가 출범한 이래 한나라당이 한 일이라고는 대통령에 대한 저주에 가까운 험담과 잊을만하면 들고 나오는 색깔론 정도였음을 감안해보면 이런 해석이 그리 억지스럽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보선의 주요한 특징 중 하나가 낮은 투표율에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둘 때 여당이 보선에서 승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개혁 내지 진보 성향의 유권자들을 투표장으로 불러 모으는 것뿐이었다. 본디 보수성향의 유권자들이 개혁 성향의 유권자들보다 투표율이 훨씬 높다는 사실은 일종의 공리에 가깝다.
그러나 여당으로서는 불행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겠지만, 전통적인 여당지지자들이 지난 4. 30재보궐선거와 마찬가지로 이번 10. 26 보선에서도 투표장으로 발걸음을 옮겨야 할 까닭을 찾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더욱이 보궐선거는 그 속성상 대통령 선거나 국회의원 선거와 같은 무게감이나 절박감을 갖기 어렵다. 물론 여당은 갖가지 이유를 들어 지지자들을 투표장으로 불러모으려 하지만 이런 시도가 매번 성공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쉽게 말해서 지난 대선과 총선에서 여당에 표를 던졌던 지지자들은 말만 무성하고 이렇다할 개혁의 성과를 보여주지 못한 여당에게 냉담한 반응을 보인 것이고, 그 결과가 4 : 0이라는 스코어로 나타난 것이다.
적지 않은 여당 지지자들 입장에서는 여당이 참으로 몰염치하게 보일 것이 분명하다. 그도 그럴 것이 주변부 정치인에 불과했던 노무현을 극적으로 대통령에 당선시킨 것을 출발점으로 해서 탄핵이라는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대통령을 구하고 심지어 소수당이었던 열린우리당을 과반 정당으로 만들어 준 것까지 여당의 지지자들이 대통령과 여당을 힘이 닿는 만큼 지지해 준 이유는 대통령과 여당이 정치, 경제 부면에 대한 철저한 개혁을 약속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지자들의 기대와는 달리 참여정부의 임기가 이미 절반을 넘은 현 시점에서 정치 개혁은 더디기만 하고, 주로 자산양극화에 따른 빈부격차는 커지고만 있다. 사정이 이와 같다면 기존 여당의 지지자들이 여당을 계속 지지해야 하는 이유는 한나라당에 대한 반감 이외에는 달리 찾기 어렵다 할 것이다.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를 반드시 당선시켜야겠다고 마음먹은 유권자와 상대방 후보를 낙선시켜야겠다고 마음먹은 유권자 중 누가 마음먹은 바를 투표장에서 실행에 옮길지는 불문가지이다.
여당이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바로 이 대목이다. 보선에서 거듭 확인되고 있는 여당 지지자들의 심리상태가 앞으로 있을 대선이나 총선에서 재현되지 않을 것이라고 볼 근거는 전혀 없으며, 이는 곧 여당이 정권재창출에 실패할 것을 의미한다.
상황이 이렇다면 여당이 택해야 하는 길은 오직 한국사회의 정치, 사회, 경제 부면에 대한 철저한 개혁뿐임이 자명하다. 이제라도 여당은 국가보안법 폐지 등을 비롯한 일련의 정치, 사회 개혁에 매진해야 할 뿐만 아니라 자산 양극화 해소를 통해 빈부격차를 줄이는데 총력을 경주해야 한다.
그 길만이 여당이 급속히 이탈하고 있는 지지자들을 결집시키고 지자자들의 외연을 넓힐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며, 차기 대선과 총선에서 승리할 수 있는 최선의 해법이다.
모쪼록 대통령과 여당은 실용이니 연정이니 하는 헛된 지향과 기대를 버리고 개혁으로 승부를 걸라! 대부분의 국민들은 개혁에 피로감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허울 뿐인 개혁에 염증이 난 것임을 기억하라!
끝으로 국민들이 바라는 정부는 민주화되고 탈권위적인 정부임과 동시에 유능한 정부임을 대통령과 여당은 한시라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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