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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게 성범죄를 가르치는 어른들
[정문순칼럼] 청소년 집단성폭행 사건의 본질, 대통령부터 책임있다
 
정문순   기사입력  2004/12/14 [13:45]
길을 가는데 옆을 지나던 여자가 곁에 있는 초등학생 아들에게 하는 말이 귀에 들어온다. "여자와 접시는 밖으로 내돌리면 깨지는 법이야." 그 말을 듣고, 엄마의 고약한 가르침을 받으며 커갈 그 아이의 미래가 걱정되었다면 주제넘은 생각이기는 할 것이다.
 
그러나 적지 않은 성인 남자들이 가지고 있는 비뚤어진 여성 의식이 어디서 왔는지 캐본다면, 그들이 코흘리개 시절부터 주변의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보고들은 것과 떼어놓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밀양 지역 고등학생들의 집단 성폭력 사건으로 세상이 충격을 추스르지 못하고 있다.
 
이런 일이 터지면 각종 단체들은 저마다 다급하게 진단과 대책을 내놓기 바쁘다. 그러나 청소년이 가해자인 범죄의 경우 사회 각계의 반응은 하나의 목소리로 쏠리는 경향이 있다. 이 사건을 보는 시각에는, 비슷한 시기에 터진 입시 부정과 묶어 입시 위주 교육의 필연적인 병폐로 보는 것 말고는 거의 없는 듯하다.
 
청소년 성범죄를 입시 교육의 산물로 보는 한 정답은 보지 않아도 뻔하다. 살인적인 입시 교육은 인성 교육과 성교육의 부재를 낳고, 교육다운 교육을 받지 못한 아이들은 범죄로 빠져들고, 유해 매체에서 본 것을 흉내내게 되고... 이런 식의 진단이 모아지면 대책 역시 뻔하다. 조만간 교육 당국의 무슨 특별 대책이 나올 것이고, 음란물 단속도 대대적으로 벌어질지도 모른다.
 
인성교육과 성교육 부재
 
애꿎은 만화와 영상매체에 또 불똥이 튀게 생겼다. 모두 익숙한 풍경들이다.

청소년 성범죄를 학교 교육 때문으로 보는 진단이 틀렸다는 것은 아니다. 도덕과 양심을 기르는 교육이 실종된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건전한 성 의식을 주문하는 것은 염치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번 사건을 인성 교육의 파탄이 낳은 청소년들의 탈선으로만 보는 것은 시각이 넓지도 정밀하지도 못하다. 사람들은 어른의 경우와 달리 청소년 성범죄 만큼은 여성에 대한 범죄라는 측면으로 보기보다 청소년 범죄라는 특수한 테두리 안으로 밀어 넣는 버릇이 있다.
 
그렇게 되면 성폭력은, 여성과 약자에 대한 폭력으로서의 의미는 증발해 버리고 치열한 경쟁에서 탈락한 아이들의 자기 파괴적 일탈 행위로만 남을 뿐이다. 입시 교육을 청소년 성범죄의 주범으로 몬다면 가해자나 피해자 모두 교육 제도의 궁극적인 피해자라는 결론이 나오기 십상이다.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입은 피해자에 대한 배려는 어디에도 없게 된다.
 
입시에 짓눌린 아이들의 피폐한 심리가 성범죄를 낳는다고 보는 시각에는 일상화된 성범죄의 현실이 고려되고 있지 않다.
 
이제는 교육다운 교육 필요
 
어른들 세계에 만연한 성폭력이 그대로 아이들에게 대물림된다는 사실에 눈을 감는 건 얼마나 위험한가. 남자 중ㆍ고등학교에는 수업 시간에 아이들의 집중력을 높이기 위해 여성을 노골적으로 폄훼하는 발언을 재미 삼아 하는 남자 교사들이 적지 않다. 어린 아들 앞에서 '여자'와 '접시'는 어쩌고 하는 여자나, 길거리 아무 데서나 코흘리개 아들의 소변을 누이는 부모들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남성의 성적 우월 의식을 아들에게 가르치는 것을 교육이라고 하고 있는 셈이다.
 
남성적 우월감의 표출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것이 곧 성범죄이다. 언론은 이번 사건의 주모자들이 폭력서클에 가담한 학생들이라고 해서 문제아들의 행동으로 치부하지만 그렇게 볼 일이 아니다.
 
폭력은 약자에 대한 우월 의식의 노출이라는 점에서 폭력 조직의 구성원들이야말로 성범죄에 가장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처지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십중팔구 가해 학생은 자신들이 한 짓을 범죄라고 생각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성범죄를 특별한 사람만 저지를 수 있는 게 아니게끔 만든 것 역시 어른들이다.
 
약자에 대한 폭력은 이 나라 도처에 널려 있다. 미군들에게 개죽음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의 나라로 날아가 자국의 파병 군대더러 미국의 범죄에 동참하라고 격려하는 대통령이 있는 나라에서, 어른들의 거울과도 같은 아이들이 저지른 폭력에 화들짝 놀라는 건 호들갑으로도 느껴진다.
 
지금 누가 뼈아프게 가슴을 치며 반성해야 하는가. / 편집위원
 
* 필자는 문학평론가입니다.
* 본문은 '언론개혁을 바라는 시민들이 힘을 모아 만든 신문' 경남도민일보 http://www.dominilbo.co.kr/ 12월 14일자에도 실렸습니다.  
* <대자보> 편집위원, 문학평론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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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4/12/14 [13:45]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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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벽돌공 2004/12/14 [21:52] 수정 | 삭제
  • 전문가의 이름으로 따발거리는
    하나마나한 이야기는 참으로 졸작인데
    제목부터 눈길을 끄는 기사에다
    대한민국의 폐부를 찌르는 기사.
    이 문제와 관련된 글 가운데
    최고라는 찬사를 바칩니다.
  • 우째 2004/12/14 [16:21] 수정 | 삭제
  • 노대통령만 까면 진보지식인이냐? 왜 뻑하면 노대통령을 물고 늘어지나? 해가 뜨는 것도 달이 지는 것도 노대통령 책임이냐 말이다.. 문제를 직시해서 글을 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