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세화 선생님. 12월 5일 여의도 총진군대회에 끝까지 함께 해주신 홍세화 선생님을 보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저렇게 늙어야지" 하는 생각부터.....
어제 마포을 당원들은 서강대교 앞 광흥창 역 6번 출구에서 12시30분부터 사전 집회를 가졌다. 처음 시작할 때는 50여명의 당원밖에 없었다. 사전 집회가 시작되고, 광흥창역 6번 출구로 누군가 계단을 두세개씩 밟으며 급히 올라오셨다.
잠시 신석호 동지의 증언.
"얼굴이 상기돼서 올라오시더라구요. 사전집회에 늦어서 미안한 얼굴이셨죠. 사실 지구당 사전집회까지 홍세화 선생님이 오실 줄은 몰랐죠. 서강대교를 건너야 하니까 일단 힘들고.... 그냥 여의도로 바로 오셔도 될 건데.... 어쨌든 사전 집회에 늦어서 헐레벌떡 계단을 올라오시는 걸 보고 감동했어요." 홍세화 선생님이 늦는다고 누가 뭐라고 그럴 당원은 아무도 없다. 단지 당원으로서 지구당이 공지한 집회에 늦지 않으려고 뛰어오시는 모습을 보고 누가 감히 감동하지 않겠는가.
오후 1시30분경. 매서운 바람이 부는 서강대교를 당원 80여명이 함께 건너야 한다.
비 정 규 악 법 끝 장 내 자 빠 샤 ! 서교동 분회에서 준비한 피켓이다. 한 글자 한 글자 당원들이 피켓을 들기 시작한다. 서교동 분회 당원중에는 홍세화가 있다. 홍 선생님도 서교동 분회원으로 한글자 피켓을 든다. 홍 선생님이 든 글자는 '끝' . 비정규악법 '끝'장내자 의 '끝'자다. 글자를 맞추기 위해 홍 선생님도 당원들 사이에 서서 서로의 글자를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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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주노동당 여의도 총진군대회 '국가보안법 철폐를!' ©서태영 |
그리고 서강대교 행진.... 서강대교를 건너는 차량을 향해 홍 선생님도 '끝'자라는 글자를 보이려 애쓰신다. 명망가로서의 모습이 아닌 한사람의 당원으로서, 그리고 분회원으로서 그렇게 홍 선생님은 그렇게 집회에 참석하셨다. 매서운 바람이 부는 서강대교 행진에서 홍 선생님은 '끝'이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조직의 일원으로 다리를 건넜다.
서강대교를 건넌 후 우리는 여의도 문화마당 입구에서 아침부터 당원들이 정성스레 준비한 주먹밥을 먹었다. 120여개의 주먹밥을 나눠주고 난 뒤 홍 선생님을 봤다. 홍 선생님도 주먹밥 두개를 맛있게 드시고 계셨다. 중간중간 당원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집회 중간 홀트노조 이현주 당원께서 나를 부른다.
"위원장, 홍선생님 옆에 좀 있어. 아니 혼자 저렇게 풍선막대기 들고 구호 외치고 박수치시는 것도 봐. 옆에서 같이 좀 있어." 뒤를 돌아보니 홍 선생님 무대에서 비정규직 철폐, 국가보안법 완전폐지 등이 나올 때마다 서울시당에서 나눠준 막대풍선을 열성적으로 두드리신다.
한 당원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아니, 어디 홍세화 선생님이 여기 있을 짠밥인가요. 내빈석에 앉아야지. 홍세화 선생님 오셨다고 소개도 받아야 되는분이 지구당 깃발아래 함께 있으면서 풍선 두드리시는 거 봐요." 내가 생각해도 그렇다.
중간중간에 타지역 당원들이 대열안에 있는 홍 선생님을 발견하고는 사인도 부탁하고 사진촬영도 부탁한다. 그래, 홍세화 선생님 소개 받으면 환호할 당원많다. 아, 홍세화 선생님도 총진군대회에 오셨구나 하며 힘받을 당원들 많다. 그런데 홍 선생님은 나서지 않는다. 그냥 지구당 깃발아래 있는걸로 만족하신다.
그때가 언제였나. 우리가 경희대에서 대선후보 출정식(?)을 할때도 홍세화 선생님은 그냥 지구당 깃발아래서 권영길 대선후보를 축하해 줬다.
대선기간에 한겨레신문에서 홍세화 선생님이 당원이라는 걸 알고 징계가 운운될 때가 있었다. 난 한겨레신문사 앞에서 1인 시위를 했는데, 1인 시위를 못하게 막은건 한겨레신문 직원도 아니고, 바로 홍세화 선생님이었다. 추운데 여기 있으면 어떻하냐고.... 내 옷자락을 붙들고 몸벽보를 벗기신분이 바로 홍세화 선생이었다. 그리곤 따뜻한 추어탕을 사주시며 안에서 잘 해결한테니 절대 이렇게 고생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셨다. 나를 끝어잡아다닐때, 홍 선생님의 표정은 정말 단호했다. 그런 표정을 이전에도 지금까지도 본적이 없다.
총진군대회가 끝나고, 우린 기념촬영을 했다. 100여명이 넘는 당원들이 사진을 촬영하니 장관이었다. 물론 거기에 홍세화 선생님도 있었다.
그리고 다같이 망원동에 와서 뒤풀이를 진행했다. 조금 늦게 도착해 보니 수육을 시켰다. 아이구...이게 얼마야... 돈을 얼추 계산하니 어마어마하다. 조급한 마음에 김현일 총진군대회 단장에서 뒤풀이 회비 꼭 걷으라고 말했다. 돈이 모자라 누군가 독박쓰면 어쩌나 하고 계속 신경이 쓰인다.
술잔이 오가고 50명이 넘는 당원들이 총진군대회와 이후 당이 어떻게 투쟁해야 될지 서로 얘기하느라 정신이 없다.
내일 군대를 가는 이정수 당원을 위해 건배도 했다. 정수가 많이 부끄러워한다. 내일 군대가는데 오늘 총진군대회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결합해서 너무 고맙다. 트럭으로 이동하며 강정을 파시는 부모님과 함께 늘 새벽부터 일어나 움직였던 정수였다. 늦은 밤에는 당사에 나와 인터넷사이트 개편에 대해 회의했던 정수. 내일이면 새로운 세계에 적응을 해야겠지....
홍 선생님도 술잔을 기울이며 당원들과 얘기중이다. 그런데, 생각보다 일찍 홍 선생님이 자리를 뜨신다. 당원들이 모두 인사를 하고 박수를 친다. 특유의 쑥쓰러운 얼굴을 하시고 주목받는게 영 어색하신지 황급히 인사를 하고 자리를 뜨신다.
홍 선생님을 배웅하고 다시 들어와 나도 술 한 잔했다. 그러다, "어라 홍 선생님 회비내셨나"고 농을 던졌다. 괜스레 농담한마디 했다가 당원들로부터 핀잔 들었다.
"아...뭐 그런 뜻이 아니고, 여기있는 사람들은 반드시 회비내라는 얘기야. 지금 보니까 심각해.....돈 많이 나오겠어."
위원장이 별쓸데없는 걱정한다고 뭐라하겠지만, 어느 당원이 왕창 돈내는거는 막아야겠기에.....
한창 당원들한테 핀잔 듣고 있는데 "위원장님 홍 선생님이 찾아요"한다. 어라..방금 가셨는데 설마 회비 내실려고 다시 오셨나.... 신발을 신고 식당 입구에 가보니 홍 선생님이 뭔가를 쥐고 있다가 내 손에 꼭 쥐어주신다.. "정말 회비내러 오셨나?" 라는 생각을 하는데 두께가 장난이 아니다. 내 손을 펴보니 만원짜리가 수두룩하다. 너무 당혹스럽고, 황망했다. 이러시면 안된다고 예의상 그러는게 아니라 진짜로 돈을 다시 홍 선생님께 건내는데, 그게 어디 뜻대로 되겠는가. 홍 선생님은 뒤풀이비가 많이 나올테니 보태라고 하시면서 황급히 자리를 뜨셨다.
식당에 들어와서 돈을 세보니 20만원이다. 총선직전 후원회에 오셔서 30만원을 주고 가셨는데, 또 이렇게 큰 돈을 받고야 말았다. 당원들에게 홍선생님이 뒤풀이 비용을 주셨지만, 특별당비로 처리하겠다고 말했고, 우린 모두 거기에 동의했다.
서교동분회가 총진군대회에서 어묵을 팔아 모금한 20여만원을 이 겨울 투쟁에 나서고 있는 동지들께 따뜻한 선물을 보내기로 했다. 병원비가 모자란 정종태 당원에게도, 비정규직 차별철폐 투쟁에 앞장서고 있 는 동지들에게도, 국가보안법완전철폐을 위해 농성하는 동지들에게도 정립회관 동지들에게도, 풀무원동지들에게도 작지만 동지들의 정성이 담긴 선물을 보내기로 했다.
서교동분회가 모금한 금액이 적지 않지만, 투쟁하는 동지들이 많기에 금액이 적을 수 있다. 그래서 난 이자릴 빌어 당원들께 동의를 구한다. 홍 선생님이 주신 20만원과 지구당 예산을 조금 더 보태서 귀한 선물을 마련 해보는 것이 어떨까.
어제 총진군대회에서 본 홍세화 당원. 그가 있는 그 자체만 가지고 난 많은 걸 배웠다. 당원들 역시 그랬을 것이다. 유명세에 연연하지 않고, 당을 위해 지구당을 위해 조용하지만, 힘있게 투쟁하는 한 당원의 모습이 바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당원의 자세가 아니었을까.
당원은 어때야 한다는 백마디 말보다 어제 홍 선생님이 보여준 그 모습이 바로 '당원의 길'이었다고 말하면 지나친 과장일까.
나도 저런 모습으로 살고 싶다.
홍세화처럼 살고 싶다. 비가 오는날, 추석특판을 하는 지구당 사무실에 찾아와 양손가득 특판 물품을 사고, 우산은 힘겹게 어깨에 걸치며 비를 맞고 가는 홍 선생님의 뒷모습이 다시 생각난다.
"젊은날 내 살아 생전에 과연 진보정당이 활동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까 처연하게 생각을 했었다"는 홍 선생님의 말이 다시 생각난다
* 필자는 민주노동당 마포을 지구당 위원장입니다.